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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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나이, 32년째 직장인으로 생활하며 겪은 일들은 복합적인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게 하였다. 설익은 사과처럼 풋풋한 십대들과 함께하며 쌓인 크고 작은 경험은 애증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여럿을 키워냈다.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인간관계로 힘들어질 때마다 사람들의 심리를 살피는 책들을 가까이 하며 쉽게 곁을 주지 않던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 때는 어느 누구의 말도 통하지 않았던 고집이 독선과 독단으로 치달아 소통의 물꼬가 쉽사리 트이지 않았지만 세월 따라 수용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이해의 깊이가 더해졌다. 상충하는 의견으로 맞설 때에도 상대의 의견을 설득하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름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인간 세계를 확인하며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중시하며 이윤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직장이 없다는 구직자들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경제적 자립을 돕는 직장에서 자생력을 키우고 비전을 실현하는 현실적 삶이 고마울 때가 늘어난다. 직장인으로 서로 다른 뜻을 품고 살더라도 화합할 때에는 함께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일이 평범한 삶이기도 하다. 무탈한 나날 속에 꿈을 꾸고 살아가는 직장인의 삶을 잇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현실을 달가워하지 않는 청년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다큐멘터리 PD를 꿈꾸는 대학생이 취직을 준비하며 여름방학 3개월 동안 더블린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려 한다.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에 취업 준비까지 자기 힘으로 이뤄내야 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시간은 여유가 없다. 어학연수 대신 워킹홀리데이라도 다녀와야 피디 지망생으로 면이 선다고 여겼기에 나는 아일랜드로 가기로 했다. 경유지 탐페레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핀란드 노인과의 짧은 산책은 힘을 불어넣는 시간이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노인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동창회에 참석한다며 훗날 추운 겨울 오로라를 찍으러 오라는 말을 남겼다.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졸업 후 방송국 신입 피디 공채에 낙방한 끝에 다른 일자리를 찾아 일하며 지냈다. 이후 6년이 흘러 신입 피디 공채를 보고 지원하려다 마음을 접은 날, 핀란드에서 만난 노인이 보낸 사진과 편지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노인이 전한 따스한 한마디는 또 다른 꿈을 꾸면서 살아갈 이유를 찾게 한다.

 

   대학 졸업 후 수많은 소개서와 이력서를 써서 인턴과 계약직으로 일하며 겪은 직장인의 비애는 클 것이다.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의 주인공은 제목처럼 정규직 직장인으로 출근하는 첫날의 설렘과 두려움은 긴장으로 가득할 것이다. 일한 대가로 받을 돈을 미리 계산하며 새로운 욕망과 소비의 주체로 서기 위한 준비운동에 들어갔다. 출근 첫날 주인공은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확연히 알기는 어렵지만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하며 새로운 욕망을 추구하는 직장인의 면모를 갖추어갈 것이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직장인의 비애를 담고 있다.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카드 포인트로 월급을 받은 카드회사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은 상사의 독선과 아집에 혀를 내두른다. 스타트업 회사답게 수평적인 업무 체계 환경을 조성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부조리한 자본주의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는 셈이었다.

 

    지상에 자기 한 몸 눕힐 공간도 확보하지 못한 채 사람답게 사는 일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에서 결혼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20·30 세대들이 늘고 있지만 청첩장은 꾸준히 날아든다. 부부의 연을 맺고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의 글은 SNS를 타고 계좌번호까지 찍혀 온다. 코로나19 상황에 참석이 어려운 경우라고는 하지만 금전적인 거래를 위한 계고장 같아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빛나와 회사 동료인 민희의 청첩장 전달기를 담은 잘 살겠습니다는 씁쓸함이 더한다. 빛나 언니가 건넨 청첩장을 받고 마뜩찮은 주인공은 교환 거래를 떠올리며 되갚아준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속담처럼 밥값과 찻값을 환산해 되갚는 상황은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고단한 직장인의 일면을 드러낸다.

