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9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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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침이 심한 푸슈파의 아들, 데이비드 베컴 소년 하리슈가 가르쳐 준 첫 문장,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세 살입니다."
를 배우며 소녀는 데이비드 베컴이 신의 이름같다고 했다. 

거울에 비친 송장같은 자신의 얼굴을 보며 소녀는 거울 속 늙은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세 살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었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네 살입니다."

그렇게 소녀는 자신의 이름과 국적(돌아갈 집이 있는 나라)과 나이를 절망적인 독백이 아니라 자유를,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그 외침 속에 소녀의 기나긴 절망의 냄새와 불안한 떨림이 함께 느껴지는 듯하다. 

그나마의 소박한 가정의 행복을 상징하는 듯한 '양철지붕'을 향한 소녀의 간절함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궁색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픈 소녀의 도시행을 딱 잘라 거절하는 아마가 그래도 믿음직스러웠다. 아마도 딸을 키우는 공감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새아버지를 향한 아마의 생각이나 초경이 시작된 라크슈미에게 운명이라며 일러주는 대목에서는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물론, 아마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전통적인 관습을 따르는 것이겠지만) 

소녀의 꿈은 절친이었던 지타처럼 도시로 나가 부잣집 마님의 가정부가 되어, 있으나마나한 새아버지라도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아마의 고생을 덜어주고픈 것이 고작이었다.
소녀는 예사롭지 않게 자신이 기르는 오이들에게 재치있는 이름도 붙여주고,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아기 염소 탈리에게 공부도 가르쳐 준다. 

그래서였을까... 새아버지가 노름으로 끝없는 빚을 지고 마침내는 소녀를 도시의 가정부로 보내게 되었다는 아마의 이야기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소녀의 소박한 꿈을 이루는 따스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 기대했다. 간간이 눈물을 찍어내는 고생이 있겠지만 소녀가 가난한 아마와 어린 동생을 위해 '양철지붕'을 얹어주리라는.....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순진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바자이 시타의 가게에서 새아버지와 노란 드레스를 입은 낯선 여자와 '아이의 값'을 흥정하는 광경이 불길하게 다가왔다. 

'아직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엄청난 돈이 치러지는' 광경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지만, 소녀는 그때까지도(아니 결국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아마를 자랑스럽게 하고, 내년 축제 때는 돌아오리라는 순진한 기대를 품는다. 

낯선 여자를 따라 평소 꿈꾸던 도시로 향하던 소녀의 불안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던 '제비 꼬리 모양의 웅장한 산꼭대기'마저도 시야에서 사라지고 상상과는 전혀 다른 도시에 도착한 소녀, 라크슈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여태껏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끔찍한 악몽, 바로 그것이었다. 

열세 살 소녀, 라크슈미에게 도시는, 세상은 더이상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미래가 아니었다. 다만, 가난하고 힘없고 무지하다는(순박한 촌년) 이유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는커녕 짐승에게조차도 할 수없는 일을 버젓이 강요하는 뭄타즈가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을 해보지만 결국엔 뭄타즈의 간교한 계략으로 한낱 성 노예가 된 라크슈미가 마지막에 이방인의 도움의 손길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는 라크슈미가 얼마나 다행인지..... 

철저한 이해(利害)가 세상의 이치인듯 살아가는 곳(도시?)과는 다른 세상(제비 꼬리 모양의 웅장한 산꼭대기가 있는)에서 단지 가난때문에 고통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어린 라크슈미처럼....
가난한 그들이 바란 것은 엄청난 돈도 아니고 그저 당장의 배고픔과 가난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약간의 물질이었을 것이다. 라큐슈미의 양철지붕처럼.... 

그럼에도 힘없고 순박한(무지한) 그들을 한낱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게다가 잔인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치를 떨게 한다. 

단지 소박한 '양철지붕'을 위해 막연하게 도시를 꿈꾸다 짐승같은 인간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신음하는 어린 생명들의 울부짖음이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다니... 과연 그 죄값을 어떻게 치르려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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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치고 싶은 것 미래의 고전 20
이종선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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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벽, 도벽....'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여경이와 달리 여진이는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뒷이야기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도벽'이라는 단어만 반복해서 들리는 것 같았다.
(본문 73쪽)

네 명의 또래소녀(같은 반)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요즘 한창 사춘기인 딸아이와 학년까지도 같아 사뭇 진지하게 읽혀졌다.
여진, 여경, 민서, 선주... 네 명의 같은 반 소녀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이 감도는 이야기가 여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학기초 발생한 도난 사건. 민서의 돈이 없어진 사건을 예사롭지 않게 느끼고 있는 여진이가 범인인지 아닌지 자못 헷갈리게 한다. 곧이어 등장한 여경이도 범인인듯 느껴지지만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더욱 헷갈리기만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함께 등하교도 하는 사이인 여진과 선주. 갑작스레 양궁 선수가 된 선주의 빈자리를 여경과 민서가 새롭게 파고드는 것같아 혼란스러운 여진. 그러나 여진의 혼란스러움은 단순한 자리다툼(?)이 아니라 여경과 민서의 불편한 관계를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사이에서 자신이 박쥐같다고 느끼는 여진은 게다가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까지 간직하고 있다. 다름아닌 민서의 물감을 슬쩍한 것! 

