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부모 - 내 안의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셰팔리 차바리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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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3일 딸의 서른 번째 생일경제적 자립으로 독립적인 삶을 사는 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세상에 내 딸로 와 힘들고 지칠 때 힘을 주는 보물!

  서른 돌을 축하해우여곡절을 겪으며 잘 자란 딸과 함께하는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영혼의 동반자로 함께하는 인연에 고마워.’

엄마의 축하 메시지에 딸은,

낳아주고 예쁘게 길러줘서 고마워엄마!’

라고 화답했다.

 

   30년 전만 해도 맞벌이 부부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시기라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느라 무던히도 애를 쓰며 보내야 했다부부는 타고난 기질대로 살며 부모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돌보느라 좌충우돌하며 상충하기 일쑤였다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녀를 양육하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 농사인데 부부는 자녀가 내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바쁘다는 이유로 부모의 뜻에 굴복하는 아이로 키우면서도 무의식이 미치는 영향력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춘기 절정이었던 중학교 시절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딸은 행해서는 안 될 일들을 벌이며 부모 속을 썩였다집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밖에서 해결하며 거짓말을 늘어놓았고후배들을 한자리에 모아 훈계하는 등의 행동으로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적도 있다사춘기 정점을 달리던 딸의 방황은 중학교 졸업 후 자취를 감추고 제자리를 찾았지만 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야 했다대화와 교환 일기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가는가 하더니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함께 관람하며 영화 이야기를 나눴고, 딸의 사소한  행동을 칭찬하며 조금씩 모녀 간의 정을 쌓아갔다. 서로 주고받은 상처와 치유의 과정 덕분에 지금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생 친구로 소통하며 지내니 감사할 일이다.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과거의 행적을 들추기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녀들을 대하자고 마음먹으면서도 그동안 행하던 대로 자식을 통제해 왔다.  자식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말하며 부모의 권위에 복종하고 부모 의견에 순종하는 자식을 그렸다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아이 기질에 맞춰 양육방식을 정하고 아이가 필요로 하는 부모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회한으로 남는다부모의 양육 방식이 양육 철학에 대한 고민도 없이 깨어있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일상에서 무의식이 미치는 영향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는 것임을 재발견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의 오래된 습관과 낡은 패턴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받아들이는 여정이다.’

   이십 대 후반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슬하의 오누이를 키운 어머니는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생활 규범에 어긋나는 언행 단속이 엄중했다통제와 강압적 훈육에 길들여진 습관은 자녀 양육에도 투영되어 부모의 방식을 아이에게 강요함으로써 아이의 영혼을 파괴하였다자녀양육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할 때도 자신에게서 답을 찾기보다는 육아에 신경을 안 쓰는 남편 탓으로 돌리며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동상이몽(同床異夢)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각자 머릿속에 넣고 다니던 자아상으로 서로를 갉아 생채기를 내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부모는 에고에 사로잡혀 권위를 내세우며 아이들을 통제하기보다는 이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해야 함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아이가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도 아이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 일부분이라고 여기며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부모는 아이가 자기감정에 스스로를 내맡기며 자기감정을 견딜 수 있는 깨어있는 유기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아이가 유아기에서부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성장하면서 겪는 단계적 시행착오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을 때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아이와 부모가 눈을 맞추고 대화하며 교감하는 순간을 늘려감으로써 끈끈한 유대를 형성해 갈 때 부모와 자식은 영혼의 동반자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던 아이들은 어느 새 성년이 되어 제 갈 길을 걷고 있다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당위성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의 한계를 수용하기보다는 극복하라고 다그쳤다. 부모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이에게 울분을 쏟았던 부끄러운 시간을 성찰한다 정답에 초점을 맞추고성공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고 표현하며 살아가는 시간을 갖도록 돕는 부모이고 싶다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요함 속에 내면을 이해하고 사색하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자신을 지탱하고 회복시키는 정서적 힘이 자기 안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이끄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중학교 시절 딸의 문제 있는 행동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극단적으로 분노하며 폭력을 행사했던 적이 떠올라 괴란쩍어진다.

