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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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을 읽었다.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흥미로운 작품이 많아서, 장편 <없는 사람> 이후 또 한번 만족스러운 경험을 안겨준 작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세한 균열을 보여주는데 특히 '구두', '홍로', '대머리' 등이 인상적이었다.
가사 도우미의 분열을 그린 '구두'는 왓챠에서 본 단편영화, 가사 도우미와 SNS 문제를 결합한 '그녀'와 비슷한 설정.
'홍로'는 계약 관계의 노부부 이야기를 하루 동안의 단막 꽁뜨 느낌으로 잘 그려냈다.
'대머리'는 여자친구의 사촌에게 잘 보이려는 중년 남자의 애달픈 이야기다.
관계의 불안함을 그려내는 작가의 태도가 한발짝 떨어진 관점이고 골계미가 살아 있어 읽기 편했다.

표지 이미지를 잘 뽑아낸 것 같다. 줄무늬가 오돌토돌 입체적으로 만져진다.
제목의 '지'가 뾰족 솟은 것이 균열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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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개하는 두 권은 혼자서 즐기는 술, 집에서 만들어 먹는 요리-라는 컨셉의

특별한 스토리가 없는 일상만화다.

다소 지역색이 강한 일본의 술과 요리들이 얼마나 한국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는

책을 사서 본, 그리고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도 좀 의문이다.

다케노우치 히토미의 <혼술 땡기는 날>. 애니북스 출간.

술을 좋아하나 세지는 않은 혼자 사는 만화가가 집에서 즐기는 혼술과 요리들.

만화적 재미가 막 있지는 않고 귀여운 정도.

드라마화된 혼술 스토리의 <와카코와 술>이 얼마나 잘 만들어진 만화인지 살짝 대비됨.

 

이시야마 아즈사의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북폴리오 출간.

혼자 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들.

컬러판이라는 점이 강점일까, 비슷한 컨셉의 <하나씨의 간단 요리>에 비해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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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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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한 인간의 일생을 평균치로 그려내겠다는 이상한 야심에 가득찬 작품이다. 다큐 스타일로 서술된, 김지영 가족을 묘사하는, 서점에서 넘겨본 첫 페이지가 눈에 쏙 들어왔다.
한국에서 82년생 여자로 살아왔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띄는가 라는 문제의식이 때론 너무 날것으로 드러나서 불편했다. 김지영씨가 겪게 되는 여러 상황들이 모두 사회구조와 여성을 차별하는 인식 탓인 양 하는 것도 그렇고. 남편인 정대현씨의 인생은 어땠나 그럼.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인생을 평균 내겠다는 의도였던 것도 같다. 여러 모로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하면서도 끝까지 읽어냈다.
이런 류의 문제의식을 갖고 소설화하는 점은  <한국이 싫어서>의 장강명 작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조남주 작가가 다큐 작가 출신이라는 것도 한몫했을 것 같고.

p.s. 우리 부모님은 더 옛날 분인데도 남동생보다 나를 더 우대하며 키워주셨다. 세대를 넘어 우리 딸은 남동생에게 많이 양보하며 자라고 있다. 역시 이 문제는 어렵긴 해.

 

김지영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IT 계열의 중견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영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던 시간 동안 다닌다.
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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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think 2019-12-30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중하고 날카롭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유곽 안내서 - 제137회 나오키 상 수상작
마쓰이 게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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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이 게사코의 소설 <유곽 안내서>는 에도 시대 유곽인 요시와라에서 최고의 유녀(기녀)였던 가쓰라기의 이야기를 다룬다.
가쓰라기가 홀연 사라진 이후, 한 호기심 많은 젊은 글쟁이가 유곽 근처를 맴돌면서 여러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 나누는 형식이다.
유곽 주인, 후원자인 무사, 낙적을 결심한 시골 상인, 심부름꾼, 은퇴한 유녀 등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작가의 입담이 워낙 좋아서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도 든다.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조금 있긴 하지만, 에도 시대 풍속소설로 읽으면 더 좋을 듯.
에도시대의 유흥에는 몸을 파는 유녀긴 해도 고급 유곽에는 격식과 풍류가 있었고, 그런 세밀한 풍속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136회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피니스아프리카에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기타모리 고 등 좋은 소설을 많이 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표지와 제목이 아쉽다.
뭔가 야하고 내용 없는 소설인 것처럼 보여서, 이걸 들고 전철을 탈 수 있겠냐고.  

