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타
고미숙 지음 / 북튜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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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커진다.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힘을 쥐고 있는 이의 농간으로 한 해를 더 미뤄야하나 보다. 굴욕적인 일을 겪으면서도 교과와 비교과 연수를 들으며 자신을 무장하던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재권자의 마음까지 얻지 못했음을 알아차린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외출조차 쉽지 않은 때, 고전평론가가 새롭게 선보이는 책 한 권이 헛헛한 마음을 채운다. 동양의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동의보감과 불교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를 중심으로 한 북튜브 강연 내용을 기반으로 한 책은 애착으로 물든 마음을 맑게 한다.

 

    미처 생각지 못한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은 고난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왕명으로 허균이 편찬하게 된 의서 동의보감은 편찬 작업이 임진왜란 와중에 시작되어 유배지에서 18개월 만에 원고를 탈고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는 정보는 놀랄 만하다. 고적한 공간에서 자신을 묶고 있는 온갖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불굴의 힘으로 양생의 기예를 담은 의서를 편찬한 집중과 몰입은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힘으로 작용했을 듯하다. 몸과 자연의 대칭성에 주목한 동의보감은 자연적인 리듬을 따라 타고난 생명력을 잘 보존하고 자양하는 지혜를 담았다.

 

    하루에 여러 번 생각과 감정이 널뛰기를 하는 상황에 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일이 건강한 생활의 전제이다. ()로 가득한 우주에 기의 변주이자 생명의 토대인 ()’은 신장이 주관하며 생식활동의 원천으로 활기 있게 살기 위해서는 이를 잘 보존해야 한다. ‘()’는 질료를 순환시키는 에너지로 에너지 순환의 제일 중요한 적도인 호흡과 관련 있어 폐()가 주관한다. 심장이 주관하는 ()’은 정신활동을 담당하여 ··이 몸속에서 순환하면서 생명활동이 벌어지는 만큼 이 세 가지를 조율해서 균형 있는 생활을 이어야 한다. 아집에 싸여 자만하는 언행을 일삼으며 뜻대로 안 된다고 분노하다 보면 폭력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독약처럼 사람들을 해롭게 하고 번뇌에 젖게 하여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세 가지의 마음을 불교에서는 삼독(三毒)이라 한다. 소유하려는 탐욕이 분노를 조장하고, 분노가 탐욕을 야기하여 치심이 짙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관찰하고 마음을 공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녁에 포식하지 말라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배달 음식으로 소화 장애를 일으키는 이들을 향한 일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보인다.

   ‘섭생을 잘 하려는 사람은 하루와 한 달의 금기를 어기지 말고 일 년 사계절에 맞춰 살아야 한다. 하루의 금기는 저녁에 포식하지 않는 것이고..........’

   ‘동의보감속 구절은 마음의 힘으로 미각의 분별망상을 제어하며 살아야 양생할 수 있음을 일깨운다.

 

    문명의 발달로 더 많은 것을 소비하느라 분주한 시대를 사는 이들은 욕망의 화로를 가슴에 안고 사는 셈이다. 몸은 음기와 양기가 균형을 맞추고 있어야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균형을 잡고 사는 일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음양의 균형이 깨져서 비정상적으로 양의 기운이 많아지는 음허화동(陰虛火動)은 물과 불이 따로 놀아 생명 유지에 어려움을 야기한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모아 마음의 장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공부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물음에 답하는 방식으로 갈무리되어야 한다.

 

