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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네 방향 ㅣ Dear 그림책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이미 <파란막대 파란상자> <두 사람> <생각> 등을 통해 독특한 매력을 느낀 이보나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로 하여금 브라보~를 외치게 하는 것은, 두툼한 책의 두께라든가 또는 시원스레 큼지막한 판형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이보나 작가의 독특함을 물씬 느끼게 하는 표지 그림과 '시간의 네 방향'이란 다소 의아한 제목에 '시간이 방향을 나타내는 걸까?' '시간이 가리키는 방향을 의미하는 걸까?' 이런저런 짐작으로 궁금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과연 '네 방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처음 한두 번 휘리릭~ 보고서는 그 깊이 있는 재미를 제대로 못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 책은 '유럽의 동쪽을 굽이져 흐르는 비스와 강가에 아주 오래된 도시'에 있다는 시내 광장(네모반듯한)에 무려 600년 전에 세워진 커다란 시청 건물 위 네모난 시계탑에 얽힌(?) 이야기 또는 시계탑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네모난 시계탑의 네 면에 설치된 네 개의 시계판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어 네모난 광장의 동서남북으로 서 있는 집들에서 가장 잘 보인다. 그냥 창밖으로 보이는 시계를 보기만 하면 될테니까.
시계탑이 있는 시청 건물이 무려 600년 전에 세워졌다고 하니 아마도 이 시계탑도 600년을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셈일까? 백 년이 지나고 또 백 년이 지나고 또 백 년이 지나고.... 또 지나도록 사람들은 창 너머 시계를 보듯 시계는 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저 시간을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무생물에 불과한 시계가 아니라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또 죽는 것을 지켜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관객임을 깨닫게 한다. 한 마디로, 유구한 시간 앞에서 인간은 생과 사, 희로애락을 연기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우쳐 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이다.
1500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동쪽 집의 부엌 풍경, 남쪽 집의 공방 풍경, 서쪽 집의 아이들 방 풍경, 북쪽 집의 거실 풍경은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시시각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동서남북의 네 집에서 광장을 둘러싼 모든 집들, 그 시, 그 나라, 또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는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을 그려보게 한다. 와우~ 순간 머리가 복잡해져 온다.
그 뒤로 계속되는 1600년 4월의 어느 날, 아침 9시, 1700년 6월의 어느 날, 오후 1시, 1800년 8월 어느 날, 오후 5시, 1900년 10월 어느 날, 저녁 8시, 2000년 12월 31일, 자정.....의 이야기는 무려 600년에 걸쳐 같은 공간에서 그러나 다른 계절과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통해 시계(시간)은 이야기한다.
'똑같은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빨리 흐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치 느리게 가요.(본문 9쪽)'
'한 시, 두 시, 여덟 시 반, 열두 시 십오 분...... 시계가 가리키는 이름들은 몇백 년 동안 똑같아요. 하지만 그 시간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단 한 번뿐인 시간들이에요.(본문 11쪽)'
시간... 그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이 바로 한 번 지나면 되돌릴 수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이 아닐까. 또 부자건 가난뱅이이건 어른이건 아이이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공평한 시간. 그 시간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문득, 광장의 시계탑에 걸린 시계라는 관객 앞에서 배우가 되어 연기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지금 우리집은 시계탑의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장소는 거실이고, 시간은 2010년 4월 어느 날, 오후 8시 무렵, 우리의 모습은 딸아이는 중간고사 준비로 책상 앞에 앉아 시험준비로 열심이고, 엄마인 나는 그림책 <시간의 네 방향>을 보고 또 보면서 브라보!를 속으로 외치고 있다~^^
시간 혹은 시각의 중요한 성질, 절대적으로 공평하다는...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고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는.....것을 연극(어릴 때 하던 인형놀이같은?)처럼 보여주는 이 책은 정말 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보고 또 보아도 물리지 않는 책이다.
아닐게 아니라, 처음에는 이보나 작가의 특징적인 화려한 콜라쥬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책장을 넘기기 바빴으며, 두 번째에야 비로소 인형놀이(연극)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깨닫게 된 이 책은 도대체 몇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지 몇 번을 보아도 알 수가 없다. 오호 이런..... 내 눈썰미가 없는 탓인지 그 인물이 그 인물같으니 말이다.
여태껏 보았던 그 어느 작품보다 화려한 콜라쥬로 나의 시원찮은 눈썰미를 탓하게 하는 이 그림책은 비스와 강가의 오랜 도시의 역사(짐작컨대 폴란드)와 곳곳에서 명화를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이보나 작가의 깜짝 출연이 반가운, 그야말로 브라보!다~
한 가지, 몇백 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의 모습이며 생활상이 그다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모습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문명의 발전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다. (물론, 세심하게 살펴보면 미미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다소 어렵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비스와 강가의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일까?)
겉표지와 속표지의 그림~
속표지의 그림은 나중에야 한 편의 연극을 보여주듯 펼쳐지는 이야기의 전개를 의미하는 '무대'를 나타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시간의 보편적인(특징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문구와 어린시절의 '인형놀이'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사람들의 한바탕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 위에서는 모두 여섯 편의 연극이 공연된다.
여섯 편의 연극은 100년을 주기로 계절은 물론 하루 중의 새벽-아침-오후-저녁-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시계탑이 바라보는 동쪽 집, 부엌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삶은 시대에 따라 제각각으로 펼쳐진다.
창너머로 보이는 시계탑은 항상 변함이 없으나 부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남쪽 집, 공방> 시계탑의 남쪽 집, 공방에는 가장 많은 변화가 있다.
제본 기술자-구두 공방- 시계 기술자- 모자 장인-사진가-그림책 화가의 작업실.... 등으로 화려한 변천사를 가진 공방의 모습이 펼쳐진다~
깜짝 반가운 사실!
작가인 이보나의 까메오 출연??
작업 중인 책상 위에 펼쳐진 <파란막대 파란상자>를 짐작케 하는 증거물(?)로 인해 창너머 시계탑을 바라보는 뒷모습의 여인이 다름아닌 이보나 작가임을 눈치채게 한다.
흠.. 이렇게 이보나 작가는 자신의 그림책에 등장인물로 깜짝 등장을 하시는군요. 아쉽게도 뒷모습이긴 하지만요. 그렇다면 벽에 걸린 사진은 작가의 어린시절의 모습??
<서쪽 집, 아이들 방>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 방엔 장난감이 가득하고 아이들을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게 마련이다.
<북쪽 집, 거실> 온 가족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공간인 거실이 오랜 시간이 지난 2000년 12월 31일, 자정에는 호텔 방으로 바뀐 그곳에서 묵게 된 외국인이 500년 묵은 종, 투바데이가 흥겹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