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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진이다 - 아주 특별한 나에 대한 상상 ㅣ 마르탱 파주 컬렉션 3
마르탱 파주 지음, 강미란 옮김 / 톡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엔 무심코 제목을 '나는 지진아다'라고 읽었던 탓에 표지그림의 아이를 보며 '과연 어디가 부족한 아이일까?'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으려고 보니 그제서야 '나는 지진이다'라는 제목이 바로 보였다. '흠.. 지진이라고? 무슨 지진? 바로 그 지진??'
도무지 상상이 안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지진이 되냐고?
하지만 작가 마르탱 파주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어느날 갑자기 '지진'이 되고 만다. '파주'라는 작가의 이름에 왠지모를 친근감을 느끼며 읽는 이 이야기는 내용이 무척 짧은데도 담고 있는 이야기는 심상치 않다. 책장을 넘길수록 전혀 불가능하지 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천지인가?
한때 즐겨보던 TV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믿을 수 없는' 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우리나라 안에서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 않았던가. 기이한 현상은 물론 동물을 비롯한 인간들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이야기들 말이다.
인간들에게 일어나는 믿지못할 이야기들은 얼마나 다양하던가? 쇠를 맛있는 과자라도 되는양 씹어먹고, 전기를 통해도 멀쩡하고, 돌을 씹어먹는 것은 물론 신비한 능력까지도 있는 사람들..... 같은 인간이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TV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것은 사실일 뿐!(물론 어떠한 조작이나 눈속임이 없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어느날 자신의 능력을 시험삼아 하다가 그렇게 된 사람들도 있지만, 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시절부터 우연처럼 그런 능력이 생긴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나' 역시도 어느날 우연히 그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자신의 주변에 아주 미세한 흔들림 같은 것이 생긴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라고 여겼지만 말이다.
왜 갑자기 멀쩡하던 아이가 난데없는 '지진'이 되었을까? 왜 지진이 일어나게 하여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일까?
그 원인은 다름아닌 어린아이였던 나에게 '소리'로 다가왔던 '전쟁'의 아픔이 있었다. 폭탄 터지는 소리, 기관총 소리, 하늘에 떠다니는 요란한 전투기 소리가 하루라도 들리지 않던 그 소란 속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공부를 해야 했던 나.
부모님이 일하던 사탕 공장에 폭탄이 떨어져 일순간에 부모를 잃어버린 나는 그날 이후로 사탕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기억은 모조리 지워졌다. 너무 큰 슬픔때문에 자신이 너무 불행해서 얼마동안 존재하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후 입양되어 사랑이 넘치는 양부모님과 함께 살며,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난데없이 지진이 되어버린 자신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움에 떠는 '나'는 결국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지진에서 벗어날까봐 흙을 먹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 그렇다고 지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을 찾아온 지질학자에 발견되어 다시 양부모의 품으로, 세상 속으로 돌아온 나는 다행히 완전한 치유법은 아니지만 '물'로 해결방법을 생각해낸 지질학자 덕분에 저 멀리 우주로 떠나지 않아도 된다.
임시방편같지만 지진의 진동을 물로 막아내면 '나'는 더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양부모의 사랑처럼 물로 나를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한다.
'나 자신의 불행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다른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겨야 한다. 그리고 내 영혼과 정신이 이 세상을 사로잡도록, 세상 모든 것에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숲 속에서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도 몰라도 어쨌든 우리는 모두 지진이니까.' (본문 76~77쪽) 라는 독백이 문득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지진(자연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숨어있는 중요한 원인(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으로 인한 분노와 공격 등으로 표출되는 모든 것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말, 우리는 저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알지못할 이유로 '지진'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그 지진의 세기가 저마다 다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