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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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타와토미족 이야기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이 한 언어를 쓰던 때가 있다고 기억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떠한 모습인지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선물은 사라졌고 그만큼 우리는 빈곤해졌다.

  같은 언어를 말하지 못하기에 과학자로서 우리 임무는 이야기를 최대한 멋지게 엮어내는 일이다. 우리는 연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물을 수 없으므로 실험으로 묻고 그들의 대답에 신중히 귀 기울인다.......그렇게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염도가 귀화종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을 진행한다. 그렇게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가 측정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방법은 생명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이 방법은 인간 아닌 종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이해하는 통로다. 경외와 겸손으로 과학 하는 일은 인간 너머 세계와 호혜관계를 맺는 곡진한 행위다.(370~371)

 

과학, 특히 자연과학은 인간이 발견하고 발전시킨 탁월한 인식 방법임에 틀림없다. 한 언어를 쓰던 선물이 사라진 뒤 인간이 인간 아닌 종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이해하는, 빈곤하나마 유력한 통로임이 분명하다.

  과학만이 진리나 진실에 이르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틀림없고 분명하다. 인간 너머 세계와 호혜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과학은 경외와 겸손으로 곡진히 행해야만 한다. 경외와 겸손은 분석의 극한에서 종합의 검푸른 바다로 뛰어들 때만 이루어지는 예의다. 도의 인과 사슬을 끊어야만 가 닿는 초인과의 덕이다. 미분법 문명에서 적분법 문명으로 역진해야만 얻어지는 마음 자세며 몸 실천이다. 수식적 삶에서 서사적 삶으로 확장해야만 열리는 기품이다. 이 기품 있는 과학이 서사과학이다. 서사과학을 나는 대승과학이라 이름 한다. 대승과학 행위가 인간 아닌 종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통해하는 대승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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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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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는.......주의attention를 의도intention로 승화시킨다.......실천적 힘이 있다. 삶을 확장하는(367)


 

주의는 마음을 어디엔가 두는 행위다. “의도는 그 마음을 어디론가 향하게 하는 행위다. 지향이 실천의 시작이다. 거기서 삶을 확장하는일이 일어난다. 삶을 확장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버드나무가 내 삶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버드나무 제의를 매일 시행한다. 버드나무 제의는 내 삶을 초군초군 바꾸는 중이다. 인사동 가로수로 서 있는 다섯 그루 버드나무 덕분에 나는 백악에서 한강으로 흘러내리는 내를 모두 확인했다. 복개로 숨겨진 물길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젠 옥인동에서 혜화동까지 이어지는 나지막한 언덕과 야트막한 계곡 파동을 한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수없이 걸어온 도성 안길 풍경들이 더 선명하고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버드나무가 이끄는 내 발길은 선정릉으로 이어졌다. 버드나무 서 있는 곳을 증거 삼아, 두 내 물길이 한 흐름으로 만나 금천을 형성하고 마침내 한강으로 흘러드는 궤적을 톺아보았다. 두 내에게 물을 내어주고도 울창한 숲을 키우는 부드러운 능선들 전경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찬찬히 돌아보았다. 뭇 눈길들이 훑기조차 하지 않고 지나치는 작디작은 도랑을 찾아 일일이 사진에 담았다. 틈틈이 이끼 가족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내 삶은 섬세하게 확장된다.

 

이 확장은 사업 확장과 다르다. 돈이나 힘 쪽으로 뻗어나가지 않는다. 내밀한 생명 네트워킹으로 번져나간다. 신비주의로 우뚝한 정답을 내지 않는다. 신비를 끌어안고 끝내 질문을 부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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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8-11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퍼가는 기능이 있다면 이 글 제 서재에 ˝모셔˝가고 싶습니다^^ 버드나무를 따라가면 물길을 상상할 수 있나요? 생각해본 적 없는데 신비롭네요. 말씀하신 대로.

bari_che 2021-08-13 08:13   좋아요 1 | URL
버드나무는 ‘나무를 사랑해 나무가 된 물‘이라 일컬어지죠. 실제로 물과 뭍의 경계에 가장 먼저 자리 잡아 자랍니다.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거나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물이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예전에 존재했(는데 없앴거나 복개로 가렸)다는 증거죠.

