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마인드 - 세상을 리드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한 가지
스탠 비첨 지음, 차백만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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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한 심경으로, 책 제목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엘리트 마인드'를 읽어서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지? '세상을 리드하는 사람들'이 가진 요건을 내가 안다고 해서 이제와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책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마음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자신만만한 마음으로 엘리트가 될 거니까 이 책을 읽어보겠다고 결심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엘리트라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경쟁에서 살아남아 이른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그들이 가진 비법이나 비밀을 하나 안다고 해서 이미 정해진 판도가 뒤집히는 일은 없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일상생활에 실천에 옮길만한 비법이나 비밀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진짜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운동선수들의 예에서 실제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읽다보니 자신이 개선해야 할 점이 분명히 보였다. 엘리트라는 단어만으로 보였던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반응, 그것부터 였다. 그 점을 느끼니 멀게만 느껴졌던 책의 내용도 좀 더 잘 읽히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책의 제목이 좀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니 썩 괜찮았다. 내 자신의 변화가 그것부터 실제적으로 확 다가오니까.

 

 사실 운동선수들의 경우가 예로 들어진다고 해서 영 나와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에 몰입하게 된 예가 학창시절 반에 한두명쯤은 꼭 있을 법한 일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 매우 특출해서 특기생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는 선수들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그들은 유소년 리그와 고등학교 시절에 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 물론 고등학교 때 훈련도 하고 연습도 열심히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경쟁자들과 같은 노력을 하고도 자신이 더 잘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동료 선수들 모두가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마디로 팀 내 최고의 선수였다가, 이제는 아예 시합에서 뛰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들은 종종 후보 선수로 머물면서 1년 동안 선발 선수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대다수 선수가 이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가 학창시절 공부를 할 때도 저런 일이 생긴다. 공부를 그리 많이 하지 않았는데, 배로 열심히 하는 학생보다 초중등학교 성적이 잘 나온다.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대입을 앞둔 진짜 공부를 하게 되는 시기가 된다. 평준화 된 지역의 학교들은 덜하겠지만, 만약 비평준화 지역에서 중학교 시절 공부를 딱히 하지 않아도 상위권 성적을 받았던 사람이 그 성적을 바탕으로 지역의 상위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를 보게되면 그 성적을 유지하는 상위권의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등수가 매겨진 성적표를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바로 이 부분부터 이입하고 몰입되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재능의 저주'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상황에서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신념이 잘못되었으며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금 이렇게 알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책에서 들어진 예로 인상깊었던 또 하나는 경쟁에 관한 내용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경쟁자들에게 큰 존경심과 애정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서 최선을 끌어내려면 경쟁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경쟁자가 주는 긴장감과 갈등이야말로 위대한 선수들이 찾는 변화의 매개체다. 위대한 선수들이 경쟁하는 목적은 경쟁자를 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오는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결론만 말하면, 경쟁자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경쟁하는 선수는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다. 결국 당신의 경쟁자는 당신 자신이다. 지금의 당신 모습과 미래에 당신이 될 수 있는 모습 간의 차이가 바로 성공을 만든다."

이 부분을 읽으며 김연아 선수를 떠올렸다. 그녀의 인터뷰 내용 중에 경쟁 상대로 지목되는 선수와 관련된 내용이 종종 질문으로 던져지는데 그럴때마다 그녀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강조했다. LA선수권 대회를 앞 둔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내가 LA에 온 것은 아사다 마오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4분간 내가 가진 기술로 즐길 것이다." 라고 답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예전에 그녀의 이런 인터뷰 내용을 보며 내심 감탄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남을 시기하거나 견제하는 경쟁이 아니라 가장 이기기 어렵다는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이기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가 좋은 증거가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잘 풀리는 날에 당신의 모습은 당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반대로 안 풀리는 날에 당신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가 진정한 시험이다. 나로서는 함께 일하는 선수가 안 풀리는 날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안 풀리는 날의 모습을 통해 선수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합이 안 풀린다고 해서 특별히 더 자책하거나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는가? 입을 쭉 내밀고는 불평을 늘어놓지는 않는가? 변명하고 포기하는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먼저 성과가 안 좋을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정보다." 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단순히 엘리트, 자기 안의 잠재된 최대치를 끌어내어 최고에 도전하는 사람들만이 생각해야할 성공의 요건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가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이다. 높을 곳에 있을때, 모든 일이 잘 될 때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관용, 이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낮은 곳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때도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성과가 좋지 않을때 쉽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두는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성공하는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반응을 보이는 자신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대로 책을 읽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대목마다 나름의 생각을 곁들여가며 이런 생각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며 읽었다. 여전히 초일류의 승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는 없다. 하지만 소소하게 목표를 세울 때는 확고하고 크게 가져야겠구나, 빠져나갈 변명거리 밖에 되지 않을 차선책을 생각해두지 말아야겠구나,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이 수치스럽거나 나 자신을 실패자로 단정지어버릴 일이 아니란 것을 염두에 두고 도전해야겠구나, 몇 가지 책 속의 조언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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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 - 능력 있는 현대 여성은 왜 무기력한가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이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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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읽고 보고 꿈꾸고 믿는다. 우리는 좋은 여자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떻게 살고 무엇을 희망하고 무엇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떤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젊음을 잃으면 안 된다. 얌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끓는 물에 토끼를 집어 던지면 안 된다. 해피엔드를 비켜 가면 안 된다. 규범을 거부하면 안 된다. 자기만의 기준을 정하면 안 된다. 나쁘면 안 된다."

