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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 - 당신의 몸과 마음이 아플 때,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것들
김준혁 지음 / 계단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료 기술의 급진적인 발달은 마법을 부리는 요술지팡이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뇌졸중을 앓는 지인이 혈전용해제를 오랫동안 복용하며 지내다보니 뇌일혈을 일으켜 특정 부위에 관을 삽입하여 고인 피를 뽑아내는 수술을 받았다. 80대 중반에 수술을 받고 90대 초반까지 별 탈 없이 지내는 것을 보면서 현대의의학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인 의학은 한 생명이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정교한 과학적 기술을 필요로 한다. 난이도가 높은 수술의 경우 첨단 수술 기구인 로봇을 환자에게 장착하고 수술자가 원격으로 조종하여 시행하는 수술로 환자의 질병 치료에 정밀함을 더해 성공률을 높인다.
지방 환자들은 새벽 첫차를 타고 명의의 진료를 받기 위해 5시간에 가까운 장거리 이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은 고단한 여정이다. 진료실 앞에 붙은 예약 환자들의 진료가 끝나기까지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간다. 의사와 대면하는 시간은 불과 3분,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모니터에 눈을 박은 채 환자의 상태를 묻고 기계적인 진료를 끝낸다. 허탈감에 싸인 채 처방전을 출력해 인근 병원에서 약을 사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길은 두꺼운 잿빛으로 드리워진다. 쉽게 낫지 않는 질병으로 365일 약을 복용하며 지내야 하는 불안감은 불운한 삶을 지배한다.
의료인문학자로 밝히고 싶지 않은 현대의학의 발달 이면에 자리한 사건과 정보를 담은 저자는 의료 개혁과 혁신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삶을 통해 공생적 삶의 가치를 전한다. 제멜바이스는 산욕열로 죽어가는 산부인과 병실에서 세균 감염 이론과 소독 방법을 발견하였지만 이 생각을 환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많은 산모들이 출산하다 목숨을 잃었다. 이는 의사와 환자의 소통이 중요함을 드러내는 실례로 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환자의 말에 집중하는 의료인과 의료인의 말에 반응하는 환자가 소통하는 최적의 대화법은 의료교육을 통해 길러질 것이다. 근엄한 의료인과 존엄한 환자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의료인과 환자가 화합으로 만날 수 있도록 말이다.
한정적인 의약품 분배를 두고 어느 질병에 우선순위를 둘지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의료계의 정의를 살피는 일로 모아진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의학은 치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환자가 하고 싶은 일까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안 된다. 광기를 감금하여 치료하던 미첼의 휴식 치료는 가부장적 권위를 여성에게 이식하는 사회문화적 불평등을 낳았다.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만들었다 해지한 정신의학은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로 변화했다. 남자로 태어나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여자가 되었다 다시 남자 몸이 되자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린 데이비드의 비극적인 삶은 의학이나 과학 이론을 현실로 이식해 양육하려는 태도에 제동을 건다.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
명시된 인권 선언의 한 문장은 이것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계속 차별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포함한다. 뛰어난 남녀의 결혼을 장려해 이들이 더 많은 자손을 남겨 좋은 유전자가 널리 퍼지도록 하자는 우생학적인 생각은 사회 전반에 자리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를 기록하는 때,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나 사회가 출산에 개입하고 있지만 그 길은 멀어 보인다. 무엇보다 고려되어야 할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부모와 자녀가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는 지이다.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정신질환은 이들이 속한 사회문화에 따라 여러 형식으로 바꿔 표현된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2018년 말 담당의를 살해한 정신질환자, 2019년 진주시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 등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불안은 더 커졌다. 따라서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 아래 이를 억제하고 통제하여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하려는 움직임은 이들을 억제 대상으로 여기는 추세가 강하다. 경중을 헤아리는 구조적인 환경 조성으로 정신질환자들을 무조건 문제시 삼는 태도는 수정되어야 한다. 완벽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에서 정신질환자들을 지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벗어나려는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반정신의학계에서는 주장한다.
2020년 1월부터 감염 병을 차단하기 위해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는 실천이 언제나 끝이 날는지 가늠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감염 경로나 병의 원인, 치료법 등이 명확하지 않은 감염 병에 대한 적절한 격리는 예나 지금이나 감염 병 예방을 위한 우선 책이다. ‘장티푸스 메리’는 장티푸스 보균자로 병원에 감금되었지만 남자 보균자, 귀부인 보균자는 감호 처분에 그쳤던 점을 들어 이들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묻는다. 비용을 이유로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을 때 보건의료 영역에서 벌어질 수 있는 끔찍한 결과를 입증한 간염 전문가 왕슈핑의 용기 있는 고발은 생명을 다루는 이들의 생명 윤리의식을 드높인 사례이다. 수많은 상처를 기우며 지내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아픔을 치료한 자리에 남은 흉터까지 치유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