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유일한 잘못이라면, 마음이 여려서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후에 자신에게 온갖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었다.‘
가난은 개인의 잘못일까? 사회의 잘못일까? 왜 그녀는 그렇게 열심히 살았고 친절을 배풀었음에도 결국 사람들에게 버림받아야 했던 걸까? 하층민이었던 그녀에게 행복은 사치였던 걸까?
태어났을때부터 모든게 잘못되어 있었다. ˝제르비즈˝는 아버지에게 시도때도 없이 구타를 당하고, 그녀는 지옥같은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세탁소롤 차려주겠다는 ˝랑티에˝의 사탕발림을 믿고 가출을 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열살이었다.
둘은 파리의 하층민들이 거주하는 ‘구트도르‘로 도주하게 되고, 그녀는 그와 동거하면서 두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바람기가 다분한 ˝랑티에˝는 바람이 나서 가족을 내팽게치고 도망을 가고, 화가난 그녀는 ˝랑티에˝와 도망간 여인의 언니인 ˝바르지니˝가 시비를 걸자 빨래터에서 그녀와 주먹다짐까지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남겨진 그녀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쿠포˝로 함석공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은 절대로 여자를 때리지 않는다, 술을 먹지 않는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거다 라는 달콤한 말로 그녀를 유혹하고, 그의 끊임없는 구애에 결국 ˝제르비즈˝는 ˝쿠포˝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이때 그녀는 몰랐었다. 그가 알콜중독자가 되리라는 것을, 그의 말과는 정반대로 변할거라는 것을.
결혼 후 그들은 잠시나마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부부는 부지런하게 일을 했고, 둘 사이에 딸 ˝나나˝가 태어났으며, 세탁일을 하면서 생활력이 강하고 친철한 ˝제르비즈˝는 자신을 비난했던 이웃들로부터 호의를 받는다.
그리고 그의 이웃에 사는 ˝구제˝라는 남성은 이런 ˝제르비즈˝에게 반하게 되어 남모를 연정을 품게 되어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그녀 역시 그의 이런 마음을 눈치채고 그에게서 많은 위안을 얻는다. 결국 ˝구제˝는 그녀의 꿈이었던 ˝세탁소˝를 차리는데 필요한 돈 500프랑을 빌려주게 되고, 그녀는 ˝세탁소˝를 차리고 사장님이 되어 인생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제르베즈는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서 마치 성처녀처럼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그녀는 즉시 구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커다란 위안을 안겨주었다.] 1권 P246
그러나 너무 행복했던 그녀의 정점은 너무 짧았다. 이제 그녀는 인생의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내려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빠른게 문제였다. ˝세탁소˝ 사장이 된 그녀는 돈을 모으기 보다는 많은 돈을 소비하였고, 작업장에서 추락사고로 인해 부상을 당한 남편은 점점 술에 빠지게 되었으며, 게다가 그녀의 첫 동거인인 ˝랑티에˝ 까지 나타나더니 그녀의 남편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람기 많은 ˝랑티애˝는 ˝제르비즈˝의 정부가 되어 그녀의 살림살이를 야금야금 빼앗아 갔다는 것이었다. 한 집에서 두 남자와 동침하게 되는 황당한 상황은 프랑스식 문화로 봐야 하는건가? 아니면 남편인 ˝쿠포˝의 무심함으로 봐야 하는건가?
점점 망가져가는 그녀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구제˝는 그녀에게 함께 도망을 가자고 제안을 하지만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그의 마음만을 간직한채 다시 혼돈의 삶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곳에 희망은 없었다.
[˝할 말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당신은 지금 행복하지 않아요. 어머님도 그러셨어요, 당신이 사는 게 위태로워 보인다고.˝] 2권 P.41
결국 그녀의 세탁소는 망하게 되어 가게를 그녀의 원수인 ˝바르지니˝에게 넘기게 되고, 그녀 역시 남편과 함께 알콜중독에 빠지게 되어 점점 나락으로 빠지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난에서, 빈민층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결국 딸 ˝나나˝까지 집을 나가게 되고, 더이상 아무 희망도 없이 무력해진 그녀는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게 된다.
[그랬다, 빈곤한 노동자 들끼리 아래위로 겹겹이 살아가는 초라한 공동주택에서의 삶은 불행하게 끝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콜레라와 같은 가난에 전염되고 마는 것이다.] 2권 P.309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걸까? 그녀가 문제였을까? 그녀의 주변 남자들이 문제였을까? 아님 하급계층의 어쩔수 없는 빈곤의 순환 때문이었을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죽음만이 그녀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제발 날 좀 데려가주세요. 더는 못 하겠어요. 이대로 가버리고 싶다고요. 날 원망하면 안 돼요. 그땐 잘 몰라서 그랬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됐을 때는 잘 모르잖아요. 그래요! 영감님 말이 맞아요, 언젠가는 죽는 걸 다행으로 여길 때가 있을 거라는 말요! 그러니까 날 좀 데려가주세요, 데려가달라고요. 그럼 그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을게요!˝] 2권 P.310
책을 읽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건 그녀는 왜 그녀를 한결같이 사랑해주는 ˝구제˝와 함께 도망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자신을 파멸 시킬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냥 머무르는 것을 선택했다. 아니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좀 더 현명했더라면, 좀 더 자신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바라만봐야 했던 ˝구제˝의 마음은 더욱 안타까웠다.
이 책이 당시 프랑스 하층민의 실상을 여과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시대적 배경 보다는 이렇게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그녀도 분명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는데, 행복할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이 책이 전해주는 교훈을 정리해 보자면
1.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한다. 알콜중독은 병이다.
2. 한번 배신한 사람은 두번 배신한다.
3. 한번 품은 원한은 잊혀지지 않는다.
4. 좋아하는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5. 거위 고기는 정말 맛있는 고급 음식이다.
6. 물 들어올때 노 저어야 한다.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의 일곱번재 작품인 <목로주점>은 19세기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민중‘과 ‘육체‘를 소재로 삼아 적나라한 민중의 삶을 그려내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루공마카르‘는 ‘루공가‘와 ‘마카르가‘ 가문을 일컫는데, 1870년에서 1893년 사이에 그가 쓴 스무권의 소설을 아우르는 명칭이 ‘루공마카르 총서‘ 라고 한다. 그럼 이 총서를 완독하기 위해서는 총 스무편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잠깐 찾아보니 모든 작품이 번역이 된건 아닌 것 같다.
재미와 역사와 교훈을 모두 담고 있는 완벽한 작품인 <목로주점>은 최고였다. ˝에밀졸라˝의 작품도 계속 찾아서 읽어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