쉼터에서 만나다
토니 브래드먼 엮음, 김화경 옮김 / 동산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친절하게도 책 뒤에 마련된 정보페이지에는 난민(Refugees)에 대한 정의도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어 자신의 나라를 떠나 국경을 넘은 사람이나 분쟁 혹은 일반화된 폭력 사태로 인해 나라를 떠나 돌아갈 수 없는 사람'. 

모두 11편의 이야기로 엮어진 본문을 읽으며 문득 '나라를 떠날' 이유가 없음에, 또한 난민으로 낯선 세상에 떠돌아 다니지 않음에, 나를 난민으로 떠돌게 하는 '나의 나라'에 대해 진정으로 감사한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내전으로 조국 콩고를 떠난 일곱 살 사빈이나 에티오피아와의 기나긴 전쟁으로 에리트레아에 엄마를 남겨두고 떠나온 카림, 정치적 이유로 영국으로 밀입국한 사미얼,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베트남 전쟁을 피해 탈출한 후이, 군사 독재 정권의 강제 징병을 피해 에티오피아를 떠나온 대니...하나같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택했던 탈출은 그러나 아직은 여린 새싹같은 아이들에게 온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일단은 난민신청 자격이 되어야겠기에 영문도 모른 채 부모들과 함께, 또는 부모들에게 등 떠밀려 조국을 버리거나 혹은 탈출하거나 하는 것조차 위험천만한 모험으로 지친 아이들. 그 후에도 절로 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코 '난민'이란 이름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선, 자신의 위급한 처지를 인정받는 난민자격을 얻어야 그나마 '추방'이라는 두려운 것에서 안심할 수 있을 정도이며, 난민이 된다하더라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은 그들에게 좀처럼 안식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새삼 조국이란 울타리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고나 할까.......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조국을 떠나야 했던 아이들이 낯선 이국의 땅에서도 평범한 일상에 대한 소망이 그치지 않는 것을 보니 안타까움이 밀려옴과 더불어 한편으로 내와 딸아이에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나라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하긴 언젠가 가정폭력으로 인해 국내(한국)에서 학업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캐나다에서 난민신청이 허가된 뉴스를 듣고 뜨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경우의 난민신청 사유가 이 이야기처럼 심각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 심각한 문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세계의 어느 곳에서는 피치 못할 이유로 난민이 되려는 사람들과 또 난민을 인정하느냐마느냐로 고민하는 나라들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비록, 우리 역시 연이은 사건으로 온국민이 실의에 빠져있고 전쟁의 위협까지도 염려하고 있는 현실이지만....국가의 안위에 따라 우리의 앞날도 쉼터에서 만난 아이들의 처지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 국가의 안전에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더불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을 나라 밖으로 내몰아 여기저기 떠도는 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몹쓸 세상이 꿈인듯 사라지고, 온세상 구석구석에서 아이들의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앞표지에 철조망너머 아이의 공허한 눈망울 가득 희망이 채워지기를 꿈꾸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와 토종 씨의 행방불명 / 신통방통 곱셈구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우와 토종 씨의 행방불명 - 우리가 알아야 할 생물 종 다양성 이야기
박경화 지음, 박순구 그림 / 양철북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어느 해보다 봄맞이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돌이켜보면, 때아닌 삼월에 내리는 눈은 서설(瑞雪)이라 하여 그 해에는 풍년이 들 것이라 반가워하였던 것도 같은데... 이는 제아무리 겨울이 늦장을 부린다하여도 삼월쯤이면 겨우내 땅 밑에서 웅크리고 있던 새싹들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봄을 재촉하는 탓이리라.
또 삼월에 내리는 눈이라고 해봐야 가볍게 눈발이 날리는 정도였지, 지난 3월처럼 교통이며 농가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3월에는 몇차례의 때아닌 폭설같은 눈이 내렸고 또 4월에도 몇 곳에 가볍게 날리는 정도였지만 눈이 온다는 뉴스에 화들짝 가슴부터 쓸어내렸었다. 게다가 이제 겨우 봄볕을 받아 연둣빛 새싹을 틔우던 개나리며 하얀 꽃몽오리를 맺고 있던 목련조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풍경에 절로 발이 동동 굴러졌다. 

그래서 더욱 예사롭지 않게 읽은 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구 온난화'로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오늘날의 지구환경은 이제 어느 한 나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인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심각한 과제가 된 탓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 환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생태계의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미 '여우와 토종 씨...'란 제목이 시사하듯...... 

