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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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총격전과 폭음이 소용돌이치는 전쟁 속에서 지하로 숨어든 이들이 의기투합해 공공도서관을 만들었다. 다라야는 시리아 반군 거점지라는 이유로 정부군에 의해 봉쇄되어 구호 물품도 조달받지 못한 채 죽음의 공포를 견뎌야 했다. 평화 가득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로 결속된 청년들은 다라야의 폐허에서 발견한 책들을 한두 권 주워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암흑 같은 상황을 버텼고, 지하의 은둔생활자들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며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작가는 20151015일부터 201611월까지 다라야에 남아있던 청년들과 인터넷으로 나눈 대화를 기록해 책으로 엮었다. 201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10대 학생들의 낙서에서 촉발된 정부의 시위대 탄압은 알아사드 정권 퇴진의 도화선이 되어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시리아 내전은 끊이지 않았다. 포화 속에서 진실을 알리는 일을 서슴지 않은 아흐마드는 정부군의 폭격에 스러져간 다라야 곳곳을 다니며 보이지 않는 전쟁의 이면을 알리는 데 나섰다.

 

   아흐마드는 황폐한 거리, 폐허로 변해버린 구석에서 발견한 책들을 한 권씩 모으며 책 전달자 역할을 도맡았다. 포탄에 평범한 일상이 깨지고, 폭격으로 거처를 잃고 가족을 잃은 시민들은 불안과 의심이 찾아오는 밤마다 책을 읽으며 전쟁의 소용돌이를 견뎌냈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책에 매달리며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들의 바람을 담아 공공도서관을 세웠다.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무지를 영원히 몰아내는 방법입니다.’

   낮은 목소리에 의지를 담아 말하는 아부를 연상하며 책과 함께 성장할 우리를 그리게 하였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라질 내밀한 흔적들을 기록으로 남겨 역사 속에 보존하려는 노력은 전쟁으로 잘려나간 흔적들을 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실상을 전하며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청년이 있어 가능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집중공습으로 주거지역은 초토화가 되었고, 아흐마드가 아끼는 친구 오마르가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총기를 들고 나선 병사의 희생은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다. 시리아의 평화를 위한 혁명의 에너지로 산화한 오마르는 생전 글쓰기로 또 다른 출구를 찾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는 아흐마드의 말에는 흉포한 내전의 참상을 알린다.

 

   오마르의 죽음으로 다라야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이 다가옴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라야 시민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대하며 온 들판을 불태우며 이주할 것을 요구하는 정부군의 명령대로 강제 퇴거를 당하였다. 정권의 야욕에 짓밟힌 다라야를 떠나며 지하에 세워둔 도서관 책장 속 책들을 약탈하여 헐값으로 처분한다는 정부군의 만행에 문화적 가치를 홀대하는 야만성을 떠올린다. 전쟁으로 학교를 갈 수 없고, 배움을 주고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책은 문화적 고갱이들로 새로운 세상을 호흡하게 하는 양분으로 작용한다. 아흐마드가 새롭게 이주한 곳에서 이동도서관을 만들어 아이들과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일은 무지를 일깨운 앎으로 새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하는 모태로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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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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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한 사람으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새기며 지난시간보다 나은 사람으로 자리하기 위해 오늘도 책을 읽고 쓴다. 오감을 동원한 글쓰기 습관화를 위해 감성 근육을 키워 가는 데 경험은 가치를 구현한다. 여행지에 머무르며 새 작품을 구상하고 글을 쓰는 이의 진솔한 이야기는 동경하는 세계로 이끈다. 등단 작가로 생활하며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재구성한 <<말하다>>를 읽으며 심드렁한 일상에 새로운 에너지를 붓는다.