버드나무는 물의 차가움을 견디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아스피린이 버드나무에서 나왔죠. 버드나무꽃으로 우울증을 치료한 임상기록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무과 시험 때 낙마하여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동여매고 다시 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무엇보다 버드나무는 척박한 땅에 먼저 들어가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다른 식물들이 무성히 자라 극상림을 이룰 정도가 되면 표표히 떠나는 개척, 공존, 겸양 본성을 지닌 신성한 생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주 만나보세요~ㅎ
 
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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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치어로 의 어원은 마음을 일컫는 단어와 같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부식토는 사람에게 생리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어머니 대지님의 냄새를 들이마시면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되는데, 이 물질이 엄마와 아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 유대감을 강화한다는 바로 그 호르몬이다.(347)


 

부식토 냄새를 맡으면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된다는 사실을 아파치족이 알았을까? 설마. 땅이 인간의 마음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아파치족이 몰랐을까? 설마. 모순으로 인지되는가. 그렇다면 바로 그 인지가 무지다. 아파치족이 모른 것은 다만 옥시토신이라는 용어와 그 용어에게 훈장을 준 인과논리다. 아파치족은 땅 냄새가 엄마와 아이, 사랑하는 연인 사이 유대감을 강화한다는진실에 정확히 터 잡아 살아왔다. 좀 더 근원적으로 말하면, 땅 냄새가 인간 사이에 신뢰 종자를 뿌려 네트워킹을 일으키도록 한다는 진실을 몸으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정작 그 진실을 문명인 대부분이 여태도 모른 채 살고 있다.

 

아파치 부족의 몸 지식, 경험 지혜는 미코박테리움바케라는 토양 박테리아와 호흡 또는 피부로 접촉하면 그들이 인간 몸에서 세로토닌을 만들어준다는 진실 또한 옥시토신 문제에서 그러하듯 이름 없이” “논리 없이알고 있었으리라. 세로토닌은 삶이 즐거운 놀이라는 감각을 지니게 하며, 마음 작용이 균형과 동시성 속에서 이루어지게 한다. 세로토닌 부족이 몰고 오는 전형적 질병이 바로 우울장애라는 사실은 최근 들어 문명인 대부분도 알게 되었다. 문명인이 아직 덜 연구해서 그렇지 인간 마음을 형성하는 다른 여러 호르몬 또는 신경전달물질도 같은 진실 안에 있음에 틀림없다. 인간 마음은 인간 피조물도 소유물도 아니다.

 

부식토는 부식질 20% 이상을 포함하는 비옥한 흙이다. 부식질은 흙 속에서 식물이 썩으면서 만들어지는 유기물의 혼합물이다. 더 핍진하게 말하면 인간의 마음은 낭/풀이 만들어내는 생명 현상이다. 발원 자체에 이미 호혜 교류, 그러니까 네트워킹 본성이 깃들어 있다. 인간이 제 것이라고 우기는 이른바 마음은 극진 네트워킹을 게을리 해서 빼돌린 잡념과 그 잡념을 제거한답시고 고안해낸 또 다른 잡념이다. 구도 언어가 심오할수록, 절차가 정교할수록, 양식이 번다할수록 상스러운 잡념이다. 잡념인 마음은 땅과 낭/풀의 네트워킹 본성에 찰나마다 극상으로 참여하면 당최 존재 불가능한 허구다. 구도가 있다면 오직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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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적응adapt하고 사람은 적용adopt한다.(336)

 

적응은 어미 노릇이고 적용은 새끼 노릇이다.

적응은 지음이고 적용은 좇음이다.

적응은 주고받음이고 적용은 받음이다.

적응은 선물을 낳고 적용은 감사를 낳는다.