 

 남성과 여성이 극렬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시기를 체감하는 요즘이다. 이 현상은 단순히 남녀의 성차이로 비롯된 갈등이 아닌 성차이라는 관념이 무너져가면서 생기는 시대적인 변화와 발맞추어 나타나는 진통이라 여겨진다. 지금과 같은 시점에는 자신의 생각이 아닌 타인의 의도에 맞춰져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하고 수긍하며 시대적 흐름에만 휩쓸려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 무엇보다 여성에게 씌워지는 프레임들,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져야 할 가치관들을 자신의 시각과 신념으로 정립해야 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한편 스스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학습되어진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아닌 날선 검열의 잣대와 성숙한 의식을 가지도록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는 이를 위해 필요한 양질의 도서인 것 같아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기 전 소제목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는데, 요즘 관심있게 지켜보고 생각하는 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들이라 기대되었다. 하지만 막상 본문으로 들어갔을때 다소 읽기 어려웠는데, 내용 자체는 사실 전반적으로 한번 훑어보고 난 뒤에는 크게 어렵거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글의 형식이랄까 편집된 틀이 가독성을 좀 방해했던 것 같아 아쉬웠다. 다른 계발서들이나 교양서들에 비해 페이지 당 줄 수가 세네줄 정도는 많았다. 글씨 크기 자체가 작아 페이지 당 빼곡히 적혀있는 글들에 볼드 처리된 부분이 아마 원문에 되어 있는 그대로 조사나 어미에 해당하는 단어에 붙도록 번역된 것 같은데 문장 흐름에서 왜 이 부분에서 강조가 들어갔을까 읽다가 방해가 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 ... 엄청 성공했다는 이유로, 당신을 ... p 186 " 또는 " 그녀는 5개 국어를 구사하지만 원어민 수준은 딱 2개밖에 안 된다. 협상 때마다 승리를 거두지만 그건 그저 운이 좋아 쉬운 협상 파트너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똑똑하고 사랑스럽고 충성심이 넘치지만 당연히 완벽하지 않다. p 143" 이런 부분들이다. 원문을 초월하는 번역이 필요한 것은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 얕은 생각이지만 읽으면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 외의 부분,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고전적인 느낌을 받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것들이 다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부분도 있었다. 일상적인 부분들에 대한 현실적 조언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아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구,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가정과 직장 모두 완벽한 상태로 일을 끝내야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웃으며 긍정적으로 대하는 성품까지 갖춰야 하는 여성들에게 스스로를 검열하고 압박하는 코르셋에서 벗어나길 종용한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맥락인데, 나는 직장에서 후임의 실수를 지적하거나 혼내는 일에 회의적이었다. 나 역시 업무 처리를 함에 있어 때로 실수가 생기기도 하는 완벽하지 못한 인간인데 다른 사람이 잘못을 지적하여 혼을 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다. 또 하나는 나의 지적으로 그와 나의 관계가 망가지게 될까 염려되었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선 내가 지적해 줄 수 있는 실수는 말하고 고치도록 했어야 했다. 이 책의 '제대로 분노하라' 파트의 '첫 번째 걸음'에 나온 내용을 읽으며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관계의 안에서 눈치를 보지 말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더 관심을 두었어야 했다.  

