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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범도 - 송은일 장편소설
송은일 지음 / 바틀비 / 2020년 8월
평점 :
광복 76주년 카자흐스탄에 묻힌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고국에 송환되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척왜 항일 운동을 맹렬히 벌이느라 개인의 안전은 도모하지 않은 그의 행적은 숭고한 경외를 품게 합니다. 조선 독립을 위하여 일군에 맞서느라 청춘을 바친 헌신적인 나라 사랑 실천은 붉은 표지의 책에서도 빛을 드러냅니다. ‘나는 홍범도’는 역사 교과서와 봉오동 전투 영화에서 봤던 대장의 애국심이 붉게 타올라 꺼지지 않을 민족애로 승화되는 듯하였습니다.
어려운 고비가 밀려들 때마다 범도를 도와주고 그가 나갈 길을 가르쳐준 이들은 인생의 스승입니다. 핏덩이 아들에게 젖 한 번 물리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어머니였기에 범도는 아버지의 젖동냥으로 자랐습니다.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고 머슴살이를 시작해 종이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얼마의 새경을 떼어 주인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며 맡긴 돈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주인 박가를 밀쳤다 살인자가 된 범도는 독 안에 든 쥐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길 위에 섰습니다.
오갈 데가 없는 범도는 신계사에서 행자로 생활하며 글눈을 틔우고 선무도 수련에 정진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간다는 의성 대사의 말대로 수행자의 삶에 젖어갔습니다. 하지만 눈이 맑고 미소가 아름다운 천진 보살 같은 모지 스님을 만난 뒤부터는 수행자의 삶에 정진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끌린 두 사람은 수행자의 계율을 어기고 환속하여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자식을 더 이상 낳지 못한 탓을 손녀 옥영에게 돌린 할머니는 그녀가 태어난 사월 초파일에 옥영을 절에 맡겼습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를 전하며 수행에 정진하던 두 사람의 인연은 속가를 떠난 공간에서 맺어질 운명이었던 듯합니다.
파계하여 산문 밖으로 나온 부부는 반기는 이는 없어도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인적 드문 산길을 걸었습니다. 북청 안산사로 향하던 중, 오만에 찬 범도는 적을 얕보다 당하고 아이 가진 아내를 패악한 이들에게 빼앗기고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회한 가득한 혈혈단신으로 험하고 깊은 골짜기인 먹패장골을 향해 걸었습니다. 산세가 험하고 산짐승들이 깃들어 사는 곳이라 범인(凡人)들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먹패장골은 세상에서 꺼져야 할 자들이 기를 쓰고 찾아드는 은신처 같은 곳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심 포수와 함께 지내며 사냥 기술을 익혀 야생으로 생존하는 법을 체득하였습니다. 일등 궁수이자 총격수로 자질을 연마하며 자연의 질서대로 살던 먹패장골에서의 생활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나?’
일제의 국권 피탈로 유린당하는 양민들의 고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친일분자들은 조선인을 짓밟고 일본에 기생하면서 기득권으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일군들은 이들을 등에 업고 남의 나라에서 주인 행세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군대 나팔수로 일하던 범도는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대는 필요치 않다며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였고, 갑신정변의 주역인 개화파의 충의계(忠義契)를 근간으로 의병대를 꾸렸습니다. 그는 어엿한 사람이자 사나이로 살아가기 위해 망한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의병들과 규합하여 항일투쟁에 나섰습니다.
모든 전투는 적의 공격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어로써 나아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공격으로써 승리한다는 홍 대장의 신념은 용의주도한 준비로 일군과의 전투에 임하였습니다. 먹패장골에서 심 포수와 함께 지내며 익힌 무예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 기관을 폭파하고 일군들을 물리치는데 한몫했습니다.일군을 먹패장골로 유인하여 한나절 사이 백 명이 넘는 일군을 사살하여 그곳은 해골이 굴러다니는 골짜기로 불렸습니다. 호좌의진 지휘부는 의병대가 충주성에 갇힐 수 있음을 예상치 못한데다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하부에서 내는 의견을 듣지 않았습니다. 헌병대를 태우고 그 안에 있던 일군을 모두 사살했으나 동무·동지이자 형제였던 수협을 잃은 범도는 그를 가슴에 묻고 만민이 평등해질 조선을 위해 싸우기로 다짐했습니다.
‘어디로 가든 원산 포구 고만동네 어창에다 기별 남기라.’
는 말을 남기며 의병 부대 재정비를 위한 준비기에 들어갔습니다. 대장은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세상을 뜬 아내, 어머니 희생의 장본인인 일군과 친일 분자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 희생된 큰아들을 심장에 품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생전 옥영은 식구들을 건사하면서도 전답을 팔아 남편의 의병 투쟁과 척일 투쟁을 지원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적들을 향해 돌진하는 희열에 달뜬 아름다운 사람들은 서로를 추동하며 서로를 견인하여 일군을 몰아내는 일에 힘을 모았습니다. 항상 춥고, 덥고, 배고프고, 헐벗고 고될지라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간절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를 가진 자들이 모여들어 조직된 조선 군대는 망국의 한을 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의병대들의 활약이 거세어질수록 가혹한 탄압에 고통받는 양민들을 보며 의병대들은 해산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일본에 귀순하는 의병들도 늘어났습니다. 남은 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일제를 타격하기 위해 북청 헌병대를 공격한 뒤 부인의 유해가 담긴 함을 큰아들 무덤 옆에 안치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애끓는 울분을 삼키고 압록강을 건너 봉오동 골짜기 곳곳에 매복해 해마다 증간되는 일군의 화력에 맞섰습니다. 봉오동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뒤 독립군 토벌에 나선 월강 추격대를 격파하며 전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대장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중과부적의 일군과 맞서야 하는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십분 활용하여 적을 물리친 지략가였습니다.
통찰력 있는 상부 지휘관인 홍 대장은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 악에 받친 놈들을 공격하다가는 아군 사상자가 더 나올 수 있으니 전투를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어 완급을 조절하였습니다. 여의치 않은 생활에도 무기를 구할 수 있는 돈과 식량, 옷을 마련하며 헌신적으로 도왔던 거주민들의 독립의지는 망국의 설움을 안고 신산하게 살면서도 조국 광복의 열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태에 한 번씩 여천이 고국을 찾을 때면 그의 동지들은 십시일반 힘을 보태어 군자금을 마련했습니다. 항용 총탄이 모자라는 전투를 해온 탓에 적에 맞서 총검, 신체 등을 사용하여 싸우는 육박전인 백병전에 강하였습니다. 일본의 주구(走狗)로 조선인을 유린하고 핍박하는 친일 분자들을 색출하여 양민들을 짓밟은 이들을 응징하며 항일 운동으로 구국운동을 벌였습니다. 개인의 안위를 염려하며 스스로를 돌보기보다는 조국 광복을 위한 일념으로 나라 잃은 민족의 굴욕적인 삶을 끝내려는 독립 의지는 죽음도 달게 받겠다는 숭고한 민족애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제는 고국에서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