아이들의 옛이야기에 호랑이, 토끼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여우는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이고, 우리의 소중한 먹을거리인 토종 씨 또한 어느새 행방불명된지 오래다. 물론, 한때 우리가 이땅의 주인이지 못했던 그 시절에는 함부로 우리 땅을 차지하고 호랑이마저 멸종시킨 침략자들의 만행도 있었다지만, 여우가 사라지고 토종 씨가 사라진 것은 외부의 침략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잘못때문이란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온갖 편리함과 발전에만 급급하여 무엇을 잃어버리고 또 무엇을 없애는지조차 몰랐던 어리석은 우리들. 날씨가 예전같지 않고 계절이 평년처럼 순조롭지 않자 이제야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환경'을 떠올리는 어리석은 우리들이다. 

몸에 좋다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야생동물을 잡아대고 산나물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욕심주머니는 오늘도 채워질줄 모른다. 보릿고개를 겨우 넘던 시절, 그야말로 산나물이 아니면 살아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그나마 먹을거리가 되어주었던 그 이치를 어찌하여 먹을 것 넘쳐나는 요즘에도 똑같이 적용하려 드는지......
한마디로, 산업은 첨단화되어 우주여행이 현실이 되고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히려 어리석음을 더해가고 있는 셈이다. 

이미 무분별한 개발과 발전만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산과 강, 땅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함께 살아야 할 동물들을 죽음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 회자된 지도 여러 해가 되었음에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만을 더 구체화하고 있을 뿐이다. 역시나 인간의 이기심때문이렷다. 

지난 주에는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중국에서는 지진이 발생해 인명피해는 물론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못하니 국제적인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멀게만 느껴지는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은 그 화산재가 얼마 후면 우리 땅 한반도를 지난다고 한단다.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 하지만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인한 재해에는 여전히 둔감하기만 한 우리의 모습이 몹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인간의 양심에 호소한 환경보호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요즘이다. 그 어떤 처벌보다 강화하여 강제로라도 자연을 보호하고 생태계의 일원으로 제 의무를 다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의 오만방자함은 이제 더이상 그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휴양지
로베르토 이노센티 그림, 존 패트릭 루이스 글,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흠.. 한때 시청자들의 인기로 들썩이던 TV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이유로 단박에 유명해진 책이라하지만 TV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은 탓에 어떻게 어떤 이유로 TV에 출연했는지 도저히 감조차 잡히지 않는 탓에 공감보다는 막연한 궁금증을 안고 보게 된 그림책이다.
시원하게 큰 판형에 자극적이지 않은 색채의 넉넉한 그림이 조금은 사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상상력이 무시당하는 게 분해 휴가를 떠나 돌아오지 않자 잃어버린 새 신발을 찾아나서듯 '마음의 눈'을 찾아나선다는 작가의 도입부 설명이 내게는 왠지 작가의 상상력이 돌아온듯 하다.^^ 

화가인 자신의 상상력이 사라진 것으로 인한 걱정은 다름아닌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그림을 그리고 살아갈까에 대한 것! 아마도 작가는 화가가운데서도 상상력이 풍부하게 요구되는 그림을 그리는가.. 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한다. 

하여튼 붓과 삼각대를 내던지고 가방을 꾸려 빨간 자동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정말로 특이하게 생긴 바닷가 호텔. 폭풍이 몰려오기라도 한 걸까? 파도가 심상치 않은 바닷가 호텔 앞에 서 있는 작가의 모습에 어느새 긴장감이 느껴진다. 과연 저 곳에서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드디어 계단을 올라선 작가의 눈에 띈 신비한 소년을 시작으로 목발을 짚은 외다리 선원, 병약한 소녀와 간호사가 등장하고 잿빛 사나이 그레이 씨, 키 큰 방랑자에 이어 작고 통통한 형사까지 등장하면, 어느새 나조차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혹시 이곳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냐?'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음 장을 펼치면, 모래에 처박힌 비행기를 남기고 비행사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엔 왠지 낯익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린왕자 그리고 생떽쥐페리??
하지만, 다음에 등장하는 나무 위에 앉아서 위태롭게 식사를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과연 누구일까?' 

