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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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서운 바람도 잦아들고 얼어붙은 땅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뿜어내며 따스한 봄기운을 몰고 온다. 뒤란에 서 있는 밤나무 아래에는 수선화가 자라고 있어 봄이면 노란 빛깔의 꽃들로 사위를 밝히며 은은한 향기를 뿜어냈었다. 나이 들어 얻은 병으로 걸음이 느린 할머니는 봄이면 수선화를 보고 싶다며 함께 가보자며 나선다. 할머니를 부축해 뒤란으로 가는 길이 몇 차례나 계속 될는지 가늠키는 어렵지만 할머니는 시절 따라 피었단 지는 꽃들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이듬해 할머니는 먼 길을 떠났고 가족은 아랫마을로 이사를 내려와 수선화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손녀를 아끼고 좋아했던 할머니 무덤가에는 수선화를 심어 저 세상에서도 노란 빛으로 눈인사하며 지냈으면 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빛깔을 드러내며 향기를 뿜는 꽃들이 있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유기적 생명체에게 고운 눈길을 보낸다. 봄의 첫 신호로 여겨지는 스노드롭 꽃무리, 그 옆에 피어나는 수선화, 부활절과 관련된 프림로즈는 봄기운을 흠씬 전한다. 연못가 수선화 한 송이로만 남게 된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채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 청년의 허영을 상징한다. 화가는 아름다운 에코를 그려넣어 그녀가 나르키소스의 관심을 끌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수선화 육종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수백의 교배종과 재배종은 분화되어 품종이 다양해져 계절을 달리해 풍성한 수선화를 볼 수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초여름으로 들어설 때, 장미 넝쿨은 노랑, 분홍, 하양 꽃으로 피어나 잔가지와 함께 정원에 놀라운 자태를 선물한다. 겹겹이 깊어져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을 홀리는 장미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상징물로도 가치를 지닌다. 아름다움을 빨리 거두어가는 장미의 습성은 플로리분다 품종 개량을 촉진해 고혹적인 순간을 오래 즐기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였다. 다양한 꽃말을 지닌 장미는 사랑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는 만큼 직관을 성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권력 유지하는 데 이미지의 중요성을 간파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보석으로 만든 장미 목걸이를 선택해 새로운 튜더 로즈를 왕권강화에 이용했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는 라벤더는 여러 시대에 걸쳐 저항의 상징으로 적응력 좋은 식물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가 원산지인 라벤더는 건조한 날씨와 뜨거운 태양 아래 선명한 색깔로 물들어 매력을 더하고, 다양한 형태로 온갖 질병에 처방될 정도로 치유 능력이 뛰어나다. 피나무 꽃은 꿀의 공급원으로 여겨질 정도로 독특한 향기로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독일에서는 금지된 사랑과도 연결되어 있다니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짐을 알 수가 있다. 한여름 숲을 찾아 걷다보면 잔가시를 달고 서 있는 보랏빛 엉겅퀴를 흔히 볼 수 있다. 자기 땅을 빼앗으려는 것들에 끈질기게 저항하며 자기 땅을 집요하게 지키는 엉겅퀴는 황폐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오래된 귀족 가문들을 상징하는 엉겅퀴는 귀한 생명으로 가치를 지닌다.

 

   태양이 가장 밝은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는 뜨거운 여름 열정의 표상으로 자리한다. 태양을 바라보며 동에서 서로 천천히 회전하는 습성 때문에 해바라기는 정절과 기독교적 헌신의 상징으로 변해왔다. 빈센트 반 고흐는 프로방스지방에서 진노랑으로 빛나는 해바라기 들판을 보고 해바라기연작을 낳아 고흐의 사후 대표작으로 남았다. 초록 들판을 진홍빛으로 점점이 수놓인 양귀비는 잠깐 피었다 진다. 수면을 돕고 통증을 완화하는 긍정성을 띠는 양귀비는 아편의 고통을 낳기도 하여 중독성을 경고한다.

 

   자연의 변화와 함께해온 저자는 가족과 함께 정원의 식물들을 돌보며 삶을 가꿔왔다. 꽃을 좋아하는 가족들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꽃병, 단지 등을 챙겨 다채로운 식물들과 함께하며 꽃들이 실어 나르는 놀라움에 빠져들었다. 봉오리를 맺고 터뜨려 활짝 피었다 스러져 땅으로 사라지는 꽃들은 생명의 순환을 일깨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아름다운 꽃들도 머지않아 떨어지고 우리 역시 쇠한 기운으로 지내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덧없음에 갇힐 수 있다. 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한 떨기 꽃들을 보며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길가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 깃든 생태의 의미를 발견하며 꽃들의 잔치에 나서 활기를 찾길 바라며 마음은 라벤더 밭으로 향한다

 

https://blog.naver.com/nopark99/222112403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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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랑 - 제1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26
조우리 지음 / 사계절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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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뇌와 인내에서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보이기 위해서 있다.’