 

   급속도로 다변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복합적인 요구를 이해하고  예측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부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자유를 주고아이에게 부모의 생각을 따르도록 부탁해야 한다부모로서 아이가 주요 규칙을 어겼을 때에는 단호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아이가 유연한 규칙을 어겼을 때에는 타협이나 수용으로 아이를 대해야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부모는 행동의 근원이 되는 감정을 조절하여 적절히 행동하는 습관이 형성될 수 있도록  아이를 지켜봐야 한다.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며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양육 환경 조성은 부모와 자식의 성숙한 관계 유지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관행대로 움직이며 살기보다는 깨어있는 부모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고요한 시간 속에 내면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에게 안부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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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온다 비룡소의 그림동화 297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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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텁지근한 날은 계속 되고 장맛비를 예고하던 기상청 뉴스는 권위를 잃고 만 날, 가뭄으로 타 들어가는 작물들에게 기쁨을 줄 생명의 빗줄기는 쉬이 내리지 않는다. 습도가 높은데다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니 아이들은 숨을 쉬기도 쉽지 않다며 너스레를 떤다. 소나기라도 내린다면 좋겠지만 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바람을 타고 날아 가버렸다. 밤중이라도 비가 내리기를 바라며 여름이 성큼 왔음을 알리는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동네 아이들과 함께 더위를 피해 물장난을 치며 놀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변변치 않은 시절 동네 아이들은 바가지에 물을 퍼 담아 서로를 향해 물을 뿌리며 신나게 놀았다. 하루에도 수차례 손빨래를 해야 한다며 자식들에게 욕을 퍼붓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엄마들의 고함 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달리며 놀다 지치면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널찍한 소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피하였다. 정적을 참지 못하던 친구는 어른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를 부르며 흥을 돋우면 옆에 앉은 아이들도 함께 노래하며 여름을 보냈다.

 

   뜨거워진 지구촌 곳곳에서는 폭염으로 죽어가는 동물들이 늘고 온열질환으로 숨을 거두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여름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으며 3악장으로 이뤄진 여름이 온다그림책을 찬찬히 본다. 음악적 기호의 의미를 담아 빠르지 않게 시작되는 1악장에서는 잔잔하게 이어지다 정신없이 몰아치며 강렬함으로 선회한다. 열기로 가득한 대지의 열을 낮추고, 더위를 식히기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시원한 물줄기를 쏘는 아이의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청량하게 한다.

 

   여름이 온다는 신호탄은 물 풍선을 쥔 아이가 물싸움을 시작하며 크레용의 굵은 재질과 콜라주로 신나는 물장난으로 이어진다. 2악장과 3악장으로 이어질수록 리듬은 빨라지면서 아이들의 물총 싸움은 고무호스를 이용해 길게 뻗어나가는 물줄기로 온 마당을 적시며 끝이 났다. 신나게 물놀이하는 아이들 곁에 있던 강아지도 물줄기를 맞으며 꼬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낸다. 길어진 여름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동심으로 돌아가 더위를 피하며 즐기던 추억을 반추한다.

 

   2~3악장으로 넘어갈수록 악보의 선과 물방울의 점이 어우러져 흥을 더하며 강렬한 태양을 덮은 구름덩이가 폭우를 몰고 올 것처럼 보인다. 뜨겁게 달군 열기를 식히는 빗줄기는 바람과 함께 몰려와 아이의 주황색 우산을 날려 버린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우산은 뒤집어진 채 살을 드러내 자리를 피한 아이들은 한여름의 폭풍 속 찰나의 고요에 젖는다.