   말 많은 세상에 말로 먹고 사는 생활자로 십대들에게 이런저런 훈수를 두며 자기관리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말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을 세상에서 자신을 무장하며 지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급변하는 시대에 조바심내기보다는 나만의 속도로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을 용기로 세상을 살아갈 내면의 힘을 기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 때, 저자의 한마디는 각성제로 다가온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합리적인 의견에 따라주기를 바라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음을 일상에서 알아차린다. 자신 외에 누군가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더라도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일은 자신이 할 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낙관주의자로 환상적인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비관적 현실주의자로 남을 때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근간을 이룰 수 있다는 작가의 뼈 있는 말에 공감한다.


   학군단으로 임관하기를 거부하고 작가로 살고 싶은 작가는 고전 작품을 읽으며 생각의 깊이를 더하며 자신을 지키는 보루로 여겨왔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글을 씀으로써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거나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함으로써 자신을 에워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을 즐겼다. 충실한 독자에서 출발한 작가는 생명력이 긴 고전을 읽으며 받은 영향과 쓰고 싶은 내용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고백은 평범하면서도 인상적이다.


   한 줌 재로 살라진 혈육의 죽음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누군가의 존재 여부와는 관계없이 세계는 돌아가고 존재한다. 허무의식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면서 죽음을 다룬 책들을 읽으며 나를 추스르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타인으로부터 위로받지 못한 채 지내던 자신도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작가의 말대로 유한한 인생보다도 수명이 더 긴 이야기는 인류에 오랫동안 남아 여러 사람들의 눈과 입을 통해 전승될 듯하다. 소설가로 살기를 갈망하는 작가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며 글을 쓴다.


   서울 외곽의 변두리에 사는 3남매가 교통 불편으로 직장인 서울로 들고 나는 길이 쉽지 않은 가운데 그들만의 색으로 인생을 채워가는 과정을 그린 나의 해방 일지를 즐겨 시청하며 주말을 보낸다. 공교롭게도 작가는 자기 해방의 글쓰기를 말한다. 통념을 넘어서는 기괴한 생각을 하며 소설을 쓰거나 작품을 구상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작가의 말은 머릿속에서 소설의 플롯을 그려본다는 뜻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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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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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줄로 굳어진 전통적 가족의 의미를 벗어나 공동체로서 가족의 범위를 확대한 어느 가족의 끈끈한 유대가 상영관을 꽉 채웠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구성원은 아니지만 그들만의 생활방식으로 가정을 이루고 살다 흩어지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힘을 주는 관계로 이어진다. 급변하는 시대에 등장하는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 연애는 필수이고 결혼은 선택이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비혼을 선언하는 이들, 부부가 결혼해도 자식은 낳지 않는 이들, 자식을 낳았지만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인구 절벽 시대에 국가에서 센터를 설립해 아이를 키워 주는 양육 공동체(NC센터)’에서 자녀 입양을 위한 부모 면접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너희 모두에게 좋은 부모를 소개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방과 욕실을 제외한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센터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벌점으로 기록되어 부모 면접권 자체를 박탈하며 인성 함양을 도모하였다. 좋은 부모를 만나려면 먼저 좋은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센터 담당자들은 규율과 통제로 아이들을 관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존재하지만 센터의 실적을 올리는 일에는 열을 내지 않는다. 부모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어떤지 센터 아이에게 알려 줘야 했다. 부모 인터뷰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행복한 가족으로 자리할 수 있는지 살피는 일은 입양 가정을 선택할 아이의 몫이다. 부모 면접 응시원서를 낸 부모의 서류를 살핀 뒤 부모를 서너 번 만나 인터뷰를 하고 한 달 합숙하며 가족으로 자리할 수 있을지 관찰하고 살핀다.