   헤세가 남긴 사랑의 명언은 고뇌로 가득한 세상을 견디는 힘으로 작용한다. 여러 유형으로 다양성을 드러내는 사랑은 유일한 서사로 사람들 가슴에 켜켜이 자리한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 추억 속 공간을 밟는 이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밋밋한 삶에 윤기를 더하는 서글픔일 것이다.

 

   소설<<, 사랑>>은 뷰티 유튜버를 꿈꾸는 열여덟 살 고등학생인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즐겨 찾는 오픈 채팅방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사랑은 같은 학교 2학년인 ''을 만나게 된다. 온라인 모임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숨긴 채 스스로를 포장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이면의 세계를 드러낼 수가 있다. 낯선 이들과 만나 관심사를 말하며 어색함을 완화해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때, 근심을 풀기 위해 들른 화장실에서 사랑은 피할 수 없는 생리 현상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꾸미지 않는 솔직함으로 주변을 편안케 하는 솔이 사랑의 근심을 덜어준 일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타투를 배우며 타투이스트를 꿈꾸는 열아홉 살 솔은 자신의 길을 찾아 움직인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싶은 일들을 유예하고 경주마처럼 단련된 학생들은 전력 질주해 성취를 드높이려 한다. 동일한 옷을 입고 정형화된 틀 안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한 일반적인 학생들의 범주와는 다르게 생활하는 솔이다. 오프라인 모임 이후 친밀해진 둘의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기보다는 급식소에서도 혼자 밥을 먹고 교실에서도 혼자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둘은 서로를 찾으며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단짝처럼 잘 지내는 둘을 본 학생들은 사진 아래 안 좋은 댓글들을 달며 둘의 관계를 혐오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같은 반 아이는 사랑을 은근히 따돌리며 갖은 폭언과 행동으로 그녀를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들의 압도적인 미움을 견디기 힘들었던 극단에는 솔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 평준화된 사랑에서 이탈한 사랑이라고 둘의 관계를 비난하고 혐오하며 숨통을 죄는 눈들을 피해 벗어나는 길만이 생존하는 길이라 여긴 사랑은 가출을 결심한다.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에 집으로 온 사랑은 상자 안의 카드를 읽으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영국 유학 생활을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엄마는 사랑이 스무 살이 되면 친아버지 존재를 알리려 했지만 그보다 일찍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사랑 영국으로!’

   남들보다는 조금 빠르게 내 인생을 찾으려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둘은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사랑의 아버지 주소 한 장을 들고 용기 있게 나선 둘은 영국에 도착한 첫날 숙소 사기를 당해 노숙을 하게 되었지만 낯선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며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 핏줄이라는 이유로 사랑이 낯선 이들과 가족이라는 범주에 묶여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새롭게 펼쳐진다. 금세 사랑에 빠지기 일쑤인 사랑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솔은 런던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솔은 동성애자로 가족을 떠난 어머니, 어머니의 성향을 닮은 딸을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며 섬세한 손놀림으로 타투를 그렸을 것이다.

 

   유튜버로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랑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찾으려 했던 솔은 영국에서 자신의 포부를 펴기로 했다. 사랑을 낳고 미혼모의 삶을 선택한 그녀의 어머니는 동성동본인 아버지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섯 살에 만난 아버지는 사랑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풀며 혈연 중심으로 맺어진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는 가족의 의미를 일깨운다. 돈을 벌기 위해 파독 간호사로 일하다 비틀즈를 좋아해 영국으로 이주한 할머니는 영국에서 자신의 정원을 가꿔왔다.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져 생명을 더하며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정원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을 용기로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며 사는 어른들을 보며 사랑은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려 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사랑은 거친 땅을 일궈 꽃과 나무를 심고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며, 솔을 향한 마음을 보듬고 지낼 것이다.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통념의 벽을 허물고 소수의 생각이라도 도외시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은 동성애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분위기를 형성해갈 것이다.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성씨의 자식들이 한 가족을 이룬 가정에서 서로 배려하며 지내는 낯선 가족도 용인되는 사회적 상황에서 솔과 사랑도 한 가정을 이루며 운명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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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 : 골든 아워 1~5 세트 - 전5권
한산이가 지음 / 몬스터(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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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건지기 위해 초다툼하는 중증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의 글을 통해 도움이 절실한 곳에서 인술을 펴는 의사의 박애 정신을 배웠는데 소설로 나와 관심이 갑니다. 위기의 넘어선 환자의 회생을 둘러싼 진료 이면의 갈등과 상충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면서도 숭고한 시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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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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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매체의 발달로 독서 인구는 급격히 줄어든 대신에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1인 미디어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눈에 드러나는 결과를 중시하며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과는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눈으로 책을 읽으며 뇌를 거쳐 활성화된 창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읽기와는 멀어져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내는 이들이 쌓여간다. 지금껏 학교를 오가며 십대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독서의 힘을 강조하지만 학생들은 게임을 즐기며 쾌락에 젖을 시간이 부족하다며 아우성이다. 독서의 효능은 알고 있으면서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아이들에게 오늘도 책 읽기를 권하며 책을 소개한다.

