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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09년 12월
평점 :
요즘엔 과거에 비해 시부모와 따로 사는 세대들이 적지 않은 탓에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라는 책의 제목이 그리 살갑게만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다가가지 못할 막연한 그리움같은 것으로 느껴질 뿐이다.
아마도 장남이었던 아버지의 늦둥이로 또 유일한 혈육으로 태어난 나는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나마 뵈었을 뿐이고, 외할아버지 역시 뵙지 못했다. 그나마 외할머니는 어렴풋한 흐린 기억에 가물가물할 뿐이고, 그나마 맞벌이하는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지낸탓에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만큼은 문득문득 어린시절을 그리워하게 하게 한다.
나처럼 이미 작고하신 두 할아버지의 무릎은 커녕 모습조차 뵙지 못한 처지와 달리, 요즘 할아버지들은 노년이라기보다 장년의 모습으로 예전의 할아버지보다 훠얼씬 젊으신 할아버지가 대부분이시다. 딸아이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내게는 시아버님만 해도 환갑도 되기전에 손녀를 보셨으니 말이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일년에 고작해야 두세 번 많아도 너댓 번을 넘지 않는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과거에 한울타리에서 삼대가 함께 생활하며 돈독한 유대를 쌓아가던 것에 비하면, 가까운 이웃보다 먼 사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리라.
사실 초등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웃의 친구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녀가시기라도 하면 몹시 부러워하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 오시냐며 배 아파하던 딸아이였는데, 그것도 한때인지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처럼 오셔도 제 공간에서 쉽게 나오려 하지 않는 딸아이.
그러다보니 할아버지 무릎은 고사하고 할아버지와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기도 쉽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괜히.. '할아버지의 무릎'이라는 말에 안타까운 현실이 떠올라 주절주절 사설이 늘어졌다.^^;;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5년 동안 연재되었던 관옥 이현주 할아버지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는 정말 할아버지의 푸근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제 막 자신과 세상에 궁금증과 두려움이 솟아나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넉넉하고 다사로운 목소리로 먼저 세상을 삶을 겪어낸 소중한 경험을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무릎이 있다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앉아보고픈 마음 간절하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라는 큰 주제 속에 막막함과 두려움과 거부감, 피하고픈 마음, 궁금증과 호기심까지 아이들의 다양한 질문이 든 이 책은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포켓북같아 막막함이 밀려올 때, 할아버지의 푸근한 가르침이 그리울 때 책장을 넘기면 좋을 것같다.
할아버지의 가르침 가운데 '영어를 잘하는 것이 한국사람답게 사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말씀이 요즘 딸아이의 영어때문에 속으로만 고민하며 자칫 불안으로 빠져들 뻔한 내게 다시금 중심을 잃지 않게 한다.
문득,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 어쩌면 다시는 앉아볼 수 없는 할아버지의 무릎이 새삼스레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