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에의 심야상담소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홍미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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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등 트릭과 심리를 결합한 추리소설을 주로 쓰는 이시모치 아사미는 한때 즐겨 읽었던 작가 중 한 명. 2016년 발간된 가장 최신작인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는 그 전의 작품들에 비해 좀더 잔잔한 톤이다.

강렬한 심리묘사와 증오를 기반으로 한 살인 추리물이 장기인데, 이번 작품은 일상 미스터리에 가깝다.

절친 3명이 밤마다 지인 1명씩을 초대하여 술과 요리를 즐기며 수다를 떨다가, 지인의 이야기 속에서 뭔가 미묘한 지점을 포착한다는 패턴의 옴니버스 소설. 안락의자 탐정소설 계열에 가까운데, 추리라고 하기에는 좀 어설플 수도 있고 심리 추리에 가까워서, 제목을 그렇게 지은 듯.

일본판 원제는 'R이 들어간 달을 조심하세요'인데, 굴을 먹기에 좋은 달(R이 들어가지 않은)과 연관된다. 이 제목이 작품 성격에는 더 맞는 것 같다. 각 에피소드마다 달라지는 술과 요리의 조합, 싱글몰트 위스키와 생굴, 브랜디와 메밀팬케이크, 시즈오카 사케와 볶은 은행 등은 읽기에 즐거움을 더해준다. 

절친 몇 명과의 소소한 술자리가 가장 즐거운 법인데, 그 3명의 성별이 여러 편을 읽어야 판명된다. 이건 좀 아쉬움.

 

사극 드라마처럼 무언가를 계속하도록 유지하려면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거기에 약간의 강약을 더하면 밑바탕은 같아도 싫증나지 않는다.
나가에 다카아키와 구마이 나기사, 그리고 나 - 유아사 나쓰미의 술자리도 마찬가지다. 대학 시절부터 술친구였던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여서 술을 마셨다. 다만, 우리 셋이서만 마시면 재미가 없으니 최근 몇 년간은 손님을 초대하고 있다. 손님이 오면 다른 화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새로운 즐거움이 싹튼다.
1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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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대망의 다크 타워 시리즈 5 ‘칼라의 늑대들‘ 상,하권 출간. 다크 타워 1이 국내 출간된 게 2009년이니까 참 띄엄띄엄 나온다. 그래도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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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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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는 영화로 먼저 보았다.
일드 '중쇄를 찍자'의 여주인공을 맡기도 했던 쿠로키 하루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3시간 러닝타임. SNS 문제를 건드리며 결혼 생활을 다루는 전반부는 흥미로웠으나, 후반부는 좀 화가 나서 볼 수가 없었다.

 

이와이 슌지가 직접 쓴 원작 소설은 어떨까 궁금해서 소설로 읽기로.
주인공 미나가와 나나미라는 인물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고구마를 먹이는' 암 유발 캐릭터다. 인생과 운명에 수동적이라는 의미에서.
SNS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을 유려한 이야기로 엮어냈고, 부분적으로 미려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나 플롯은 아쉬웠다. 원래 비극은 인물의 타고난 성격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긴 하지만, 나나미의 경우는 좀 극단적이다.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왜 그런 처지에 몰렸는지 모르는데, 그 뒤에는 타인의 계산과 조종이 움츠려 있다.
상업적으로는 흥미로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다 읽고 나도 뭔가 찜찜함이 남는다.
그래도 영화와 달리 소설이라 끝까지 읽을 수는 있었다. 나름의 매력도 분명히 있고.
 

 

미나가와 나나미. 1992년 4월 1일생.
4월 1일에 태어난 사람은 민법상 빠른 태생이다. 게다가 이날은 만우절이다. 누구에게나 거짓말이 허락되는 특별한 날이다.
18p

가뜩이나 결혼이란 이상한 관습이다. 특히 여성에게 결혼은 마치 어떤 벌처럼 느껴졌다. 정든 장소를 버리고, 과거를 버리고, 이름까지 버리고, 믿어도 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남성에게 인생의 전부를 맡긴다. 이게 범죄자라면 얼마나 나쁜 짓을 해야 이런 벌을 줄 수 있을까?
82p

