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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부모 - 내 안의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셰팔리 차바리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22년 5월
평점 :
6월 23일 딸의 서른 번째 생일, 경제적 자립으로 독립적인 삶을 사는 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세상에 내 딸로 와 힘들고 지칠 때 힘을 주는 보물!
서른 돌을 축하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잘 자란 딸과 함께하는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영혼의 동반자로 함께하는 인연에 고마워.’
엄마의 축하 메시지에 딸은,
‘낳아주고 예쁘게 길러줘서 고마워. 엄마!’
라고 화답했다.
30년 전만 해도 맞벌이 부부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시기라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느라 무던히도 애를 쓰며 보내야 했다. 부부는 타고난 기질대로 살며 부모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돌보느라 좌충우돌하며 상충하기 일쑤였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녀를 양육하더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 농사인데 부부는 자녀가 내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의 뜻에 굴복하는 아이로 키우면서도 무의식이 미치는 영향력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춘기 절정이었던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딸은 행해서는 안 될 일들을 벌이며 부모 속을 썩였다. 집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밖에서 해결하며 거짓말을 늘어놓았고, 후배들을 한자리에 모아 훈계하는 등의 행동으로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적도 있다. 사춘기 정점을 달리던 딸의 방황은 중학교 졸업 후 자취를 감추고 제자리를 찾았지만 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시도해야 했다. 대화와 교환 일기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가는가 하더니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함께 관람하며 영화 이야기를 나눴고, 딸의 사소한 행동을 칭찬하며 조금씩 모녀 간의 정을 쌓아갔다. 서로 주고받은 상처와 치유의 과정 덕분에 지금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생 친구로 소통하며 지내니 감사할 일이다.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과거의 행적을 들추기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녀들을 대하자고 마음먹으면서도 그동안 행하던 대로 자식을 통제해 왔다. 자식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말하며 부모의 권위에 복종하고 부모 의견에 순종하는 자식을 그렸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아이 기질에 맞춰 양육방식을 정하고 아이가 필요로 하는 부모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회한으로 남는다. 부모의 양육 방식이 양육 철학에 대한 고민도 없이 깨어있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일상에서 무의식이 미치는 영향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는 것임을 재발견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의 오래된 습관과 낡은 패턴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받아들이는 여정이다.’
이십 대 후반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슬하의 오누이를 키운 어머니는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생활 규범에 어긋나는 언행 단속이 엄중했다. 통제와 강압적 훈육에 길들여진 습관은 자녀 양육에도 투영되어 부모의 방식을 아이에게 강요함으로써 아이의 영혼을 파괴하였다. 자녀양육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할 때도 자신에게서 답을 찾기보다는 육아에 신경을 안 쓰는 남편 탓으로 돌리며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각자 머릿속에 넣고 다니던 자아상으로 서로를 갉아 생채기를 내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부모는 에고에 사로잡혀 권위를 내세우며 아이들을 통제하기보다는 이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해야 함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아이가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도 아이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 일부분이라고 여기며 지혜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부모는 아이가 자기감정에 스스로를 내맡기며 자기감정을 견딜 수 있는 깨어있는 유기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가 유아기에서부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성장하면서 겪는 단계적 시행착오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을 때,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부모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아이와 부모가 눈을 맞추고 대화하며 교감하는 순간을 늘려감으로써 끈끈한 유대를 형성해 갈 때 부모와 자식은 영혼의 동반자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던 아이들은 어느 새 성년이 되어 제 갈 길을 걷고 있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당위성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의 한계를 수용하기보다는 극복하라고 다그쳤다. 부모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이에게 울분을 쏟았던 부끄러운 시간을 성찰한다. 정답에 초점을 맞추고, 성공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고 표현하며 살아가는 시간을 갖도록 돕는 부모이고 싶다.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요함 속에 내면을 이해하고 사색하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을 지탱하고 회복시키는 정서적 힘이 자기 안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이끄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중학교 시절 딸의 문제 있는 행동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극단적으로 분노하며 폭력을 행사했던 적이 떠올라 괴란쩍어진다.
급속도로 다변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복합적인 요구를 이해하고 예측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자유를 주고, 아이에게 부모의 생각을 따르도록 부탁해야 한다. 부모로서 아이가 주요 규칙을 어겼을 때에는 단호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아이가 유연한 규칙을 어겼을 때에는 타협이나 수용으로 아이를 대해야 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부모는 행동의 근원이 되는 감정을 조절하여 적절히 행동하는 습관이 형성될 수 있도록 아이를 지켜봐야 한다.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며 진솔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양육 환경 조성은 부모와 자식의 성숙한 관계 유지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관행대로 움직이며 살기보다는 깨어있는 부모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고요한 시간 속에 내면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에게 안부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