어두운 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구덩이를 파고 있는 외다리 선원은 어느 이야기에 등장하였던 선장이 떠오르고, 영문도 없이 휠체어에 앉은 소녀를 데리고 나와 물속으로 밀어넣는 끔찍한 광경이 순간 아이들의 환상적인 동화를 떠오르게 한다. 흠... 이제야 무언가 실마리를 잡을 것도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이다. 이거 왠지 우리가(혹은 작가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하나하나 등장시키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기면 어느새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사람들 모두는 등장인물이다. 게다가 모비딕까지 출연했다. 와우~ 

등장인물들은 어느새 자신의 질문에 답을 얻고 각자의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떠나간다. 하지만 화가의 상상력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듯 남겨진 몇몇 사람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는 영원한 기사 돈키호테와 로시난테도 있다~ 

새로 '마지막 휴양지'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짐을 꾸린 화가가 찾은 것은 다름아닌 '마음 속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는 것이라고 깨우쳐 주는 프런트 새의 이야기에 화가 역시 잃어버린 새 신발을 찾았음을 눈치챈다. 하긴 이미 그가 들려준 '마지막 휴양지'의 방문객들에 대한 이야기만 보아도 어떻게 눈치채지 않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다소 뜬금없이 의아하기만 할지도 모를 내용이다. 물론 <덧붙이는 말>에 등장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저자는 같은 이야기라도 다르게 읽힌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알거나 혹은 알지 못하거나 문제없다는 듯 이야기한다. '이 그림과 글에 멋지게 들어맞는 다른 인물들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몇몇 등장인물들 가운에 확실하게 알고 있기라도 한다면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어느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나부터서도 그랬으니 말이다. 만약 저자의 말대로 '이 그림과 글에 멋지게 들어맞은 다른 인물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엄청난 상상력의 소유자가 아닐까.....아니면, 그저 보이는 대로 보거나 혹은 들려주는 대로 듣거나... 



전반부(?)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자리에~ 저기 모비딕까지.



호텔 '마지막 휴양지' 내부에 함께 모여 있는 등장인물들~ 과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새롭게 호텔 '마지막 휴양지'를 향해 나타난 등장인물들~  영원한 기사 돈키호테도 있다~



뒷장의 <덧붙이는 말> 등장인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으로 영문모를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지기 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사거리의 거북이 6
로젤린느 모렐 지음, 김동찬 옮김, 장은경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두 살의 알리스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서로 사랑했고, 우리 가족은 화목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고. 

화창한 봄날, 농가의 별장에 머물던 알리스의 엄마와 아빠가 허둥대며 짐을 싸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신이 엄마의 삶에 장애물이 되었으며, 굴러다니는 짐짝처럼 뒷좌석에 웅크리고 불안에 떨었던 어린 알리스로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엄마의 죽음이 집밖에서 문을 두드릴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있었을까...

다만, 그날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을.... 더 이상 이전의 엄마가 아니었고, 슬픈 동화에서 나오는 말처럼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온통 신경이 곤두선 채 급작스럽게 변한 집안 분위기며 신경을 곤두세운 엄마와 불안한 아빠를 견디는 것이 바로 알리스의 몫이었다. 

폐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수술과 항암치료 그리고 화학치료를 견디며 어느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듯한 엄마에게서 다시 행복했던 날이 돌아온 듯 기쁨을 맛보는 알리스는 엄마야말로 정말 특별한 사람이니까 반드시 암을 이겨내고 완치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마지막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알리스의 고백처럼 엄마는 그렇게 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받아들였다. 알리스에게 돌아오는 길에 오렌지 사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만을 남겨둔 채. 

집을 나서는 알리스에게 "돌아올 때, 오렌지 사 오는 것 잊지 마, 알리스!" 엄마의 마지막 남긴 말은 유언처럼 알리스의 가슴에 새겨진다. 마치 "살아라, 내 딸아, 살아야 한다."는 단호한 명령처럼.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알리스와 아빠의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껴안고 받아들여야 할 엄마의 죽음과 새로운(변화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펼쳐진다. 당장에는 세상이 무너진 듯 견딜 수 없는 슬픔에 고통으로 몸부림치지만 어느새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아빠와 알리스. 엄마가 남긴 '오렌지'가 남겨진 사람들의 이전과 다름없는 삶이란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알리스의 이야기가 몹시도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사실, 알리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전에 내게 닥쳤던 일을 보는듯하여 알리스에게 닥쳤을 고통과 충격이 온전하게 이해되었다. 열세 살 알리스가 겪었을 충격에 비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닥쳤던 엄마의 죽음이 조금은 덜했을까? 

엄마의 죽음은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이고 고통 그 자체란 것을, 또한 엄마를 떠나보낸 후에도 한동안은 결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을 알리스와  마찬가지로 느꼈었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음을 깨닫기 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난 후에야 비로소 내 앞에 현실이(남겨진 이가 마땅히 살아야 할 몫의) 느껴졌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결코 죽은 사람을 잊는다는 의미가 아님을 또한 알게 된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가슴에 살아남아 가끔은 추억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문득문득 슬픔으로 울컥하게도 하고, 또 때로는 그리움이나 보고픔으로 가슴저리게도 한다.  

