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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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책으로 배웠다. 80년대생인 나에게는 박정희도 전두환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이고 군부 독재도 민주화 운동도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배운 말들이다. 머리가 좀 큰 후에야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절을 살아냈거나 혹은 살아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 일처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 <1987>을 보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내가 울었던 것은, 저토록 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엄혹한 시대에 비정한 독재자를 나라님으로 맞아 제 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애도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저들만큼 의롭지도 못하고 용기도 없는 내가 운 좋게 평화롭고 풍요롭기까지 한 시대에 태어나 별 탈 없이 살고 있음을 안도하는 마음도 있었다. 여전히 내게 역사는 지금 여기 있는 나와는 무관한, 저 옛날 저 먼 어느 곳에서 남들이 겪은 일에 불과한 것이다.


왜 그토록 무심하고 무지했을까. 장혜령의 소설 <진주>를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진주>는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 속 '나'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도 비슷하다. 비슷한 때에 비슷한 곳에서 산 나와 '나'의 삶이 온전하게 겹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아버지다. 나의 아버지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 정년을 채운 반면, '나'의 아버지는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후 생애의 대부분을 운동가로 살았다. 나의 아버지가 승진을 하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이 지역 저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동안, '나'의 아버지는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라 경찰의 눈을 피해 이 지역 저 지역으로 도망 다녔다. 나의 아버지가 자기 명의의 집을 사고 평수를 늘리는 동안 '나'의 아버지는 비좁은 감방에서 흐르지 않는 시간을 견뎠다.


아버지가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산 대가로 가장 가까운 가족인 아내와 딸, 즉 '나'의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의 몫까지 살아야 했다. 이웃에 사는 여자들이 남편이 벌어온 월급을 알뜰살뜰 모아서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고 옆 동네 아파트 단지로 이사 갈 꿈을 꿀 때, '나'의 어머니는 이웃들의 옷을 수선해 번 돈으로 딸을 키우고 도피 중인 남편을 살피고 남편의 동지들과 그 가족들의 형편까지 챙겨야 했다. 한 남자의 아내이기 이전에 운동가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정을 모르는 반 아이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물을 때마다 얼버무리거나 거짓말을 해야 했다. 사정을 짐작한 학교 선생님들이 너의 아버지는 좋은 분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해야 했다. 아버지의 선배 혹은 후배라는 아저씨들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을 때마다 군소리 않고 심부름을 해야 했다. 사복 경찰이 아버지 친구라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 했고 동네 사람들이 뒷말을 하면 모른 척해야 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한참 늦게 자전거를 배워야 했고 오랜만에 나타나 겨우 정이 들 때쯤 떠나는 아버지를 말없이 보내야 했다. 정성을 다해 접은 카네이션을 잠깐 가슴에 달았다가 주머니에 넣고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대고 울거나 투정을 할 수 없었다. 한 남자의 딸이기 이전에 운동가의 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진주로 가야 했다. 서울에서 김포로 이동해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진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는 고된 여정이었다. 여정의 끝에는 교도소가 있었고 철창 너머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를 따라 간 '나'는 기분이 얼떨떨했다. 어머니와 선생님이 아버지는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교도소는 나쁜 사람들을 가두는 곳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인 아버지가 나쁜 사람들을 가두는 곳에 있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철창 너머에 있는 아버지는 더욱 알기 힘든 말을 했다. 옆에 있는 교도관을 가리키며 이 분은 좋은 분이라고, 어서 공손히 인사하라고 했다. 아버지를 가두고 감시하는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라니. 아버지의 말을 들어야 할까 듣지 말아야 할까. 대체 아버지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아버지를 좋아해야 할까 미워해야 할까. 그때 겨우 열한 살이었던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의문들이었다.


자라면서 의문은 불만이 되고 분노가 되었다. 아버지가 무엇이 되지 않기를 바란 것처럼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일조한 운동가이지만 '나'는 자라는 동안 아버지가 운동가인 덕을 본 일이 없다. 기억하는 한 가정의 주 수입원은 언제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였다. 출소 전에는 물론이고 출소 후에도 아버지는 전과자인 탓에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해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얼마 못 가 그만뒀다. 불의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사수한다는 일념으로 끔찍한 고문과 무자비한 매질을 견뎌낸 아버지가 고작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부조리를 알고도 눈 감을 리 없었다. 생애의 대부분을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살아온 아버지에게 무엇이 되기 위해 산다는 것은 신발의 앞과 뒤를 바꿔 신는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졌을 터다.