    여성호르몬이 줄어드는 갱년기를 보내는 동안 진액은 말라 열감이 나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시간, 인문학 책을 읽으며 한 번뿐인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반문한다. 90세 넘는 노인들이 흔한 시대에 지혜롭게 늙어 가기는 노년을 준비하는 중년의 과제로 남는다. 다변화된 사회를 호흡하며 지내기 위해서라도 지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사유하는 생활로 말을 아끼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노년을 예비한다. 통찰력 있는 눈으로 감정을 제어하며 공부해 삶의 지혜를 쌓는 중년으로 다음을 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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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맛, 매운 맛 매생이 클럽 아이들 -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 교육 동화 한경 아이들 시리즈
이은경 지음, 변보라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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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에 적응하는 종은 생존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종은 도태된다는 적자생존은 다윈의 이론이다. 이론은 표현 활동을 중시하는 현대로 오면서 변주되어 적는 자가 생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글쓰기는 못하면 사회에서 도태될 우려가 있다. 생각을 정리해서 말로 표현하고, 이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생각은 가득한데 글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 놓일 때가 많아 글을 술술 잘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글쓰기의 왕도는 재미있게 꾸준히 쓰는 데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글쓰기 동화를 읽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조금씩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 능숙해짐을 알아차릴 날이 올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든다. 자기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항상 횡설수설하는 현규는 개구리 래퍼라는 별명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다.

  '정확히, 차근차근 말하라.’

   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현규는 학교에서도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반장 욕심이 앞섰던 그는 웅얼거리며 알아듣지 못할 말로 공약을 발표해 반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반면 머릿속 생각을 말끔하게 정리하여 멋진 공약으로 채원은 반장에 당선되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생각을 물어보고 스스로 대답해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이 있다. 한 조각에 불과한 생각들을 메모하였다가 꺼내어 조금 더 넓고 깊은 생각으로 발전시키는 연습은 글쓰기 비법 중 하나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기록하기는 더 많은 자유 글쓰기를 하면서 쓰기 근육과 생각하는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여 할 시기에 필요한 과정이다.

 

   특별한 날 혼자 보내기 싫어 레스토랑에서 생일 파티를 할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채원은 작가를 꿈꾸고 있다. 현규는 말이 빠른데다 더듬기까지 하여 개구리 래퍼로 통하지만 올바른 언어로 방송하는 아나운서를 꿈군다. 상대의 아픈 곳을 달리며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 아진은 상담사의 꿈을 품고 지낸다. 말하고, 듣고, 쓰고 싶은 아이들이 만든 동아리 매생이클럽은 생각을 글로 적으며 서로 소통한다. 일상에 부딪히는 문제와 고민을 빌리의 비밀 상담소에 털어놓고 서로 교감하고 공감하며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 능력을 키워나가는 모습이 돋보인다

 

    매생이 클럽 아이들은 체험학습을 다녀온 이후 이것저것 관심거리도 넓어지고 생각도 깊어졌다.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짧은 글을 마구잡이로 썼던 현규는 글씨도 반듯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글도 길어졌다. 소설 쓰기를 시도하고 있는 채원이, 친구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상담사가 꿈인 아진을 주축으로 매생이 클럽은 다채로운 빛깔로 수를 놓는다. 탄광촌의 빌리 엘리어트가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처럼 아이들 역시 구체적인 꿈을 꾸며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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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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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일곱 아이들과 함께 1년을 보내다 보면 고해(苦海) 같은 현실에 비탄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아버지 폭력을 피해 핏덩이 아들과 네 살 딸을 할머니에게 내밀 듯 던져 버리고 이른 아침 첫차를 타고 줄행랑을 친 엄마를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는 소녀의 속내를 듣다 보면 안타까움이 더한다. 조손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많은 시골 학교의 생태적 환경에 좌절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만한 일을 찾아 나섰다. 꿈 장학생으로 추천하여 매달 20만 원을 장학금으로 전하며 부정적인 관념으로 가득한 여고생이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 여기며 더 이상 비탄에 젖지 않길 바라고 있어서이다.

 

   바이러스 감염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평범하게 혹은 보통으로 살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상식이라 정한 틀을 벗어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살다보면 세상일은 궤도를 이탈하여 수습하며 살기 힘든 상황에 놓이곤 한다. 열일곱 아들은 서른넷 엄마와 함께 한 배를 타고 순항 중이다. 애가 애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 미혼모 최지혜 씨는 세상의 편견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생활력 있는 가장으로 함께 살아내야 했다

 

   아들을 키우기 위해 정든 공간을 나왔고, 익숙한 이들과 결별하며 새로운 공간에서 가정을 지켜야 했다. 엄마는 미혼모 시설에 머무는 동안, 액세서리 수업에서 배운 기예를 바탕으로 지혜 공방을 차려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거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일찍 철이든 아들은 중국집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양파를 까거나 야채를 다지는 일이 주된 일이지만 일의 경중을 헤아리지 않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노일이다.

