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았던 아버지가 병에 걸려 약해지고 죽음 앞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장성한 아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필립 로스의 에세이집 <아버지의 유산>은 작가 자신의 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려 투병하는 모습을 보며 쓴 글을 엮은 책이다.
필립 로스의 아버지 허먼 로스는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이다.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생명에서 보험 판매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해 지점장의 자리에 오르며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아버지의 관심사는 오로지 돈 벌기였고, 돈을 벌어서 식구들을 먹이고 자신이 속한 유대인 공동체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길 소망했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가 고리타분한 허세 덩어리라고 생각했고, 자신은 결코 그런 어른이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뇌졸중 판정을 받는다. 당시 저자는 작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아버지 앞에선 여전히 어리고 불안한 아들이었다. 저자는 평생 건강할 줄 알았던 아버지가 스스로 용변을 보지 못할 만큼 급격히 쇠약해진 걸 보고 당황한다. 누구보다 기억력이 좋았던 아버지가 평생 한 동네에 산 이웃들은 물론 가족들의 이름마저 잊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이 이제는 혼자만의 추억이 되어간다는 사실에 큰 슬픔을 느낀다. 좋았던 기억도 싫었던 기억도 아버지는 모두 잊고 나만 영영 기억하리라는 생각에 좌절한다.
이 책은 필립 로스가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쓴 책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자식의 심정에 관해 쓴 책이다. 자식은 부모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했던가. 이 책을 쓴 필립 로스는 2018년 5월 22일 한국 나이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