언제부터인가 주인이 없어 보이는 물건들만 보면 자꾸 갖고 싶어졌다. 하루, 이틀, 주인 없이 한자리를 지키는 물건들이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생각났다. 그러면서 '내일도 있으면 좋겠다.'싶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학교로 달렸다. 보는 눈이 없는 시간에 그 물건은 여진이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본문 39쪽) 

여태껏 주인이 없는 물건만 가져오던 여진이 특활시간에 민서가 두고간 물감을 가져온 것이다. 엄연히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그래서 가슴 한 구석이 점점 묵직해지고, 예정에 없이 여경을 집으로 데리고 간 날에는 그로 인해 더 큰 불안을 겪게 된다. 혹시 여경이 자신이 한 일을 눈치챈 것은 아닌지.....

게다가 여경이 뜬금없이 자신의 남동생에게 도벽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여경이 자신이 민서의 물감을 훔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여진이 민서와 여경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해 하는 모습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아동 전문가들에 의하면 어린시절 '훔치는 일'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는 일이라 하지 않는가? 나 역시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훔쳤던' 일이 있었다. 하얗고 작은 비둘기 저금통(물론 내 것이기는 하였지만)에 든 동전을 빼내기 위해 방바닥에 누워 바늘로 침을 꼴깍 삼켜가며 긴장하던 일이며, 우연히 아버지의 겨울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발견한 지폐와 동전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동전으로는 과자를 사먹고 지폐는 다른 곳에 숨겨 놓고 며칠을 아버지가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살피던 기억이 어제인듯 떠오른다.

저금통 사건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버지의 코트 속 돈은 며칠 후 아버지의 불호령과 함께 따끔하게 매를 맞았던 기억때문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그 일의 후유증탓인지 어떤지 성인이 된 후로 나는 거짓말조차도 결벽증처럼 싫어한다. 그저 떨어진 돈도 줍지 않을 정도로.... 

아무튼,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 겪게되는 일(현상) 가운데 하나가 '훔치는' 일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에 뒤늦게 위안을 삼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진의 경우에도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일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자라는 동안'이라는 의미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사춘기 무렵의 아이들이 아니라 아직은 선과 악의 판단에 서툰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아이들에 국한된(?) 경우라면 다소 심각한 경우가 아닐까..... 

딱히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그대로 두면 버려질 것이 뻔한, 집에 가져와서도 대부분 쓰레기통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그것들을 가져오는 여진의 심리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일로 바쁜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사춘기로 자기 자신 외에 관심조차 없는 언니 등 자신이 가족들의 관심 밖에 있다고 느끼는 여진이 버려진 물건들을 보며 마치 자신인양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인이 없어 보이는 물건들만 보면 자꾸 갖고 싶어졌다는 여진의 말이 예사롭지 않은 것도 그때문은 아닌지......

단순한 또래아이들의 친구문제인 것도 같지만 보다 근본적인 관계와 관심에 대한 이야기가 또래의 딸아이를 둔 내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혹.. 내 딸아이도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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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동백꽃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4
김유정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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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요즘 딸아이가 '만화로 된 한국문학소설'을 보고 또 보고하던 차에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중학교때 국어 참고서 각 단원 끝에 두어 장에 걸쳐 실려있던 단편을 읽고 또 읽고 하던 기억이 떠올라 새삼 반가운 책이다.

나도향, 이상, 이효석, 이광수, 현진건, 이광수, 현진건 등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작가로 손꼽히고 있는 김유정. 그의 대표작이라 익히 알고 있는 <봄봄>과 <동백꽃>과 더불어 <이런 음악회> <두포전> <땡볕> <금 따는 콩밭> <노다지> <만무방> 등 낯선 작품 여섯 편이 담겨있다.

이미 여러 번을 읽었던 <봄봄>과 <동백꽃>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투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 왠지 낯선 느낌도 간간이 들게하는데, 뒷편에 실린 <주석>을 찾아보기가 번거로워 그 뜻을 어림짐작하다보니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한다.

짜장이 정말로, 쪼간이 사건이란 뜻이라니 새삼 재밌고, 거불지고, 쟁그럽다, 지다위, 후무려 내면, 나달, 고팽이...등등,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짐작조차 못할 말에 갑갑증이 일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우리말도 이렇게 어렵다니... 사뭇 깨닫게 된다. 