'나'는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독재나 부정보다 더 큰 죄는 가난이다. 부모가 독재나 부정에 눈 감지 않은 죄로 자식들에게 가난이란 더 큰 죄가 대물림되는 곳이 이 나라다. '나'는 풍족해지지는 못해도 가난은 면하고 싶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이 지긋지긋했다. 내 집이 아니어도 좋으니 월세살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이 되지 않는 것보다 무엇도 되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아버지가 있으나 없으나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서야 했다. '나'는 아버지가 드리운 그늘로부터 도망치듯 가회로 나왔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부정과 불합리를 보고도 넘겼다. 갑질을 일삼는 사장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운동가의 딸로서 누구보다 독재의 부당함을 정의의 절실함 자유의 소중함 잘 알면서도 그저 하루를 편히 넘기기 위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쾌적하게 살고 배부르게 먹기 위해 독재를 보고도 넘기고 불의에 입다물고 자유를 포기했다.


서른둘의 어느 날 '나'는 홀연히 진주로 떠났다. 오래전 어머니의 손을 잡고 투옥된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던 곳이다. 이제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서 감옥에 잡혀들어간 게 아니란 걸 안다. 아버지를 가두고 감시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안다. 불의와 타협하지 못한 아버지를 미워할 수만은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자신과 어머니를 가난과 싸우도록 내버려 둔 아버지를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때는 몰랐던 걸 지금은 알게 되었다 해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과 기억들 때문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하듯 글을 쓰고 업무를 보듯 자료를 살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숙고해 완성한 글이 쌓여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비로소 장혜령 작가의 한 시절이 매듭지어졌다.


내가 역사를 책으로 배우는 동안 장혜령 작가는 역사를 몸으로 살았다. 내가 겪지 않은 일들을 겪어야 했고 내가 품지 않아도 되었던 의문들을 품어야 했다. 내가 여태껏 무심하고 무지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 운동에 직접 뛰어든 장혜령 작가의 아버지와 그의 몫까지 대신해야 했던 작가의 어머니와 작가 덕분이다. 내가 오랫동안 순진하게도 독재는 옛날이야기이고 민주화 운동은 진작에 끝났다고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아니 아무도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희생 덕분이다. 장혜령 작가의 이야기 말고도 내가 모르는 후일담이 더 많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그중 대부분이 발견되지도 발화되지도 못한 채 시간의 더께 아래 묻힐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고, 먼저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에게 고맙다. 이다음은 나의 몫이다.



이 시간, 이 언어를 여기 기억함으로써

그 시대, 그 어둠, 그 고통, 그 잘못을

우리가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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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기 싫은 개 - 한 소년과 특별한 개 이야기
팔리 모왓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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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자연주의 작가 팔리 모왓의 장편소설 <개가 되기 싫은 개>는 유년 시절 작가가 때로는 형제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냈던 개 머트(Mutt)를 향한 애정과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다.


때는 1929년 여름. 캐나다 중남부에 있는 도시 새스커툰에 살던 시절의 일이다. 사서로 일하는 아버지는 사냥꾼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도 야생에서 사냥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냥을 하려면 사냥을 도와줄 사냥개가 필요했는데 집안 형편상 튼튼하고 혈통 좋은 개를 구입할 여력이 안 되었다. 마침 집에 한 소년이 오리와 개를 팔러 왔고, 어머니는 소년이 권하는 오리 대신 작고 비쩍 마르고 혈통을 알 수 없는 개를 헐값에 구입했다. 그 개가 바로 머트다.


늠름한 사냥개를 원했던 아버지는 머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머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 남들이 잡종견이라고 놀려도 저자의 눈에는 머트만큼 품위 있고 사랑스러운 개가 없었다. 머트는 항상 '개가 되기 싫은 개'처럼 행동했다.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애교를 떨지 않았고 자존심을 굽혀 가며 유순하게 굴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머트가 고집불통이라며 야단치고 미워했지만, 저자는 머트의 그런 고집스러운 성격이 싫지 않았다. 머트를 보면서 개한테도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살던 마을에는 '캣 레이디'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혼자 사는 나이 든 여성으로, 이웃과 교류하지 않고 집에서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을 돌보며 산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어느 날 저자는 머트를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캣 레이디의 집을 습격했다. 그 집에 정확히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사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저자와 동네 소년들을 강도로 오인한 캣 레이디가 비명을 질렀고, 그 바람에 캣 레이디의 집에 경찰관이 들이닥쳤다. 그 사이에 캣 레이디와 살던 고양이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년들은 치기 어린 호기심으로 그런 행동을 했겠지만, 그러한 행동의 결과 캣 레이디는 소중한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사랑하는 고양이들을 잃었다.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은 소년들을 야단치고 캣 레이디를 위로하기는커녕 목격 증언도 거부하고, 캣 레이디의 옆집에 사는 남자는 저자에게 총을 선물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그 시절의 일들을 따뜻하고 뭉클한 추억으로 회고하지만. 과연 캣 레이디에게도 그 시절의 일들이 따뜻하고 뭉클하기만 할까.