 

   폭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박은 NC센터의 센터 장으로 어려운 아이들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멋지게 이뤄 남다른 경험 속에 자신의 빛깔을 찾기를 바랐다. 박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소식을 접하고는 번민에 휩싸였다. 세상에서 없어지기를 바랐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를 용서함으로써 자기 번민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센터 자리를 비운 적이 없던 박이 심경을 정리하느라 센터를 비우면서 그의 후배 최, 제누, 아키와 노아는 현상 이면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그동안 봐왔던 일들을 조합하여 한 사람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며 섣불리 그 사람을 판단하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17세 소년 제누는 사려 깊은 이로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언행으로 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본이 되었다. 성년이 되기 전 센터를 떠나 생활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제누는 부모 선택에 신중하였다. 부모 페인트에 응하지 않았던 그는 하나와 해오름부부를 보고 자발적으로 페인트를 신청하고 부모 면접을 보았지만 부부에게 합격점을 주지 않았다. 아이 입양으로 얻을 경제적인 혜택을 앞세우는 이들과는 다른 인간적인 면이 돋보였지만 부모 면접은 결렬되어 센터를 떠나지 못하였다. 제누는 그를 친형처럼 따르는 아키와 센터에서의 삶을 공유하며 아무도 스스로를 차별하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서로 희망했다.

 

   선택할 여지도 없이 한 가정에 태어나 경제적인 자립으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할 때까지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부모 됨됨이에 대한 생각은 자주 하지 못하였다.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말을 명언처럼 새기며 스스로를 옥죄며 지냈던 청소년기, 어머니는 엄한 가르침으로 남매를 길렀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안 받고 지내야 한다며 딸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며 사춘기 방황을 달래주기는커녕 집안일을 잘하는 옆집 아이처럼 밥상을 잘 차라기를 바랐다. 남몰래 뒤란으로 가서 눈물을 훔치며 왜 이런 집에 태어나 고생이냐며 신세를 한탄하곤 했다.

 

   사회 초년생으로 모든 것이 낯설고 익숙지 않은 때 만난 사람과 짧은 연애를 하고 결혼하여 딸과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온 세월이 서른 해가 가깝지만 여전히 어머니 역할은 쉽지 않다. 한 고비를 지나면 또 맞닥뜨리게 되는 벽들이 있어 몰랐던 것들을 끊임없이 해결하며 깨닫는 여정에 삶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자녀가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으로 오롯한 인생을 살아가는 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기쁠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벗어나 또 다른 가족으로 서로 유대하며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기까지 부모 면접은 여러 유형으로 존속될 것이다.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소설을 읽으며 지금의 가족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가족을 이룬다면 어떤 가족이었으면 하는지 고민하던 시간은 불쑥불쑥 떠올라 삶의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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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자의 서 - 개정 완역
빠드마쌈바와 지음, 중암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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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백의 세월을 보내면서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탄생과 함께 시작된 인생은 끝을 모르는 죽음으로 향하는 길처럼 여겨진다. 지난1월 중순,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혈육을 멀리 떠나보내고 남은 식구들은 비탄과 통한으로 일상을 잇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망자를 생각하며 49일 동안 기도하였다. 밤에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였는데 이튿날 깨어나지 못한 채 영면한 느닷없는 죽음에 고인도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을 것이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노인들 말이 지금처럼 피부로 와 닿은 적도 없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몸을 바쁘게 굴리더니 이승에서의 고단한 몸은 한 줌의 뼛가루로 유골함에 담겨 방문객들을 맞는다. 많은 이들의 부고(訃告)를 받고 조읠표하며 살아왔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혈육이 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현세의 업력에 따라 육도 윤회함을 믿으면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의구심은 <<티베트 사자의 서>>를 찾게 하였다.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오고 책을 읽을 힘조차 없지만 혈육의 죽음 이후 죽음을 배우며 현세의 삶을 좀 더 잘 살기 위한 방편으로 진언과 함께 실린 글을 읽었다. 경험치 못한 세계로 넘어갈 준비를 마친 망자는 자신이 죽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 힘들다. 집 주위를 맴돌며 사랑하는 가족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망자를 보지 못한다. 중간계에 머물며 환생 처를 찾는 망자는 마치 집을 잃은 자가 낯선 광장에 외로이 있는 것처럼 혼란스런 상태를 잠재울 은신처를 간절히 찾는다. 망자들은 중간 상태에서 49일을 보내지만 업의 경중에 따라 그 시간이 짧아질 수도 있다

 

   중간 상태에 놓인 죽은 자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배가 고프지만 먹을 수도 없고 그저 향기만 맡을 뿐이다. 49일 뒤에, 가족과 친구들의 행동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임종 전부터 망자를 위해 기도하며 죽은 자가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세상이란 윤회의 바다가 환상이듯

   유위의 일체법은 영원하지 못하여.

