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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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일곱 아이들과 함께 1년을 보내다 보면 고해(苦海) 같은 현실에 비탄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아버지 폭력을 피해 핏덩이 아들과 네 살 딸을 할머니에게 내밀 듯 던져 버리고 이른 아침 첫차를 타고 줄행랑을 친 엄마를 지금도 용서할 수 없다는 소녀의 속내를 듣다 보면 안타까움이 더한다. 조손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많은 시골 학교의 생태적 환경에 좌절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만한 일을 찾아 나섰다. 꿈 장학생으로 추천하여 매달 20만 원을 장학금으로 전하며 부정적인 관념으로 가득한 여고생이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 여기며 더 이상 비탄에 젖지 않길 바라고 있어서이다.

 

   바이러스 감염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평범하게 혹은 보통으로 살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상식이라 정한 틀을 벗어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살다보면 세상일은 궤도를 이탈하여 수습하며 살기 힘든 상황에 놓이곤 한다. 열일곱 아들은 서른넷 엄마와 함께 한 배를 타고 순항 중이다. 애가 애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 미혼모 최지혜 씨는 세상의 편견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생활력 있는 가장으로 함께 살아내야 했다

 

   아들을 키우기 위해 정든 공간을 나왔고, 익숙한 이들과 결별하며 새로운 공간에서 가정을 지켜야 했다. 엄마는 미혼모 시설에 머무는 동안, 액세서리 수업에서 배운 기예를 바탕으로 지혜 공방을 차려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거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으로 생계를 이었다. 일찍 철이든 아들은 중국집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양파를 까거나 야채를 다지는 일이 주된 일이지만 일의 경중을 헤아리지 않고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노일이다.

 

   한순간을 붉게 타올랐다 어둠 속으로 스러져가는 노을 진 풍경을 보며 태중 아기에게 붙인 이름에 엄마 성을 붙여 최노을이 생존하게 되었다. 같은 건물에만 요리를 배달한다는 철칙을 지키는 짜장·짬뽕 집 사장은 특별하다. 돈벌이가 되었던 때, 배달사고로 목숨을 잃은 20대 대학생 사건 이후 돈을 적게 벌더라도 타인의 목숨을 해할 수도 있는 배달은 안 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같은 건물 엄마가 일하는 지혜공방에는 배달이 가능하여 종종 엄마를 만날 수 있어 노을은 좋았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바쁜 엄마를 대신해 집안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면서 서로 부족함을 채워 진일보한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아들이다.

 

    평준화된 틀에서 벗어난 출발로 보통의 가족과는 다른 모습을 한 노을 네이지만 모자(母子)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데는 일반 가정과 별잔 다르지 않다. 둘은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는 가족으로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있다. 비싼 패딩을 사러 간 옷가게 점원이 노을을 보고 동생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당당히 아들이라고 밝히며 비밀에 갇혀 지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노을은 앞으로의 시간은 보통의 모습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보통으로 보이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

 

   엄마를 5년 동안 바라봐 온 연하의 남자 성빈은 막역하게 지내온 친구 성하의 열 살 위 오빠이다. 엄마보다 여섯 살이 적은 성빈은 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는 대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하였다. 여러 이유를 들어 성빈의 사랑을 거절하였던 엄마는 한 가지 한 가지 자기와의 약속을 이뤄낸 그의 기다림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열여덟 살 아들이 딸린 서른넷의 아줌마와 연하남의 사랑을 곱게 봐 줄 리 만무하다며 보통으로 사는 일이 이리도 힘든지 통감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 일을 둘러싼 파생적 문제를 두고 성하와 대화하며 우려했던 일들은 성빈 아버지의 한마디에 무색해지고 만다. 성인인 두 사람의 사랑을 믿어주고 지켜보는 것 이상의 역할은 없을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는 통상적으로 일컫는 평균적 사랑에 잣대를 두고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일하는 곳을 깜짝 방문해 관심을 드러낼 때가 있다. 노을이 일하는 중국집을 찾은 동우는 성하를 소개해 달라고 하였지만 실상은 노을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말수가 적고 신중한 우등생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친구 동우의 고백은 노을을 당혹스럽게 하였다.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동우에게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대신 자신은 이성애자라고 말하는 부분은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되 자신과는 다름을 분명히 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을 탓하며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며 서로 성장하는 길을 택한 노을과 엄마의 모습에서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보통의 삶을 갈구할수록 보통의 삶과는 비껴나 얽히고 설기더라도 꼬인 매듭을 풀어 나가는 인생에 또 다른 획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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