책에는 개 말고도 다람쥐, 방울뱀, 거북이, 수리부엉이, 스컹크 등 저자가 유년 시절 직접 키웠거나 애정을 주었던 동물들과의 일화가 실려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동물원에 가서야 겨우 볼까 말까 한 동물들을 집 앞 뜰이나 뒷산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니 신기하다. 그 모든 시간들을 함께 했던 머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장면은 너무나 담담해서 도리어 더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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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 않고도 취한 척 살아가는 법 - 일상은 번잡해도 인생은 태연하게
김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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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고 태어난 인생인데 어쩌자고 그렇게 '죽자'고 퍼마셨던 걸까?" 월간 <PAPER>를 창간한 작가 김원의 신간 <마시지 않고도 취한 척 살아가는 법>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 대목이다.


책에는 저자가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에 관한 단상이 에세이 형식으로 담겨 있다. 저자는 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왔다. 일하고 싶을 때는 일하고, 놀고 싶을 때는 놀고, 먹고 싶을 때는 먹고, 자고 싶을 때는 잤다. 그렇게 살아온 삶에 일말의 후회도 없다. 하지만 요즘은 남들도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남들도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소리처럼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가 불행하면 인간도 불행하다.


인생 선배로서 넌지시 건네주는 꿀팁도 있다.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망설여질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예를 들어 지금 다니는 회사에 계속 다닐지 아니면 새로운 회사로 이직할지 망설이고 있다고 해보자. 그럴 때는 지금 다니는 회사의 장점 다섯 개, 단점 다섯 개를 써본다. 그다음에는 이직할 회사의 장점 다섯 개, 단점 다섯 개를 써본다. 다 썼으면 지금 다니는 회사의 다섯 가지 장점을 순위와 중요도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1위는 50점, 2위는 40점, 3위는 30점... 같은 식으로 지금 다니는 회사의 단점과 이직할 회사의 장단점을 점수로 매긴다. 합산한 점수가 높은 쪽을 택하면 된다.


평소 '이것만큼은 매일매일 꾸준히 해나간다'는 원칙이나 룰을 만들어보라는 팁도 나온다. 저자의 경우 10년 넘게 하루에 4시간씩 나무를 이용해 뭔가를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필통, 우드 스피커, 조명, 원목 도마, 티 테이블 등 여러 가지를 손수 만들었다. 거창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계속해서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고 요령이 생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원칙과 룰이 그 사람의 인격을 만들고 개성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어떤 원칙과 룰이 있을까. 한 번쯤 찬찬히 생각해 봐야겠다.


장례식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는 죽은 이후가 아니라 죽기 30일 전쯤에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연출할 생각이다. 조문객으로는 평소 친하게 지낸 친구들을 100명 정도 초대할 예정이다. 병원 장례식장 대신 소극장을 빌리고, 시뻘건 육개장 대신 평소 자신이 좋아한 음식들을 대접할 것이다. 식이 시작되면 한 사람씩 무대로 불러서 가벼운 인사를 나눌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장례식에 초대할 100명의 친구 리스트를 추리고 있다니 결심이 대단하다. 나라면 나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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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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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모두 다 2020년에 살아 있다. 하지만 2020년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2020년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사회가 들썩이는 틈을 타 각종 혐오와 차별, 배제의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은 정녕 2020년을 살고 있을까. 출판사가 상을 명목으로 작가의 저작권을 빼앗고 이에 항의하는 작가와 독자들을 능멸하고 우롱하는 사건은 정녕 2020년의 일이 맞나. 찡그린 미간을 풀 겸, 요즘처럼 힘든 때를 위해 묵혀 두었던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이다.


이 책에는 정세랑 작가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각종 지면 또는 웹진을 통해 발표한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은 자꾸만 사라지는 손가락의 일부를 찾아 시간 여행을 하는 이성애자 커플의 이야기를 그린다.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를 열렬히 좋아하는 팬으로서 오랜만에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을 보니 반가웠다. <11분의 1>은 갑자기 사라진 연인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낸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들이 '머나먼 곳으로(far, far away)' 떠난다는 점이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우주에서 한아뿐>을 연상케 한다.


