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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트 ㅣ 판타 빌리지
닐 게이먼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영화를 먼저 보고나서 읽은 책 스타더스트! 책장을 펼치기 전 먼저 영화에서 마음껏 즐겼던 시각적 판타지가 책을 읽으면서도 충족이 될 것인지가 궁금하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영화는 영화대로의 유머와 입체감이, 소설은 소설대로의 신비함과 흡입력이 그 나름 풍부한지라 둘 다 겪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주인공 트리스트란 쏜은 책에서 묘사하는 캐릭터와 영화 속 캐릭터가 거의 일치한다고 느껴진다. 선하고 어리숙한 느낌이 들지만 사랑을 위해 엉뚱한 약속을 하기도 하는, 젊은 혈기가 불끈 솟는 청년이다. 이 청년이 사랑하는 빅토리아는 영화에서 공주병 환자로 나오지만 책에서는 자기 때문에 별을 찾으러 떠난 트리스트란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적인 아가씨다. 빅토리아에게 별을 가져다 주겠다는 일념으로 여행을 떠난 트리스트란은 본능적으로 가야할 곳의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났다. 그것은 그가 태생적으로 요정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인데, 별이 어디로 떨어졌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별을 찾아 떠나는 그의 무모함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별을 찾기 위해 떠난 험난한 여행 중에 말하는 나무와 털이 많은 남자에게 도움을 받아 트리스트란은 결국 별아가씨 이베인을 만나게 된다. 이베인은 책보다는 영화 속 캐릭터가 더 사랑스럽다. 다리를 다쳤을 때는 물론 트리스트란에게 힘들다고 불평도 하지만 그와 여행을 함께 하면서 그에게 점점 마음을 뺏기고 사랑을 느끼는 과정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졌기 때문인것 같다. 사랑을 느낄 때마다 감정을 감출 수 없어 반짝반짝 빛이 나던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책 속 이베인은 좀 더 성격이 불같고 까칠하게 묘사된다. 이베인은 트리스트란이 마녀의 여관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줬기 때문에 별들의 법에 따라 할 수 없이 그를 책임지고 따라다녀야 하는 운명에 묶이게 된다. 이베인은 그제서야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작가가 주인공 별아가씨를 여신의 자태까진 아니더라도 우아한 태도와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그려냈겠지 기대를 했었는데 웬걸... 트리스트란을 속이고 달아나질 않나, 다친 다리는 결국 낫질 않아 스톰홀드를 통치하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절뚝거리고 다니질 않나....물론 별이기 때문에 먹지 않아도 되고 몸에서 빛이 나긴 하지만 별아가씨의 모습은 우리의 통념을 비트는 캐릭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 결말도 영화에서는 트리스트란과 이베인이 곧바로 스톰홀드 왕국의 통치자가 되어 행복하게 지내다가 둘 다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면서 관객에게 안도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바로 객석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진부함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책에서는 트리스트란과 이베인이 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다시 여행을 떠나 온갖 경험을 하고 몇 년 만에 스톰홀드 왕국으로 돌아와 통치자가 된다. 그가 통치하면서 내린 결정은 나중에는 모두 슬기로운 결정이었다는 것이 드러날 정도로 트리스트란은 현명한 왕이었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독자들이 “이제 끝이로군...”하고 책을 덮으려 할 때쯤, 작가는 또 한 번의 여운을 우리에게 남겨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이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트리스트란이 먼저 죽고 이베인은 여전히 늙지 않은 채 스톰홀드를 다스리며 스스로 뛰어난 군주임을 입증한다.
트리스트란과 이베인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영원히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라는 도둑은 모든 것을 가져가서 자신의 먼지 덮인 창고 속에 던져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충분히 오랫동안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그녀는 하루 일을 마치면 밤마다 혼자 절뚝거리면서 궁전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산꼭대기의 차가운 바람은 개의치 않고 몇 시간이고 서 있곤 한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슬픈 눈으로 무수한 별들의 느린 춤을 지켜보곤 하는 것이다.
영원한 행복이란 없다는 사실, 하지만 만족할 만큼 충분히 행복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결말이 나는 마음에 든다.
오늘 오랜만에 하늘이 높고 파랗다. 별을 보기에 아주 좋은 밤이 찾아들것 같다. 밤이 깊으면 창을 열고 하늘을 한 번 올려봐야겠다 마음먹는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 찾게 되면 저 멀리 스톰홀드 왕국에서 몇 시간 째 서성이는 이베인의 눈길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덧 : 책을 읽으며 닐 게이먼의 재기 넘치는 표현과 풍부한 상상력에 여러 번 감탄했지만 가장 나를 웃게 만들었던 것은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책 말미에 실려 있었던 에필로그의 가장 마지막 말이었다.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 여러 지인들에게 고맙다는 내용이 죽 이어지다가 그는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 집 아이들은 이 작품을 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애들한테서 어떤 식의 도움을 받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