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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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독히 조심하지만, 나는 우리도 여느 사람만큼 유죄임을 안다.(521)


 

기독교리얼리즘 운동을 이끈 개신교 신학자 칼 폴 라인홀트 니부어(1892-1971)는 저서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1932)에서 비도덕적 사회에 속한 개인이 도덕적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열정적으로 현실에 참여한 그인 만큼 원리 아닌 윤리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신약성서 요한복음 87절을 떠올린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근본주의자를 내리친 철퇴다. 종교 문제에서도 마찬가지거니와 사회정치 문제에서 근본주의 좌파는 자신이 마치 공동체 밖에 있는, 그러니까 100% 순결한 듯 말한다. 유죄 스펙트럼을 단일화해 비판, 아니 비난한다. 근본주의적 비판은 쉽다. 근본주의적 비난은 더 쉽다. 그 비판으로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 그 비난으로는 현실을 바꾸기 더 어렵다. 근본주의자는 현실에 참여할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는 우리도 여느 사람만큼 유죄임을 안다.고 고백함으로써 윤리적 수리, 그러니까 유죄 스펙트럼에 저항적·역동적 참여를 시작한다. 몸으로 참여해야만,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일에 단도직입으로 직면한다. 단도직입으로 직면할 때 비로소 진실이 살아 숨 쉬는 다양한 결에 가 닿는다. 칼 폴 라인홀트 니부어가 쓴 <평정 기도문Serenity Prayer>을 음미한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냉정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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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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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들은 상처 세상에서 살아간다. 상처는 그들만 볼 수 있다.(521)



 

한약 지으러 왔다는 환자한테 현재 몸 상태에 관한 상세한 의학 이야기를 30분가량 한 뒤, 내가 말한다. “첩약은 보험 안 돼 비싸니 최후 선택입니다. 일단 침 치료만 받고 한 달 동안 운동, 식이조절부터 하세요. 그런 다음 다시 오십시오.” 그를 소개한 친구가 저녁 사겠다기에 따라 나선다. 소주를 따르며 그가 친구에게 말한다. “우리 선생님, 돈 버시긴 틀렸네.” 내가 파안대소하자 그가 정색하고 명토 박는다. “한 달 뒤 다시 오면 꼭 약 지으라 하셔야 됩니다.”

 

젊은 시절 나는 혈관운동신경성비염을 치료하러 뜨르르한 전문의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는 목례로 인사한 뒤 짧게 절진하자마자 대뜸 알아먹을 수 없는 글씨로 처방을 써내려갔다. 벨소리에 간호사가 들어오자 처방전을 건넸다. 간호사가 치료실로 안내하겠다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의 말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내가 머무른 시간은 3분가량이었다. 정체 모를 약 말고 어떤 의학에도 나는 접근할 수 없었다. 약 효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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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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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아름다운(막으로 둘러싸인) 기관 속에서 이산화탄소와 물이 결합되고 빛과 엽록소가 작용하면 당과 산소가 생성된다.

 

다름 아닌 광합성이다.

 

.......

 

미토콘드리아로 불리는 생명의 아름다운 (막으로 둘러싸인) 기관에서 당과 산소가 결합하면 우리를 처음 출발한 곳이산화탄소와 물으로 데려간다.

 

다름 아닌 호흡이다.......식물의 호흡은 동물에게 생명을 주고 동물의 생명은 식물에게 생명을 준다. 내 숨이 네 숨이고, 네 숨이 내 숨이다. 이는 주고받음,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위대한 호혜 시다.......자신을 지탱하는 공생관계를 이해할 때 비로소 인간은.......감사와 호혜를 발휘할 수 있다.(502)

 

엄밀한 진실은 이렇다.

 

1. 광합성은 식물 호흡이 아니다. 식물도 인간과 똑같이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쉬는 호흡을 따로 한다. 호흡에서는 호혜가 아니다.