   자성이 공하고 자아마저 없음에도

   이것을 모르는 어린애 같은 범부들!’

   위의 구절처럼 자성이 공함을 모른 채 지내 온 시간을 반성하며 몸과 말, 뜻의 삼문(三門)의 선업 닦기를 분발해야 함을 일깨운다. 생명이 다해 몸이 바뀜에 따라 청정한 법성의 바르도의 광경이 출현할 때, 두려운 바르도의 험로에서 구원하여 주기를 발원하는 기도로 붓다의 정등각지로 인도하길 염한다.

 

   스승은 죽은 자의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은 모두 스스로 만든 환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려 부정한 자궁 문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당부한다. 수행의 근기에 부합하는 맞춤형 해탈 방법을 단계별로 실어 임종을 앞둔 때, 경을 읽어주면 좋을 듯하다. 생명이 다하는 최후의 순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경전으로 여기는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과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한 일이 죽음과 죽은 후 가야 하는 곳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사람의 몸도 업력에 의해 생겨난 유위법인 까닭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번 태어나면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유한한 시간이 갖는 의미를 천착하고, 소중한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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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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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둥이인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질서가 엄존했던 시대에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세 살 터울인 오누이를 돌봐야 했다. 둘째 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돌연한 일로 젊은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고,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을 병행하며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돌봄에 지칠 겨를도 없었다. 스물여덟 나이부터 시작된 돌봄은 일흔 여덟인 지금까지 끝이 나지 않았다. 어느새 50을 훌쩍 넘긴 중년의 자식들을 걱정하며 상처를 안고 사는 딸을 돌본다. ‘특별재난구역속 일남은 출산 후 병을 앓다 세상을 뜬 어머니를 대신해 열 살 때부터 부엌살림을 도맡으면서 시작된 가족 돌봄은 손녀까지 양육해야 했다. 아들의 공무원 합격을 바라며 손녀 가영을 돌보는 일남은 중증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아버지를 챙기느라 바빴고 별세한 아버지 곁을 지켰다.

 

   대추나무 집으로 통하는 집의 대추는 살이 차올라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달콤함이 퍼진다. 할머니는 중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중에도 손자 영석의 병문안에 반색하며 마당 귀퉁이에 자리한 대추를 맛보고 싶은 바람을 드러냈다. 지금은 남의 집이 되어 외부인 출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손자와 손녀는 할머니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모험에 나섰다. 알이 굵은 대추를 손에 넣고 병원으로 향하며 할머니가 중병으로 고통 받지 않고 돌아가시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는 영석을 보며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고통의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씁쓸해진다. 평생 한량처럼 살아온 남편을 대신해 가사를 책임지고 살아온 입원속 분례는 남편의 갖은 폭력을 욕하면서도 치매를 앓는 시아버지와 귀 어두운 시어머니를 돌보며 지냈다.

  ‘오늘 당신은 그곳에 가게 될 거라고, 그곳이 당신의 마지막 장소가 될 거라고......’

  치매 중증으로 요양병원 입원을 앞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외마디는 돌봄의 끝을 예비하고 있다.

