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스위트 대디>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마이 스위트 대디 마음이 자라는 나무 23
카제노 우시오 지음, 고향옥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처럼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 속에서 정말 읽어야 할 책(비단, 지식이나 정보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을 고르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쟝르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책들, 게다가 TV드라마까지도 책으로 앞다투어 만들어 내고 있으니 말이다. 

또, 역으로 책의 내용이 TV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되어 새롭게 탄생(?)하여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을 보면 책이나 TV드라마, 영화 등등은 어느새 공존하는 관계가 된듯싶다. 

벌써 우리집에서 TV가 추방된지 삼 년이 되어가고 있다. 종종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들을 못 보게 되어 안타깝지만 막장드라마니 어쩌니 하는 것들을 보지 않아 내심 안도하기도 한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는 유명한 여류작가가 썼다는 남자동성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포함해서 말이다. 

'마이 스위트 대디'.. 나의 멋진 아빠 쯤으로 해석될까??
초등4학년 열한 살의 딸과 겨우 스물다섯 살의 아빠라니.... 더구나 둘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로, 사고로 죽은 엄마와 열몇 살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아빠 마군과 살아가는 딸 후키코의 설정이 우리의 정서와 그다지 가깝지 않게 다가왔다. 

물론, 요즘은 한 부모가정이니 조손가정이니 소년소녀가장이니 하는 말들에 익숙해져 과거와 달리 무척이나 다양하다 못해 제각각인 가정의 형태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스물다섯 살의 아빠는 정말 하는 일도 변변찮지만 드러머라는 다소 드라마적인 꿈을 추구하며 외모 또한 멋진 로커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친아빠와 살기를 거부하며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오빠같은 아빠와 살기를 바라는 후키코의 일상이 자칫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환상을 심어줄 여지가 다분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앞표지 날개에 '무엇보다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과 생활고, 이웃의 선입견 속에서도 서로를 끔찍이 아끼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싱글대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성장의 의미를 반추해 보게 한다'고 이 책의 의미(?)를 밝히고 있지만 싱글대디의 설정이 꼭 그래야만 했을까?? 

물론 실제로 어딘가에서는 현실로 있을지도 모를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이야기로 여겨질 소재가 그다지 탐탁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엄마와 젊은 아빠와의 사이며, 또 엄마와 친아빠의 사이도 그다지 설득력있는 설정이 없이, 이웃인 다이치 가족과 어울려 살아가는 젊은 아빠와 후키코의 평범한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오히려 조심스럽다.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이거나 옳고그름을 가리지 않고 꿈이란 꿈은 꾸고보는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자칫 자신앞에 놓여진 현실이 아님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할지도 모를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사실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책 뒤의 '...세상의 통념을 뒤집는 그들의 귀여운 도발....행복과 성장의 의미를 일깨운다'는 표현이 참으로 무색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한창 사춘기인 딸아이를 둔 엄마로서 썩 반갑지 않은 소재의 이야기이다.
굳이 이런 책까지 번역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읽혀야 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두 사람의 특별한 가족의 모습이 책의 내용 전부는 아니지만, 또 특별한 가족이 된 두 사람의 모습이 온전히 비현실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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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보이 - 아주 특별한 친구에 대한 상상 마르탱 파주 컬렉션 2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톡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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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컬러보이'란 제목에 그저 막연한 궁금증이 밀려왔을 뿐이다.
제목에 어울리는 듯한 표지그림의 얼굴이며 상체 가득 이쁜 색깔이 문신처럼 새겨진 아이의 몸을 보면서도 그저 막연한 생각뿐. 

하지만, 그 이쁜 색깔에 대한 정체(혹은 원인?)를 알고나서는 제목도 표지그림도 '컬러'라는 말이 주는 아름다움은 더이상 환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끔찍함만 남아 있을 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하는 경악만이 메아리칠 뿐이다. 

새 학기에 전학 온 시몽이라는 아이. 보통 키에 평범한 몸매의 보통 아이였지만 아이의 몸을 뒤덮고 있는 다양한 빛깔과 모양의 반점은 단번에 아이들 사이에 화제거리가 되고, 급기야는 시몽을 교내의 슈퍼스타로 만든다.
어떻게 아이의 몸에 화가가 그린 것처럼 예쁜 모양의 반점이 있는 것일까?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신비한(?) 아이, 시몽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은 다름아닌 존재감 없는, 다소 반항적인 클레망스와 겁쟁이 유령 오스카. 물론 오스카는 클레망스의 반 협박적인 부탁에 의한 것이었지만.... 