 

  포털 사이트 관계사에 근무하면서 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맡은 20대 여직원은 노골적인 음란 홍보물을 지우는 일을 주로 한다. 돈으로 욕구를 충족하려는 수요자들은 꾸준히 댓글을 달고 그 댓글을 기계적으로 지우는 일 사이에 접점은 없다. 오피스텔을 개조한 곳에서 혼자 사는 여자의 집에 남자들이 찾아와 초인종 누르는 이야기 새벽의 방문자들은 평범한 남자들의 기이한 행동에 공포를 느끼다 자구책을 찾기 위해 시도한다. 오피스텔 성매매 장소를 잘못 찾아 온 남성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 중에는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것처럼 보이는 대기업 직원인 전 남자친구도 있었다는 사실에 여자는 회의를 품는다.

 

   맞벌이를 하면서 1주일에 두세 번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여 집안일 도움을 받는 가정이 늘고 있다. 직장에서 돌아와 고단한 몸으로 집안일까지 하면서 부부가 부딪치는 것보다는 돈이 나가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받는 것이 낫다고 여긴 부부는 가사 도우미를 부르기로 했다. 남의 집 살림을 제대로 살기는커녕 가정의 리듬을 깨뜨릴 수도 있는 부분이 있어 신중하게 사람을 쓰게 된 뒤 겪는 일들은 자본의 위력에 휘둘리는 사람의 마음을 가늠케 한다. 창틀 청소를 해달라고 부탁한 뒤 아줌마에게 건넨 웃돈은 다음번에도 창틀 청소를 하고 싶다는 도우미의 반응은 자본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고마움을 표현할 때에도 돈은 기쁨을 낳고 감사 영역을 확장한다. 자본의 위력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돈으로 해결하려는 부분을 용인하는 분위기는 위험천만한 일을 부르기도 한다

 

   지훈은 여자에게 자신의 매력이 먹힐 때 자신감을 회복하며 지낸다. 직장에서 만나 호감을 갖고 있던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지유와의 연락이 닿아 그 나름의 계략으로 후쿠오카로 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번듯한 직장에 여자 경험도 많은 지훈이 여자로부터 자신의 매력과 애정을 확인 받는 방식으로 자족해왔던 근간이 흔들리게 되자 상대를 욕하며 분노한다. 임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부분은 자아도취형의 남성에게 발견되는 일면이기도 하다.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 19사태로 무대 공연이 열리지 않자 SNS 상의 개인 방송으로 감각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잇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다소 낮음속 장우는 아버지가 선물한 효율성이 낮은 4등급 냉장고를 보며 장난스럽게 쓴 가사가 유튜브 조회 수가 50만에서 100만으로 늘어나자 계약 제의가 들어왔다. 현실감각이 떨어진 장우는 여러 곡의 음원을 제공하는 CD형태의 음반 제작을 바라며 호재를 잡지 않았고 함께했던 유미마저 그의 곁을 떠나 극빈 예술가로 전락하였다. 가파르게 오른 임대료를 충당하지 못해 가난한 예술가들은 중심 거리인 홍대에서 점점 밀려나 변두리로 작업실을 옮겨야 했다.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지는 냉장고의 소음이 텅 빈 공간의 정적을 깨는 자리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예술가의 삶이 안타까움으로 밀려든다.

 

   치열하게 살아도 될까 말까한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단편들을 만났다. 어렵게 들어간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1년 남짓 일하며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발령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꺾은 코로나 19는 지금껏 지속되고 있다. 일하고 싶어도 고용을 줄이는 현 상황에서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20대 후반 딸의 푸념에 슬픔은 배어 있다. 대외 활동에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스펙을 갖췄지만 이력서를 넣을 곳마저 줄어든 지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20·30 세대를 보면서 이들이 경제인으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실리기를 바라는 마음만 커진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인의 삶이 이내 펼쳐지리라 믿으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회복할 날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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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범도 - 송은일 장편소설
송은일 지음 / 바틀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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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6주년 카자흐스탄에 묻힌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고국에 송환되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척왜 항일 운동을 맹렬히 벌이느라 개인의 안전은 도모하지 않은 그의 행적은 숭고한 경외를 품게 합니다. 조선 독립을 위하여 일군에 맞서느라 청춘을 바친 헌신적인 나라 사랑 실천은 붉은 표지의 책에서도 빛을 드러냅니다. ‘나는 홍범도는 역사 교과서와 봉오동 전투 영화에서 봤던 대장의 애국심이 붉게 타올라 꺼지지 않을 민족애로 승화되는 듯하였습니다.

