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사거리의 거북이 6
로젤린느 모렐 지음, 김동찬 옮김, 장은경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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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의 알리스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서로 사랑했고, 우리 가족은 화목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고. 

화창한 봄날, 농가의 별장에 머물던 알리스의 엄마와 아빠가 허둥대며 짐을 싸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신이 엄마의 삶에 장애물이 되었으며, 굴러다니는 짐짝처럼 뒷좌석에 웅크리고 불안에 떨었던 어린 알리스로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엄마의 죽음이 집밖에서 문을 두드릴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있었을까...

다만, 그날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을.... 더 이상 이전의 엄마가 아니었고, 슬픈 동화에서 나오는 말처럼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온통 신경이 곤두선 채 급작스럽게 변한 집안 분위기며 신경을 곤두세운 엄마와 불안한 아빠를 견디는 것이 바로 알리스의 몫이었다. 

폐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수술과 항암치료 그리고 화학치료를 견디며 어느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듯한 엄마에게서 다시 행복했던 날이 돌아온 듯 기쁨을 맛보는 알리스는 엄마야말로 정말 특별한 사람이니까 반드시 암을 이겨내고 완치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마지막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알리스의 고백처럼 엄마는 그렇게 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받아들였다. 알리스에게 돌아오는 길에 오렌지 사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만을 남겨둔 채. 

집을 나서는 알리스에게 "돌아올 때, 오렌지 사 오는 것 잊지 마, 알리스!" 엄마의 마지막 남긴 말은 유언처럼 알리스의 가슴에 새겨진다. 마치 "살아라, 내 딸아, 살아야 한다."는 단호한 명령처럼.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알리스와 아빠의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껴안고 받아들여야 할 엄마의 죽음과 새로운(변화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펼쳐진다. 당장에는 세상이 무너진 듯 견딜 수 없는 슬픔에 고통으로 몸부림치지만 어느새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아빠와 알리스. 엄마가 남긴 '오렌지'가 남겨진 사람들의 이전과 다름없는 삶이란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알리스의 이야기가 몹시도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사실, 알리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전에 내게 닥쳤던 일을 보는듯하여 알리스에게 닥쳤을 고통과 충격이 온전하게 이해되었다. 열세 살 알리스가 겪었을 충격에 비하면 대학을 졸업하고 닥쳤던 엄마의 죽음이 조금은 덜했을까? 

엄마의 죽음은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이고 고통 그 자체란 것을, 또한 엄마를 떠나보낸 후에도 한동안은 결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을 알리스와  마찬가지로 느꼈었다. 그리고 엄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음을 깨닫기 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난 후에야 비로소 내 앞에 현실이(남겨진 이가 마땅히 살아야 할 몫의) 느껴졌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결코 죽은 사람을 잊는다는 의미가 아님을 또한 알게 된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가슴에 살아남아 가끔은 추억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문득문득 슬픔으로 울컥하게도 하고, 또 때로는 그리움이나 보고픔으로 가슴저리게도 한다.  

아빠가 엄마를 잃은 슬픔을 딛고 비르지니와 결혼하는 것이 엄마의 죽음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오렌지를 사는 일'과 같은 그런 일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알리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어린 시절과 자신을 향한 아빠의 사랑을 부술 수도 지울 수도 없음을, 비로소 새로운 삶의 의미를 깨닫는 알리스의 마음 속에도 죽음은 삶의 일부로 살아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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