클레망스와 오스카가 밝혀낸 시몽의 비밀이란 무엇일까? 그들이 아파트 3층에 있는 시몽의 집 창가에 붙어서 생생하게 목격한 것은 시몽이 마치 펀칭 볼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있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 시몽은 부모의 폭력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폭력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 시몽. 오히려 늘 싸우는 부모를, 자신을 펀칭 볼처럼 때리는 부모를 좋아한다며 오히려 자신을 탓하던 시몽은 그 모든 걸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며 클레망스의 손길을 거부한다. 

그 후 갑작스레 전해진 시몽의 죽음은 시몽을 폭력으로부터 구해내려는 클레망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듯하다. 그러나, 클레망스는 오스카와 함께 시몽의 부모를 납치하는 장엄한 복수극을 펼친다.  
컬러보이 시몽의 죽음이 끝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소중한 아들을 폭력으로 죽게한 그들의 부모에게 끝까지 복수한 클레망스가 대견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몽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비단 그의 부모뿐만 아니라 클레망스의 진실을 외면한 교장선생님이나 시몽의 내면보다는 겉모습만을 보려했던 주변의 사람들 모두의 책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컬러보이 시몽의 몸에는 정말 아름다운 빛깔의 모양들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은 확연한 멍자국이 분명한데도, 기꺼이 시몽의 아픈 현실을 짐짓 모른체 하고 싶었던 이들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거짓)은 아니었을까? 

아동 폭력에 관한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새삼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과연 우리 주변에는 또다른 시몽이 없는 것일까?
우리도 교장선생님이나 아이들처럼 시몽이 안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기꺼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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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케이크와의 대화 - 아주 특별한 선물에 대한 상상 마르탱 파주 컬렉션 1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톡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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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일날, 곁에 있는 것이라고는 초콜릿 케이크라면 그 기분은 어떨까?
물론, 함께 생일 축하를 해주려던 엄마와 아빠가 급하게 생긴 일때문에 본의 아니게 서둘러 나가야 했다고는 하지만, 휑뎅그렁하게 케이크와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라니 문득 서글픔이 밀려오지는 않을까...... 

주인공 '나'는 소방차 운전사인 아빠와 소방용 호스와 소방 도끼 전문가인 엄마를 무척이나 잘 이해하는 듯하다. 자신의 생일날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출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평상시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다 함께 밥을 먹을 때나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집에 불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또, 엄마 아빠가 없을 때면 책도 읽고 인터넷도 하고 공부도 하지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심심해하기라는 '나'의 고백같은 이야기에 가슴이 짠해온다. 

아빠 엄마의 직업상 특수한 상황(비상출동과 같은)을 이미 몇 해나 경험해온 탓일까? 생일 케이크를 마주한 아이는 순식간에 행복함을 느끼며 마음조차 들떠있다.
자신이 요구한 진한 초콜릿이 가득 들어있는 케이크를 먹는 행복함에 들떠있는 아이라니.... 역시 아이는 순진한 것일까? 
그러나 아이의 행복함은 엉뚱한 상황으로 인해 깨어지는 듯하다. 아이의 칼날에 위협을 느낀 초콜릿 케이크가 저항을 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처럼 말이다.

순간, 어린시절의 추억이 아슴푸레 떠오른다. 나 역시도 맞벌이 하시던 부모님에, 형제자매도 없었던 까닭에 학교가 파하고나면 어두컴컴한 집에 들어가기 싫어 책가방을 던져 놓고 놀이터로, 들판으로 아이들과 함께 놀러다니고는 하였었다. 

엄마가 퇴근하기 전에야 집에 들어가면 시계소리조차도 왠지 무섭고 갑자기 집안 어딘가에서 무엇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생각에 두렵기만 하던 그 시절. 무서운 것도 무서운 것이지만 누구와도 말할 상대가 없는 외로움이 더 큰 두려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형제자매가 없어 외로운데 또 외로움과 마주해야 한다니....... 