 

  3악장이 끝난 후 물놀이하던 아이들도 무대 위로 올라가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며 여름이 왔음을 알린다. QR코드를 재생해 음악을 들으며 그림책 속 여름은 낯익은 풍경으로 정감을 더하는 그림책은 듣고 보는 묘미를 즐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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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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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의 다섯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는 잘도 흘러가지만 텅 빈 가슴 속 헛헛함을 달랠 길은 없다. 짧은 생을 분주히 살다 간 혈육을 떠나보내고 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49일 동안 기도하느라 피폐해진 육신을 다잡아야 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기를 반복하는 일상은 하루를 견디며 사는 일에 무게를 실어 주었고, 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때는 어김없이 돌아와 밥을 먹고 움직여야 하는 시간은 지속되었다.

 

   나의 의지와 생각과는 다르게 소용돌이치는 사건에 지배를 받으며 휘청거릴 때 한 권의 책은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노화는 여러 질병 요인을 안고 살아가면서 느닷없는 복병을 만나 병원 출입이 잦아지다 소멸해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생로병사의 고통 없이 일생을 보내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아 인생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연한 사고 없이 과거에 했던 일들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생각이 불변의 금과옥조인 것처럼 말하는 직장의 60대를 보면서 묵언 수행하듯 책을 읽는다. 50대 중반이지만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사유하며 행동하는 실천가, 주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책을 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제목은 벼랑 끝에 매달려 추락하지 않으려는 내면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책을 구매하였다. 방송에서 본 저자가 너무 깡말라 몹쓸 병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그동안 몸을 잘 돌보지 않은 탓에 기력이 쇠해져 몸에 축이 많이 났다니 건강 회복을 위해 너무 무리하면 안 될 듯하다. 인터뷰어 지승호가 철학자 강신주를 10년 만에 다시 만나 인터뷰이의 육성을 온전히 담아낸 책에는 그 전 발간된 책과 중첩되는 부분도 있지만 명쾌한 논리로 무디어진 감각을 일깨운다.


   풍토병을 넘어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를 살면서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또 다른 전염병 창궐을 우려하는 때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생각한다. 매번 새롭게 변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유일한 제체인 자본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공공해질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각자 등불을 들고 타인을 비춰주는 사람으로 무명의 진리를 깨쳐 삶의 주인으로 살며, 사랑과 연대로 이기적 개인을 탈피하는 실천으로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 한다. 자본이 원하는 것을 경쟁적으로 습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유한 소수가 가난한 다수를 영속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을 주관적으로 보면서 사람의 문맥을 읽을 필요가 있다.

 

   자본의 이윤을 챙기기 위해 인간의 생계뿐 아니라 삶 자체를 위기에 노출시킬 수 있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민의식의 연대는 절실하다. 무고한 청춘들의 목숨을 앗은 세월호 참사의 주범은 이명박 정부의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을 통과시킨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있음을 밝힌 부분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자본의 극대화를 위해 운항 선령 제한을 10년 더 늘려 30년으로 정한 법안을 통과시킨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이다. 상전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은 촛불혁명의 미온적인 의미를 들추며 진정한 혁명의 의미를 밝힌다. 명령하는 자가 동시에 명령을 듣는 자이며, 역으로 명령을 듣는 자가 동시에 명령을 하는 자여야 진정한 혁명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강남 좌파와 여의도 좌파의 권력욕을 새긴다.

 

   지난밤 행복학교 관련 교육과정 소식을 담은 관리자의 블로그에 실은 글을 보면서 교육자로 안일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는 글을 썼다. 이튿날 책을 읽고 기록하려는데 인터넷에는 어제 봤던 내용의 관련 광고가 창에 뜬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봤던 핵심어들이 또 다른 빅 데이터로 축적되어 마케팅 대상으로 시장이 편재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자신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않기 위해서라도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고 활자 중심의 책을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약자를 지배하지 않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의미를 새기기 위해 사유하는 철학을 주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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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장석주 지음 / 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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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아파 쉬었다 가는 주말, 감기 기운이 있어 외출은 삼가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낸다고적한 시간 미러두었던 책 한 권을 빼들었다다독 장서가로 이름 있는 전업 작가의 <<가만히 혼자 웃은 싶은 오후>>를 읽으며 한가로운 시간이 주는 선물에 빠져들었다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의 지혜가 자라지 못한다는 명심보감의 구절을 들지 않더라도 살아갈수록 경험의 소중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하는 든든한 바탕으로 자리한다겪을 수 있는 다채로운 경험에서 떠올린 소박한 생각들을 좇아 나서는 즐거움에 기쁨은 더했다사유의 촉매제 기능으로 자리한 독서 관련 이야기에 숱한 경험들을 녹여낸 산문집은 숨은 보석을 찾아 떠나는 보물찾기처럼 흥미로웠다.

