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태어나서 - 나의 살아온 이야기
정주영 지음 / 솔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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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느냐에 따라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가난하고 학벌이 없어도 큰 사업을 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서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할 큰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랐을 것입니다. 한국의 산업화와 국제화를 이루며 한국 경제발전을 선도해 온 정주영 회장입니다. 그는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공을 떠오르게 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서, 능력이 안 되어 등 어떤 일을 못할 이유는 곳곳에 자리하여 도전하려는 마음까지 갉아 먹곤 합니다. 한눈 팔지 않고 죽자 일하여 쌀가게 주인이 되었고, 열심히 일하여 자동차 정비소를 차리게 되었고, 정신없이 일해 건설 회사를 만들어 오늘의 현대 기업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몇 차례의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마음먹었던 일을 이뤄내는 근간에는 긍정적인 다독거림이 함께했습니다.

 

   숱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특별한 인연을 맺고 서로에게 깊이 침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의 신용도 없는 사업가가 만든 계획서만을 믿고 정부가 지불 보증하는 용단을 내린 아산과 박정희 대통령의 인연은 자본과 경험이 없는 사업가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악조건 속에서도 계획한 일을 새롭게 시작할 물꼬를 틔워준 인연은 경제 개발이라는 정책과도 부합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중동의 미개척 지역에 나가 안간힘을 다해 외화를 벌어들여 나라의 어려운 외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현대건설을 설립하여 중동 주베일 산업항공사, 서산 방조제 건설 등 국내외 많은 역사적 사업을 주도하며 세계 시장에서 외화를 획득하는 일에 주류를 형성하며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아산은 물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인적 자산은 한 민족의 생명력에 진취적인 정기를 불어넣는 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는 황무지 같은 폐허에서 뚜렷한 성과물을 내놓기까지의 수고는 불굴의 의지가 담보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생각하는 불도저로 남보다 열심히 생각하고 남보다 치밀하게 계산하여 계획을 수립한 뒤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힘은 용기와 신념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경험도 없이 미지의 공사를 강행하면서 겪는 정신적 고초를 감내하며 대형공사를 수주하며 시공 능력을 드러낸 가시적인 성과는 믿고 맡길 만한 기업 이미지를 굳혀갔습니다. 인간의 창의와 노력으로 성취하는 발전은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로 자리함을 여러 공사를 수행하며 얻은 아산만의 결론이었습니다.

 

   빈농의 맏이로 태어나 권속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장남의 무게는 어려서부터 근검절약해 온 생활습관을 길러줘 호사스런 생활과는 거리를 두게 하였습니다. 도회지로 나가 노동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 밥이나 실컷 먹고 살자는 현실적인 바람은 품팔이로 어렵게 번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근검절약을 이으며 스스로를 담금질하였습니다. 정직과 성실로 주인의 신뢰를 얻어 쌀가게를 물려받았고, 믿을 만한 청년이라는 신용 하나로 자금을 얻어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은 세계적인 기업인 현대의 아성을 이뤄내었습니다. 낙동강 고령교 복구공사를 시작하여 완공까지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도 끝까지 완수한 신용으로 육이오 동란 후 복구사업을 위한 정부공사를 수주하며 건설업의 위상을 바로 세워 갔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였어도 열심히 생각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은 새로운 생각으로 실천하며 원하는 바를 이뤄가며 성취를 보였습니다.

 

   어려운 이들이 느끼는 차별의식은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남길 수 있음을 강조하며 윗사람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생활 속 자세를 언행에 담았습니다. 날품팔이로 노동하며 생활해온 이력은 사치를 부려 치장하는 일은 부패를 낳을 수 있는 만큼 검박한 생활을 잇는 대신 사회적 취약 계층의 안위를 생각하는 복지 사업까지 확장하였습니다. 아산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신념으로 '우리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설립 취지를 밝히며 1977년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재단은 의료사업, 사회복지 사업, 학술연구 사업, 장학 사업을 수행해 도움이 절실한 이들과 동행하였습니다. 1998년에는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방북하여 평화통일로 가는 남북교류의 물꼬를 틔웠고, 88 서울 올림픽 유치의 주역으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등불로 남았습니다.

 

   형제들 중 유난히 공부 욕심이 많았던 다섯째 남동생은 서울법대에 들어간 뒤 고시 공부하느라 무리했던지 건강을 해쳐 잠시 요양하고 대학원 진학으로 진로를 수정했습니다. 신영은 대학원을 다니다가 동아일보에서 정치부 기자 생활 13개월 후에 경제학 공부를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났지만 불의의 사고로 이승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아산은 능력이 되는 한 아우들을 유학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공부를 시키고 싶은 바람이 컸습니다.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장남이 가족들을 건사해야 한다는 강한 책무를 지고 소학교 졸업이 전부인 상황에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여 유능한 인재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큰 위안과 자랑이었던 아우인 동생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아산은 큰 충격을 받고 상심한 나머지 생애 처음으로 열흘 휴무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나라의 유능한 인재로 제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세상을 뜬 아우를 가슴에 품고 지낸 맏형은 정신영 기금을 내놓았습니다. 이 기금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언론인들의 연구와 저술, 출판, 해외연수와 대학 강의 등을 지원하였습니다. 정신영 기금이 국내 언론인들의 역량 증가와 한국 언론의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기를 기원한 아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사회적 책임과 나눔의 철학을 중심에 두고 기업을 경영해 온 아산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남긴 커다란 발자취를 경험 속에 녹인 자서전을 읽으며 적당주의로 흐르는 자신을 경책합니다. 내세울 만한 경험도 없이 조선 산업에 뛰어들어 숱한 노력만으로 업무를 완수하는 뚝심은 직접 부딪혀 체험으로 얻는 참다운 지식으로 더 큰 에너지로 향상심을 돋우었습니다. 머릿속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커다란 일거리로 확대하는 특유의 감각은 무모한 도전을 낳았고, 무모한 도전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성과를 내는 금강석으로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동경하면서도 선뜻 걸음을 내디딜 수 없는 까닭은 시행착오를 겪는데 따른 수험료를 지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껏 안 해 본 일이기에 한정된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미답(未踏)의 길을 걸어온 아산의 삶을 추모하며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주의로 흘러온 자신을 곧추 세웁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짧은 중년의 고개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며 이웃과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하는 어른으로 자리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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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6-07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