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영원한 선생님!
노쌤 잘 지내시죠!! 벌써 또 한 번의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안부 겸 제소식도 전해요.ㅎㅎ
깜짝 소식! 저는 이번 주에 퇴사를 했어요. ㅋㅋㅋ설 끝나자마자 제주도로 남편과
고양이와 한 달 살기를 떠납니다!
3월부터는 광고 프로덕션 기확실장으로 새롭게 출근하게 되었어요.
제 인생에도 스카웃(?)이라는 것을 받는 일이 생겨가지고 ㅋㅋㅋㅋㅋ
오랜 고민 끝에 이직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옮기는 회사는 광고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감독임과 파디님들이 모여서
재미있는 컨텐츠를 만들어보려고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에요! 가서 또 한 번
열심히 해내보겠습니다. ..............(2021년 2월 12일 카톡 메시지 중)
한 공간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지낸 지 31년 째이다. 많은 이들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한 생활이라 세월이 흐를수록 이별의 아픔은 무뎌지고 만다. 교단에서 지내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때, 제자들과의 인연은 막역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반갑다. 3년 전 제자의 작은 결혼식에 초대받고 난생 처음 청담동 카페를 찾았었다. 광고 회사에 다니며 잠재적인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멋진 동료와 비밀 연애를 끝내고 작은 결혼식을 치렀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서로 힘을 주고 받는 부부는 언제 들어도 좋은 모습이다. 삼십 대 초반의 제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은 관행대로 흐르던 자신에게 에너지를 불어넣는 소중한 시간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딸처럼 인생에 함께하는 벗들이 있어 행복하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농사를 지으면서 철마다 품목을 바꿔가며 장사를 다녔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팔던 어머니는 막차가 끊기면 아는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맏이로서 어머니를 대신해 집에서 동생을 보살피고 밥상을 차리며 지내야 했다. 여명의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김치 볶음에 밥 한 덩이를 펴서 도시락에 담아 학교 가는 길은 신이 났다. 텔레비전과 전화가 귀하던 때라 어른들에게 주워섬긴 이야기를 듣거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하냥 그립다.
‘네가 평소에 무심히 흘려놓은 말들도 내겐 다 아름답고 소중하다.
우리 집 솔숲의 솔방울을 줍듯이 나는 네 말을 주워다
기도의 바구니에 넣어둔다.’
외롭게 지낸 시절 친구와 함께여서 마음은 온돌처럼 따뜻하였다. 십 리를 걸어 오가던 등하굣길은 친구들과 함께여서 외롭지 않았다. 한 동네에 또래들이 스무 명이라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으며 밤새 있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걷던 길에는 이야기꽃이 피어올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일찍 뛰어든 친구, 산업체 학교로 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친구,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친구를 만나는 일은 뜸해지고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내느라 힘에 부칠 때도 있었지만 휴일이면 얼굴을 보며 사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스물을 갓 넘기고 이른 시집을 간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친구들 소식은 뜸해지더니 어느새 뚝 끊어진 철길처럼 연락이 닿질 않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은 살아 랜선으로 이어진 모임에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중년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인생의 가파른 고갯길을 함께하는 벗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좋은 음악을 듣다가 좋은 책을 읽다가
문득 네가 보고 싶어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있지.
그런 날은 꿈에서도 너를 본다, 친구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공유하는 공간이 마음에 자리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결핍의 시간을 견디며 같은 풍토에서 나고 자란 먹거리들을 나눴던 경험은 수십 년의 틈을 메우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중학교 시절 오전 수업을 마치고 반별로 모내기를 나갔던 시절을 떠올린다. 볍씨를 뿌린 모판에서 자란 모가 황금 들판의 풍요를 기약하는 것처럼 우리 우정도 곱게 싹이 트고 익어 나이 듦을 비추는 거울로 자리하게 되었다.
세월과 함께 우리도 조금씩 늙어가는 중년, 연락이 뜸한 상황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말하며 불안함과 초조함을 달래다 전화로 안부를 알게 되었을 때 안도한다. 숲에 스며드는 햇빛의 온기를 전하듯 친구는 그리움을 담아 쓴 편지를 선물과 함께 보내왔다. 갱년기 증후군으로 하루하루가 살기 힘들다는 친구의 말에 깜짝 모임을 만들어 서로를 토닥이며 자정의 시간을 보냈다.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고 차 한 잔을 마시며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예정하기 힘들었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60대의 시간 여행을 상상한다. 만남이 단절된 시대에 함께했던 국내 여행을 떠올리며 횡단 열차를 타고 우리가 함께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한다.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병상에서 보내다 세상을 뜨는 친구들이 한둘 생길 때마다 내일을 기약하기 없는 유한한 삶을 실감한다. 어린 시절 골목길을 누비며 자란 친구들과 학창 시절 친구들이 자꾸만 생각나는 때 저자가 불러낸 우정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나이 들면서 더 기대게 되는 버팀목 같은 친구는 큰 나무의 밑동에서 뻗어나간 줄기 같은 존재이다. 마음 결을 다듬을 새 없이 나무 한 짐을 부려 두고 학교로 향하여야 했던 친구, 부엌일을 도맡아 행하다시피 한 친구 등 궁벽한 시골에서의 생활은 너나없이 고단하였다. 집안에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학업에 열중하며 지역 너머의 세계로 향하느라 잊고 지낸 친구들과의 일을 떠올리며 오늘도 그리움 담은 편지를 부친다. 지금껏 하지 못했던 한마디.
“친구야, 나보다 더 나를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 덕분에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어. 지금처럼 아프지 말고 잘 지내다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