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미래의 고전 1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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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표지의 그림이 눈에 띄어 진작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이금이 작가의 책이다. 드디어 일요일 딱히 외출할 일도 없고 해서 손에 집었다가 휘리릭~ 읽게 되었다.
아침 일찍 딸아이가 읽고 놓아둔 책을 오후에 내가 읽었는데..... 아침에 이 책을 읽고난 딸아이가 점심무렵 아래층에 사는 친구랑 만난다며 나가더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돌아왔다. 

우리 아파트는 주변에 갈 곳이 없는 시내에서 뚝! 떨어진 '나홀로'아파트라 아이들이 갈 곳이 뻔해 밖을 내다보니 아니나다를까... 뒷베란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놀이터 그네에서 둘이서 앉아서 열심히 이야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추운데 밖에서 무얼하는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라 방에 들어와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었다. 

읽는 동안 가끔 주인공 동재의 독백같은 혼자만의 마음 속 이야기 (특히 동생 은재나 베프 민규에게 해대는)에 웃음이 풋~하고 터져나오기도 했다.
주인공 동재, 이제 곧 6학년이 되는 딸아이와 같은 학년이어서 딸아이도 이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득문득 딸아이가 떠오르고는 했다. 

아빠와 엄마의 갑작스런 이혼과 또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빠의 결혼으로 마음이 몹시도 혼란스러운 동재. 더구나 한 살 적은 여동생 은재까지 한 집에 살게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나름 엄마와 아빠의 재결합을 은근 꿈꾸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불가능해졌으니 그 충격이야 오죽하랴.

그러나, 같은 반 연아를 향한 두근거림은 다행스럽게도 혼란스러운 동재의 마음을 잊게 하는 것같다. 게다가 평소 거리를 두던 동생 은재가 연아와 아는 사이라니......
자신의 가슴을 마구 방망이질 치고 얼굴을 붉게 물들이게 하는 연아를 향한 설레이는 마음을 어느새 자연스레 연애도사인 은재에게 열어보이며 어색했던 가족간의 관계도 어느새 부드러워진다.

은재 엄마와 살게 되면서 예전과는 딴판으로 변해버린 아빠의 모습이나 앞집으로 이사온 으스스한 분위기의 할머니와 미스테리의 할아버지의 사연 그리고 미겔이라는 털보 친구까지 대동하고 나타난 엄마의 예전과 달라진 자신감 넘치는 모습..등을 통해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연아에게 배신당하듯 뻥! 차이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첫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동재. 

어설픈 그러나 진지하고 순수한 동재의 '첫사랑'을 향한 두근거리는 이야기에 문득 동재 나이 무렵의 내 첫사랑이 새삼스레 떠올라 옛추억에 잠기게 한다. 

문득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에게는 어떤 첫사랑이 딸아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더불어 딸아이의 첫사랑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은근히 고민과 걱정이 몰려온다. 

가끔 풋! 하고 웃음을 터져나오게 하는 동재가 웃기다는 내 말에 동재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딸아이.
부디 동재처럼 '없는 것보다는 나은 추억'같은 첫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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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도둑 우리문고 21
제리 스피넬리 지음, 김선희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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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몹시 흥미를 끄는 '내 이름은 도둑'이었다.
과연 어떤 도둑일까? 무엇을 훔치고 또 왜 훔치길래 이렇게도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도둑이라고 하는지...... 

누군가의 빵을 훔쳐 정신없이 뛰고 나서야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아이는 자신의 첫 모습마저도 달리고 있다고 기억하고 있다. 가슴께에 빵을 꽉 안고서....
하지만, 자신의 이름은 커녕, 가죽장화나 대포조차도 모른다. 바보아냐?? 

어느 여름 자신을 꽉 잡고 달리던 큰 아이 유리에게조차 자신의 이름을 '거기서도둑'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아이. 게다가 유대인이 뭔지도 자신의 나이도 모르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목에 걸려있던 노란 돌멩이. 그것으로 아이는 혹 집시일거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 까만 눈동자도 그렇고. 

그날 이후, 아이는 유리와 함께 훔친다. 유리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목욕이란 걸 경험하게 해주었고 또 처음으로 가죽장화와 탱크라는 것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러시아땅 어딘가에서 태어난 미샤 필슈드스키라는 이름과 가족도 갖게 한다.