 

   한순간을 붉게 타올랐다 어둠 속으로 스러져가는 노을 진 풍경을 보며 태중 아기에게 붙인 이름에 엄마 성을 붙여 최노을이 생존하게 되었다. 같은 건물에만 요리를 배달한다는 철칙을 지키는 짜장·짬뽕 집 사장은 특별하다. 돈벌이가 되었던 때, 배달사고로 목숨을 잃은 20대 대학생 사건 이후 돈을 적게 벌더라도 타인의 목숨을 해할 수도 있는 배달은 안 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같은 건물 엄마가 일하는 지혜공방에는 배달이 가능하여 종종 엄마를 만날 수 있어 노을은 좋았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면서 서로 부족함을 채워 진일보한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아들이다.

 

    평준화된 틀에서 벗어난 출발로 보통의 가족과는 다른 모습을 한 노을 네이지만 모자(母子)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데는 일반 가정과 별잔 다르지 않다. 둘은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는 가족으로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있다. 비싼 패딩을 사러 간 옷가게 점원이 노을을 보고 동생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당당히 아들이라고 밝히며 비밀에 갇혀 지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노을은 앞으로의 시간은 보통의 모습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보통으로 보이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

 

   엄마를 5년 동안 바라봐 온 연하의 남자 성빈은 막역하게 지내온 친구 성하의 열 살 위 오빠이다. 엄마보다 여섯 살이 적은 성빈은 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하였다. 여러 이유를 들어 성빈의 사랑을 거절하였던 엄마는 한 가지 한 가지 자기와의 약속을 이뤄낸 그의 기다림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열여덟 살 아들이 딸린 서른넷의 아줌마와 연하남의 사랑을 곱게 봐 줄 리 만무하다며 보통으로 사는 일이 이리도 힘든지 통감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 일을 둘러싼 파생적 문제를 두고 성하와 대화하며 우려했던 일들은 성빈 아버지의 한마디에 무색해지고 만다. 성인인 두 사람의 사랑을 믿어주고 지켜보는 것 이상의 역할은 없을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는 통상적으로 일컫는 평균적 사랑에 잣대를 두고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일하는 곳을 깜짝 방문해 관심을 드러낼 때가 있다. 노을이 일하는 중국집을 찾은 동우는 성하를 소개해 달라고 하였지만 실상은 노을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말수가 적고 신중한 우등생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친구 동우의 고백은 노을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동우에게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대신 자신은 이성애자라고 말하는 부분은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되 자신과는 다름을 분명히 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을 탓하며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며 서로 성장하는 길을 택한 노을과 엄마의 모습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보통의 삶을 갈구할수록 보통의 삶과는 비껴나 얽히고 설기더라도 꼬인 매듭을 풀어 나가는 인생에 또 다른 획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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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늘을 산다
가네코 유키코 지음, 박승희 옮김 / 즐거운상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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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년기를 조심하자.’

   열여덟 살 아이들이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두고 학급 신문을 만들면서 선생님 인상을 한마디 남기는 대목이 적힌 구절이다. 갱년기를 조심하라는 한마디에 등짝은 활활 타오르는 화롯불처럼 뜨거워졌고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소통이 안 될 때가 생길 때면,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던 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감정이 널을 뛰면서 언행에 민낯을 드러내었다는 사실이 후회막급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지금부터라도 후회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우회하며 살아갈 일이다.

