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치료약은 병의 원인 가까이에서 자라는 법(335)


내가 천하시인이라 일컫는 김선우 시인이 지난 주말 카톡을 보내왔다. 등단 25주년 기념 6번째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저자 증정본을 보내주겠단다. 출판사(창비) 책 소개에 실린 저자 인터뷰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그는 엄청 아팠다. 4대강 사업 시작할 때도, 세월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온몸으로 감응했다. 팬데믹 상황과 맞닥뜨려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상황이 혹독했다. 몸무게가 10kg쯤 빠지고, ‘생체 에너지가 15%쯤 남은지경까지 이르렀다.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가 이 상황을 견뎌냈다. 그가 말했다. “고향에 와서.......1년을 지내면서 왜 선인들이 아프면 고향에 가라고 했는지 알겠더군요. 내 몸이 비롯된 곳 기운에 나를 맡기는 과정이 내 몸 치유에 필요했구나 싶습니다.”

 

이 말은 내 몸이 비롯된, 그러니까 내 생명이 발원한 고향 기운이 내 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십분 공감한다. 공감은 다만 정서를 넘어 과학에 가 닿는다. 문제는 지금 내가 꺼낸 이 얘기가 치료약은 병의 원인 가까이에서 자라는 법이라는 말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저자는 다른 책 이끼와 함께에서 약초는 질병의 근원지에서 자란다.”라고 했다. 이를 김선우 어법으로 바꾸면 치료약은 병이 비롯된 곳에서 자라는 법이 된다. 그렇다면 고향이 어떻게 병이 비롯된 곳이란 말인가?” 하는 이의제기부터 달게 받아야 한다. 병은 타향에서, 거대도시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치유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해야 이치에 맞을 테니 말이다. 과연 병은 타향에서 비롯되었을까?

 

타향에서 일어난 슬프고 아픈 일은 결과로서 증상일 뿐이다. 원인 또는 근원은 고향에서 몸이 분리된 사건 자체다. 분리 사건은 명백히 고향에서 일어났다. 고향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그대로 있다. 그 상처는 자신과 짝을 이루는 상처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돌아올 때 상처에 들러붙은 증상들을 우리는 흔히 병이라 잘못 이름 한다. 잘못 이름 하면 잘못 치료한다. 증상 없애는 일을 치료라고 착각한다. 해열, 진통, 소염, 항생, 차단제가 칼춤 추는 서구의학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분리를 치료하는 서구의학 약물은 없다. 증상의 근원지에서 자라는 약초만이 분리를 치료할 수 있다. 그 약초가 내 몸이 비롯된 곳 기운”, 그러니까 합일의 소식과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병들고 나음 역시 뫼비우스 띠 본성이다.

 

누군가 말했다. 모든 병은 향수병이라고. 인간이 그리워해 병이 되는, 병들어 마침내 귀의하는 궁극 고향은 낭/풀 세계다. 김선우 시인을 품었던 대관령, 강릉 앞바다, 남대천 풍경이야말로 전형적인 낭/풀 세계다. 시인의 대관령 그 너머 편에 바로 내 고향 평창군 진부가 있다. 시인은 떠난 지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고 했는데, 나는 고향 떠난 지 56년이 지났다. 그 동안은 내 상처를 만나러 그저 한나절 머물다 올라온 적이 더러 있을 뿐이다. /풀에 빙의되어 살아가는 지금 사뭇 다른 몸으로 고향에 가고 싶다. 시인처럼 크게 앓는 사람은 못되고 그저 인생 병 하나 걸머지고 내 몸 비롯된 그곳에 가고 싶다. 무엇보다 먼저 56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무들을 만나보고 싶다. 안부를 묻고 싶다. 가만가만 안아보고 싶다.

 

내 따스한 유령들』이 방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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