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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자의 서 - 개정 완역
빠드마쌈바와 지음, 중암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7월
평점 :
반백의 세월을 보내면서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탄생과 함께 시작된 인생은 끝을 모르는 죽음으로 향하는 길처럼 여겨진다. 지난1월 중순,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혈육을 멀리 떠나보내고 남은 식구들은 비탄과 통한으로 일상을 잇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망자를 생각하며 49일 동안 기도하였다. 밤에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였는데 이튿날 깨어나지 못한 채 영면한 느닷없는 죽음에 고인도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을 것이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노인들 말이 지금처럼 피부로 와 닿은 적도 없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몸을 바쁘게 굴리더니 이승에서의 고단한 몸은 한 줌의 뼛가루로 유골함에 담겨 방문객들을 맞는다. 많은 이들의 부고(訃告)를 받고 조읠ㄹ 표하며 살아왔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혈육이 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현세의 업력에 따라 육도 윤회함을 믿으면서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의구심은 <<티베트 사자의 서>>를 찾게 하였다.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오고 책을 읽을 힘조차 없지만 혈육의 죽음 이후 죽음을 배우며 현세의 삶을 좀 더 잘 살기 위한 방편으로 진언과 함께 실린 글을 읽었다. 경험치 못한 세계로 넘어갈 준비를 마친 망자는 자신이 죽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 힘들다. 집 주위를 맴돌며 사랑하는 가족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망자를 보지 못한다. 중간계에 머물며 환생 처를 찾는 망자는 마치 집을 잃은 자가 낯선 광장에 외로이 있는 것처럼 혼란스런 상태를 잠재울 은신처를 간절히 찾는다. 망자들은 중간 상태에서 49일을 보내지만 업의 경중에 따라 그 시간이 짧아질 수도 있다.
중간 상태에 놓인 죽은 자는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배가 고프지만 먹을 수도 없고 그저 향기만 맡을 뿐이다. 첫49일 뒤에, 가족과 친구들의 행동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임종 전부터 망자를 위해 기도하며 죽은 자가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세상이란 윤회의 바다가 환상이듯
유위의 일체법은 영원하지 못하여.
자성이 공하고 자아마저 없음에도
이것을 모르는 어린애 같은 범부들!’
위의 구절처럼 자성이 공함을 모른 채 지내 온 시간을 반성하며 몸과 말, 뜻의 삼문(三門)의 선업 닦기를 분발해야 함을 일깨운다. 생명이 다해 몸이 바뀜에 따라 청정한 법성의 바르도의 광경이 출현할 때, 두려운 바르도의 험로에서 구원하여 주기를 발원하는 기도로 붓다의 정등각지로 인도하길 염한다.
스승은 죽은 자의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은 모두 스스로 만든 환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려 부정한 자궁 문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당부한다. 수행의 근기에 부합하는 맞춤형 해탈 방법을 단계별로 실어 임종을 앞둔 때, 경을 읽어주면 좋을 듯하다. 생명이 다하는 최후의 순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경전으로 여기는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과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한 일이 죽음과 죽은 후 가야 하는 곳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사람의 몸도 업력에 의해 생겨난 유위법인 까닭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번 태어나면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유한한 시간이 갖는 의미를 천착하고, 소중한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