 

  열 달 동안 아이를 뱃속에 품었다 산고(産苦)를 겪으며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은 녹록지가 않다. 한 생명체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부모의 시간은 아이들을 챙기며 돌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엄마는 처음이라 쉽지 않은 때,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한 정보 교환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자리한다.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걸을 때면 내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엄마이기에 용기 내어 지금 이 길을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산후조리원에서 제일 인정받는 여자는 젖 잘 나오는 산모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조리원 천국에 머물며 산후 조리하는 산모들의 경쟁 심리는 천국 이면의 지옥을 떠올리게 한다. 상황에 따라 달리 생각될 수 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세계 속 진풍경은 익숙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데 소소한 힘을 불어넣는다.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을 챙길 수 있는 직장인이더라도 자아실현과 자녀 양육 사이의 괴리가 커질수록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멀어진다. 마흔 넘어 어렵게 얻은 딸을 키우다 회사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돌봐 줄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기를 반복하는 미연의 무거운 일상을 담은 돌보는 마음은 워킹 맘의 비애가 드러난다. 직장 여성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베이비시터라 여겼던 남희가 치매 걸린 시모를 학대하는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하는 대목은 섬뜩함을 부른다.

남아를 키우는 정윤은 온라인 카페에서 띠 동갑 혜미와 소통하는 일이 잦아졌다. 두 달 차이로 태어난 아들을 키우는 공통점은 띠 동갑 나이 차가 무색할 정도다. 정윤은 손끝이 야무지고 살림 솜씨가 좋은 혜미를 보며 절대적인 희생과 엄청난 노동을 요구하는 육아의 본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정윤은 만남의 기회가 늘어날수록 소비를 줄이며 살뜰하게 살림하는 혜미의 극도의 개인주의에 염증을 내며 내 이웃과의 거리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딸이 엄마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엄마는 딸에게 고소득 전문직 여성으로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의대나 약대에 진학하여 걱정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부를 쌓기를 바라던 엄마 기대를 저버린 딸은 사회학과에 진학하여 기자로 생활하다 결혼하였다. 연애 시절 비슷한 관심사로 서로 소통하며 교감하던 시간은 결혼 후 종적을 감췄고, 그 자리에는 시댁을 찾아 함께 음식을 나누고 치우는 일로 채워졌다. 주말에는 집에서 쉬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남편과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배려하지 못한 점을 뉘우치던 연인도 현실적 무게에 봉착해서인지 크고 작은 마찰은 부서진 조각처럼 이어붙이기 힘들어지고 만다. ‘()’과는 점점 멀어진 채............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대로 삶이 흘러갈 때가 왕왕 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양육에 힘쓰던 주인공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뒤 아이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문제 엄마로 낙인찍힌 채 이혼하였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엄마는 몹쓸 엄마로 익숙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조차 고갈되어 머나먼 이국에서 새로운 생각을 써내려가야 하는 현실이 처연하다. ‘연주의 절반에서 연주는 꺾인 생의 절반을 조심스레 꺼내어 결혼이라는 격식을 차리지 않은 대신 비혼모를 선택하여 유튜버로 활동하며 잊고 지낸 꿈을 찾아 나섰다.


   유교적 가르침이 지배적인 전근대적 사회보다 현대사회에서의 여성은 인권을 존중받으며 제 목소리를 내며 지낸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산재한다. 남편과의 졸혼을 결심한 아내는 태풍 주의보가 발령된 날, 독신주의였던 시누이가 나이 많은 남자의 재처로 들어간 사연들을 들으며 일순 흔들리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현실적 당위성을 강조하는 남편은 마음의 소리를 내는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불 먼지를 털면서 베란다 너머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한참을 서있었던 아내의 외로움을 살피며 육아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는 남편의 돌봄은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배우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경자가 권력자의 첩이 되어 나타났을 때 보인 가족들의 냉대는 그녀의 걸음마저 얼어붙게 하였다. 하지만 구치소에 감금된 아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모를 찾았을 때의 반응은 절연에 가까워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결혼 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애환이 슬픈 미소로 화답한다.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은 여러 빛깔로 채색될진대 칙칙한 빛을 짙게 드리운 삶의 그림자는 쉽지 않은 인생에 새로운 시도를 부추긴다. 잊고 지낸 자아의 본질을 찾아 정체성을 탐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살아갈 힘을 불어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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