그래서였을까? 초콜릿 케이크와 대화하는 아이처럼 나도 아침 등교길이면 눈살을 찌푸려가며 높이 솟은 태양에게, 파란 하늘에게, 그 파란 하늘 속에서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조각들에게 소리없는 대화를 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항상 누군가가 우리를 관찰하듯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는 했었다. 우리가 개미들을 관찰하듯, 그렇게 우리는 또 누군가의 관찰대상이 되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아이는 결국 초콜릿 케이크와의 대화를 끝내기로 한다. 그냥 놓아두면 곰팡이가 생겨 고약한 냄새와 함께 결국에는 썩고 말거라는 결과를 예상한 현명한(?) 케이크는 자신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는 케이크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 못하고 기꺼이 케이크를 입안 가득 베어 문다.
그렇게 아이는 잠시동안의 환상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접시가 아이의 외로움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이는 또 누구와 대화를 하며 자신의 가슴 속 외로움을 잠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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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보다 진로를 먼저 생각하는 10대의 미래지도 - 3년이 아니라 30년을 꿈꾸게 하는 진로 코칭
강보영 지음 / 노란우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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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보다 진로를 먼저 생각하는....'이라는 제목에 문득 '진학'과 '진로'의 차이가 무엇일까 먼저 물음으로 다가왔다.
물론 어렴풋하게나마 '진학'보다는 '진로'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진학: 학문의 길에 나아가 닦음, 상급 학교로 나아감], [진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각각 정의되어 있다. 

책날개에 소개된 지은이의 연혁에는 '제대로 된 진로를 찾기까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던 자신의 경험을 10대 청소년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커리어스마트를 만들었으며..... 커리어코치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단다. 그러고보면 이 책 역시 요즘 아이들의 진로를 일찍부터 찾아주기 위해 쏟아져 나오는 책들 가운데 한 권이리라. 

이 책의 저자가 내세운(?) 제목 역시 적지않은 카운셀러(진학 혹은 진로전문 상담가)들이 이미 누누이 강조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바로 코 앞의 성적에만 연연하지 말고 구체적인 목표와 단기적이고 장기적인 실천전략을 세워 차근차근 목표에 접근하라는 것 말이다.

물론, 전문적인 카운셀러가 아니더라도 철이 든 나이만 되어도 그 이론을 누군들 이해하지 못하랴. 하지만 문제는 실천이 문제라는 것을! 성공한 이와 실패한 이의 차이는 바로 그 '실천'이란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아닐런지....... 

저자 역시 바로 코 앞에 놓여진 '진학'(성적?)에만 급급해서 자칫 장거리 마라톤과 같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봐 좀더 멀리보고 실천해 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의 문제점을 짚어주고 있다.
너무 일찍부터 성적으로만 아이의 능력은 물론 미래까지도 규정지으려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말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모든 시험을 최종적으로 대입시험이라는 중차대한 대입시험을 치르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한 것이다. 
아이들의 모든 노력은 대입시험의 점수로 그간의 노력의 결실을 맺게 되는 셈이라고나 할까. 

오로지 대입시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아이들이 대입시험 점수로 진로를 선택하고 또 자신의 미래를 규정짓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나라의 암울한 현실이다. 물론, 정규교육이나 대학이 전부가 될 수없다고 일부에서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울타리를 벗어난 방황하는 소수를 향한 위로쯤이 아닐까?

커리어코치인 저자는 '진로(career)는 한 개인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일을 중심으로 한 삶 전체를 가리킨다'고 말하며 또한 '과거에는 한 직업에 평생 동안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진로른 직업과 동일한 개념으로 취급하였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career는 job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개인이 평생에 걸쳐 할 수 있는 일을 둘러싼 삶 자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제목에서 '진학'이 아닌 '진로'를 생각하라는 저자의 말은 곧 평생이 걸쳐 자신이 할 일을 코앞의 '성적'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당장의 성적에만 급급해서 자신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는 생각조차 못하는 요즘의 아이들은 아니 부모들은 우선 성적부터 관리해 놓으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것이고, 또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자연적으로 취업도 잘 되고 미래도 탄탄대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제는 대학도 시험성적순으로 들어가는 시대가 아니다. 저자는 요즘의 모순된 대입제도를 개선해주는 묘안처럼 입학사정관제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입학사정관제가 안고 있는 명확하지 않는 점으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음을 상기하여야 할 것이다. 

'진학'보다는 '진로'를 먼저 생각하라는 저자의 말은 참으로 타당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저자가 본문을 통해 들려주는 '미래'는 현실적이 미래를 고스란히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꿈은 크고 원대하게 꿔야 마땅하지만, 때로는 그 자체가 이미 아이들에게 크나큰 짐이 된다는 것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인간의 능력은 선천적인 것보다는 후천적으로 개발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하지만,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사람의 부모이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또 경기외고 2학년 학생들의 희망학과가 대부분 경영학과라는 것에 저자는 놀라고 있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저자 역시도 '꿈'에 대한 아이들의 자세(?)를 말하면서 이미 외고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꿈'이라는 것이 크게 꾼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잖은가....  

