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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하루키의 신작 발표는 문단 안팎에서 큰 이슈다. 국내 판권료 경쟁부터, 작품에 대한 해석까지.
<1Q84>에 이어 <기사단장 죽이기>도 문학동네에서 가져갔고 10억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팔리니까.
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의 외도로 집을 나온 초상화 전문 화가의 이야기다. 그는 유명한 일본화가의 집에 혼자 살게 되고, 멘시키라는 불가사의한 이웃을 만나고,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시도하고, 멘시키가 딸이라고 여기는 중학생 여자애의 초상을 그리면서, 비현실적인 여러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류의 환상문학은 하루키의 전문 분야다. <댄스 댄스 댄스>부터 <1Q84>까지, 작가는 정교한 환상 세계를 창조해낸 후 독자를 초대한다. 그러한 세계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뛰어넘는 경험을 하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소설 제목과 같은, 극 중 그림 제목인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실체로 현현한 '이데아'와 '메타포'에 대해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해석하는, 가볍게 두뇌를 쓰면서 독서하는 즐거움도 더해진다. 주인공은 와인과 커피와 홍차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폼잡는데(삐딱하게 보면), 그런 부분까지도 참 하루키답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설은 북아사히의 '이것이 하루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다 들어 있다'라는 평으로 압축할 수 있다. 환상과 경계를 넘나들기, 어디에도 흔들림 없는 남자 주인공(평범을 가장한 비범한), 여자들과의 섹스 등등.
어떤 작가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진정한 하루키 문학의 힘 아닐까.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북케이스, 비하인드북 두 개의 사은품은 소액의 포인트를 내고 구매 가능.
1, 2권을 사면 증정하는 북케이스에 책을 보관할 수 있다. 괜찮은 마케팅.
그러한 작업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친애의 마음을 품는 일이었다. 물론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제한된 장소에서 일시적인 관계만 맺을 ‘방문객‘이라면, 좋게 볼 자질을 하나둘쯤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씀히 닦아준다. 그런 마음가짐이 으레 작품에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1권. 27p
단출한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두고 부엌으로 돌아와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홍차 티백을 우려 식탁에 앉아 마셨다. 이 정도는 해도 상관없으리라. 1권, 63p
그런 새로운 환경에 놓이니 뭔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솟아났다. 그것은 소리 없는 욱신거림과 비슷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무제한으로 주어져 있다. 생계를 위해 내키지 않는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고, 퇴근하고 돌아올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할 의무도 없다. 그뿐 아니라 원한다면 식사 따위는 하지 않고 마음대로 굶을 권리도 있다. 1권. 77p
"호기심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리스크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란 불가능하지요. 호기심이 죽이는 건 고양이만이 아닙니다." 1권. 322p
커피가 나와서 잔을 들어 마셨다. 커피 같은 맛이 났지만 그다지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커피였고, 충분히 뜨거웠다. 1권. 353p
발랄라이카는 보드카와 쿠앵트로와 레몬주스를 3분의 1씩 섞어서 만드는 칵테일이다. 과정은 심픓지만 북극지방처럼 쨍하게 차갑지 않으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어설픈 솜씨로는 미지근하고 밍밍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 발랄라이카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거의 완벽에 가깝게 예리한 맛이 났다. (중략) 물론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연히 멘시키가 솜씨 나쁜 바텐더를 데려왔을 리 없다, 쿠앵트로를 준비하지 않을 리도, 앤티크 크리스탈 칵테일과 고이마리 접시를 갖추지 않을 리도 없다. 1권. 429p
나이가 몇이든 모든 여자에게 모든 나이는 곧 미묘한 나이다. 마흔한 살이든 열세 살이든 그녀들은 언제나 미묘한 나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소소한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 2권. 82p
"하지만 일단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남녀의 관계를 멈추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아."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로 간단하지 않다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것은 힌두교 교회에서 말하는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온갖 것을 숙명적으로 짓밟으며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뒤로 물러나는 법은 없다. 2권. 2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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