 

   나이 50, 자전거를 타고 해안가를 달리는 중년의 모습은 동적이면서도 활기차 보인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늘을 산다는 제목은 50대 중반에 이른 자신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대는 지금 현재를 잘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 힘들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포부를 담는다. 후회를 덜하기 위해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머뭇거림 없이 실행에 옮기고 싶다. 그 때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들이 머리를 밀고 올라올 때가 있다. 현재의 삶이 심드렁하고 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푸념할 때면 더더욱 그러하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일어나 움직이기 전 오늘 하루도 깨어 있음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며 악업을 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발바닥에 통증을 느끼며 어깨가 아플 때가 늘어나지만 살아있어 감각을 잃지 않았기에 감사하다. 아직은 큰 병 없이 움직이며 일터에서 가치를 발휘하는 일상이 소중한데 달갑지 않은 갱년기는 50대 여성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공허한 일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 시기를 관찰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살다 보면 인생이 녹록치 않음을 느낄 때가 늘어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유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을 저당 잡힌 채 아등바등 살아내느라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마음에 물음을 던져할 시기 50대이다. 비록 시행착오를 겪게 되더라도 하고 싶은 목록 순위를 정해 시도하며 지금을 생생하게 호흡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느 때가 되면 해야겠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뽑아 순위를 매겨 실행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상에서도 일의 순서가 있듯, 인생에서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혼자 실천하기에는 용기가 잘 나지 않을 때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할 목록을 뽑아 하나하나씩 실천하는 것도 방법이다.

 

   저자는 50대에 새롭게 시도하는 인생의 한 궤를 밟아온 과정을 관찰하듯 풀어놓는다. 캠핑 장비를 땡 처리 숍에서 하나하나씩 마련하여 친구와 함께 후지산 캠핑에 성공하였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며 승용차를 타고 갔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하며 자연 깊숙이 들어가 생생하게 호흡하는 시간을 즐겼다. 서핑을 하고 싶어 수영 강습을 시작하고는 시니어 바디보드 강습교실에서 서핑 기술을 익힌 뒤에는 파도를 타기 시작하였다. 몸이 잘 안 따라준다는 말로 다음으로 미뤘던 요가 교실에 등록하여 굳은 근육을 풀며 유연성을 기르고 싶은 열망을 더한다.

 

   팔순에 가까운 어머니들이 살았던 50대와는 다른 50대를 살고 있지만 신체 곳곳에서 적신호를 보내고 있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피로에 대한 부담이 있어 주저하면서도 지금 아니면 다시 행하기 힘들다는 점이 동전의 양면처럼 들러붙어 있는 중년의 시간 다시 용기 내어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 오지 않은 노후에 대한 염려로 지금의 시간을 유예하며 안달재신하지 않을 용기는 비워도 좋을 것들을 범주화하게 만든다. 다음보다는 지금이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기를 바라며 현재 채워야 할 것들을 마음에 담고 목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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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사진 야산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야생차는 고향 하동의 특산물로 가정의 상비약처럼 자리한다. 변변한 약국 한 군데 없는 궁벽한 동네, 봄과 여름에 채취한 찻잎은 환절기 건강을 챙기는 데 요긴하였다. 할머니는 봄에 찻잎을 따다 찻잎을 시들게 한 뒤 아랫목에서 발효시킨 차를 겨울에 끓여 주었다. 방안을 훈훈하게 데우는 화로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잭살차 주전자가 놓여 있다. 방안을 달구는 화톳불 빛깔처럼 붉은빛으로 우러난 잭살차는 약용 음료로 감기 예방에도 한몫했다. 기관지에 좋은 돌배를 함께 끓이면 단맛은 배가 되어 면역에도 도움 되었다.

 

 할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 농약을 치지 않으면 물러 떨어지는 감 농사 대신 병이 잘 안 들고 벌레도 잘 안 먹어 기르기 수월한 차 농사를 지었으면 하였다. 조상들 제사를 모시는 조건으로 받은 땅에 차나무를 심어 손자들이 자라면 찻잎을 수확하여 차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생전 후손들을 위해 가을에 씨앗을 받아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이듬해 봄 심은 뒤 여름에 손가락만큼의 가지를 잘라 심었다 이듬해 봄 움트기 전에 밭으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차나무는 잘 자라 잎을 내어주고 가을에는 꽃을 피워 그윽한 차향을 바람에 실어 보낸다. 잘 익은 열매를 짠 기름으로 나물을 무치면 느끼함이 덜하여 주로 쓴다. 녹차 씨를 이용한 기름에는 카테킨·사포닌 같은 노화 예방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건강한 기름으로 유용함이 더한 녹차이다.

