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였다. 정시보다 일찍 업무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고,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외근이 이어졌고, 회사에 돌아와서는 금방까지 야근했다. 하루종일 쌓인 스트레스가 뒤늦게 정체(?)를 드러내, 점심에 쌀국수를 무려 라지 사이즈로 먹고 저녁도 제법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니 심하게 허기가 져서 동생이랑 과자를 폭풍 흡입하고 도토리묵에 귤까지 먹었다(심지어 고독한 미식가 시즌5를 보면서ㅋㅋㅋ). 주말에 사촌 언니 결혼식에 가서 언니의 홀쭉한 허리를 보며, 나도 허리가 저래야 빨리 시집을 가는 건데, 하는 생각을 했건만 금세 잊고 먹방을 찍다니. 진짜 먹방을 찍으면 돈이라도 벌지ㅠㅠ


퇴근길에 라디오 책다방 연말 특집 듣다가 책 몇 권 '뽐뿌'가 와서 연말을 맞이해(?)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내일 올 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그만뒀다. <사피엔스>는 총균쇠 생각 나서 안 읽으려고 했는데 읽을만 하다고 하니 궁금하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은 사놨다가 아는 사람 선물 주고 못 읽었는데 이 또한 읽을만 하다고 하니 읽어보고 싶다. 올 한해 최고의 화제를 모은 한국 소설 <한국이 싫어서>도 궁금하다.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는데도 놓친 책이 많다. 올해는 시집도 인기를 끌었다는데 한 권도 안 읽었다. 빨간책방에 나온 황인찬 시인 시집을 읽어볼까? (과연?)


주말과 오늘 열심히 일했으니 내일은 좀 편할 것 같다. 연말이니 한해 동안 읽은 책도 정리하고, 올 한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싶었으나 방금 내일 해야 할 업무가 하나 생각났다. 내일도 바쁘겠군ㅠㅠ 얼른 씻고 책 읽다가 자야겠다. 


+ 지금 보니 알라딘 서재의 달인 2015 엠블럼이 추가되었다. 감사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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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이석연 편저 /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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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책벌레와 메모광>에 보면 '독기'라는 메모법이 나온다. 상자나 통을 하나 마련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서 넣어두고 이따금씩 전부 꺼내서 같은 주제끼리 갈무리하는 것이다.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의 저자도 독기를 이용해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무려 50여 년에 걸쳐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건져 올린 좋은 문장이나 사유의 결과를 독서노트에 꾸준히 기록했다. 책뿐만 아니라 신문기사, 여행지에서 본 표어, 유적이나 비문에 새겨진 문구, 영화 대사까지도 메모했다. 그렇게 기록하고 메모한 것을 법, 역사, 정치, 리더십, 인간관계, 글쓰기, 행복 등의 주제로 엮어낸 결과가 이 책이다. 

  

  몇 년 전 저는 <책, 인생을 사로잡다>라는 저서를 통해 자유롭게 이동하며 세계를 정복한 유목민의 삶에서 힌트를 얻어 이미 유목적 읽기(노마드 독서법) 방법과 기술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아남는다'라는 유목민의 정신이 바로 저의 독서편력입니다. 건너 뛰어 읽고, 장소를 달리하여 다른 책을 읽고(겹쳐 읽기), 다시 읽고(재독), 좋은 문장 베껴 쓰고 다시 쓰고 외우기 등이 바로 노마드 독서법입니다. (p.7)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인지라 글쓰기에 관한 글에 눈이 가장 오래 머물렀다. '작가는 해결자가 아니라 제시자여야 합니다(조정래, <황홀한 글감옥>)', '내 언어 능력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생각도 지식도 어휘로 구성되기 때문에 상상력의 한계는 곧 어휘의 한계다(비트겐슈타인)',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추사 김정희)'... 한줄 한줄이 가슴에 맺힌다.