 

감사를 내동댕이친 새끼가 어미를 욕되게 살해한다. 모성모독살해가 인간 문명과 역사의 본질이다. 돌이킬 시간이 이제 막 지나가는 중이다. 이제는 언제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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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약은 병의 원인 가까이에서 자라는 법(335)


내가 천하시인이라 일컫는 김선우 시인이 지난 주말 카톡을 보내왔다. 등단 25주년 기념 6번째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저자 증정본을 보내주겠단다. 출판사(창비) 책 소개에 실린 저자 인터뷰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그는 엄청 아팠다. 4대강 사업 시작할 때도, 세월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온몸으로 감응했다. 팬데믹 상황과 맞닥뜨려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상황이 혹독했다. 몸무게가 10kg쯤 빠지고, ‘생체 에너지가 15%쯤 남은지경까지 이르렀다.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가 이 상황을 견뎌냈다. 그가 말했다. “고향에 와서.......1년을 지내면서 왜 선인들이 아프면 고향에 가라고 했는지 알겠더군요. 내 몸이 비롯된 곳 기운에 나를 맡기는 과정이 내 몸 치유에 필요했구나 싶습니다.”

 

이 말은 내 몸이 비롯된, 그러니까 내 생명이 발원한 고향 기운이 내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십분 공감한다. 공감은 다만 정서를 넘어 과학에 가 닿는다. 문제는 지금 내가 꺼낸 이 얘기가 치료약은 병의 원인 가까이에서 자라는 법이라는 말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저자는 다른 책 이끼와 함께에서 약초는 질병의 근원지에서 자란다.”라고 했다. 이를 김선우 어법으로 바꾸면 치료약은 병이 비롯된 곳에서 자라는 법이 된다. 그렇다면 고향이 어떻게 병이 비롯된 곳이란 말인가?” 하는 이의제기부터 달게 받아야 한다. 병은 타향에서, 거대도시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치유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해야 이치에 맞을 테니 말이다. 과연 병은 타향에서 비롯되었을까?

 

타향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픈 일은 결과로서 증상일 뿐이다. 원인 또는 근원은 고향에서 몸이 분리된 사건 자체다. 분리 사건은 명백히 고향에서 일어났다. 고향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그대로 있다. 그 상처는 자신과 짝을 이루는 상처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돌아올 때 상처에 들러붙은 증상들을 우리는 흔히 병이라 잘못 이름 한다. 잘못 이름 하면 잘못 치료한다. 증상 없애는 일을 치료라고 착각한다. 해열, 진통, 소염, 항생, 차단제가 칼춤 추는 서구의학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분리를 치료하는 서구의학 약물은 없다. 증상의 근원지에서 자라는 약초만이 분리를 치료할 수 있다. 그 약초가 내 몸이 비롯된 곳 기운”, 그러니까 합일의 소식과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병들고 나음 역시 뫼비우스 띠 본성이다.

 

누군가 말했다. 모든 병은 향수병이라고. 인간이 그리워해 병이 되는, 병들어 마침내 귀의하는 궁극 고향은 낭/풀 세계다. 김선우 시인을 품었던 대관령, 강릉 앞바다, 남대천 풍경이야말로 전형적인 낭/풀 세계다. 시인의 대관령 그 너머 편에 바로 내 고향 평창군 진부가 있다. 시인은 떠난 지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고 했는데, 나는 고향 떠난 지 56년이 지났다. 그 동안은 내 상처를 만나러 그저 한나절 머물다 올라온 적이 더러 있을 뿐이다. /풀에 빙의되어 살아가는 지금 사뭇 다른 몸으로 고향에 가고 싶다. 시인처럼 크게 앓는 사람은 못되고 그저 인생 병 하나 걸머지고 내 몸 비롯된 그곳에 가고 싶다. 무엇보다 먼저 56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무들을 만나보고 싶다. 안부를 묻고 싶다. 가만가만 안아보고 싶다.

 

내 따스한 유령들』이 방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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