 

   사회학자로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배움의 길을 열어주던 교수가 니은 서점을 개점한 지 2년이 지났다.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기에 책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부모님을 여의고 삼거리 노 씨네 막내아들은 니은 서점 문을 열었다. 서점 지기는 부모와 조부모의 뜻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에서 책에 담겨 있는 지식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책과 멀어진 현대인들의 마음을 붙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제도권 교육의 틀을 벗어난 사회인들이 사회생활하며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책과 함께 해결하며 삶의 균형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저자는 니은서점의 북텐더로 나섰다.

 

   10% 할인, 무료 배송으로 바쁜 현대인들의 구미에 걸맞은 대형서점의 온라인 판매방식에 맞서 판매율을 높여야 하는 동네 책방이 숙명처럼 떠안고 가야 할 현안은 쌓여 간다. 대형 서점의 위탁 판매 방식과는 달리 현매 방식으로 서점에 책을 들여 놓아야 하는 입장에서 책 선정은 서점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서점 주인은 자금난의 압박에 시달릴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점 운영 방침을 확실히 했다. 실용서와 참고서와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 대신 인문학 서적만 판매한다는 원칙 아래 쉽지 않은 출발선에 섰다.

 

   책을 팔아야 하는 서점은 종이책의 물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가 살아 숨 쉰다. 망하지 않고 버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날에는 주인이 니은 서점에서 선보이는 책을 직접 사서 공유 서재에 전시하였다. 자신이 읽은 책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처럼 서점의 정체성은 문화적 콘텐츠 활용에서 가늠할 수 있다. 집중력 부족으로 혼자 책 읽기가 버거운 이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는 니은 낭독회는 함께 읽기의 힘을 발현한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니은 하이엔드 북토크는 작자와 독자가 만나 책을 이해하는 장으로 자리잡아갔다.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부드럽게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선 주인은 독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 출세지상주의와 결별하는 수순을 밟아 정체성을 찾아 가는 동안 니은 서점의 띠지는 늘어날 것이다. 바람을 타고 자비의 말씀이 널이 퍼지길 바라는 오색 깃발 타루쵸처럼 니은 서점에 들러 책을 사서 가는 단골들이 늘어나 연신내 동네 책방으로 자리하길 바란다. 북텐더로 활약 중인 90년생들과 함께 운영하는 서점에서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세대와 세대가 소통하는 공간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고민을 나누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책 표지를 보며 책장을 넘겨 목차를 살피는 사이 책의 물성은 설렘 가득한 시간을 선물한다. 낯선 지역을 찾아 가는 여행길, 어딘가에 숨은 듯 자리 잡은 동네책방을 찾아 간다. 골목 안에 자리한 동네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잊고 지낸 골목길에 대한 추억을 불러온다. 느리게 걸어 도착한 서점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며 서가에 꽂힌 책을 보며 읽고 싶은 책을 한 권 사서 나오는 시간은 바깥으로 향하던 마음을 안으로 다잡는 시간이다. 책을 읽고 책 속 인물에게 말을 걸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은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는 데도 유용하다.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 확산으로 방향의 갈피를 잡고 살기 힘든 때일수록 관성대로 살아온 방식에서 벗어나 책을 가까이하며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길에 함께하길 바란다.