 

호색한에게는 돈과 권력이 없다는 옛말도 있소. 밀회 비용을 전부 제가 부담한 것은 물론, 거기에 용돈까지 달라고 조르는 상황이었지만 전 그래도 노부지로 님과의 인연을 끊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회양목 빗 하나 사주지 않는 그이에게 지어 준 옷만도 몇 벌인지, 아, 지금 생각하니 화가 나고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군요.
63p

본시 세상은 정부라고 하면 가부키 배우 단주로나 미쓰고로같이 생긴 미남만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추레한 놈이 정부라고 나서면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지. 이 세상에는 연극보다 재미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법이라오. (중략)
암튼 통속소설에나 나올 법한 잘생긴 얼굴로 오이란의 등골을 빼먹는 놈들이 없는 것은 아니라오. 나도 얼굴은 몇 알고 있소만. 기루의 최고 오이란 정도가 되면 그런 나쁜 놈들이 들러붙는 경우는 신기하게도 없다오. 대부분 기루의 두 번째나 세 번째 정도 되는 오이란이 그런 놈들에게 당하는 거요. 가끔은 외모가 출중하지 않은 오이란이 특히 잘생긴 남자에게 빠져 가진 것을 전부 갖다 바치기도 하지만, 그건 필경 오이란 본인이 자랑하고 싶어서라오. 겉모습에 홀딱 반했다고 말하는 자는 남자건 여자건 근성이 어린애 같은 사람인데, 오이란은 어린애라기보다 허세를 부리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 반반한 놈을 곁에 두게 되는 거라오. 결국은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은 속내가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겠소.
194p

여자에게 열중하는 것도 젊었을 때와는 조금 다르다네. 젊었을 때는 자신이 좋을 대로 하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보다는 상대가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지지. (중략)
여하튼 약값으로 아주 조금의 돈을 야리테에게 건넸더니, 이후 오이란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지. 남자는 여자가 그런 눈으로 바라봐 주면 어떤 일이라도 해 주고 싶어지지. 뭐? 그건 오이란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라고...... 아니네, 자네는 가쓰라기를 만난 적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걸세. 그렇게 아름다운 눈을 가진 여자가 사람을 속일 리 없지.
2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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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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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은 읽고 나면 조금 소름이 끼친다. 그 이유는 현대의 편의점형 인간, 그러니까 남과 소통하지 못하는 인간형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사실 제목이 '편의점 인간'이긴 하지만, 주인공의 직업이 편의점 알바일 뿐 편의점과는 사실 큰 관계가 없다. 히키코모리이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이 어떻게 편의점이라는 프로세스화된 공간에서 아늑함을 느끼는가, 그 숨어 있음이 나중에 어떻게 실패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을 잘 지어서 히트에 기여한 바도 있는 듯.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155회 수상작. 아주 심플한 이야기를 극단으로 밀어붙인 점이 수상 비결일까.

 

"이 가게는 정말이지 밑바닥 인생들뿐이에요. 편의점은 어디나 그렇지만,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주부, 이렇다 할 장래 설계도 없는 프리터, 대학생도 가정교사 같은 수지맞는 아르바이트는 할 수 없는 밑바닥 대학생뿐이고, 나머지는 일본으로 돈 벌러 온 외국인이죠. 정말로 밑바닥 인생뿐이에요."
82p

"그야 그렇겠죠. 중고인 채로 처녀가 된 여자가 지긋한 나이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남자와 동거라도 해주는 편이 훨씬 정상적이라고, 여동생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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