아빠가 엄마를 잃은 슬픔을 딛고 비르지니와 결혼하는 것이 엄마의 죽음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오렌지를 사는 일'과 같은 그런 일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알리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어린 시절과 자신을 향한 아빠의 사랑을 부술 수도 지울 수도 없음을, 비로소 새로운 삶의 의미를 깨닫는 알리스의 마음 속에도 죽음은 삶의 일부로 살아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 푸른도서관 36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자기 사라진 아이, 봄이를 둘러싼 추측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노처녀 담임선생님을 둘러싼 이야기로 펼쳐지는 듯 착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글 뭉치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흥미진진함 속으로 빠져드렉 된다. 동시에 '과연 봄이는 왜 갑작스레 사라진 것일까?'하는 의문이 더욱 강렬하게 떠오른다. 

노처녀 담임선생님의 눈에는 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수다를 떨던 봄이의 모습이 왕따와는 전혀 무관한 증거처럼 여겨졌고, 그래서 봄이 엄마의 혹시나 하는 물음에도 그처럼 당당할 수 있었다. 다만, 평소 봄이를 둘러싸고 봄이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은 듯 봄이의 무단결석에 모르쇠로 일관하니 그것이 조금 의아할 뿐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글 뭉치는 마치 반 아이들이 봄이의 실종을 주제로 반 아이들이 쓴 글처럼 학년,반,번호가 매겨져 있고 제각각 봄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공통적인 것은 입학 뒤 열흘 만에 갔던 수련회에서 장난처럼 시작한 '진실게임'에서의 봄이의 고백을 발단으로 한다는 것과 하나같이 봄이의 고백을 진실이 아닌 허풍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봄이의 진실은 체코의 프라하에 있는 까를 다리에서 멋진 남자친구와 첫키스를 했다는 것. 하지만 보통 아이들의 두 배는 됨직한 몸매를 한 봄이가 스무살의 멋진 대학생과 연인사이라니(봄이가 휴대폰 속의 사진까지 보여주었음에도...) 반 아이들은 결코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모를 질투도 느끼면서 꾸며낸 이야기라 생각하며 선심쓰듯 들어주는 것이었다. 

사 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체코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진하오빠의 방문은 예기치 못한 고백과 함께 풋풋한 사랑으로 이어가는 봄이의 당찬(떳떳한?) 고백은 1학년 3반 아이들에게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사랑을 꿈꾸는 약간은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아이의 꾸며낸 이야기처럼만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이 뚱뚱하기만한 봄이 보다 훨씬 날씬하고 미모 또한 못할 것도 없으니 말이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저렇게 뚱뚱하고 잘난 것 하나 없는 아이를 좋아할 남자가 이 세상에 있다니.. 말도 안돼!!!

그것은 여고생 아이들의 순수한 질투라고 여기기엔 무언가 씁쓸하기만 하다. 솔직히 TV며 길거리에 흔히 보는 광고판만 보아도 쭉쭉빵빵~한 몸매에 하나같이 미모의 여자들의 모습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미모지상주의... 이미 오래전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 정도를 보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이제는 정상 비정상을 분간하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타고난(거기에 어느 정도의 화장발이 더해진..) 미를 인정했다면 이제는 성형수술이니뭐니 하는 것을 해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수술을 해서라도 이쁘면 그만이라는 것!
예전에는 쌍거풀 수술만해도 숨기려고 하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쌍거풀쯤은 수술에 속하지도 않는 분위기이다. 치아교정도 치아건강보다는 아름다움을 위해, 코를 세우고 턱을 깎고... 이제는 몸 구석구석을 마음껏 깎고 높이고 붙이고 덜어내는 시대이다. 마치 조각가가 마음대로 조형을 하듯.......

오로지 이쁘고 날씬하고 잘난 사람들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처럼... 심지어는 이쁘니까 용서도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뚱뚱하고 못나면 멋진 남자와 연애란 도저히 용납 못하는 세상..책 속의 봄이처럼. 

봄이를 둘러싼 1학년 3반 아이들의 심리를 통해(물론 봄이가 쓴 글이지만) 요즘의 현실을 확인하게 되는 씁쓸한 이야기이다.
표지 그림의 그림으로 형상화된 봄이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아도 그다지 아름답게 보지 못하는 나 역시도 모순된 현실에 동화된 탓일까?? 

한 가지,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둘러싼 아이들의 편견 속에 요즘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생각(가치관)이 드러나는 부분(본문 68쪽~75쪽; 10304)이 기성세대인 내게는 아직도 낯설기만 해,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든 열세 살 딸아이에게 이 책을 보여줘야 할까.. 살짝 고민에 빠지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