<리셋>은 거대한 지렁이가 인류 문명을 갈아엎는다는 설정의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아비규환이 되고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버드 박스>를 연상케 했다. <모조 지구 혁명기>는 제목 그대로 지구를 본떠서 만든 '모조 지구'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과정을 그린다. 지구는 물론 모조 지구와 그 위에서 사는 생명체들을 모두 '디자인'한 '디자이너'의 등장이 재미를 돋운다. <리틀 베이비블루 필>은 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환자들을 위해 일시적으로 기억력을 높이는 약이 개발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허구지만, 가까운 시일 내로 실제로 일어날 법하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저마다 다른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수용소에 갇혀 지내는 동안 일어날 법한 일을 그린다.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있는 것을 버리는 이야기는 언제 보아도 뭉클하다. <7교시>는 대멸종 이후 살아남은 인류가 과거의 인류에 대해 배우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리셋>의 후반부와 비슷하다.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는 옥탑방에 사는 양궁 선수가 좀비들을 피해 참치캔으로 연명하며 생존을 도모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좀비가 등장하지만, 정윤처럼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지금 대한민국에도 무수히 많다는 걸 알기에 허구로만은 읽히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바랄 수도 없는 - 그랬다가는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타인은 좀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에 실린 소설의 대다수가 최근 1,2년 전이 아닌 그보다 전에 쓰인 작품인 걸 알고 놀랐다. 내가 나에게 닥친 매일매일을 살아내는 일에만 급급할 때,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매일을 살아내면서 동시에 과거와 미래, 더 먼 미래를 상상하고 걱정했다니 이래서 작가구나 싶었다. 정세랑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264-5쪽) 정세랑 작가처럼 미래의 인류가 현재의 인류를 어떻게 볼지 염려하며 사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속도로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 미래에 인류가 있을지 없을지조차 불확실하지만.


"나는 한 사람의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에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관심이 바깥을 향하는 작가들이 판타지나 SF를 쓰게 된다고 생각한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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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1 - 조운선 침몰 사건 백탑파 시리즈 4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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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가 소설 <목격자들>을 쓰기 시작한 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로부터 한 달 후의 일이다. 참사가 있은 지 한 달 동안 작가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써야 할 글이 있었지만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랬던 작가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다른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기록하고 슬픔을 표현하고 애도하는 마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화가는 그림으로, 가수는 노래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실종자들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작가로서 소설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백탑파> 시리즈를 위해 찾아둔 소재 중에 정조 때 일어난 조운선 침몰 사고가 있어서 이를 소재로 쓴 소설이 <목격자들>이다.


이야기는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그의 절친 김진이 각각 정조와 영의정 조광병의 명을 받아 전라도 밀양과 영암에서 일어난 조운선 침몰 사고를 조사하러 떠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이명방은 짙은 해무 때문에 일어난 단순한 해양 사고라고 여기는데, 사건 관련자들은 물론 의금부 도사들까지 줄줄이 살해당하면서 여간 심각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다. 한편, 조정에선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조운선 침몰 사고가 새로운 왕조의 출현을 기대하는 '정감록' 일파들의 소행이 아닌지 의심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관련된 인물이 출현하고, 여간해선 여인들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았던 김진이 웬일로 한 여인과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걷잡을 수없이 복잡해진다.


세월호 참사가 계기가 되어 집필된 소설답게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많다. 선장과 선원들은 대부분 목숨을 건진 반면 일반 백성들은 대다수가 사망한 점이 그렇고, 사건을 면밀히 조사해야 할 관원들이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한 점이 그렇고, 사건의 배후에 당대 권력자들이 관여되어 있으나 끝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점이 그렇다. 특히 아홉 살 난 아들 차돌을 사고로 잃은 어머니 선영이 한양까지 와서 원통함을 호소하는 장면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밀양에서부터 맨발로 걸어왔건만 관원들은 돌아가라고 막아서고 때리고 사람들은 괜한 소란을 피운다며 돌을 던지는 장면은 당시 정부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홀대했던 것과 일부 보수단체 사람들이 유가족들을 욕하고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을 하던 비인간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 작품의 절정은 조사를 마친 이명방이 정조에게 조사 결과를 고하며 사고로 목숨을 잃은 백성들을 한 사람씩 호명하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공교롭게도 이 장면은 201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5.18 당시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열사들을 한 사람씩 호명하던 모습과 겹친다(참고로 <목격자들>은 2015년에 발표되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름의 주인을 기억하겠다는 것이고,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격자들>은 누구를 기억하고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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