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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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라는 제목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한가족이지만 각자의 '동굴'을 짓고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어느 가족은 막내딸의 실종이라는 비일상적인 사건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어떤 의미로 불행한 사건이지만, 그로 인해 동굴에서 나와 소통을 시작한다. 서로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고 막내딸 유지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며 서로를 보듬게 된다. 가족 여러 명의 시선으로 교차 편집되어 '너는 모른다'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명제는 소설의 끝으로 달려갈수록 점점 해체된다.

전작 <달콤한 나의 도시>가 말 그대로 달콤쌉싸름한 한국의 미혼여성의 삶과 연애를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방향이 좀 다르다. '스릴러 요소가 가미된 가족소설' 정도가 맞겠다. 중국 화교의 정체성 문제, (스포일러를 우려해 밝힐 수 없지만) 어떤 사회적인 병리 등에 메스를 들이댄다는 점에서 사회파 미스테리로 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주인공 스무살 혜성의 성장소설로도 읽히는데 이 과묵한, 하지만 가족의 축이기도 한 남자아이의 캐릭터는 꽤 매력적이다. 아빠도 엄마도 누나도 막내동생도 그에게는 그저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이었지만,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는 일어난다.

정이현은 스토리를 구축해 나가는 데 꽤 소질이 있다. 말하자면 다음 챕터를 계속해서 넘기게 만드는, 소설가로서 가장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손에 잡은 지 3시간 여만에, 무척 재미있게 읽었지만, 초중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뒷심이 조금 딸린다고 느꼈다. 아뭏든 그녀의 방향 전환은 꽤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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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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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국내 출간된 이시모치 아사미의 작품 3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라는 제목에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데, 하룻밤 동안 살인을 계획하고 저지르는 젊은 남자의 처절한 스토리가 펼쳐진다. 특히 이 작가의 작품들에 공통적인 건 살인의 모티프가 '정의(正義)' 실현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독자는 살인자의 심리에 일정 정도 공감하게 되고 따라서 공포보다는 연민을 느끼며 책을 읽게 된다.  

살인의 대상인 세 명의 아리따운 소녀들- 그녀들을 죽여야 하는 이유는 양파 껍질 벗기듯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야 하나씩 밝혀진다. 하룻밤에 살인을 해치워야 하는 당위성(소설 초반에 장치되는), 그리고 그 소녀들을 보호하려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므로 스릴은 더욱 커진다. 살인의 과정이 의학적, 범죄학적, 심리적 지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것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니체의 유명한 경구가 마음에 남는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에도 이런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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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0권 박스 1 세트 (빨강) - 전10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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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가치 있는 문학전집 세트로군요, 빨간 케이스가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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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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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스토리텔러~ 요코미조 세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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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물 검역소
강지영 지음 / 시작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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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를 읽고 무조건 손을 들어준 작가. 강지영의 신작 <신문물 검역소>는 참 많이 색깔이 다르다. 전작이 영화 '소름'처럼 어둡고 피냄새나는 추리+스릴러 연작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드라마 '탐나는도다'처럼 발랄하고 엉뚱한 퓨전 소설이다. 아 물론, 여전히 그녀의 소설 속에서 살인은 난무한다. 이번에는 좀더 가벼운 터치로-  

제주의 신문물 검역소라는 관청에 갓 부임한 햇병아리 관리 함복배. 그에게는 어릴 적부터 연모하는 연지라는 아가씨가 있는데, 그녀의 마음은 어디 있는지 알 도리가 없고. 서양에서 보내온 희안한 물건들의 정체를 밝히는 대수롭지 않은 업무를 하며, 네덜란드에서 표류된 서양인을 받아들여 한글도 가르치며 평화로운 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중 발생한 처녀 연속살인사건과 한양에서 파견된 암행어사 송일영. 살인사건의 해결은 묘연한 가운데 좌충우돌하는 우리의 주인공 함복배- 

소설 중반까지 작가는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며 '브라자-불아자', '코끼리-코길이' 이런 식으로 신문물을 우스꽝스럽게 해석해낸다. 소설의 분위기는 딱 퓨전 사극. 그러다가 뒤로 가면서 살인과 기방 사건 등으로 분위기는 무겁고 칙칙해진다. 내게 더 재미있는 부분은 물론 이 뒷부분이었지만. 

단어를 잘 다루고 문장이 탄탄한 강지영 작가. 스토리 또한 뭐 흠잡을 데 없이 탄탄하다. 앞부분의 '한번 걸지게 놀아 보자'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맞지 않았지만. 다음 번에는 현대를 배경으로 장편 추리소설 하나 써줬으면 한다.  

아래는 묘사가 무척 사랑스러웠던 문장-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이 목소리에는 교태가 배어 있었다. 어린 고양이를 희롱할 떄,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를 독려할 때, 봄날 민들레 홀씨를 뜯어 낮잠이 든 동무의 코끝을 간질일 때, 사춘기 시절의 내가 연지의 고아한 옆모습에 반해 첨벙, 고인 흙탕물에 자빠지면서도 히죽일 때처럼 그녀의 '어머나' 소리에는 세상의 모든 귀엽고 대견하고 장난스럽고 아찔한 순간이 깃든 것만 같았다.                                                                                   -1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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