 

2. 광합성은 동화작용이고 호흡은 이화작용이다. 동화작용은 합성이고 이화작용은 분해다. 식물 광합성은 당을 합성해 인간에게 공급한다. 인간은 식물에게서 받은 당을 분해해 에너지로 쓴다. 그러므로 이 둘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주고받는 사건은 동등한 호혜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받은 당 만큼 인간은 생명을 식물에게 빚지고 있다. 식물 없이는 인간도 없지만, 인간 없이도 식물은 있다.

 

호혜를 일부로 품고 호혜 너머 큰 은혜 네트워킹을 일으킨 식물에 대한 존재론적 감사는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근본조건이다.

 

감사는 우아한 실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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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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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최초의 생태복원학자다. 그들은 자신의 선물을 이용해 땅을 치유하고 우리에게 길을 보여준다.(485)

 

인간이 생태계를 훼손하자 새로운 생태계가 생겨났으며 식물은 천천히 적응하면서 우리에게 상처 치유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식물이 지닌 솜씨와 슬기를 보여주는 증거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미치지 못할 만큼. 식물이 자기 일을 계속하도록 내버려두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다. 복원은 우리가 협력할, 그러니까 도울 기회다. 우리가 맡은 부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487)


 

여행감독 고재열은 <꼰대 감별법>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판에서 누가 주연인지 모르겠으면 당신이 바로 꼰대다. 주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주연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린 마굴리스는 인간이 스스로 내린 주제넘은 도덕적 명령, ‘병든 지구를 치유하라는 자기기만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복원 또는 치유 주연은 식물이다. 인간은 식물이 자기 일을 계속하도록 내버려두는 지혜를 냄으로써 도울뿐이다. 식물이 자기 일을 계속하도록 하려면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범죄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설거지를 시작”(480)해야 한다. 4대강 보를 치우는 일이 대표적인 예다. 딱 그 정도다. 그 이상으로 설쳐대면 꼰대 짓이다.

 

꼰대 짓할 때는 자기 성찰 관장하는 안와전두엽이 이미 고장 난 상태다. 안와전두엽은 자신이 위너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돈이든 권력이든 인기든 명망이든 성취감 또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면 귀신들림demon possession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귀신은 전지전능하다고 느끼므로 제 영역 너머에 손을 댄다. 기생충 학자가 정치적 선동을 하는 일이 대표적인 예다. 분수를 알고 제 자리에 머무를 줄 안다면 꼰대가 될 수 없다. 생태계를 훼손한 장본인인 인간이 분수를 아는 한, 함부로 복원 또는 치유 주연으로 자처하지 못한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미치지 못할 만큼식물이 보여주는 솜씨와 슬기를 따라 인간은 자연의 제자”(487)라는 진리 앞에 겸허히 엎드려야 한다.

 

겸허는 종속영양생물인 인간에게 자연Sein 본성임이 틀림없다. 당위Sollen로 넘어간 역사적 계기를 문명이라 한다. 문명의 이름으로 인류는 본성 축을 전복했다. 전복된 축에 터해 인간은 식물과 자신을 모두 소외시켰다. 인식체계에서 식물 정신성, 인간 육체성을 각각 봉인했다. 식물 정신성 복원이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는 인간이 현재 지니는 인식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인간 육체성 복원은 이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감정 또는 정서를 복권하는 일에서부터 최근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내수용감각interoception 깨우는 일이 대표적인 예다. 한껏 몸 사람이 됨으로써 식물 본성에 핍진히 다가갈 수 있다. 겸허 가는 숲길이다.

 

