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니의 노래 ㅣ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7
미스카 마일즈 지음, 피터 패놀 그림, 노경실 옮김 / 새터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이 삶과 죽음의 두 막다른 점 사이에 놓인 길이라면 우리는 매일매일을 죽음을 향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티벳 속담중에 "내일과 죽음중에 어느것이 먼저 올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각자 삶의 여정이 어디까지 와 있느냐가 다를 뿐, 어느 누구든지간에 그 목적지가 "죽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 삶 끝에 놓인 "죽음"을 바라보지 않고 살도록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훈련받아 온 것이 아닐까?
그런데 여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 권하는 책이 한 권 있다. 그것도 죽음을 가까이 둔 연장자가 아니라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새싹같은 아이들에게 말이다. <어린이를 위한 인생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이 책은 나바호라는 인디언 마을에 사는 소녀 애니가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애니는 어느 날 엄마가 짜고 있는 양탄자가 다 완성되면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된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 후 애니는 엄마가 양탄자를 짜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엄마가 양탄자를 늦게 짜면 할머니의 삶이 연장될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따뜻한 시선과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깨우쳐주는 가르침은 어른들에게도 삶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할머니는 애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손녀딸아, 너는 시간을 되돌리려 했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란다."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아이다운 방법으로 표현하는 애니, 애니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애정, 그리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할머니의 연륜이 그림책을 그림책으로만 남겨놓지 않고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깊이가 담겨있는 작은 철학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섬세한 펜 터치의 그림에 간간이 밤색과 겨자색, 그리고 검정색의 세가지 색만을 입힌 삽화가 단순하면서도 오히려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절제된 그림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인디언의 삶을 그대로 나타내듯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31쪽에 "아버지의 큰 코고는 소리"처럼 영어 어순으로 번역된 문장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