'아기장수'를 생각나게 하는 <두포전>은 옛이야기 같고, <이런 음악회>는 그리 오래지 않은 풍경을 담은 이야기같다. 아내의 뱃속에 아기가 죽은 줄도 모르고 병원에서 월급까지 받으며 치료받을 생각에 부푼 덕순이 끝내는 희연 한 봉 값을 마련하기 위해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얼음냉수와 왜떡을 아내에게 사주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왔다.  

언제였던가.... 금줄기를 찾아 대박의 꿈에 너도나도 빠져들었던 때가??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의 기억에도 불나방처럼 금맥을 찾아 허황된 꿈을 꾸던 그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허황마저도 간절한 현실로 꿈꿀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시절의 모습을 담아낸 <금 따는 콩밭>과 <노다지>는 물론 가난한 소작농들의 배고픔이 담긴 <만무방>..... 가난한 시절의 아픈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하다.

모든 것이 풍족한 요즘, 김유정의 소설에 담긴 삶은 나의 어릴적 느낌과 또다르게 딸아이에게 전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럴수록 가슴 한 켠에 고이 보전해야 할 소중한 정경(情景)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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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인생 멘토 2 - 아름다운 가치를 지켜낸 사람들의 인생 보고서
김보일 지음, 곽윤환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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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14살 중학생이 될 딸아이에게 안성맞춤이다싶은 제목과 더불어 삶에 있어 자신만의 가치로 세상을 살아낸 16인의 이야기가 어느새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다.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던 딸아이가 느닷없이 펑펑 울음을 쏟아냈다.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으로서 치루게 되는 시험이어서 시험공부가 부담이 되나보다 짐작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척 우는 이유를 물어보니 시험공부에 대한 걱정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걱정이라며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 지금쯤이면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알아야 되는 거 아냐? 그런데 아직 모르겠어. 뭐가 되고 싶은지 정말 모르겠어. 흐허허헝...." 

두 눈이 빨개지도록 우는 딸아이 앞에서 과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 며칠 뒤로 다가온 시험때문에라도 딸아이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급선무같아 앞으로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며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 앞에서는 정작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말하기는 하였지만, 그런 딸아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복잡해져온다.

아닌게 아니라, 그동안 딸아이의 현재보다도 미래에 더 큰 비중을 두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교묘하게 딸아이 앞에 내밀었던 많은 책들이 그날의 사단을 불러온 것은 아닌지, 새삼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아직도 마냥 철부지로 하하호호 건강한 웃음을 쏟아내어야 할 나이에 저토록 자신의 미래에 걱정하는 딸아이가 대견스럽게만 보이지 않는다. 혹시 섣부르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일까?  반가운 한편으로 딸아이에게 새로운 저의(?)로 다가갈까봐 살짝 두려움을 느끼며 먼저 읽은 책이다. 

어떤 이유로든 죽음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나치의 포로수용소.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나머지 10% 생존자 속에 남아있었고, 쉴새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후 로고테라피(의미요법)를 발표하여 '사람은 어떠한 최악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빅터 프랭클 박사의 외침이 그 어떤 주장보다 간절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몇 년전 책을 통해 알게된 프라다 칼로의 삶은 여전히 그 어떤 정신력의 소유자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온몸이 조각조각 부서지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붓을 통해 그림으로 탄생된 그림에는 그녀의 강한 정신력만이 표현될 뿐이다. 

과연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삶을 포기할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우문(愚問) 처럼 느껴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사람은 극한의 시련 앞에서 더욱 강렬한 삶의 불꽃을 태우는 것을 저토록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요즘엔 의미없이 삶을 허비하거나 부질없이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삶을 쉽게 내던지게 하였을까....... 어떤 사람들은 살아있는 시간 동안 조금의 나태함도 허락하지 않는데 말이다. 

문득, 강렬한 혹은 충실한 삶을 살게하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렇기에 같은 환경에서도 누구는 더 열심히 희망적으로 또 누구는 절망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사람의 성격이나 의지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내 딸아이는? 혹 강렬한 삶을 살게하는 유전자가 없다면?  

흠... 강렬한 유전자가 없더라도 실망할 수 없게 하는 또 다른 이들의 삶이 다행스럽게 이 책속에 담겨있다. 

자연에서 조화로운 삶과 순응하는 삶이 더 가치있음을 몸소 깨우쳐 준 스콧 니어링, 슬픔과 가난조차 현실을 바라보는 충실한 도구로의 의미를 담아내며 작자로서의 의무에 충실했던 강경애, 다른 과학자들이 뭐라하든 자기 방식대로 옥수수 연구에 기쁨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매클린톡......타인과 사회으로부터의 시선과 주목에도 아랑곳 않고 꿋꿋하게 자기만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가치있는 삶이란 특별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과거에 비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위인'들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삶만이 우러르고 본받을 것이라 여겨지고 또 훌륭한 삶이란 위인들처럼 살려고 할 때에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요즘엔 참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이 제각각 가치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 듯하다. 비단 공익에 우선하거나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삶이 아니라 극히 개인적인 삶조차도 그 자체로 인정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바른 가치관과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목표의식이 아닐까 싶다.  