자신이 타고난 능력(성향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후천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한계를 제대로 짚어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 현실적이고 시급한 진로제시가 아닐까?
왜 무조건 꿈은 크고 원대해야만 하는가? 소박하고 부담없는 꿈은 왜 권하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한숨부터 나게하는 벅찬 꿈보다는 가볍게 그러나 기쁘게 이룰 수 있는 꿈을 제시할 때 아이들은 물론 부모도 사회도 국가도 세상도 함께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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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진이다 - 아주 특별한 나에 대한 상상 마르탱 파주 컬렉션 3
마르탱 파주 지음, 강미란 옮김 / 톡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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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무심코 제목을 '나는 지진아다'라고 읽었던 탓에 표지그림의 아이를 보며 '과연 어디가 부족한 아이일까?'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으려고 보니 그제서야 '나는 지진이다'라는 제목이 바로 보였다. '흠.. 지진이라고? 무슨 지진? 바로 그 지진??'
도무지 상상이 안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지진이 되냐고? 

하지만 작가 마르탱 파주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어느날 갑자기 '지진'이 되고 만다. '파주'라는 작가의 이름에 왠지모를 친근감을 느끼며 읽는 이 이야기는 내용이 무척 짧은데도 담고 있는 이야기는 심상치 않다. 책장을 넘길수록 전혀 불가능하지 만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천지인가?
한때 즐겨보던 TV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믿을 수 없는' 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우리나라 안에서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 않았던가. 기이한 현상은 물론 동물을 비롯한 인간들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이야기들 말이다. 

인간들에게 일어나는 믿지못할 이야기들은 얼마나 다양하던가? 쇠를 맛있는 과자라도 되는양 씹어먹고, 전기를 통해도 멀쩡하고, 돌을 씹어먹는 것은 물론 신비한 능력까지도 있는 사람들..... 같은 인간이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TV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것은 사실일 뿐!(물론 어떠한 조작이나 눈속임이 없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어느날 자신의 능력을 시험삼아 하다가 그렇게 된 사람들도 있지만, 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시절부터 우연처럼 그런 능력이 생긴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나' 역시도 어느날 우연히 그 능력이 생긴 것 같다. 자신의 주변에 아주 미세한 흔들림 같은 것이 생긴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라고 여겼지만 말이다.
왜 갑자기 멀쩡하던 아이가 난데없는 '지진'이 되었을까? 왜 지진이 일어나게 하여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일까? 

그 원인은 다름아닌 어린아이였던 나에게 '소리'로 다가왔던 '전쟁'의 아픔이 있었다. 폭탄 터지는 소리, 기관총 소리, 하늘에 떠다니는 요란한 전투기 소리가 하루라도 들리지 않던 그 소란 속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공부를 해야 했던 나.
부모님이 일하던 사탕 공장에 폭탄이 떨어져 일순간에 부모를 잃어버린 나는 그날 이후로 사탕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기억은 모조리 지워졌다. 너무 큰 슬픔때문에 자신이 너무 불행해서 얼마동안 존재하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후 입양되어 사랑이 넘치는 양부모님과 함께 살며,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난데없이 지진이 되어버린 자신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움에 떠는 '나'는 결국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지진에서 벗어날까봐 흙을 먹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 그렇다고 지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을 찾아온 지질학자에 발견되어 다시 양부모의 품으로, 세상 속으로 돌아온 나는 다행히 완전한 치유법은 아니지만 '물'로 해결방법을 생각해낸 지질학자 덕분에 저 멀리 우주로 떠나지 않아도 된다.
임시방편같지만 지진의 진동을 물로 막아내면 '나'는 더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양부모의 사랑처럼 물로 나를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한다.

'나 자신의 불행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다른 무언가에 정신을 빼앗겨야 한다. 그리고 내 영혼과 정신이 이 세상을 사로잡도록, 세상 모든 것에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숲 속에서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도 몰라도 어쨌든 우리는 모두 지진이니까.' (본문 76~77쪽) 라는 독백이 문득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 지진(자연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숨어있는 중요한 원인(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으로 인한 분노와 공격 등으로 표출되는 모든 것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말, 우리는 저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알지못할 이유로 '지진'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그 지진의 세기가 저마다 다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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