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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지역 색이 강하고 동향인의 연대가 강한 지역에서의 직장생활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먹거리 마련에서부터 음식 취식까지 그들만의 범주에 선을 긋고 들어온 사람은 관행을 따라야 하는 불편함이 컸습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과 짧은 교제 후 결혼한 뒤 지금 딛고 있는 공간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기민하게 적응해야했습니다. 어떤 집단의 경계 밖으로 내쳐지는 일은 두려운 일이고, 그 경계 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내키지 않은 일도 하면서 지냅니다.
음식 솜씨가 있는 큰 형님의 눈치를 보며 미역을 천일염에 빨아 양념에 무쳐 내 놓으니,
“이젠 남해 사람 다 되었네. 짭조름한 미역무침 맛이 좋아.”
칭찬을 들었지만 달갑지 않았던 이유는 타향인은 동향인의 손맛을 따를 수가 없다는 편견이 녹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차별에 취약한 집단을 비하하는 영상이나 방송은 잠재된 편견을 표출시키는 효과가 커 차별을 촉진하는 힘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인, 흑인, 지방인, 성소수자 등을 개그 소재로 삼아 이들을 희화화하여 웃음을 조장하는 분위기는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머를 통해 누군가를 비하하고자 하는 욕망은 계속 표출되고 증폭될 수 있음을 알고, 불온한 웃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용기는 미디어 수용자의 몫입니다. 소수자를 웃음거리로 비하하는 차별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문제화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골적으로 상대를 차별할 때에는 누구든 쉽게 인지하여 비윤리적이라는 점을 수용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책임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개인에게 있다는 능력주의는 능력 미달의 특정인은 불이익을 당연시하는 관행을 낳습니다. 공정한 평가 규칙을 정할 때 평가 기준은 우선적으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반 편성으로 학습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우열반 편성이 패자 모멸을 배제한 채 승자 독식을 부추겼습니다.
‘장애인의 기본권인 이동권을 보장하라’ , ‘장애인도 시민이다’
구호를 외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 보도를 봤습니다. 2001년 1월 22일 장애인 부부가 역귀성 하다 리프트에서 추락, 사망한 오이도 참사를 기점으로 장애인이 겪는 굴곡진 삶을 떠올렸습니다.
나에게는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는 넘어 설 수 없는 장벽이 될 때, 우리가 누리는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기득권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생활해 왔음을 반성하고 상황이 다른 데서 오는 소수자의 불이익을 떠올립니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생각지 않고 지내온 시간,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알기 위하여 나와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며 소통하는 가운데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이들과 연대하는 범시민적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주 노동자는고용허가제로 마음대로 고용주를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국인과 차별 없는 대우는 요원하여 보입니다. 불평등한 사회가 고단한 이유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획일화된 기준을 똑 같이 적용함으로써 세상이 평등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 요소가 큽니다. 집단의 차이를 무시하는 중립적 접근은 일부 집단에 대한 배제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알고, 생명적 유기체의 다양성과 차이를 염두에 둬야 합니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질 때에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 가치를 포괄적으로 담아 해법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전환할 때,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습관과 태도를 돌아보고 이를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국적, 성별, 장애, 나이, 종교, 가족상황, 학력, 지역. 성별정체성 등 차별 요소는 도처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차별 요소만큼 차별의 양상 역시 다양합니다. 따라서 차별을 일률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각각의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대응으로 해결해 가야 합니다. 입법화되지 않은 차별금지법 제정만으로 차별을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차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사회 내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도입해야 합니다. 법적 대응보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이 더 바람직합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실상은 장애인이 만족할 만한 실효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개별성을 수용하고 차별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와 대화를 통한 사회적 인식 개선은 절실합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복합적인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은 안 된 상태이므로 특정 대상을 차별한 경우에는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가해자에게 배상책임을 물어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법적 조치가 병행되어야 차별 받는 이들이 줄어들어 평등 사회로 진전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