자고나면 듣기만 해도 흉악스런 사건의 범죄자의 이름들이 귓속을 파고들어 아침부터 심란스런 요즘이다. 문득, 책속에서만 활자화된 삶의 멘토들을 만날 것이 아니라 뉴스에서도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또 전체에서 일부로 살아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같아 바르게 사는 것이 자칫 미련하고 어리석게 생각되는 요즘에, 그래도 가치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깨우쳐 주는 이 책이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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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입니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는 개입니까 사계절 1318 문고 62
창신강 지음, 전수정 옮김 / 사계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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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독특하다고도 혹은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내용에 앞서 독특하게 다가온 것은 '나는 개입니까'라는 책의 제목이다. 

제목(문장)이 물음인데도 불구하고 물음표가 없음이 책을 읽은 후에야 마음에 들어왔다. 사실, 물음표를 붙이고 안붙이고의 문제로 여길 것까지는 없지만, 굳이 물음표가 달려있지 않음은 독자를 향한 물음이라기 보다는 주인공 자신(홍메이 아젠-붉은 눈썹이라는 뜻)에게 던지는 자아의식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쳐갔다. 

도시의 지하 배수관 속에 살고 있던 토종견이 주인공이다. 죽음이 임박한 할아버지의 마지막 며칠을 긴장하며 보내는 토종견 가족들과 유언처럼 남긴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창구'의 존재를 알게된 주인공 막내 견! 아마도, 주인공 막내 견에게 그것은 운명이었을지도......  

창구에 대한 호기심은 잦아들줄 모르고, 어떻게든 '창구'의 존재를 쉬쉬하려는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운명처럼 만난 연분홍 지렁이와의 만남을 통해 창구의 실체와 창구 너머의 인간세상을 알게된 막내 견.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은 이야기 속의 누구도 감히 못하는 도전과 모험을 하는데, 막내 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미 자신의 이빨을 뽑아버린 채 자취를 감춘 작은 형에 대한 의문과 창구너머로부터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뺏긴 마음은 막내 견을 더이상 지하 배수관 속에 머물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운명처럼 자신에 창구와 인간 세상의 존재를 깨우쳐준 연분홍 지렁이도 없는 지하 배수관은 막내 견에게 아무런 삶의 의미가 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배반하듯 혹은 운명에 순응하듯 인간세상으로 나온 막내 견이 부딪치는 인간세상은 위태롭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막내 견의 외모는 인간으로 바뀌었지만 속성만은 여전히 간직한 채였으니 말이다. 그 어떤 먹을 것보다 돼지갈비를 탐하는 막내 견이 보여주는 인간세상은 지하 배수관 속에서 그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간 감미로운 음악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한 번도 인간과 인간세상을 겪어보지 못했던 막내 견에게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비록 '엄마의 집'에서 '큰 또즈'로 살아가면서 겪는 것들이 전부로, 후셩과 또즈, 샤오샤오 그리고 '엄마'를 통해 제한적(?)인 인간의 삶을 체험하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후셩을 협박하던 아이들과 경찰들, 보차이 중학교의 교장과 선생님들, 막내 견을 잃어버린 아들이라며 찾아온 사람들과의 만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의 본성(본질?)을 잊지(잃지?) 않도록 한 것은 그러한 인간의 삶 자체보다 연분홍 지렁이와의 만남을 통한 가족들과의 조우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긴, 그 스스로 자신이 개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행방을 모르던 작은 형이 우다오 선생님으로, 누나가 류웨(연분홍 지렁이)의 집에서 벙어리의 모습으로, '자유시장'에서 분노에 찬 채 상등품 개가죽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 가족들.... 그가 마주한 가족들의 죽음때문에라도 결코 그는 인간이 아닌, 오히려 자신의 본질(개로서의 운명?)을 깨닫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꿈처럼, 환상처럼 체험한 '창구'너머의 인간세상은 결코 그의 삶을 돌려놓을 만큼 가치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가끔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였으면 할 때가 있다. 물론 인간들의 삶에 염증을 느낀 탓도 있지만, 이미 인간으로서 살아보았으니 다른 삶도 경험해 보고픈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인간세상의 모든 '창구' 너머의 생명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면 과연 무엇이 돼볼까 생각하게 되니 그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고보면, 나도 이미 인간 본위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익숙한 탓이 아닐까......
다만, 정말 가능하다면 새가 되어 원없이 창공을 날아보고픈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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