유리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이름과 가족을 '진짜'로 여기는 아이는 어느새 미샤 필슈드스키가 되어가고 있었다. (필슈드스키는 독일군에 강제충성 서약을 거절하여 투옥된 폴란드의 민족운동의 상징이자 독재자를 암시하는듯?) 

음..이쯤에서 아이가 살고 있는 곳이 그냥 황량한 곳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불안이 소용돌이 치는 1939년의 폴란드 바르샤바임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저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훔치고 또 훔친다. 미샤 필슈드스키가 된 그 아이는 어쩌면 그 많은 어린 도둑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본능에 의해서건 아니건 잡히지 않고 훔치기 적당한 작은 체구의 아이가 무엇이든 훔쳐 달아나는데는 도사(?)같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며 환경에 대해서는 일절 모른다는 것이 한편으로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버림을 받기라도 하였단 말인가......어떻게 이토록 '훔치는 것' 외에는 무지할 수 있단 말인지... 이 부분에서 다분히 의도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아무튼, 자신의 존재나 상황에 대해서는 무지함에도 살기위해서 훔치는 것에는 타고난 것같은 아이를 통해 보고 듣게 되는 전쟁의 속살들... 그 전쟁은 다름아닌 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폴란드에 불편한 심기를 터트린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의미하는 폴란드 침공으로, 바르샤바에 드리우는 전쟁의 그림자가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을 키우며 깊숙이 파고든다. 

아이가 만난 제니나 가족과 고아들을 돌보는 코르착 선생 그리고 유리와 아이들 무리를 통해 무서운 나치의 횡포와 반인륜적인 학대가 서서히 현실처럼 다가오고, 아이는 여전히 훔치기를 계속한다. 게토에 갇혀버린 제니나 가족들과 고르착 선생들의 고아들에게 아이의 도둑질은 절대적으로 희망이다. 도둑질을 위한 장벽 너머로의 짧은 외출은 아이에게는 즐거운 나들이와 같다. 자신이 훔쳐온 것은 곧 여러 사람들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귀한 양식이기에. 그래서 더욱 높은 담너머로의 위험한여행을 멈추지 않는 아이. 문득, 아이는 자신의 도둑질의 의미(중요성?)를 깨달았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느날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나듯 기차를 타고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천운처럼 살아남은 아이. 그리고 예고 없이 전쟁이 시작된 것처럼 또 예고 없이 끝나버린 전쟁. 세상은 정상으로 되돌아가고 있지만 돌아갈 정상이 없는 아이는 또 다시 뭐든지 훔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미국으로 건너가 잭 밀그롬으로 살아가는 아이 아니 어느덧 사내가 된 아이...한 여자와 만나고 손녀딸에게 제니나란 이름을 붙여주며 할비로 살아가는 체험같기도, 고백같기도 한 이야기에 어느새 콧등이 시큰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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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 교양팀 2010-02-0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우리교육 교양팀입니다.
좋은 리뷰 감사드리구요, 나는 새님의 리뷰를 저희팀 블로그에 담아가려 합니다.
출처와 원문주소는 확실히 밝히도록 할게요.

http://blog.naver.com/uri_culture

여기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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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과거에 비해 시부모와 따로 사는 세대들이 적지 않은 탓에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라는 책의 제목이 그리 살갑게만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다가가지 못할 막연한 그리움같은 것으로 느껴질 뿐이다. 

아마도 장남이었던 아버지의 늦둥이로 또 유일한 혈육으로 태어난 나는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나마 뵈었을 뿐이고, 외할아버지 역시 뵙지 못했다. 그나마 외할머니는 어렴풋한 흐린 기억에 가물가물할 뿐이고, 그나마 맞벌이하는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지낸탓에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추억만큼은 문득문득 어린시절을 그리워하게 하게 한다. 

나처럼 이미 작고하신 두 할아버지의 무릎은 커녕 모습조차 뵙지 못한 처지와 달리, 요즘 할아버지들은 노년이라기보다 장년의 모습으로 예전의 할아버지보다 훠얼씬 젊으신 할아버지가 대부분이시다. 딸아이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내게는 시아버님만 해도 환갑도 되기전에 손녀를 보셨으니 말이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일년에 고작해야 두세 번 많아도 너댓 번을 넘지 않는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과거에 한울타리에서 삼대가 함께 생활하며 돈독한 유대를 쌓아가던 것에 비하면, 가까운 이웃보다 먼 사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리라. 