 

    태어남과 동시에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남은 시간을 가늠키 힘들지만 언젠가는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은 불가피한 사실이다인생의 후반부의 정점에 이른 저자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현재의 시간을 중시한다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계절의 순환에 감성적 반응을 보이며 늘 책을 읽고 뭔가를 끼적이며 전업 작가의 길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간다. 20대 전반을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책을 읽고 신간을 찾아 서점을 순례하며 살던 일들은 작가의 등용문인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시와 문학평론에 당선하는 기쁨을 낳았다공인받은 작가로의 삶이 고독한 길일진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책의 행간을 넘나드는 일을 좋아하였다.

 

    보잘것없는 현실의 벽을 잊고 책 속에 몰입하여 살아갈 때작가는 니체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니체는 남을 흉내 내며 살기보다는 자기의 척도를 갖고 살 것과 항상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사람으로 살 것을 전하였다제 삶의 주인으로 사는 데 필요한 일상의 철학은 타인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의연함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 것인지 고민하며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고 사는 것이다. 1년 연애하고 스물세 살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지만 생활인으로서 잘나갈 때에는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일이 틀어지고 난 뒤부터 여러 일로 부부가 삐걱거릴 때가 많다. 14년간 청하출판사를 운영하며 문학작품을 출간하는 출판사로 위상을 찾을 무렵 대학교수가 쓴 소설을 출간한 그는 1992년 10월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죄로 2개월간 수감됐다 출옥한 후 출판사를 접었다.

 

   제주도로 내려가 머리를 식히며 겨울을 나던 제분공장 옆방에서 출판사를 정리하는 결단을 내렸다밀고 왔다 밀려가는 일을 반복하는 파도소리에 헛헛함을 달래며 풍찬노숙의 삶을 결정하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활자중독자로 살아온 덕분에 문학에 심취하였고 닥치는 대로 읽은 책 덕분에 편집부에서 일하며 책을 출간하는 일을 주로 했다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 시시포스의 노동처럼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일은 작가의 천형인 셈이다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많은 글쓰기를 지속하는 일은 오롯한 정신으로 자신을 관리하는 일을 전제로 한다열다섯에 처음으로 시를 쓴 이후로 필생의 업으로 삼는 작가의 길로 나선 저자는 여명이 시작되기 전 새벽 4시 만물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때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해 청송 사과 한 알을 아침으로 해결하고 정오까지 글을 쓴다조직 생활에 얽매이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의 일을 잇는다.

 

   ‘바깥의 오탁과 내 안의 번잡함이 뭉치고 쌓여 독을 뿜고그 독으로 말미암아 병이 생기는 것이다.’

폭염을 피해 쉬고 싶을 때에는 서운산 숲으로 들어가 책을 꺼내어 읽고 이도 아니다 싶으면 흙의 탄성을 즐기며 걷는다문명의 이기에 직립 보행하는 이점을 뺏기고 사는 현대인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몸 전체를 움직이며 숲을 걷는 시간은 작은 근심이나 걱정을 가라앉히고 자기 정화에 이르는 시간이다바람과 풀구름과 해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는 출판사를 접고 수졸재로 내려와 사는 목가적 삶에 만족도가 커 보인다계파나 조직을 안 만들고 무리에 섞이지 않은 채 외톨이로 사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닌 하루키는 오전 4시부터 10시까지 원고를 쓴 뒤 10킬로미터를 달린다포스터모던 문학을 즐겨 읽으며 감수성을 키워 온 하루키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며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공허한 인간들의 자아 찾기를 그려내었다단순하게 살기를 바라는 저자는 시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하루키의 일상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생명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

