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윙클의 신부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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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는 영화로 먼저 보았다.
일드 '중쇄를 찍자'의 여주인공을 맡기도 했던 쿠로키 하루의 연기가 눈에 띄었다.
3시간 러닝타임. SNS 문제를 건드리며 결혼 생활을 다루는 전반부는 흥미로웠으나, 후반부는 좀 화가 나서 볼 수가 없었다.

 

이와이 슌지가 직접 쓴 원작 소설은 어떨까 궁금해서 소설로 읽기로.
주인공 미나가와 나나미라는 인물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고구마를 먹이는' 암 유발 캐릭터다. 인생과 운명에 수동적이라는 의미에서.
SNS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을 유려한 이야기로 엮어냈고, 부분적으로 미려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나 플롯은 아쉬웠다. 원래 비극은 인물의 타고난 성격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긴 하지만, 나나미의 경우는 좀 극단적이다.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왜 그런 처지에 몰렸는지 모르는데, 그 뒤에는 타인의 계산과 조종이 움츠려 있다.
상업적으로는 흥미로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다 읽고 나도 뭔가 찜찜함이 남는다.
그래도 영화와 달리 소설이라 끝까지 읽을 수는 있었다. 나름의 매력도 분명히 있고.
 

 

미나가와 나나미. 1992년 4월 1일생.
4월 1일에 태어난 사람은 민법상 빠른 태생이다. 게다가 이날은 만우절이다. 누구에게나 거짓말이 허락되는 특별한 날이다.
18p

가뜩이나 결혼이란 이상한 관습이다. 특히 여성에게 결혼은 마치 어떤 벌처럼 느껴졌다. 정든 장소를 버리고, 과거를 버리고, 이름까지 버리고, 믿어도 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남성에게 인생의 전부를 맡긴다. 이게 범죄자라면 얼마나 나쁜 짓을 해야 이런 벌을 줄 수 있을까?
82p

"제가 마음만 먹으면 미나가와 씨도 한시간 안에 저한테 빠져들 걸요?"
"자신감이 대단하시네요."
"자신감 같은 게 아니에요. 미나가와 씨가 저한테 빠진다면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 빠져든 거니까요."
"무슨 말이에요?"
"본인한테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빠지는 거라고요."
103p

"이 세상은 사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사람들이 잘 대해 주거든. 택배 아저씨는 내가 부탁한 곳까지 무거운 짐을 날라 주지. 비 오는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준 적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 버려. 그래서 차라리 돈을 내고 사는 게 편해. 돈은 분명히 그런 걸 위해 존재할 거야. 사람들의 진심이나 친절이 너무 또렷이 보이면 사람들은 너무 고맙고 또 고마워서 다들 부서지고 말걸? 그래서 모두 돈으로 대신하며 그런 걸 보지 않은 척하는 거야. 나나미,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부서져 버릴 것 같아."
2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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