 

    어려운 고비가 밀려들 때마다 범도를 도와주고 그가 나갈 길을 가르쳐준 이들은 인생의 스승입니다. 핏덩이 아들에게 젖 한 번 물리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어머니였기에 범도는 아버지의 젖동냥으로 자랐습니다.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고 머슴살이를 시작해 종이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얼마의 새경을 떼어 주인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며 맡긴 돈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주인 박가를 밀쳤다 살인자가 된 범도는 독 안에 든 쥐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길 위에 섰습니다.

    오갈 데가 없는 범도는 신계사에서 행자로 생활하며 글눈을 틔우고 선무도 수련에 정진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간다는 의성 대사의 말대로 수행자의 삶에 젖어갔습니다. 하지만 눈이 맑고 미소가 아름다운 천진 보살 같은 모지 스님을 만난 뒤부터는 수행자의 삶에 정진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끌린 두 사람은 수행자의 계율을 어기고 환속하여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자식을 더 이상 낳지 못한 탓을 손녀 옥영에게 돌린 할머니는 그녀가 태어난 사월 초파일에 옥영을 절에 맡겼습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를 전하며 수행에 정진하던 두 사람의 인연은 속가를 떠난 공간에서 맺어질 운명이었던 듯합니다.

    파계하여 산문 밖으로 나온 부부는 반기는 이는 없어도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인적 드문 산길을 걸었습니다. 북청 안산사로 향하던 중, 오만에 찬 범도는 적을 얕보다 당하고 아이 가진 아내를 패악한 이들에게 빼앗기고 자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회한 가득한 혈혈단신으로 험하고 깊은 골짜기인 먹패장골을 향해 걸었습니다. 산세가 험하고 산짐승들이 깃들어 사는 곳이라 범인(凡人)들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먹패장골은 세상에서 꺼져야 할 자들이 기를 쓰고 찾아드는 은신처 같은 곳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심 포수와 함께 지내며 사냥 기술을 익혀 야생으로 생존하는 법을 체득하였습니다. 일등 궁수이자 총격수로 자질을 연마하며 자연의 질서대로 살던 먹패장골에서의 생활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나?’

    일제의 국권 피탈로 유린당하는 양민들의 고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친일분자들은 조선인을 짓밟고 일본에 기생하면서 기득권으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일군들은 이들을 등에 업고 남의 나라에서 주인 행세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군대 나팔수로 일하던 범도는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군대는 필요치 않다며 상사의 명령을 거부하였고, 갑신정변의 주역인 개화파의 충의계(忠義契)를 근간으로 의병대를 꾸렸습니다. 그는 어엿한 사람이자 사나이로 살아가기 위해 망한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의병들과 규합하여 항일투쟁에 나섰습니다.

    모든 전투는 적의 공격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어로써 나아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공격으로써 승리한다는 홍 대장의 신념은 용의주도한 준비로 일군과의 전투에 임하였습니다. 먹패장골에서 심 포수와 함께 지내며 익힌 무예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 기관을 폭파하고 일군들을 물리치는데 한몫했습니다.일군을 먹패장골로 유인하여 한나절 사이 백 명이 넘는 일군을 사살하여 그곳은 해골이 굴러다니는 골짜기로 불렸습니다. 호좌의진 지휘부는 의병대가 충주성에 갇힐 수 있음을 예상치 못한데다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하부에서 내는 의견을 듣지 않았습니다. 헌병대를 태우고 그 안에 있던 일군을 모두 사살했으나 동무·동지이자 형제였던 수협을 잃은 범도는 그를 가슴에 묻고 만민이 평등해질 조선을 위해 싸우기로 다짐했습니다.

    ‘어디로 가든 원산 포구 고만동네 어창에다 기별 남기라.’