    불가능한 여러 겹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책 약 5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장서와 더불어 다양한 언어들에 대한 고서들을 소장해 온 움베르트 에코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저자 역시 좋아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은 편이라 책 읽고 쓰기명상산책여행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작가의 삶은 4음절의 현재진행형 동사에 융해되어 생기를 더한근심 걱정 없이 살며 만년에는 제주도에 작은 서점을 내고 여행자들을 맞고 싶은 꿈을 꾸고 사는 작가다죽을 때는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은 바람까지 섞어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하며 조촐한 일상을 보내는 작가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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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 : 미래의 가치 편 - 대전환, 청년, 기후, 신뢰 명견만리 시리즈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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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19 감염병 유행이 불러온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불신은 애꿎은 미움을 낳기도 하였지만, 주변의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어렵게 이어온 일상마저 무너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20대 후반의 청년은 여행업계 파산으로 일자리를 잃어 단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며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993년생인 청년은 중국 유학을 1년 다녀온 뒤 대학을 졸업한 뒤 어학 성적 덕분에 직장에 들어갔지만 110개월을 끝으로 취준생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를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생계를 위협받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실질적 혜택이 있어야 한다.

 

   학부를 졸업한 해, 안정적인 직장의 정규직으로 33년째 일하며 은퇴를 생각하는 86세대로 구직 플랫폼을 찾아 취업 준비에 매달리는 청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삼포를 넘어 오포 세대라는 부정적 신조어 일색인 밀레니얼 세대가 경제 활동하며 자립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회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기회 불평등의 악순환을 끊을 만한 사회안전망 확충은 절실하다. 개인 방역 수칙을 지키며 내가 잘못하면 나와 연결된 사람들도 함께 위험해진다는 생각은 연대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실업 문제는 내수 경기를 위축하고, 수출 부진으로 투자 둔화를 초래해 국가 부채가 증가하는 사회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의 성공 논리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정책 입안자들의 의견이 눈길을 끈다. 삼성 반도체 산업에 국가 경제가 크게 의존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공급자의 구미에 맞는 조건을 채우느라 분주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탐색하는 시간을 청년들에게 주기 위한 공공의 지원은 절실하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복지 국가의 기본적 원칙이 준수되어 국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쌓일 수 있는 국가의 공적 역할은 미래를 살아갈 이들의 보호막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술 개발 못지않게 필요한 공감 능력은 혁신의 토대로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능력으로 귀결된다.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여 사람들이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정부의 공적 기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개발 등으로 환경이 파괴돼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인간 사회로 들어와 인간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질병을 일으킨다. 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파된 코로나19는 이동수단의 발전으로 세계적인 유행 감염병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편리함과 실용성을 내세워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탄소 배출량은 쌓이고, 그에 따른 온실 효과로 지구의 온도는 올라간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C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상승 폭을 1.5°C로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제로인 걷기로 자동차 중심의 생활에서 보행 중심의 생활로 전환하는 일은 우리를 위한 길이다.

 

   혈연이나 지연으로 뭉치는 연고주의가 21세기에도 지속되는 한국 사회는 코로나19 이후 가족과 친척, 이웃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졌지만 대인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는 유리하고 그렇지 못한 약자에게는 불리한 구조로 움직이는 법체계를 보며 많은 이들은 공공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을 불신한다. 불신의 골이 깊은 사회에서 공적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자정이 필요하다. 공적 기관이 정치권력을 비호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일을 막기 위해 깨어 있는 의식으로 무장한 시민들은 권력의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국책사업을 무분별하게 시행하기 전, 시민들과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공공토론회를 수차례 열어 공익에 부합하는 일인지 충분히 살필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세금이 낭비되는 일 없이 필요한 일에 쓰여 믿을 만한 정책을 편다는 말이 퍼져 나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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