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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평점 :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이 <밤이 선생이다>를 출간한 후 5년 만에 낸 산문집이다. 이 책을 발표하고 두 달 후에 영면에 들었으니 유고작이다. 이 책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약 5년 동안 저자가 쓴 글 중에 일부를 추렸다. <밤이 선생이다>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관한 글이 많은 반면, 이 책에는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한 개탄 섞인 글이 대부분이다. 세월호 참사, 대통령 탄핵, 여성 혐오, 헬조선 등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들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책의 1부와 2부, 3부에는 사회에 대한 평론이 실려 있고, 4부와 5부에는 저자가 인상 깊게 본 책이나 영화에 대한 평론이 실려 있다. 영화 <곡성>, <컨택트>, 조선희 장편소설 <세 여자> 등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보여서 반가웠으나, 대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시집이나 평론집에 관한 글이라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저자가 평생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것들의 의미를 해석하고 글로 쓰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 부럽다. 나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일'이 될 수 있을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말과 글이 자기 자신을 가장(假裝)하고 남에게 상처 주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세상에서 말과 글의 진정한 효용을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저자가 가르치는 대학에서조차 학생들은 정의와 평등을 교과서에나 나오는 허울 좋은 개념으로 받아들일 뿐, 자신들의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문제나 그 밖의 사회 문제에 적용하지 않는다. '먹고사니즘'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더군다나 신자유주의로 점철된 교육을 받으며 경쟁은 당연하고 차별은 불가피하다고 배운 까닭이다. 좋은 말을 듣고 좋은 글을 읽었으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저자의 일갈이 나를 향한 듯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