"제가 마음만 먹으면 미나가와 씨도 한시간 안에 저한테 빠져들 걸요?"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자신감 같은 게 아니에요. 미나가와 씨가 저한테 빠진다면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 빠져든 거니까요."
"무슨 말이에요?"
"본인한테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빠지는 거라고요."
103p

"이 세상은 사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사람들이 잘 대해 주거든. 택배 아저씨는 내가 부탁한 곳까지 무거운 짐을 날라 주지. 비 오는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준 적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 버려. 그래서 차라리 돈을 내고 사는 게 편해. 돈은 분명히 그런 걸 위해 존재할 거야. 사람들의 진심이나 친절이 너무 또렷이 보이면 사람들은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서 다들 부서지고 말걸? 그래서 모두 돈으로 대신하며 그런 걸 보지 않은 척하는 거야. 나나미,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부서져 버릴 것 같아."
2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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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하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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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발랄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추리물이어서 대만족한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학원물 추리소설 계열이다.
학교 배경이니만큼 사건이 너무 무겁지 않고, 약간의 로맨스와 우정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다.
'구리킨톤'은 밤으로 만든 일본의 화과자인데 밤 경단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극중에는 서양의 밤 디저트인 '마롱글라쎄'도 모티프로 쓰이는데, 여주인공 오사나이가 디저트 마니아여서 다양한 디저트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같은 소시민 시리즈인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래서 제목에 디저트가 항상 나온다.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분량이 긴데도 구성이 절묘해서 지루하지 않고, 두 개의 풋풋한 연애가 교차되면서도, 주인공들이 지향하는 '소시민'의 컨셉이 흥미로워서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았다.
학교에 다니면 누구나 똑같이 취급되는 문화가 있고, 튀는 아이는 경계하는데 그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랄까. 나도 학창 시절 소시민이 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그렇다고 막 섞이는 것도 싫어했던 기억이 있어, 공감도 갔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빙과>로 대표되는 고전부 시리즈도 그렇고, 다채로운 색깔은 가진 작가다. 팬 인증.
 
상, 하 권의 표지 컬러가 갈색 계열이지만 미묘하게 다르고 일러스트도 훌륭.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은 과거 노블마인에서 나왔는데 절판되었고,
최근 엘릭시르에서 새로 냈는데 시리즈로 소장하기 좋아서 다시 사야겠다 결심.  

 

 

오사나이의 입술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정말이야. 고백을 받고 기뻤어. 우리노는 왜, 제법 멋지고 자신감이 넘치잖아. 그 자리에서 사귀기로 했어. 난 궁금했거든.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피가로?
"사랑을 해보려고, 우리노를 뒷바라지했어, 연인이란 그런 건 줄 알았거든. 행동이 마음을 키운다고 생각했어. 제법 잘 하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하지만 내 행동을 우리노가 어떻게 보았는지…… 아까, 고바토가 본 대로야. 내 바람은 헛수고였어. 나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
신문부 뒤에 유난히 오사나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던 이유가 이건가.
221p

오사나이도 말했다.
"호박에 침주기. 그래, 나도 우리노하고 사귀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딱딱한 미소.
"얘 참 시시하다고."
224p

우리가 소시민을 표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의식 과잉 때문이다. 혼자 있으면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오사나이와 함께 있으면 그 비참함이 가벼워진다. 오사나이는 나의 자만심을 용서해주고, 나는 오사나이의 자만심을 응시한다. 상부상조라고 이름 붙인 어린 자아와, 그래도 소시민을 지향한다는 방침이 서로 충돌해,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었다.
225p

‘소시민’이란 평범해지기 위한 슬로건. 다시는 고립되지 않기 위한 방침. 나는 쓸모없으니까 그냥 내버려두라는 백기.
그런 슬로건을 삼 년이나 내걸고서야 깨달았다. 정말 평범해지고 싶다면, 마지막 순간에 자아를 꾹 눌러 담는 데 그런 슬로건은 필요 없다. 백기를 흔들수록 본심과의 간극이 군소리가 된다. 마음속으로 상대를 우습게 보는 마음이 쌓여서 식어간다.
그게 아니다. 필요한 것은 ‘소시민’의 가면이 아니다.
단 한 사람, 이해해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충분하다.
"일 년이나 걸려서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네."
오사나이가 중얼거렸다.
227p

