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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ㅣ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평점 :
한 해의 다섯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하루하루는 잘도 흘러가지만 텅 빈 가슴 속 헛헛함을 달랠 길은 없다. 짧은 생을 분주히 살다 간 혈육을 떠나보내고 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49일 동안 기도하느라 피폐해진 육신을 다잡아야 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기를 반복하는 일상은 하루를 견디며 사는 일에 무게를 실어 주었고, 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때는 어김없이 돌아와 밥을 먹고 움직여야 하는 시간은 지속되었다.
나의 의지와 생각과는 다르게 소용돌이치는 사건에 지배를 받으며 휘청거릴 때 한 권의 책은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노화는 여러 질병 요인을 안고 살아가면서 느닷없는 복병을 만나 병원 출입이 잦아지다 소멸해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생로병사의 고통 없이 일생을 보내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아 인생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연한 사고 없이 과거에 했던 일들을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생각이 불변의 금과옥조인 것처럼 말하는 직장의 60대를 보면서 묵언 수행하듯 책을 읽는다. 50대 중반이지만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사유하며 행동하는 실천가, 주변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책을 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제목은 벼랑 끝에 매달려 추락하지 않으려는 내면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책을 구매하였다. 방송에서 본 저자가 너무 깡말라 몹쓸 병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그동안 몸을 잘 돌보지 않은 탓에 기력이 쇠해져 몸에 축이 많이 났다니 건강 회복을 위해 너무 무리하면 안 될 듯하다. 인터뷰어 지승호가 철학자 강신주를 10년 만에 다시 만나 인터뷰이의 육성을 온전히 담아낸 책에는 그 전 발간된 책과 중첩되는 부분도 있지만 명쾌한 논리로 무디어진 감각을 일깨운다.
풍토병을 넘어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를 살면서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또 다른 전염병 창궐을 우려하는 때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생각한다. 매번 새롭게 변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유일한 제체인 자본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공공해질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각자 등불을 들고 타인을 비춰주는 사람으로 무명의 진리를 깨쳐 삶의 주인으로 살며, 사랑과 연대로 이기적 개인을 탈피하는 실천으로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 한다. 자본이 원하는 것을 경쟁적으로 습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유한 소수가 가난한 다수를 영속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을 주관적으로 보면서 사람의 문맥을 읽을 필요가 있다.
자본의 이윤을 챙기기 위해 인간의 생계뿐 아니라 삶 자체를 위기에 노출시킬 수 있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민의식의 연대는 절실하다. 무고한 청춘들의 목숨을 앗은 세월호 참사의 주범은 이명박 정부의 2009년 해운법 시행규칙을 통과시킨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있음을 밝힌 부분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자본의 극대화를 위해 운항 선령 제한을 10년 더 늘려 30년으로 정한 법안을 통과시킨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이다. 상전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은 촛불혁명의 미온적인 의미를 들추며 진정한 혁명의 의미를 밝힌다. 명령하는 자가 동시에 명령을 듣는 자이며, 역으로 명령을 듣는 자가 동시에 명령을 하는 자여야 진정한 혁명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강남 좌파와 여의도 좌파의 권력욕을 새긴다.
지난밤 행복학교 관련 교육과정 소식을 담은 관리자의 블로그에 실은 글을 보면서 교육자로 안일하게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는 글을 썼다. 이튿날 책을 읽고 기록하려는데 인터넷에는 어제 봤던 내용의 관련 광고가 창에 뜬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봤던 핵심어들이 또 다른 빅 데이터로 축적되어 마케팅 대상으로 시장이 편재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 자신을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않기 위해서라도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고 활자 중심의 책을 가까이 할 필요가 있다.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약자를 지배하지 않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의미를 새기기 위해 사유하는 철학을 주워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