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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0년 3월
평점 :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 불혹(不惑)이라는 나이 마흔은 인생의 무게를 더한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도 중년에 편입되는 나이 마흔이 주는 씁쓸함은 지금껏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회의하는 물음을 던진다.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나이를 먹으며 마흔을 넘기고 오십을 넘긴 지금은 온전한 정신으로 건강하게 잘 살다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살아온 시간이 쌓여 나를 형성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끔은 정해진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에 휩싸이는 자신과 맞닥뜨리며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은 수짱은 어린이집 조리사로 일한 지 3년이 지났다. 허드렛일을 담당하고 있지만 음식 재료를 꼼꼼히 손질하며 아이들에게 산지식을 전하며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내고 있다. 마흔 해가 되도록 혼자 살면서 결혼과 육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배재하지 못한 채 지내서인지 그 나이에 드는 고민이 있다. 수짱과 만난 자리에서 마흔 다섯 살 사와코는 내 인생을 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 대화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청춘 시절의 패기는 점점 사라지고 곡예를 하듯 위태로운 현재를 직시하며 위축되는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한 번도 걷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막연한 불안을 낳고 불안은 긍정적인 생각을 갉아먹는다. 수짱은 이대로 시간이 흘러 의지가지없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발견하며 기분 좋아질 일들을 찾아 언행으로 옮겼다. 그녀의 생일에 미도리 선생은 젓가락을 선물하며 맛있는 것 먹으며 행복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고형식을 섭취하기 힘든 직원들에게 수프를 끓여 전하며 사랑을 전하였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찾은 수짱은 옆 침상에 앉은 환자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를 지켜본 병원 직원은 그녀에게 경청하는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고 경청 자원봉사를 권하였다. 순식간의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쌓여 이뤄낸 공과가 일생을 형성한다며 조바심내기보다는 지금 나를 변화시킬 일들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3년의 공백 끝에 우연히 재회한 서점 직원과 차를 마시고 중화요리를 나누며 일순 설렘에 빠지기도 했지만 유부남인 그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였다.
여러 형태로 발현돼 영향을 미친 지나온 시간은 그리움과 회한의 대상이다. 별 일 아닌데 눈물이 나면서 애틋해지는 시간이 많아지는 중년은 하고 싶은 일보다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함을 나이로 일깨운다. 추억을 반복해 더듬어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소중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이 듦을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할머니가 되어버린다면 안타까움이 더할 수 있으니 품위 있게 사는 할머니가 되자고 마음먹으니 홀가분해진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 또 하나의 세계를 살아갈 수 없으므로 내게 주어진 시간 스스로 생각한 대로 움직이며 지내야할 이유가 있다. 스냅완두콩 안에 각기 다른 방을 부리고 사는 콩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선생님 구순을 추가하러 도쿄를 찾은 아버지는 딸과 조촐한 음식을 나누며 사는 이야기를 나눈 지 오래지 않아 이승을 뜨고 말았다. 급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은 지금 나답게 살아갈 일들을 찾아 나서기에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마흔임을 일깨운다. 언젠가는 피안의 세계로 떠나며 미련이 덜 남게 결이 고운 이들과 교감하며 이 순간 정성을 기울이며 살다 보면 긍정적인 변화의 씨앗은 싹을 틔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