    는 말을 남기며 의병 부대 재정비를 위한 준비기에 들어갔습니다. 대장은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세상을 뜬 아내, 어머니 희생의 장본인인 일군과 친일 분자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 희생된 큰아들을 심장에 품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생전 옥영은 식구들을 건사하면서도 전답을 팔아 남편의 의병 투쟁과 척일 투쟁을 지원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적들을 향해 돌진하는 희열에 달뜬 아름다운 사람들은 서로를 추동하며 서로를 견인하여 일군을 몰아내는 일에 힘을 모았습니다. 항상 춥고, 덥고, 배고프고, 헐벗고 고될지라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간절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를 가진 자들이 모여들어 조직된 조선 군대는 망국의 한을 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의병대들의 활약이 거세어질수록 가혹한 탄압에 고통받는 양민들을 보며 의병대들은 해산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일본에 귀순하는 의병들도 늘어났습니다. 남은 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일제를 타격하기 위해 북청 헌병대를 공격한 뒤 부인의 유해가 담긴 함을 큰아들 무덤 옆에 안치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애끓는 울분을 삼키고 압록강을 건너 봉오동 골짜기 곳곳에 매복해 해마다 증간되는 일군의 화력에 맞섰습니다. 봉오동 주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뒤 독립군 토벌에 나선 월강 추격대를 격파하며 전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대장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중과부적의 일군과 맞서야 하는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십분 활용하여 적을 물리친 지략가였습니다.

    통찰력 있는 상부 지휘관인 홍 대장은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 악에 받친 놈들을 공격하다가는 아군 사상자가 더 나올 수 있으니 전투를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어 완급을 조절하였습니다. 여의치 않은 생활에도 무기를 구할 수 있는 돈과 식량, 옷을 마련하며 헌신적으로 도왔던 거주민들의 독립의지는 망국의 설움을 안고 신산하게 살면서도 조국 광복의 열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태에 한 번씩 여천이 고국을 찾을 때면 그의 동지들은 십시일반 힘을 보태어 군자금을 마련했습니다. 항용 총탄이 모자라는 전투를 해온 탓에 적에 맞서 총검, 신체 등을 사용하여 싸우는 육박전인 백병전에 강하였습니다. 일본의 주구(走狗)로 조선인을 유린하고 핍박하는 친일 분자들을 색출하여 양민들을 짓밟은 이들을 응징하며 항일 운동으로 구국운동을 벌였습니다. 개인의 안위를 염려하며 스스로를 돌보기보다는 조국 광복을 위한 일념으로 나라 잃은 민족의 굴욕적인 삶을 끝내려는 독립 의지는 죽음도 달게 받겠다는 숭고한 민족애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제는 고국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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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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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차림의 여성이 세상을 호기롭게 보고 있는 한 장의 사진 아래 조선의 독립운동가 김란사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귀에 익지 않아 낯선 인물에 대한 호기심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실천한 의로운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주권을 빼앗은 일본제국주의의 횡포에 맞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의 의로운 삶을 접할 때마다 이들을 향한 외경심이 든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비장감이 짙은 란사는 허름한 복색으로 변장을 하고 중국으로 향하였다. 사는 방법은 달라도 서로 안부를 전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한 일에는 한마음으로 지냈던 화영에게 구겨진 노트 한 권을 맡긴 채 그녀는 홀연히 길을 떠났다.

 

   아버지의 조언대로 란사는 본처와 사별한, 나이 많은 하상기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전처의 자식을 봐야 하였지만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신식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아내를 깍듯이 예우하는 남편은 그녀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입지를 형성하는 조력자로 남았다. 불우한 처지의 여성들을 위해 일하며 살기를 바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의 길을 닦아갔다. 딸아이를 낳아 유모 손에 맡긴 뒤 미국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한 그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유모 손에 커온, 그녀의 딸 자옥은 엄마를 서양 귀신이라 부르며 데면데면하게 지냈지만 시간이 흘러 엄마라 불렀다. 자옥이 25세로 요절하자 란사는 딸을 잘 보살피지 못하였다는 자책으로 홀로 동굴에 숨어 지낼 정도로 딸이 없는 세상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남편의 위로는 딸을 가슴에 묻고 고통을 안으며 살아야 했던 아내가 몸과 마음을 추슬러 민족적 사명의 길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는 이화학당 여 사감으로 학생들이 공부하여 구국 운동으로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구더기 같은 년