 

   828년 신라 흥덕왕 3년 대렴(大廉) 공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오면서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화개 동천에 차를 심었다. 지리산 남녘 화개동천은 밤낮 기온차가 크고 지리산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개울이 흘러 다습하고 안개가 많아 녹차 시배지로 적합한 조건을 충족한다. 그래서인지 하동읍에서 화개를 향해 섬진강변을 달리다 보면 차밭이 제각각 도열하듯 늘어서 있다. 차밭에서 차와 함께한 시간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선대에서부터 존재해 왔던 것이다.

   ‘차를 만드는 사람에서는 차를 만들어 소비자들과 교유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렸다.

   ‘차는 하면 할수록 어려워요. 근데 그게 너무 재미있어.’

   7대째 차 농사를 지어 온 도심다원 대표는 전통 방식을 지키며 차를 만들어온 장인의 손길이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차를 마시며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는 차를 만들며 평생을 차와 함께해온 관록이 묻어난다. 대표는 집집마다 다른 김치 맛만큼이나 녹차 역시 깊이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진대 경험으로 알아차리는 순간을 중시한다. 4월에 딴 새순으로 만든 차는 일 년 내 품고 있던 성분을 배로 가지고 있어 5월에 만든 차보다 깊은 맛이 우러난다며 차 농사를 지으며 터득한 내용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기라도 하듯 그는 도심다원에 있는 큰 차나무를 가꾸며 오늘도 차밭을 지킨다.

 

   고통 없이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하동 토박이 만수가 만드는 차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서 큰 욕심 내지 않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사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 건강해지고 싶어 몸에 좋은 차를 만들어 마셨고, 만수가 만든 차를 마시고 소비자들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만드는 질박함이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난다. 극도로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부탄을 찾아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될 경제적인 작물로 선정된 녹차를 가르쳐준 일을 들려준 삼태다원 대표 말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차 사업을 처음 시작한 조태연가 대표는 우리 차를 세계 시장에 알리기 위해 실천하였다. 1990년대 작업을 할 때에는 육 년을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차를 만들었다는 말에서는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그의 집념을 알 수 있었다. 차에만 골몰하다 보니 아집이 생겨 차에 대한 안 좋은 평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열린 마음으로 차를 만들며 생긴 문제점을 조금씩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차 동호회에서 쌍계사 근처로 차를 마시러 왔다 인연이 되어 살고 있다는 천년지향 부부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부부는 주거 안정을 바라기보다는 아무것이 없어도 어디에 가든 몸 가고 솥만 있으면 차를 만들었을 정도로 차를 사랑하고 차와 함께해온 삶이다. 찻잎은 상온에서 산소와 만났다 시간이 지나면 달궈진 솥에 들어가 열기를 쬐며 덖어지다 향은 깊어진다. 덖은 차의 열기를 식히며 비비기를 반복한 뒤 다시 솥에 들어가는 찻잎은 그윽한 향을 더한다

 

   농사를 짓는 이들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절기(節氣)를 염두에 두고 계절마다 챙겨야 할 것들을 준비한다. 욕심을 내지 않고 뿌린 대로 거두는 일상에 익숙한 팔순의 어머니는 고향 하동에서 25년째 차를 만들고 있다. 섬진강 건너 광양 매화 밭,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찻잎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차밭을 오가며 올해 차 농사를 가늠한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에 곡물들이 잠을 깬다는 속담처럼 녹차 농사를 짓는 이에게 곡우는 좋은 차를 만들어 내는 분수령이 되는 절기이다.