내가 생애 마지막 공부라 여기며 식물로 향하는 이 여정은 내가 기획한 인생 프로젝트가 아니다. 일이 흘러가는 모습과 일에 담긴 알맹이가 제의 본질을 지니고 있으니 깨달음은 한 박자씩 더디 오고 상상은 한 발짝씩 멀리 번진다. 묵은 아이를 되찾는 대칭성이 그려지기도 하고 몸 사람과 마음 사람 사이 균형을 잡는 비대칭성이 잡히기도 한다. 내 생명과 생애, 그리고 공동체가 지닌 식물본성을 복원해가는 풍경이 중첩되어 펼쳐지고 있다. 모든 장면에서 인간으로서 단일 의식을 가진 나는 겸허하게 돕는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다만 지구생태계 복원에서뿐 아니라 본디 발생 그 자체에서 돕는 존재가 아닐까. “우리가 맡은 부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에 담긴 깊은 뜻이 거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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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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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 당시에 조지 워싱턴이 오논다가족을 절멸시키라고 연방군대에게 명령하자, 수만 명에 이르던 오논다가 네이션 인구는 1년 만에 몇 백 명으로 줄었다. 그 뒤로 미국정부와 오논다가 네이션이 맺었던 조약은 남김없이 깨졌다. 뉴욕주에서 땅을 불법적으로 빼앗으면서 오논다가 영토는 1700헥타르 보호구역으로 쪼그라들었다. 오늘날 오논다가 네이션 영토는 솔베이 폐기물층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논다가 문화에 대한 공격도 끊이지 않았다. 부모들은 자녀를 인디언 모집책에게서 숨기려고 애썼지만 아이들은 붙들려 칼라일 인디언 학교 같은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고유 언어는 금지되었다. 인디언 공동체는 모계사회로, 남녀가 평등했는데 이곳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이들의 삶을 잘못으로 규정했다. 세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롱하우스 추수감사 예식은 법으로 금지되었다.(465)

 

초등그때는 국민학교 3학년 때 서울 와서 TV를 처음 접했다. 만화방에 있는 커다란 흑백 TV를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 보듯 아이들이 줄지어 앉아서 보았다. 만화를 10원어치 보면 TV를 시청할 수 있는 딱지 수를 채울 수 있었다. TV 보려고 돈만 생기면 만화를 읽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프로는 서부극 <용감한 린티(1954)>. 이야기야 새까맣게 잊어버렸지만 좋은 나라백인 기병대가 나쁜 나라인디언을 모조리 죽이면 환호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인디언은 나쁜 나라라는 오류를 교정하지 못했다.

 

근대 민주주의 태동 사건인 미국 독립전쟁이 영국에게만 총을 겨누지 않고 원주민에게도 그리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근대 민주주의 마그나 카르타인 미국헌법이 하우데노사우니(이로쿼이) 연방 법리를 벤치마킹했고, 핵심을 누락시켰고, 그 민주주의를 가르쳐준 원주민을 제노사이드로 몰아넣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조지 워싱턴이 오논다가족을 절멸시키라고 연방군대에게 명령하자, 수만 명에 이르던 오논다가 네이션 인구는 1년 만에 몇 백 명으로 줄었다.는 사실은 유럽인이 발들이기 전 줄잡아 6000만이었던 원주민이 1930년경 100만 이하로 줄었다는 사실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무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섣불리 결론짓게 한다.(518)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미국이 흉측한 오해이듯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거북 섬원주민은 파렴치한 오해다.

 

수 세대의 슬픔, 수 세대의 상실. 그러나 존엄은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영들은 그들 편이었다. 그들에게는 대대손손 전해오는 가르침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법도 있었다. 오논다가 네이션은 자기 원주민 정부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결코 정체성을 버리거나 주권국가로서 지위를 손상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다. 연방법은 그 법을 정초한 자들에게 무시당했으나 오논다가족은 여전히 위대한 법의 수칙을 따르며 살아간다.(466)

 

고작 35년 식민통치에 지배층 거의 전부가 매판이 된 대한민국 관지에서 차마 거북 섬 원주민을 바라볼 수조차 없다.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인하고 이승만을 국부로 앙모하는, 만주군 장교로 독립군 토벌에 나섰던 다카키 마사오를 반인반신으로 숭배하는 자들 눈에 오논다가 네이션은 자기 원주민 정부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결코 정체성을 버리거나 주권국가로서 지위를 손상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한낱 반미 종족주의로 비칠 뿐이리라.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살아 있는 민주주의”(456)인 하우데노사우니(이로쿼이) 연방이 버드나무의 생명 연방에서 발원했다고 믿는 나는 반일 종족주의자라는 오명을 흔쾌히 뒤집어쓴 채 간절히 기도한다. /풀 백성들일랑 부디 존엄을 잃지 않기를, “굴복하지 않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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