   이토 히로부미의 애첩 배정자를 욕하는 란사의 찰진 한마디는 할머니로부터 받은 유산 중 하나다. 고종의 신임을 받고 궁에 드나들며 정황을 살피고 염탐하여 전하는 등의 친일 행각을 벌였다. 배정자는 이토가 암살당한 뒤에도 만주에서 활동 중인 항일 독립 운동가들을 밀고하며 구차한 삶을 이은 매국 행위를 일삼았다. 이중적인 잣대로 살기를 자처하는 기회주의자들도 편승해 조국 광복을 위한 길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화영의 남편은 독립 운동 자금을 대기도 하면서 후대 왕위를 계승할 의화군과의 화친을 위해 줄을 대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였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지내야 하는 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미국 유학 중에 란사는 광인처럼 주색에 빠진 것을 가정해 일제 감시를 피해 살아야 했던 의친왕 이강을 만났다. 섣부른 행동으로 이강을 파락호로 폄하하며 욕했던 점을 뉘우치며 이후 이강의 독립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란사는 비밀 서재를 만들어 그의 은신처로 제공하였으며 임정의 어려움을 알려 독립 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멀리 나서기도 하였다. 그녀는 조선의 자주 독립을 이루려는 열망으로 이강과 함께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를 향한 마음도 커졌다. 하지만 결혼한 여자로 마음속 깊은 정을 품고 대의를 위해 그와 뜻을 함께하였다.

 

   하고자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고 마는 뚝심으로 선택적 삶을 살아온 란사는 이강과 함께 상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겼다.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도둑질을 하다 발각된 병수를 털보 이 씨는 받아들였다. 도둑질하지 말고 배고프면 오라는 말을 기억한 병수는 건어물 가게에서 심부름하며 지내다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 나서는 길에도 동행하였다.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특별한 분장술로 늙은 부부로 변장한 이강과 란사는 상해에서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던 중 생이별을 하였다. 낯선 중국에서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 본격적인 독립 운동에 가담하기도 전 란사는 독살 당하였고 이강은 일본경찰에게 발각당하여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밀고로 임시정부 요원들과 접선하려는 뜻을 채 이루지도 못하고 낯선 땅에서 유해로 마감한 란사의 짧은 생은 처연함을 돋운다.

 

   신여성으로 널리 배운 만큼 후학들에게 가르침으로 돌려주었던 란사는 살아서 고국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화영에게 심경을 담은 공책을 전한 듯하다. 은애하는 이강을 위하여 만든 비밀 공간에서 그가 필요할 때 지낼 수 있기를 바란 일, 어린 자신을 다독이며 살뜰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남편에게 존경심을 드러낸 일 등은 그녀가 없는 공간에 씨줄과 날줄로 무늬를 아로새겼다. 독립 운동의 단초를 마련한 곳에서 밀알로 흩어져 자생하는 야생의 꽃들처럼 피어난 이들은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우리나라의 앞날을 그리며 조국 독립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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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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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경화를 앓던 이가 백신을 접종한 뒤 나흘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망자의 십대 때부터 알고 지낸 터라 비보를 듣고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칠순의 노모는 망연자실한 채 넋을 놓고 있었고 상주인 아들은 이제 겨우 열여섯이라 막막함은 더했다. 정신을 잃고 병원에 누워 있다 황망한 죽음을 맞은 이의 영혼을 떠올리며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은 삶을 떠올린다. 비보를 듣고 상가를 찾았다 오는 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유한한 인생에 물음을 던지며 울음을 삼킨다.

