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차명식 지음 / 북드라망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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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한 달에 두 차례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눴다. 스무 명의 학생들이 동일한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 책 속 내용과 세상사를 연결지어 말하기 등의 수업을 나누는 시간이 쉽지 않았다. 궁벽한 시골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며 생각과 느낌을 나누며 생각에 깊이를 더하는 시간으로 나갔으면 하는데 쉽지는 않았다. 경쟁 위주의 교육 현장에서 내신 등급을 잘 받기 위해 시간을 쏟다 보니 책을 읽어오는 일조차 버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이 아이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책을 꼼꼼히 뜯어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가운데 한 사람은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학교 공부 로 지쳐가는 아이들을 독려하며 한 해 수업을 갈무리했다.

 

    책과 함께한 시간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내면의 깊이를 더하였고, 십대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타자와의 접속을 둘러싼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수업을 앞두고 그동안 읽은 책들의 목록을 나열하며 생각들의 얼개를 짜고 별점을 주면서 도서 목록을 선정하였다. 책을 매개로 한 공간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독서를 통해 자신을 기워내고 싶은 바람을 안고 독서학교에 들어온 만큼 정한 책을 완독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욕심이 앞서는 학생은 책을 읽고 적절한 발문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일도 덧붙이겠다고 하지만 시간을 내어 제 시간에 맞춰 오는 일조차 쉽지 않은 휴일 오전임을 우리는 안다.

 

   일요일 오후 2, 2 학생들과 만나 책을 읽는 동네 청년은 1년 동안 계절마다 다른 범주의 책들을 선정하였다. 봄에는 학교, 여름에는 집, 가을에는 마을, 겨울에는 세계 관련도서를 읽으며 청년과 학생들이 나눈 수업 후기, 학생들의 글, 청년의 기억 속 소통 과정을 재구성하였다. 학교에서 십대들과 만나온 지 30년이 넘은 지금,

  ‘나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종소리에 따라 움직이며 정해진 규칙을 잘 따르라는 말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자신과 만날 때면 학생들을 속박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효율성을 따지며 소수의 생각을 배제하려 했던 적을 떠올리며 학교란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빼앗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편한 생각이 들 때, 개토의 바보 만들기를 읽고 쓴 글을 보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의존성이란 말로 집약하며 학교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학교생활 적응이라는 미명 아래 아이들을 틀에 맞춰 가꾸려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있다. 친구들과 선후배가 서로 어울려 지내기 위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며 상대를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간다. 단편적인 지식을 전수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책 읽기를 통해 타자의 삶을 이해하고 성찰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기획하며 나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길에 선다.

 

    고등학생들과 함께하던 시절, 학생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지역(고향) 탈출을 목표로 공부한다.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집을 떠나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열망이 컸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안온하게 지내면서도 이런저런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은 대도시로의 대학 진학으로 모아졌다. ‘오이 대왕속 아버지처럼 아버지 말이 바로 법이라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띤 이들이 존재했고, ‘엄마는 왜?’를 통해서는 어머니에 대한 정체성을 묻는다. 매니저 엄마를 자처하는 엄마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대목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재구성하며 자신이 바라는 어머니의 상을 정립하여 갈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개발 계획을 내세워 전통적인 마을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근대화된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생활양식의 변화가 뚜렷해졌다.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살던 자리를 기득권들에게 내주고 변두리로 추방당한 사람들이 자리한 곳에서 벌어지는 삶의 풍경은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애잔한 생활상이 자리한다. ‘원미동 사람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지고 다른 오늘은 살아내느라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면서도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낼 정도로 낯익은 시골 마을처럼 낯선 동네 사람들과 관계망을 이어 함께 살아갈 힘을 전하는 내 이름은 공동체입니다는 삭막한 도시에 훈훈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익명의 도시에서 낯선 이들로 고립될 수 있는 이들이 마을 주민으로 자아감을 형성하며 연대하는 시간 속에 마을 공동체는 상생의 묘를 발현해 나갈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한 수업에서 힘든 것은 아이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발표에 인색한 모습이다.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며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지만 수동적으로 참여할 뿐이다. 청년은 아이들이 입을 열기까지 적절한 물음을 던지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와 소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익숙한 대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대상으로 겨울에 다룬 세계는 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감의 영역을 확장하여 가는 과정에 있다. ‘는 아우슈비츠 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만화책으로 유태인을 탄압하는 잔혹함이 세밀하게 드러난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책을 통해 그 시대의 사건을 일부라도 이해하며 지금도 타자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19805·18 민주화 운동을 재해석한 소년이 온다는 소년 동호를 불러내 시대적 아픔과 숙명적인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의 처연함을 뒤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듯 서술하였다. 무법의 폭압으로 혈육과 친구, 이웃을 잃고 스러져간 이들을 그리워하다 부서진 영혼을 부여안고 살다 피안의 세상으로 떠난 넋을 달래는 진혼곡에 열여섯 살 소년이 투영되며 역사적 사건은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만난 타인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자신의 관점을 바로 세워가는 길에 놓여 있다. 아이들은 지금껏 스스로를 지배해 왔던 관념의 벽을 깨고 관점을 새롭게 하는 일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바르게 인식하고 타자와 연대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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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4-1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모임하고 있어요^^
반갑네요
조금 다른 것은 엄마도 함께 참여하도록 권한다는것.
반갑습니다.^^

자성지 2021-04-15 12:58   좋아요 1 | URL
궁벽한 시골에서 지역적 한계를 넘어설 독서 모임에서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 여기며 오늘도 책과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