  저자는 젊은 시절 사찰에서 22개월 간 머물며 책을 400권 이상 탐독한 바 있으며, 이후 공직자, 법조인, 시민 운동가, 작가로서 사회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주제와 장르의 책들을 읽었다고 한다. 이 책에 인용한 책들만 보아도 동서양의 고전부터 국내외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하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행동으로 실천한 저자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책벌레이자 메모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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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5-12-21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책소개 감사합니다~^^

cyrus 2015-12-2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소장하고 있으면 글을 쓸 때 필요한 인용문을 쉽게 고를 수 있겠어요.
 
안녕 요정 베루프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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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의 신간 <안녕 요정>은 원래 고전부 시리즈 중 하나로 집필되었다가 별개의 작품으로 개고된 것이다. 고전부 시리즈를 통해 요네자와 호노부의 팬이 된지라 신작이 언제 나올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록 개고된 것일지라도 고전부 시리즈를 이해하는 힌트가 될 만한 것이 나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지방 소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리야는 일본에 단기 체류 중인 유고슬라비아 출신 소녀 '마야'를 우연히 만나 친해진다. 어릴 때부터 세계 각국을 떠돌며 살아온 마야는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일본의 언어와 문화를 열심히 배워 훗날 모국인 유고슬라비아에 돌아갔을 때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모리야는 그런 마야를 보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온 자기의 삶을 갑갑하게 느끼고 마야를 따라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원래 고전부 시리즈 중 하나로 집필된 만큼 <안녕 요정>에는 고전부 시리즈의 흔적을 상상케 하는 부분이 많다. 배경이 지방 소도시인 점, 주인공이 매사를 귀찮아하는 성격의 남자 고등학생인 점이 같고,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아이(마야, 치탄다)가 호기심이 많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는 것도 비슷하다. 주인공이 유고슬라비아로 떠나는 마야의 뒤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고전부 시리즈에서 호타로가 자기는 어른이 되어도 이 고장을 지킬 거라고 말하는 치탄다에게 "같이 하자." 라고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을 연상케 한다.

  고전부 시리즈와 비슷한 점이 많긴 해도 <안녕 요정>은 그 자체로 완결된 소설이며 고전부 시리즈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 무엇보다 배경이 1990년대 초이고 마야가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라는 것에서 결말은 대강 짐작할 수 있으나, 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지극히 요네자와 호노부답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뛰어난 천재나 고도의 트릭 없이 일상에 산재해 있는 정보와 지식을 조합하고 활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안녕 요정>에서 주인공도 의문을 풀기 위해 마야가 평소에 무심코 했던 말이나 책에서 알게 된 지식을 통해 끝내 답을 얻는다.
 
  <안녕 요정>은 결말을 맺었지만 고전부 시리즈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비슷한 점이 많아도 고전부 시리즈가 <안녕 요정>과 같은 형태의 결말을 맞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과연 언제쯤 시리즈의 끝을 볼 수 있을까. <안녕, 요정>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고전부 시리즈에 대한 나의 애정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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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5-12-20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요 좋아요~ 표지도 예쁘고 스토리도 아기자기하고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

키치 2015-12-20 20:55   좋아요 0 | URL
마음에 드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5-12-2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저도 고전부 기다리다가, 결국 ˝안녕 요정˝을 구매했답니다.