 

   초의선사는 지리산 칠불선원 아자방에서 참선하던 중 고전다서에서 필요한 내용을 뽑아 다신전으로 묶었다. 이 다서(茶書)는 찻잎 따기에서부터 차 만드는 방법, 차를 오래 보관하는 법, 다구(茶具)로 차를 우려 마시는 법까지 차에 대한 이론을 개괄적으로 싣고 있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산비탈에는 야생으로 자란 차나무들이 이웃하여 자라 지역민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보살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도 시절 인연에 따라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듯 차나무에는 새순이 돋는다. 햇볕이 가득한 산비탈에는 4월 초순부터 눈을 틔우기 시작한 녹차는 참새 혀처럼 뾰족하게 내밀고 올라온다. 이른 봄부터 시작되는 채다(採茶)는 여름이 깊어질 즈음 끝이 난다. 너무 서둘러 찻잎을 따면 차 맛이 온전치 못하고, 너무 늦으면 신성함이 흩어져 다신(茶神)이 사라진다고 다신전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어머니는 이슬이 채 깨기도 전, 새벽의 서늘한 기운을 받으며 주먹밥을 챙겨 차밭으로 향한다. 손으로 찻잎을 끊어내는 톡톡 소리는 만물을 일깨우며 녹차 밭의 고요를 깬다. 찻잎을 딸 때는 절기가 중요한 만큼 찻잎은 때에 맞춰 따야 한다. 곡우 전 5일을 최고로 삼아 차를 만드는 만큼 우전차는 녹차의 맛과 향, 기운까지 빼어나 차를 즐기는 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참새 혀처럼 올라온 잎을 따기 시작하면 하루가 다르게 찻잎은 자라므로 여린 순을 톡톡 따 담으려고 손을 재게 놀린다. 하루 종일 찻잎을 따더라도 혼자 2킬로그램을 따기 힘들 정도로 고된 일이지만 어머니는 녹차 잎이 돋기 시작하는 봄을 기다린다.

   차향 가득한 하동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차밭 풍경을 담은 그림은 싱그러운 빛으로 안온함을 준다. 오십 년 넘게 봐왔던 낯익은 고향의 모습이지만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봄 한철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드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지내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차 문화의 시초인 쌍계사와 차 시배지 등을 담은 그림은 오랫동안 차와 함께해온 삶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이뤄낸 문화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조그마한 일에도 크게 반응하며 에너지 넘치는 십대들과 생활하는 시간, 차 한 잔을 마시며 격해지는 감정을 가라앉힌다. 다관에 끓인 물을 부은 뒤 차를 넣어 우려 마시는 상투(上投) 방식으로 찻물을 따라 마신다. 홀로 차를 음미하는 시간은 신령스러운 기운을 느끼기 쉽다고 한 것처럼 차 한 잔에 굴곡진 인생의 조각들을 녹여내며 마음을 다스린다. 향기롭고 맛이 일품인 차를 가까이하며 해마다 녹차를 만드는 철에는 고향을 찾는다. 노쇠한 어머니 혼자 차를 따고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힘을 보태고 싶어 서이다. 녹차 여린 잎을 따서는 차를 덖고 비비는 과정을 거쳐 수제차를 만들며 자부심을 갖는 어머니는 불의 열기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당부한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며 그 옛날 할머니가 하던 방식대로 차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차를 보낸다. 차 맛으로 오롯이 평가받으려는 견습생처럼 오늘도 차 공부를 하면서 차향을 맡는다.

 

다원 순례길, 표지판에 그려진 마스코트 찻잎새는 이정표가 되어 도보 여행자들이 헤매지 않도록 길을 안내한다. 차에 문외한이었던 찻잎새가 다도 경연을 앞두고 칠불사를 찾아가 초의선사의 혼령을 만나 다인(茶人)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은 우리 녹차에 대한 애정을 더한다. 잭살차를 어려서부터 마시고 십 수 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차를 만들며 녹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열고 있지만 한 잔의 차가 내게로 오기까지의 공정을 잊을 때가 많다. 차 한 잔에 담긴 다인들의 노력과 정성을 새기며 오늘도 마음을 다스리는 명약으로 차 한 잔을 우려 마신다. 물이 끓어오르는 찰나 산란한 마음을 재우고 집중하는 가운데 맑은 차를 음미하는 시간은 번민을 털어내는 정화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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