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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 - 능력 있는 현대 여성은 왜 무기력한가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이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읽고 보고 꿈꾸고 믿는다. 우리는 좋은 여자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떻게 살고 무엇을 희망하고 무엇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떤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젊음을 잃으면 안 된다. 얌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끓는 물에
토끼를 집어 던지면 안 된다. 해피엔드를 비켜 가면 안 된다. 규범을 거부하면 안 된다. 자기만의 기준을 정하면 안 된다.
나쁘면 안 된다."
남성과 여성이 극렬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시기를 체감하는 요즘이다. 이 현상은 단순히 남녀의 성차이로 비롯된 갈등이 아닌 성차이라는
관념이 무너져가면서 생기는 시대적인 변화와 발맞추어 나타나는 진통이라 여겨진다. 지금과 같은 시점에는 자신의 생각이 아닌 타인의
의도에 맞춰져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하고 수긍하며 시대적 흐름에만 휩쓸려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 무엇보다
여성에게 씌워지는 프레임들,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져야 할 가치관들을 자신의 시각과 신념으로 정립해야 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한편
스스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학습되어진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아닌 날선
검열의 잣대와 성숙한 의식을 가지도록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는 이를 위해 필요한 양질의 도서인 것 같아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기 전 소제목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는데, 요즘 관심있게 지켜보고 생각하는 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들이라 기대되었다.
하지만 막상 본문으로 들어갔을때 다소 읽기 어려웠는데, 내용 자체는 사실 전반적으로 한번 훑어보고 난 뒤에는 크게 어렵거나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글의 형식이랄까 편집된 틀이 가독성을 좀 방해했던 것 같아 아쉬웠다. 다른 계발서들이나 교양서들에 비해 페이지 당 줄
수가 세네줄 정도는 많았다. 글씨 크기 자체가 작아 페이지 당 빼곡히 적혀있는 글들에 볼드 처리된 부분이 아마
원문에 되어 있는 그대로 조사나 어미에 해당하는 단어에 붙도록 번역된 것 같은데 문장 흐름에서 왜 이 부분에서 강조가 들어갔을까 읽다가 방해가
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 ... 엄청 성공했다는 이유로, 당신을 ... p 186 "
또는 " 그녀는 5개 국어를 구사하지만 원어민 수준은 딱 2개밖에 안 된다. 협상 때마다 승리를
거두지만 그건 그저 운이 좋아 쉬운 협상 파트너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똑똑하고 사랑스럽고 충성심이
넘치지만 당연히 완벽하지 않다. p 143" 이런 부분들이다. 원문을 초월하는 번역이 필요한 것은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 얕은 생각이지만 읽으면서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 외의 부분,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고전적인 느낌을 받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것들이 다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부분도 있었다. 일상적인 부분들에 대한 현실적 조언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아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구,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가정과 직장 모두 완벽한 상태로 일을 끝내야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웃으며 긍정적으로 대하는
성품까지 갖춰야 하는 여성들에게 스스로를 검열하고 압박하는 코르셋에서 벗어나길 종용한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맥락인데, 나는 직장에서 후임의
실수를 지적하거나 혼내는 일에 회의적이었다. 나 역시 업무 처리를 함에 있어 때로 실수가 생기기도 하는 완벽하지 못한 인간인데 다른 사람이
잘못을 지적하여 혼을 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다. 또 하나는 나의 지적으로 그와 나의 관계가 망가지게 될까 염려되었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선 내가 지적해 줄 수 있는 실수는 말하고 고치도록 했어야 했다. 이 책의 '제대로 분노하라' 파트의 '첫 번째 걸음'에
나온 내용을 읽으며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관계의 안에서 눈치를 보지 말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더 관심을 두었어야 했다.
좀 더 요즘 시대 상황에 맞는 페미니즘의 실례나 개념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원론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전에 없이 성장이 어려운 시기에 남성과 여성을 둘러싼 파이의 배분이 달라지려 하고 있다. 여권의 신장은 피해갈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의식하지 못했던 당연함이 부조리로 치부되기도 하고, 어떻게 얼마나 나뉘어야 공평한 것인가에 대한 기준 자체를 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아직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다 알지 못한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많은 개인들이 페미니즘을 숭배하거나 증오하기 전에 제대로
알고 교육받고 이해하길 바란다. 페미니즘이란 말이 의무는 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요구하는 욕심많은 여성들의 억지 주장이라는 의미로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가 모두가 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더 많이
읽고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