키치 2015-12-20 20:55   좋아요 0 | URL
저와 같으시네요 ^^ 고전부 차기작은 언제쯤 나올까요ㅠㅠ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 진짜 여행에 대한 인문학의 생각
정지우 지음 / 우연의바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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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뒤늦은 여름휴가 겸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6년 만에 가는 해외여행인지라 출발하기 한 달 전부터 가이드북이며 일본 관련 서적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 인터넷에서 여행 후기도 하루에 열 편, 스무 편씩 찾아봤다. 노트에 필기도 하고, 프린트도 하고 정신없이 공부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한 걸 발견했다. 다들 똑같은 곳에 가서 비슷한 사진을 찍고, 똑같은 곳에 가서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후기를 쓰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걸 보고 여행을 한다면 나 또한 이들과 똑같은 곳에 가서 똑같은 후기를 남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싹했다. 나는 여행을 하려고 했지, 답사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한국인 여행객들은 순서와 머무는 시간만 조금 다를 뿐, 거의 동일한 여행 루트와 볼거리, 그리고 같은 목적 속에서 움직였다. 마치 똑같은 여행 컨설팅 회사에 의뢰하기라도 한 듯, 사람들이 가는 도시, 그 도시에서 보는 것, 하는 것이 거의 똑같았다. 피렌체에서는 가죽 쇼핑을 하고, 스위스에 가면 골든패스를 타고, 독일에 가면 학센을 먹는 식이었다. ... (중략)... 나는 보다 다양한 자기만의 여행, 그 속에서 느낀 것, 체험한 것, 나아가 자기 자신과 이 여행에 대해 했던 생각들을 폭넓게 듣고 싶었지만, 조심스레 그런 주제를 던져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별로 없었다. (p.18)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의 저자도 여행을 하면서 비슷한 걸 느꼈다. 외국인 여행객들은 남들과 다른 걸 보고 느끼는 자기만의 여행을 추구하는 반면, 한국인 여행객들은 남들이 가본 곳에 가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볼거리를 보고 맛있다는 음식을 먹길 원한다. '어디 가서 뭘 봤다고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하는 식이다. 이는 여행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여행이란 일상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활동이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생활해보는 경험이다. 그 속에서 뭔가 새로운 걸 느끼고 배우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저자는 여행의 의미와 목적이 변질된 것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은 바야흐로 여행의 시대가 되었다. 소비가 인생 최고의 쾌락으로 인정받는 가운데, 여행은 그중에서 가장 값비싸면서도 가치 있는 소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p.4) 학생들은 방학 때 여행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장인들은 휴가를 가기 위해 회사에 나간다. 지금 뼈빠지게 일을 하는 건 은퇴 후 한가롭게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다. 일하면서 여행을 할 수 있는 직업은 최고의 직업이다. 파일럿과 스튜어디스, 여행 작가 같은 직업들이 그렇다. 교사도 좋다. 방학 때마다 몇 달씩 여행을 갈 수 있으니까.


 

  "이제 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여행이 되어가고 있다. 여행이 없다면 과연 자본주의는 얼마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저 수많은 도시들, 약속의 땅들, 아름다움과 행복이 가득한 천국들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충실히 돈을 버는 일에 몰두할 수 있을까? 언젠가 사랑을 얻으리라는 보장을 믿고 일하던 청년들은 이제 여행을 믿게 되었다. 세상 끝까지의 여행, 고급 호텔에서의 와인 한 잔, 크루즈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밤은 우리 욕망의 '최종 목적지'에서 손짓하고 있다. (p.7)


  오늘날, 특히 한국에서는 여행이 하나의 상품, 소비 대상으로 전락했지만, 잘만 하면 여행의 본질에 가까운 진정한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예로 든다. 저자는 20대를 통틀어 다양한 여행 경험을 했다. 패키지여행도 해보고 배낭여행도 해보고, 단기 여행도 해보고 100일간의 장기 여행도 해보고, 관광객도 되어보고 인솔자가 되어보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자는 자신에게 맞는 여행 스타일을 찾아갔다. 패키지여행보다는 배낭여행이, 단기보다는 장기 여행이 잘 맞고, 인솔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나', '여행이 왜 가치 있나', '여행이 왜 좋은가', '여행을 다니며 어떤 생각을 했나'를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후기에 나오는 여행을 따라 하는 '답사' 여행은 이러한 질문을 하기에 부적절하다. 항상 시간과 일정을 생각하고 비용과 효율을 따지는 여행을 할 때도 불가능하다. 지난날의 나를 잊고, 떠나온 일상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내려두고, 오로지 시공간에 몸을 맡긴 채 천천히 걷고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받아들일 때만이 가능하다. 지난가을, 나는 이런 여행을 했을까. 한 번 깊게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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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책 - 12가지 테마로 읽는 5000년 문명 중국
쑤수양 지음, 심규호 옮김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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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도 중국을 수사하는 말은 한정적이다. 13억 대국, 국내총생산 순위 2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라는 정도?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도 중국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니 부끄럽다. 해서 읽게 된 책이 <중국책>이다.