 

   여느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한다. 욕구들에 바탕을 둔 본능을 통제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란다. 찰나의 감정에 이끌려 본능대로 행동하다가도 추하지 않은 몸짓이었는지 물음을 던지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천 년이 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철학과 인문학은 자아의 본질을 참구하는 일에 관심을 드러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언급한 프로네시스는 여러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며 시의적절하고 상황에 걸맞은 답을 끌어내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는 삶을 위해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할 9가지 질문들에 대한 사유는 회한을 낳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경쟁 구도는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기보다는 남들과 비교하며 더 높은 데로 오르기 위해 방향을 잡는다. 평준화된 삶에서 이탈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며 살아가는 일은 유별난 일로 비춰져 규격화된 생활을 저해하는 요소로 받아들이기 일쑤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 용기가 있더라도 쉽게 걷지 않은 길을 향해 걸음을 떼기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는 개인의 주체적인 판단까지 흐리게 한다

 

   지식을 암기하여 기술하는 시험에 익숙한 학생들은 의무교육 과정을 거쳐 입학한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한 가교로 친구들과 특별한 경험을 쌓을 시간조차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고전 속 가르침을 새기며 점수에 저당 잡힌 채 마음의 여백을 찾지 못하는 수험생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곁을 내주어 자연의 질서를 음미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입버릇처럼 피곤하다고 말하며 여유 있게 우정을 쌓을 시간도 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작 자신을 성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수시전형 접수를 끝낸 학생들은 마감된 경쟁률을 보면서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동일한 학교의 학과를 지원한 이들을 누르고 우위를 차지해야 합격선에 들어간다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물음을 던지며 스스로 답을 찾는 해결능력보다는 정답을 쉽게 찾는 방법을 익히는 데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특정한 기술의 필요성이 커질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잘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의문을 품고 그 내용을 질문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일상이 수반되어야 미래를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할 힘을 길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에 함께 서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친부 살해의 비극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신화 속 주인공들 이야기를 통해 기성세대와 다음세대의 마찰과 갈등을 가늠할 수가 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그들이 짜주는 틀을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부모의 관념을 자식에게 이식하려는 데서 갈등은 점화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부모의 뜻을 좇아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발전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자유를 갈망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정적인 틀을 깨고 새롭게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가는 일은 나답게 살 수 있는 길로 이어진다

 

   나를 잘 알고 나아가서는 인간을 잘 알고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해 인문학적 통찰은 필요하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하기 어렵고, 한 번뿐인 인생이 언제쯤 끝이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적 삶을 바로 사는 일은 후회를 줄이는 일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길에 물음을 던지며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묻지만 질문에 섣불리 답을 내리기보다는 끊임없이 판단을 중지하는 에포케가 필요하다. 인생의 완급을 조절하듯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속도를 제어함으로써 일상에서 발견하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꿋꿋이 행동하면서도 융통성을 가지고 나은 길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는 인생의 주인공인 내가 마련해야 한다.

 

  행하는 이 일이 멋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추하지는 않은가?

   되짚어 물으며 가치 판단의 기술을 적용하며 다변화된 시대를 살아갈 때 점진적인 발전이 가능함을 경험으로 알아차린다.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 고전을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로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찾는 과정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갈수록 필요하다. 책을 읽으며 다른 세계의 다양한 삶을 이해하고 대리 경험하여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길에 고전은 한 획을 긋는다. 지나고 보면 어느 것 하나 평탄하지 않았던 인생의 좌표에 독서 경험은 적절한 처방으로 자리한다. 그 어떤 사람들의 위로보다 힘이 되고 평안을 줬던 작품은 인생의 든든한 울타리로 신산한 시간을 버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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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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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며 걱정 없이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피한 상황들은 평범한 생활을 잇는 것마저 힘들게 합니다. 선택 기회도 없이 태어나 철이 채 들기도 전에 생계를 돌보며 지내야 하는 소녀들의 고달픔은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합니다. 일본의 야욕에 짓밟힌 민족으로 개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충은 컸습니다. 강제 점령된 나라의 백성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기 녹록치 않은 시간은 무탈한 일상을 파괴하고 가족의 고리마저 떼어 놓는 일들을 견뎌야 했습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꿈꾸며 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서는 길이 쉽지 않을진대 길 위에 서는 이들이 있습니다. 해외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나라를 기회의 땅으로 여기며 고국을 떠나온 것처럼 일제강점기 가난한 한국인에게 하와이는 기회와 꿈의 땅이었습니다.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일하는 남성들은 사진결혼으로 고국의 신부를 맞았습니다. 열여덟 살, 버들은 부산 아지매의 소개로 포와로 시집을 가 못한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결혼한 여자들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쉽지 않았지만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의 이주는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했습니다.

