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중반 아이가 다급한 어조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부모의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니고, 치료비가 있는 것도 아닌 상태지만, 상담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형편이 그 정도니 교통비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지방도시에 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아이가 교통비는 있다고 하기에 제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쌤이 사기꾼처럼 느껴지지 않니?”
“아뇨.”
안정된 음성이 건너왔습니다. 다음 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오전 중으로 올라오라 말했습니다. 다소 들뜬 짧은 대답 소리와 함께 아이는 벌써 제 마음 한편에 궁금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나타난 아이는 예상대로 온몸에 불안과 체념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한 가득 허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여느 사람 눈에는 영락없는 날라리였겠지만, 제게는 아이의 가난과 슬픔의 풍경이 남김없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는 조잘조잘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정신병이 있었고, 진즉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는 가정을 적극적으로 수습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생존 조건만 제공한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방치된 상태에서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예 공부를 포기해버렸습니다. 왕따 당하고 매 맞는 것이 학교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급우들은 심심하다고 때리고, 화난다고 때리고,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엄마놀이하며 때렸습니다. 아이는 왠지 알 수 없지만, 매를 맞을 때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문제 삼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담임선생도 아버지도 알 리 없었습니다. 아이 사정을 알게 된 날라리들이 아이에게 집을 개방하라 요구했습니다. 술과 담배를 사들고 들어와 실컷 놀고 자고 가기를 반복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한 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쌤, 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요?”
문득 말을 멈춘 아이가 영판 다른 얼굴로 제게 물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는 가슴이 먹먹하더니, 느닷없이 던진 질문을 들으니 머리가 멍멍해졌습니다. 이런 처지의 아이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런 말이 있기는 할까요? 침묵하고 한참 아이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도 제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보았습니다.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아이도 따라 웃었습니다. 제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밥 먹자!”
아이는 냉큼 일어섰습니다. ‘나는 오늘 밥 먹으러 왔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는 참으로 오달지게 밥을 먹었습니다. 저는 밥 한 그릇을 더 시켜 가만히 아이 앞으로 밀어주었습니다. 아이는 눈 한 번 반짝 크게 뜨더니, 이내 밥그릇을 끌어당겼습니다. 잠시 뒤 그 밥그릇마저 깨끗이 비어 있었습니다. 콧잔등에 송송 맺힌 땀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다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한 끼 밥이 백 마디 말보다 나을 때가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밥 먹는 일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인간행위라는 진실.
아이는 이제 20대 중반의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저를 어떻게 기억할지, 아니 기억이나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기억에 저는 없고 밥 한 그릇만 남아 있어도 좋습니다. 그 날처럼 오달지게 밥 먹는 나날이 계속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