 

 좀 더 요즘 시대 상황에 맞는 페미니즘의 실례나 개념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원론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전에 없이 성장이 어려운 시기에 남성과 여성을 둘러싼 파이의 배분이 달라지려 하고 있다. 여권의 신장은 피해갈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의식하지 못했던 당연함이 부조리로 치부되기도 하고, 어떻게 얼마나 나뉘어야 공평한 것인가에 대한 기준 자체를 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아직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다 알지 못한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많은 개인들이 페미니즘을 숭배하거나 증오하기 전에 제대로 알고 교육받고 이해하길 바란다. 페미니즘이란 말이 의무는 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요구하는 욕심많은 여성들의 억지 주장이라는 의미로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가 모두가 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더 많이 읽고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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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히말라야 씨
스티븐 얼터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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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점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과거의 그에게 일어났던 매우 불운했던 어느 날의 한 지점을 내밀하면서도 관조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가 그날에 겪었던 일이 실재적이지 않게 느껴질만큼 비현실적인 폭력성이 드러났기도 하며, 그의 기억 속에서도 채 다 끼워맞춰지지 않은 부분들이 전달된 상태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때문에 그와 그의 아내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던 그날의 일을 읽으며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한무리의 괴한들에게 불시에 습격당한 노부부가 나오던 장면, 그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폭행을 당하던 무차별적이고 가학적이었던 씬을 떠올리며 저자에게 일어났을 고통을 짐작해봤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그곳엔 어떤 연출도 의도도 없이 오롯이 살의에 찬 끔찍한 폭력이 날 것으로 그의 생명을 위협했을테니.

 

 "악을 대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금도 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마냥 편치는 않다. 그날 우리를 공격한 놈들이 사악한 인간들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종교나 철학적 맥락 안에서 벌어지는 모호한 윤리 논쟁과는 달리, 내가 경험한 악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악귀의 빙의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실재하고 현존하는 악이었다. 나를 짓누르고 질식시키려 했던 인간은 사악한 존재다. 아미타를 사정없이 발로 차고 칼로 찌른 녀석들도 똑같이 사악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도 하다.  59-60p"

 

 폭행을 당한다는 것이 단지 신체적인 상처만으로 그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아주 큰 확률로 피해자의 정신- 심리적인 부분도 손상시킨다. 몇 번이고 자신이 노출되었던 당혹스럽고 무자비했던 야만적인 순간을 되새기며 그때 나는 어떻게 대처했던가, 혹은 이렇게 행동했다면 좋았을 걸, 아니면 그때 만약 내가 이랬더라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텐데 하고 자책이나 후회와 비슷한 감정을 곱씹는다. 무엇이 되었든 폭력을 휘두른 자의 잘못이고 야만인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자기 자신을 검열하고 비슷한 공간이나 분위기가 느껴지는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긴장하고 패닉하게 된다. 비참한 일이다. 그들도 그랬다.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로 그는 산을 오른다. 처음에는 근처의 낮은 산책로부터 시작했다. 전에 가볍게 오가던 길을 지팡이를 구해 짚고 힘겹게 오르면서, 그래도 이 길을 다 걸어내면 자신 안에서도 뭔가 새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가 산을 오르려 하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떤 시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길을 걷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매우 유사하게 느껴졌다. 읽는 내내 나에게 처음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과, "순례길"이란 것을 알려주었던 책이 떠올랐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은 두 여자의 이야기였는데 약 십년쯤 전에 처음 읽고 나름의 놀라움을 담아 단단히 기억해두었었다. 순례길에 대한 글들을 읽어보면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저 종교적인 신념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길고 긴 길을 며칠동안이나 묵묵히 자신의 두발로 걷다보면 그 안에서 혹은 길 위에서, 걸어낸 자들은 무언가를 얻어왔다. 걷고 걸었을 뿐인데도 그 안에서 무언갈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히말라야를 오른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저 가장 높은 고지에 다다르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산과 교감하고 자신안에 있던 감정과 상념의 찌끄러기들을 때때로 정리하고 환기시키기를 반복한다.

 

 "성스러운 산에 닿기 위해 여행하는 우리 같은 순례자들이 밟는 길들은 이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땅, 마법의 비기와 무시무시한 장애물, 대답 없는 질문들을 품은 신비로운 땅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이런 여정에서 경험하는 고난과 의구심을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다다른다. 진정한 순례는 얼마나 먼 길을 걸었는가 혹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오직 마음이 가리키는 길을 걸었는가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242-243p"

 