사실 초등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이웃의 친구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녀가시기라도 하면 몹시 부러워하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 오시냐며 배 아파하던 딸아이였는데, 그것도 한때인지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처럼 오셔도 제 공간에서 쉽게 나오려 하지 않는 딸아이.
그러다보니 할아버지 무릎은 고사하고 할아버지와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기도 쉽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괜히.. '할아버지의 무릎'이라는 말에 안타까운 현실이 떠올라 주절주절 사설이 늘어졌다.^^;;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5년 동안 연재되었던 관옥 이현주 할아버지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는 정말 할아버지의 푸근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제 막 자신과 세상에 궁금증과 두려움이 솟아나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넉넉하고 다사로운 목소리로 먼저 세상을 삶을 겪어낸 소중한 경험을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무릎이 있다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앉아보고픈 마음 간절하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라는 큰 주제 속에 막막함과 두려움과 거부감, 피하고픈 마음, 궁금증과 호기심까지 아이들의 다양한 질문이 든 이 책은 손 안에 쏘옥~ 들어오는 포켓북같아 막막함이 밀려올 때, 할아버지의 푸근한 가르침이 그리울 때 책장을 넘기면 좋을 것같다. 

할아버지의 가르침 가운데 '영어를 잘하는 것이 한국사람답게 사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말씀이 요즘 딸아이의 영어때문에 속으로만 고민하며 자칫 불안으로 빠져들 뻔한 내게 다시금 중심을 잃지 않게 한다. 

문득,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 어쩌면 다시는 앉아볼 수 없는 할아버지의 무릎이 새삼스레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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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일의 겨울 사거리의 거북이 10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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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53일의 아니 정확히 151일 간의 예정에 없던 미친 늙은이와의 동거를 끝마치고 집으로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소녀 갈샨이 예전과 같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차궁에 혼자 남아있는 바이타르를 생각하며, 또 쿠다야 어르신에게 영원한 자유를 종용하며 떠나보낼 땐 결국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그리고, 문득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하는 물음이 선문답처럼 떠올랐다.  

엄마 다알라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 다섯 달 동안 집을 떠나야 하는 갈샨이 아빠 리함과 함께 48톤 짜리 괴물 트럭 우랄을 타고 열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말과 양 떼 속에 묻혀 사는 미친 늙은이 바이타르가 살고 있는 차궁이었다. 

갈샨과 바이타르, 손녀딸과 할아버지 관계이지만 갈샨의 부모는 물론 집안의 첫손주인 갈샨이 계집아이라는 것에 그리 탐탁지 않아 그동안 관계가 뜸했던 탓에 서먹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만남. 

153일을 버티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 공책에 표시를 하며 먹기싫은 쓴 약을 삼키듯 살아갈 것임을 마음먹는 갈샨. 따스한 말같은 것은 없지만 갈샨에게 '재무쇠'를 골라주고 또 재무쇠를 길들여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는 바이타르. 마침내 열흘째 되는 날 바이타르를 따라나서게 된 갈샨.
그리고 시작되는 갈샨과 바이타르의 이야기(151일 간의 동거).  

몽골하면 우선 넓은 초원을 떠올리기 십상인 탓에 '바위와 자갈이 깔린 거의 절벽에 가까운 위험한 너설 언덕(37쪽)'이나 '언덕마루에서 경사를 곧바로 달려 내리더니 속력을 늦추지 않고(39쪽)'.. 등과 같은 배경이 금새 익숙해 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TV를 통해 보았던 몽골의 매사냥(독수리사냥이었던가?)을 떠올리게 하는 검독수리 쿠다야 어르신을 사냥하는 장면(70~73쪽)은 몽골의 전통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팽팽한 긴장감과 혹시라도 바이타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바쁘게 책장이 넘어가는 부분은 다름아닌 몽골의 혹독한 겨울 추위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죽음의 흰 가루'였다.