 

https://blog.naver.com/nopark99/222093769113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blog/blogMain.do?iframe=viewPost.do&artNo=46123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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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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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끝이 시리도록 맹렬하게 부는 강바람을 맞으며 학교를 다니던 겨울, 어머니는 군불 지핀 방 아랫목 이불 아래 밥공기를 묻어두었다. 찬밥을 먹으면 마음까지 시려진다며 고이 담아둔 밥에 무국을 데워 먹으며 행상 나간 어머니를 기다렸다. 온몸을 꽁꽁 얼려버릴 추위에도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발품을 팔며 이 동네 저 동네로 장사를 다니느라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지만 자식이 배곯지는 않은지 염려하였다. 대가 없이 베푸는 어머니의 사랑 덕분에 오누이는 걱정 없이 생활하며 자신의 일을 도모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가 배고플 딸을 위해 준비한 공기의 밥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실천의 그릇이었다. 두꺼운 양말도 귀하던 시절 발 시릴까 밥을 짓는 가마솥 위에 양말을 얹어 따뜻하게 데워주던 어머니의 마음에는 자비의 감수성이 함께하였다.

 

   죽을 때까지 감당해야 하는 삶의 원초적 진상인 고통을 자기 나름대로 완화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며 존재하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다른 존재에게 폐를 끼치고 있음을 기억하고 나와 타자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아내야 한다. 상대방의 고통을 느끼는 순간 그 고통을 잠시 완화하려는 감정의지와 실천이 사랑으로 귀결된다. 최소한 나로 인해 타인의 고통이 가중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심장을 가득 채울 때, ‘한 공기의 사랑은 아낌의 인문정신을 만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대로 발화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수히 많은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항상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가르침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는 삶을 정정한다. 미래라는 목적을 위해 현재를 수단화하여 재미없는 노동을 계속하며 시간을 소진한다. 어떤 존재, 현상 등을 고정된 실체로 보고 집착하며 무상을 직면하지 못한 채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갈 뿐이다. 수단과 놀이가 일치하는 놀이의 즐거움을 찾아 기적 같은 오늘 하루를 완전히 향유하는 일은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가는 일이다.

 

   모든 개체나 사건은 여러 인연의 마주침으로 발생한다는 싯다르타의 가르침은 다른 것들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연기(緣起)의 의미로 모아진다. 억겁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은 영원하지도 순간적이지도 않음을 알고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아야 한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을진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영원한 행복을 다짐하며 삶의 균형을 잃고 지낼 때가 흔하다. 편견 없이 세상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볼 때면 그동안 경험과 언어적 사유가 발동해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주어진 세상에서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살기 위해 기억으로 가득 차 있는 의식을 비워내야 한다

 

   살다 보면 고유한 독자성을 유지하며 자기만의 계통을 지키기란 쉽지 않음을 통절히 느낄 때가 있다. 타인이 원하는 것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삶의 주인으로 서지 못할 때 회한에 젖곤 한다. 이익과 이해의 관계에 치우쳐 타인이 원하는 것에 복종하는 경우 자유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음 가는 곳에 몸이 가고, 몸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면 좋을 텐데 몸만 가 있을 때가 늘어난다. 부부로 함께 살면서 선배를 만나는 자리에 함께 가자는 남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하여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을 안타깝게 여긴 적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서 상대의 의중은 헤아리지 않고 요구에 응해주기를 바라는 일들이 우호적 관계 증진이라는 목적 아래 이뤄지는 일들이 흔하다.

 

   상대방의 고통을 관심사로 여기며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는 보시는 사랑과 자비행의 결정이다. 상대방을 아끼므로 함부로 부리지 않고, 귀하고 무겁게 여겨 가볍게 대하지 않게 된다. 자신은 배가 고프더라도 상대방의 배를 불리고, 스스로 힘든 쪽을 택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낌없는 사랑을 전하는 이들은 자신의 가진 것을 더 주지 못해 아쉬워하며 자신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사랑은 우리에게 자유를 요구하고, 자유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상대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의무에 충실할 것을 요구할 때가 있다. 아끼는 대상이 기쁨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게 배려하는 일은 상대방을 부처처럼 존중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감수성을 고양하는 공동체로 나아가 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공포를 덜어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모든 생명의 고통을 알고 자기만큼이나 타인의 고통에 아파하는 일이 늘어날 때,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일을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순간이 예고 없이 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한 번뿐인 인생을 고마웠다 인사하며 마감할 수 있기를 발원한다. 김선우 시인의 花飛, 그날이 오면에서 말하는 눈부처를 그대의 눈에서 보며 마주치는 사이 서로를 무시하지 않고 자비를 실천하는 부처처럼 존중하며 아끼는 삶의 진수를 확인하며 기적 같은 오늘을 향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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