 

   김해의 작은 동네인 어진말에서 막역하게 자란 버들과 홍주는 사진 한 장 들고 하와이에 도착하였습니다. 홍주는 아버지의 양반 병 때문에 반가(班家)시집을 갔지만 병든 남편이 죽자 이내 어진말로 돌아와 지내다 버들과 함께 희망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무녀의 딸 송화는 할머니의 부탁으로 포와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은 지참금과 함께 받은 사진 한 장에 의지한 채 나은 세상을 그리며 배 멀미를 견뎠습니다. 사진결혼 성사를 위해 거쳐야 할 관문들을 통과할 때마다 동행한 여성들의 희비는 엇갈렸고, 하와이에 도착해서는 사진과 다른 남성들의 모습에 울분을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사탕수수 밭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느라 노화의 진행이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버들은 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태완의 모습에 안도하다가도 사진과는 달리 늙은 남성들 모습에 실망이 큰 홍주와 송화를 보며 내색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인들은 교회에서 합동으로 결혼식을 올린 뒤 각자의 영역으로 흩어져 가정을 이루고 지내야 해 이별의 아쉬움이 컸습니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할 일이 꿈만 같았지만 세 사람은 첫발을 내디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버들은 중풍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아버지를 모시면서도 세탁장에서 번 돈을 친정에 송금하였고, 삯바느질로 번 돈을 식비에 보태었습니다. 세탁장에서 사진결혼의 내력을 들은 버들은 달이를 가슴에 품고 사느라 자신에게 냉랭한 태완에게 서운함을 삼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뜬 시어머니 산소를 찾은 날, 버들은 남편으로부터 달이 이야기를 듣고서야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태완은 맏아들 정호를 얻은 뒤 독립 운동의 의의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유랑민으로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힘든 시간을 견디느라 고단했던 시간을 돌려놓는 일은 조국의 독립이라 여겼습니다. 자식들만큼은 독립된 나라에서 마음 편히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역사는 하와이로 이주해온 한인들 사회에서도 뚜렷했습니다. 태완은 독립단 사무직원으로 활동하며 영역을 넓혀 중국까지 가서 항일 운동에 가담하였습니다. 의병 활동을 하다 세상을 뜬 아버지, 일본 경찰에게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오빠를 둔 버들은 대의를 품고 떠나는 남편에게 살아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딸만 다섯을 둔 덕삼은 아들을 얻기 위해 하와이로 와서 노동하며 지냈습니다. 사진결혼으로 홍주를 아내로 맞은 덕삼은 아들 성길을 얻은 뒤 아들과 함께 고국으로 떠났습니다. 홍주는 병든 시모를 봉양하는 덕삼의 전처를 생각하며 아들을 떼어 보내고 버들과 함께 세탁소 일에 매달렸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빈자리를 채우기라도 하듯.....솜씨 좋은 버들과 일감을 몰아오기를 잘하는 홍주와 함께하는 시스터즈 런드리 사업은 조금씩 번창해 갔습니다. 남편을 잃고 함께 지내던 송화는 딸을 낳은 뒤 무병이 더 심해져 고국으로 돌아가고, 딸은 버들이 친딸처럼 키우며 가슴에 품은 펄을 대신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해, 나답게 살기 위해 춤을 추며 살고 싶은 펄은 뒤늦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전도유망한 오빠의 돌연한 군 입대 결정으로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굳힙니다. 하와이에 온 세 엄마를 의지하며 생활해 온 펄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 키워준 엄마, 함께 지내게 해 준 엄마의 삶을 떠올립니다. 새로운 세상과 만나 성장하는 자신을 그리며 꿈을 찾아 어진말을 떠나 하와이로 이주한 엄마들은 갖은 풍파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고 살아갈 것입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내려는 이들의 생명 의지를 톺아보며 펄은 오롯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섰습니다.

    ‘선택한 내 삶의 여정에 축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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