벽에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판매 개시"라는 종이가 붙어 있다. 이게 그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오사나이는 메뉴를 손에 들고 집중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나 심각한지 무슨 암호라도 적혀 있는 줄 알았는데, 겨우 손에서 떼고 한숨과 함께 한다는 소리가.
"아이스크림 세트는 다음에 먹어야지."
혼잣말이다. 오사나이라면 구리킨톤과 아이스크림 둘 다 태연히 먹어치울 수 있을 텐데, 무슨 걱정이지? 혹시 오사나이만의 미학이 있는 걸까?
239p

그냥 먹기에는 떫은 밤을 누구나 사랑하는 디저트로 만드는 방법.
삶아서 곱게 빻아 반죽해서, 설탕을 넣어 덖은 게 구리킨톤.
조금씩 진한 시럽에 재워 어느새 알맹이까지 달콤해지는 게 마롱글라세.
잘 알겠다.
오사나이가 어쩐지 울적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바토는 어느 게 좋아?"
246p

"맞아. 난 고등학교에 들어온 뒤로 처음으로 진정한 복수를 했어.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은 기껏해야 분풀이 정도였고,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은 방어 수단이었어. 복수란 게 그런 게 아니야. 복수란 상대에게 패배감을 심어주고 자기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게 해서 본인이 진심으로 무력하다고 믿게 만드는 거야."
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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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상 소시민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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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발랄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추리물이어서 대만족한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은 학원물 추리소설 계열이다.
학교 배경이니만큼 사건이 너무 무겁지 않고, 약간의 로맨스와 우정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다.
'구리킨톤'은 밤으로 만든 일본의 화과자인데 밤 경단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극중에는 서양의 밤 디저트인 '마롱글라쎄'도 모티프로 쓰이는데, 여주인공 오사나이가 디저트 마니아여서 다양한 디저트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같은 소시민 시리즈인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래서 제목에 디저트가 항상 나온다.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분량이 긴데도 구성이 절묘해서 지루하지 않고, 두 개의 풋풋한 연애가 교차되면서도, 주인공들이 지향하는 '소시민'의 컨셉이 흥미로워서 여러모로 완성도가 높았다.
학교에 다니면 누구나 똑같이 취급되는 문화가 있고, 튀는 아이는 경계하는데 그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랄까. 나도 학창 시절 소시민이 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그렇다고 막 섞이는 것도 싫어했던 기억이 있어, 공감도 갔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빙과>로 대표되는 고전부 시리즈도 그렇고, 다채로운 색깔은 가진 작가다. 팬 인증.
 
상, 하 권의 표지 컬러가 갈색 계열이지만 미묘하게 다르고 일러스트도 훌륭.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과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은 과거 노블마인에서 나왔는데 절판되었고,
최근 엘릭시르에서 새로 냈는데 시리즈로 소장하기 좋아서 다시 사야겠다 결심.  

 

 

"마롱글라세……. 지금이 가을이었다면 이 가게에서 구리킨톤을 팔 텐데. 그것도 맛있어. 햇밤이 나는 계절에 오면 좋겠다."
"그러네, 꼭 같이 오자."
183p

"달콤한 설탕 옷 위에 또 설탕 옷을 입고, 몇 겹이나 겹쳐 입는 거야. 그러다 보면 밤도 어느새 사탕처럼 달콤해지거든. 원래는 그렇게 달지 않았는데, 설탕 옷만 달콤했는데, 표면이 본심과 뒤바뀌는 거야. 수단은 언젠가 목적이 돼……. 난 마롱글라세가 정말 좋아. 왜, 좀 귀엽잖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사나이가 옻칠이 된 스푼으로 나를 가리켰다.
"네가 바로 나의 시럽이야."
184p

"수법이 노골적이야. 오사나이 스타일이 아니야."
나는 잠시 겐고의 존재도 잊고 그렇게 중얼거겼다.
오사나이는 달콤한 디저트와 복수를 사랑한다. 오사나이를 건드리면 반드시 반격을 당한다. 오사나이는 복수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 복수는 세일러복에 기관총을 들고 적을 몰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오사나이는 덫을 치고 적을 유혹해 함정에 빠뜨린 다음 그 위에 강철 뚜껑을 덮어 복수한다.
2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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