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우 오랫동안 기조우울증(서구 정신의학에서는 쓰지 않는 용어다.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만성적인 우울장애를 지칭하기 위해 내가 만든 용어다.)으로 고통 받았다. 고통의 다양한 양상이 있지만, 그 가운데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 바로 아침지옥이다. 졸저 『안녕, 우울증』68쪽에 소개한바, 잠에서 막 깨어나 일어나기 전까지 시간에 맛보는 정서의 지옥 상태는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함으로 온 영혼을 짓이겨버린다. 삶의 무의미감, 혐오감, 곤혹감, 그리고 아뜩함 때문에 하루 생활이 시작되기도 전에 심신은 파김치가 된다.


아직까지 드러내어 말한 적은 없지만, 자려고 잠자리에 누워서 잠들기 전까지 시간대도 본질이 같은 불편함으로 영혼이 무너져 내린다. 아침지옥과는 달리 이 시간에는 물 먹은 솜 같이 주저앉는 고단함, 는적는적 해체되는 느낌, 끝날 것 같지 않은 생의 피로감으로 깊은 신음을 토해내게 된다. 내일 아침 다시 눈 뜨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속절없이 젖어든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렇게 맞으면 그 날 전체가 송두리째 지워진다. 본디 이 두 시간대는 농밀하고 은밀한 자기신뢰의 본진이다. 틈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다시없이 소중한 ‘자기 허니문’이다. 우울증 앓는 사람은 자기부정의 덫에 걸렸으므로 이 자기 허니문은 지옥으로 변해버린다. 이른바 ‘건강한 사람’은 이 자기 허니문의 소중함을 모른 채 덧없이 흘려보내고 만다. 아파봐야 깨닫는 인간숙명을 알아차리고서야 이 자기 허니문의 애용 이치를 증득한다.



아침 허니문은 거대 의식, 그러니까 자각·통제 가능한 의식을 가꾸는 데 쓴다. 아침에 일어나 고요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하루의 삶을 담담히 펼쳐본다. 이것을 소리 내어 말한다. 그렇게 하루를 연다. 거대 의식을 앞세우고 걷는다. 밤 허니문은 소미 의식, 그러니까 자각·통제가 불가능한 무의식을 가꾸는 데 쓴다. 잠자리에 들면서 고요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인다. 하루의 삶을 담담히 정리해본다. 이것을 소리 내어 말한다. 그렇게 하루를 닫는다. 소미 의식에 맡긴 채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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