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딸아이와 함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고 왔다. 태왕사신기를 보면서 "어떻게 문소리가 연기를 저렇게밖에 못하지??"라고 내내 못마땅했었던 차에 어느 TV프로그램에서 그녀가 태왕사신기와 이 영화에 겹치기 출연하면서 태왕사신기의 신녀 역할에 몰입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가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담담히 인정하는 태도를 보니 드라마를 보며 실망했던 그녀의 연기력을 다시 한 번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결론은 "역시 문소리!"라고 그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고 싶었다는 것!^^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결승전에서 덴마크에 분패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스포츠에서뿐만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도 아픔 하나씩은 다 지닌 채 비주류의 길을 걷는 이들을 내세우고 있다. 비인기종목이라서, 여자라서, 아줌마라서 마이너리티인 그들이 겪어야 하는 설움은 비단 스포츠에서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라면, 아니 아줌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소리의 아줌마 연기에 더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을 터뜨리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것이다. 마트에서 쭈뼛쭈뼛 "세일!"을 외치는 모습이나 후배가 먹다남긴 한약을 버리지 않고 아들에게 억지로 먹이려는 모습, 남편을 찾아갔다가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만원짜리 뭉치를 남편 친구에게 툭 내던지며 밥이나 챙겨먹으라 전해달라던 모습등을 연기하는 문소리는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재주를 딱 알맞게 발휘해 낸다.
김정은은 사실 운동선수 캐릭터에 가장 안 어울리겠다 싶었던 배우였는데, 예상외로 배역을 잘 소화해 낸것 같다. 감독대행으로 부임했을 때의 모습을 볼 땐 어쩐지 카리스마도 부족하고 어정쩡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하고 중도하차하게 되는 감독대행으로 잘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지영의 감초 연기는 기대 이상으로 빛나서 영화를 맛깔나게 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자연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와 뽀글이 파마, 단순 털털한 그녀의 성격은 갈등이 고조에 달해갈 때 순식간에 긴장을 해소시키며, 보기만 해도 웃음을 끌어내는데 충분한 것이었다.
제일 이해가 안 갔던 것은 엄태웅의 캐릭터였다(연기는 훌륭했다). 유럽에서 세계적인 선수로 뛰다 감독으로 부임해서 선수들에게 유럽의 선진 훈련 방식을 도입하려 애쓰는 그는 처음에는 아줌마들을 비인간적으로 무시하고 선수들에 대한 배려도 없으며 협회임원에게 과도할 정도로 버릇없이 대드는 캐릭터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줌마들을 전폭적으로 믿고 선수들을 아끼는 감독으로 180도 변하게 되는데 그 계기가 물론 있긴 하지만 성격의 변화가 너무 급작스럽다고 느껴져 조금 아쉬웠다. 초반 감독으로 부임했을때 겉으로는 냉철하지만 그래도 드러나지 않게 선수들을 아끼는 마음을 조금 보여줬더라면 나중에 "지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선수들을 독려하는 그가 더 와 닿았을텐데...



영화의 결말을 알면서 본다는 것은 사실 한 김 빠지는 위험부담을 갖고 들어가는 것인데, 이는 김지영과 조은지, 그리고 특별출연한 다른 조연배우(성지루, 하정우 등)들의 코믹연기와 의외의 상황 설정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충분히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거기다가 여자들간의 끈끈한 우정, 부부애, 선후배간의 유대감등은 보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린다. 관객들의 웃음과 눈물을 적절히 교차시키는 감독의 연출력이 대단하다. 스포츠 영화가 보편적으로 내보이는 갈등, 극복, 화합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들의 삶에 끊임없이 매진하는 주인공들의 진심을 감독이 과도한 꾸밈없이 그대로 투영해준 덕분 아닐까?
임 순례 감독은 "마지막 한 방울의 땀과 호흡까지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 자에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온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그녀는 이번 영화를 통해 생애 최고의 순간은 1등으로 승리하는 그 순간이 아니라 "좌절 금지, 희망 권장!"을 외치며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 순간이 바로 각자의 삶에 있어서 "생애 최고의 순간"임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임감독이 인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진심은 영화를 보러 오는 이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