사나운 돌풍과 함께 몰아닥친 다브카르 쭈트(죽음의 흰 가루)는 게르 바깥 세상은 물론 갈샨과 바이타르가 있는 게르의 내부까지 죽음의 그늘을 드리운다. 죽음의 흰 가루 앞에서 불안에 떨며 더없이 약해지는 그러나 끝까지 삶에의 질긴 끈을 놓지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인간은 자연의 막강한 힘과 싸우며 여태껏 살아온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아빠 엄마와의 헤어짐이 싫고 비록 할아버지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미친 늙은이로만 생각된 탓에 153일 동안의 동거가 끔찍하기만 했던 갈샨이 어느새 바이타르를 아타스(할아버지)라 부르며 함께 양떼를 돌보고 검독수리를 사냥하고 쿠다야 어르신과 짝이 되고, <노인과 바다>를 읽어주고.....그리고 '죽음의 흰 가루'속에서 함께 죽음과 싸우는 동안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마침내 엄마와 아기가 태어난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간 갈샨이 바이타르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고집스럽게 자신의 양떼를 지키며 차궁의 삭막한 게르 속에서 손녀딸 갈샨이 남겨두고 간 <노인과 바다>를 보는 바이타르는 또 어떤 마음일까...... 

문득, 삶이란 제가 딛고 선 땅 위에서 제각각 짊어지고 가야할 무게의 몫임을 깨닫는다. 결코 누구의 삶이 더 옳고 더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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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스 우즈의 그림들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9
패트리샤 레일리 기프 지음, 원지인 옮김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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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는 제2장의 <세 번째 그림- 37쪽 17째 줄>을 읽을 때까지 홀리스 우즈가 소녀라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읽을 때는 제1장의 끝부분(26쪽 4째 줄)에 살짝 스치듯 언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홀리스 우즈'.... 그림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그러나 알 수없는 이유로 이미 수 차례 여러 집을 거쳐가고 있음을, 소녀의 이름이 안타깝게도 처음 자신이 버려졌던 곳의 지명이란 것을 차례로 알게 되면서 점점더 홀리스 우즈가 그리는 그림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보지 못하고,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살아보지 못한 홀리스 우즈.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녀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그녀의 그림을 보는 이마다 놀라게 만드는 '진짜 타고난' 재능, 바로 그녀의 특별한 그림이었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홀리스의 재능은 물론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함께 볼줄 알았던 사람들, 바로 조시 아줌마와 그녀의 사촌 베아트리스 그리고 홀리스가 가족이 되고싶었던(마침내는 가족이 되지만..) 리건 가족들로 홀리스가 그들을 만난 것은 어쩌면 행운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홀리스의 오랜 기억 속에서 꺼내지 못하는(상처로 남은?) 여섯 살 때 에반스 선생이나 레몬 아줌마 그리고 회벽 집의 그 여자처럼 홀리스를 거칠고 문제가 산더미처럼 많은 아이로만 여기는 사람들에 비하면 말이다. 

홀리스가 과거에 그렸던 그림들을 자신이 배낭에 꼭꼭 숨겨놓은(?) 채 알 수없는(마침내는 그 이유를 알게되지만) 이유로 떠나야 했던 리건 가족들과의 추억 하나하나를 회상하며 스티븐의 목소리와 대화하는 부분에 알 수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그러나 한줄기 기대를 부여잡고 바쁘게 홀리스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는 홀리스와 리건 가족들의 이별을 초래하게된 이유란 것이 그날의 무서운(?) 사건따위가 아닌(사실 주인공 홀리스가 스티븐과 마음 속 대화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혹 스티븐이 죽은 건 아닐까 했으므로...) 홀리스의 일종의 불안감같은 것때문이었다는 것에 실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안도했는지....... 

리건 가족들과 지내는 동안 내내 스티븐이 아빠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혹시라도 자신때문일까봐 내내 가슴 졸이던 홀리스. 결국엔 그날의 사고로 마침내 가족이 되었음에도 도망치듯 그들로부터 아픈 몸을 끌고 나와야 했던 홀리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얼마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하늘(신)은 홀리스에게 그림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가족을, 가정을 가질 수 있는 기회 또한 함께 부여하였음에 참으로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결말에 가슴이 푸근해져 온다. 

리건 가족의 여름 별장 앞을 굽이쳐 흐르던 델라웨어 강을 좋아하고, 그 맞은편 리건 씨의 산을 더 좋아하고, 그들이 가족이 되었음에 더없이 좋아하던 홀리스. 조시 아줌마에게 연민이라도 느낀듯 곁에 있어 주고자 하던, 베아트리스에게 사막과 선인장을 볼 기회를 주었던, 그러나 정작 가족이란 어떤 모습인지 또 일상적인 가정은 어떤 것인지 짐작 조차 못하던 홀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더없이 잔잔하게 다가온다. 

문득, 작가 패트리샤 레일리 기프의 다른 작품들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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