  <중국책>은 2007년 '나라의 뛰어난 예술가' 칭호를 받은 바 있는 극작가이자 시인, 소설가인 쑤수양의 저서다. 중국 본토에서 출간된 후 지금까지 무려 1500만 부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오늘날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의 요청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1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중국책>이라는 과감한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문명, 역사, 철학, 예술, 경제, 생활 등 12개의 다양한 테마를 통해 중국을 소개한다. 한국과도 관련이 있는 역사는 물론, 한국인에게는 낯선 중국 신화와 문명의 기원, 한자를 비롯한 발명품, 철학, 생활, 경제, 예술 등 다양한 테마를 포괄적으로 다루어 책 한 권으로 중국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중국학 개론 수업을 들은 듯하달까.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1920년 중국에서의 순회강연에서 중국인의 생활방식에 관해 이야기했다.

  "중국인은 특유의 생활 방식을 창안해서 오랜 세월 실천해 왔습니다. 만약 우리 유럽인이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이러한 생활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전 세계가 행복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은 투쟁과 개척 그리고 끊임없는 변혁을 요구하므로 만족을 모르고 결국 파괴에 이르게 됩니다. 파괴를 낳는 효율성은 절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p.181)


  책에는 단순히 중국이란 나라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중국의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중국의 문명이나 풍속 중에 무엇을 지키고 버릴지에 관한 내용도 자주 나온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뒤늦게 서구화와 자본주의를 경험한 중국이 미국과 견줄 정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태도로 보인다. 80년대에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을 무렵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재인식하는 과정을 거쳤던 것을 이제는 중국이 반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을 인용하며 중국의 문명과 역사 중에는 서양인도 부러워할 만한 자랑스러운 것이 많다, 그러니 지킬 것은 지켜가자는 논지의 주장을 여러 번 제시한다. 이를테면 투쟁과 개척, 변혁 위주의 서양의 생활 방식과 달리 조화와 질서를 중시하는 중국의 생활 방식이 낫다는 것이나, 서양의 가족 관계가 일종의 계약 관계와 비슷한 것과 달리 중국은 혈연뿐 아니라 유교 사상과 인간으로서의 정과 의리로 묶여 있어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어떤 대목은 지나치게 자문화중심적인 면모가 보이기도 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경제적 성과 위주로만 서술하고 문화대혁명이나 천안문 사태 같은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자국의 무역 정책에 대해서도 국제 경제상의 이유 -를 대지 않고 '중국의 전통문화에 내재한 대의(大義), 대인(大仁) 정신을 발양한 것'이라고 평한 것은 어리둥절했다.  

  

  중국 문명에는 찬란한 역사와 더불어 어두운 과거가 존재한다. 이는 어떤 민족 문명이든 외부 세계와 교류하면서 다른 문명의 정수를 흡수하고 소화해 자기 문명의 유기적 성분으로 융합시켜야만 한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그래야만 하나의 문명은 갱신을 거듭해 세계 문명의 일부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p.305)  


  저자는 중국이 외부의 문명을 어떻게 수용하고 융합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풀어놓았지만, 내가 보기에 중국은 인류 문명에 있어 이미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저자가 "중국에서 거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라고 한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한자, 제지술, 인쇄술, 화약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18세기 이후 서양에 패권을 빼앗기긴 했어도 다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중국의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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