 처음엔 산의 꼭대를 향해 오르거나, 길의 끝까지 걷겠다는 목표가 나를 '무언가'로 만들어주거나, 변화시켜 줄 것만 같다고 여기며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그들은 길 위에서 깨닫는다. 혹은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서, 그들이 바라본 꼭지점이 무언가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발로 디뎌낸 땅이 버텨낸 중력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마주한 자기 자신이 그 이전의 나와 후의 나를 구분토록 만드는 것이라고. 길을 떠나고 싶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상처받았든 무기력하든 혹은 지금이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든 무엇이든 이유를 붙여서 걷다가, 왜 걷고싶었는지라도 깨닫고 싶어진다. 읽다가 문득 나는 아미타가 걱정되었다. 그가 산을 오르는 동안 또 다른 피해자인 그녀는 어떤 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였을까, 하고. 히말라야와 그가 걸었던 길들이 그를 치유하고 성장시켜 주었다면, 그녀에게도 자신만의 히말라야가 존재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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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매로 당당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박수진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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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약간은 회의적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에 나와있는 당신도 할 수 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등등의 내용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고, 일부 그런 내용이 진짜 첫머리부터 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저자가 보여주는 솔직한 태도에 그것이 전형적인 문구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절박함이 나와는 달랐구나, 하는 이해로 연결되었다.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저자가 당당하게 자신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 부자가 되는 것으로 두었다고 드러낸 것이었다. 보기에 괜찮을만한 목표 의식 때문에 행동하게 되었다는 허식이 없이, 다소 속물적으로 비춰질지 모를 저자의 '가난하니까 돈 벌고 싶다!' 는 욕구가 오히려 더 진솔하게 다가왔다. 제목도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경매를 배웠다'라고 지었어도 어울렸을 것 같다.

 

 무엇보다 어려울 수도 있는 부동산 경매 내용을 자신의 경험을 풍부하게 녹여내여 마치 수필처럼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이 책만으로는 이해에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전혀 문외한인 독자의 눈에도 어떤 흐름으로 일이 진행되는지 알 수 있게끔 적어놓았다. 진입 장벽이 낮고 모든 내용들이 다 실제적인 사례로 구성되어 있어 현장감이 느껴진다.

 

 어떤 내용들은 좀 좁은 시야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운명은 어차피 정해져 있어서 나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거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는 늘 이렇게 맨 밑바닥으로 오는 인생이구나.' 하는 흙수저 인생에 대한 단정적인 체념 같은 부분이 그랬다. 물론 읽다보면 그런 자신의 생각마저도 할 수 있다는 각오로 이겨내 온 내용이 담겨져있지만, 초반에는 저렇게까지 비약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지기도 했었다.

 

 읽기 전까지만 해도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용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술품 등의 경매를 쉽게 떠올리고, 부동산 같은 경우는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봤던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처음엔 걱정했는데, 다 읽고 난 뒤에 생각해보니 전혀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 우연찮게 속속들이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괜찮아졌다. 게다가 내용도 재밌는 편이다.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단숨에 읽게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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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 16년차 부장검사가 쓴 법과 정의, 그 경계의 기록
안종오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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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라고 하면 실생활에서 직접 마주하기는 어려운데 드라마나 영화 속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라는 이미지 뿐이다. 보통은 정치, 경제권에 연결되어 있는 부패한 모습이나, 정의롭지만 폭력적이고 자신의 직업을 앞세워 다른 사람들에게 고압적이거나 하는 모습이 다반사다. 그런데 저자 안종오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일상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직업을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거나 하는 등의 보통의 아저씨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면면을 느끼게 만든다. 어떤 부분에서는 다소 글 분위기가 올드한 감수성에 충만해지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게 남기는 짧은 위로의 말 같은 것을 남기다던지, 하는.

 

 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다뤘던 사건들이 어땠는지 보다, 일을 하면서 지친 자신의 마음을 글을 씀으로써 달래고 위안을 받았다는 부분에서 놀랍고 또 대단하게 여겨졌다. 생활과 일을 바쁘게 오가는 와중에 이런식으로 글을 써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앞서 '올드한 감수성'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저자가 투박하고 솔직한 자신의 감성을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부분도 좋았다. 벽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서로 좀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 있으면 안종오 검사 같은 검사에게 상담받고 도움을 청하고 싶다는 생각이들게.

 

 더불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 역시 어떤 영향을 주고 또 받으며 지낼텐데,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구나 싶어졌다. 저자만큼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위태롭고 절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작은 배려나 관심이 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고 나니 사람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의 중요성에 대해 재고해보게 된다. 적어도 남의 하루에 웃음 한 번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싶어졌다. 따뜻한 글이었다.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고 직업적인 전문적은 내용은 적어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종합적인 감상은 다소 전형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는 것. 의사, 변호사, 수사관, 교사 또는 상담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직업적으로 겪었던 일들에 대해 풀어내는 책을 썼을때 그 책들이 갖게되는 구성과 분위기가 있는 줄 의식하지 못했는데 문득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를 읽다보니 느껴졌다. 처음엔 강력 범죄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뭔가 자극적인 소재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사람 냄새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룬 상당히 평이한 분위기다.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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