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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도둑 ㅣ 우리문고 21
제리 스피넬리 지음, 김선희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만으로도 몹시 흥미를 끄는 '내 이름은 도둑'이었다.
과연 어떤 도둑일까? 무엇을 훔치고 또 왜 훔치길래 이렇게도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도둑이라고 하는지......
누군가의 빵을 훔쳐 정신없이 뛰고 나서야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아이는 자신의 첫 모습마저도 달리고 있다고 기억하고 있다. 가슴께에 빵을 꽉 안고서....
하지만, 자신의 이름은 커녕, 가죽장화나 대포조차도 모른다. 바보아냐??
어느 여름 자신을 꽉 잡고 달리던 큰 아이 유리에게조차 자신의 이름을 '거기서도둑'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아이. 게다가 유대인이 뭔지도 자신의 나이도 모르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목에 걸려있던 노란 돌멩이. 그것으로 아이는 혹 집시일거라고 누군가 말해주었다. 까만 눈동자도 그렇고.
그날 이후, 아이는 유리와 함께 훔친다. 유리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목욕이란 걸 경험하게 해주었고 또 처음으로 가죽장화와 탱크라는 것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러시아땅 어딘가에서 태어난 미샤 필슈드스키라는 이름과 가족도 갖게 한다.
유리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이름과 가족을 '진짜'로 여기는 아이는 어느새 미샤 필슈드스키가 되어가고 있었다. (필슈드스키는 독일군에 강제충성 서약을 거절하여 투옥된 폴란드의 민족운동의 상징이자 독재자를 암시하는듯?)
음..이쯤에서 아이가 살고 있는 곳이 그냥 황량한 곳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불안이 소용돌이 치는 1939년의 폴란드 바르샤바임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저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훔치고 또 훔친다. 미샤 필슈드스키가 된 그 아이는 어쩌면 그 많은 어린 도둑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본능에 의해서건 아니건 잡히지 않고 훔치기 적당한 작은 체구의 아이가 무엇이든 훔쳐 달아나는데는 도사(?)같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며 환경에 대해서는 일절 모른다는 것이 한편으로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버림을 받기라도 하였단 말인가......어떻게 이토록 '훔치는 것' 외에는 무지할 수 있단 말인지... 이 부분에서 다분히 의도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아무튼, 자신의 존재나 상황에 대해서는 무지함에도 살기위해서 훔치는 것에는 타고난 것같은 아이를 통해 보고 듣게 되는 전쟁의 속살들... 그 전쟁은 다름아닌 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폴란드에 불편한 심기를 터트린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의미하는 폴란드 침공으로, 바르샤바에 드리우는 전쟁의 그림자가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을 키우며 깊숙이 파고든다.
아이가 만난 제니나 가족과 고아들을 돌보는 코르착 선생 그리고 유리와 아이들 무리를 통해 무서운 나치의 횡포와 반인륜적인 학대가 서서히 현실처럼 다가오고, 아이는 여전히 훔치기를 계속한다. 게토에 갇혀버린 제니나 가족들과 고르착 선생들의 고아들에게 아이의 도둑질은 절대적으로 희망이다. 도둑질을 위한 장벽 너머로의 짧은 외출은 아이에게는 즐거운 나들이와 같다. 자신이 훔쳐온 것은 곧 여러 사람들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귀한 양식이기에. 그래서 더욱 높은 담너머로의 위험한여행을 멈추지 않는 아이. 문득, 아이는 자신의 도둑질의 의미(중요성?)를 깨달았던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느날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나듯 기차를 타고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천운처럼 살아남은 아이. 그리고 예고 없이 전쟁이 시작된 것처럼 또 예고 없이 끝나버린 전쟁. 세상은 정상으로 되돌아가고 있지만 돌아갈 정상이 없는 아이는 또 다시 뭐든지 훔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미국으로 건너가 잭 밀그롬으로 살아가는 아이 아니 어느덧 사내가 된 아이...한 여자와 만나고 손녀딸에게 제니나란 이름을 붙여주며 할비로 살아가는 체험같기도, 고백같기도 한 이야기에 어느새 콧등이 시큰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