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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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책으로 배웠다. 80년대생인 나에게는 박정희도 전두환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이고 군부 독재도 민주화 운동도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배운 말들이다. 머리가 좀 큰 후에야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절을 살아냈거나 혹은 살아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 일처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 <1987>을 보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 내가 울었던 것은, 저토록 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엄혹한 시대에 비정한 독재자를 나라님으로 맞아 제 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애도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저들만큼 의롭지도 못하고 용기도 없는 내가 운 좋게 평화롭고 풍요롭기까지 한 시대에 태어나 별 탈 없이 살고 있음을 안도하는 마음도 있었다. 여전히 내게 역사는 지금 여기 있는 나와는 무관한, 저 옛날 저 먼 어느 곳에서 남들이 겪은 일에 불과한 것이다.


왜 그토록 무심하고 무지했을까. 장혜령의 소설 <진주>를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진주>는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 속 '나'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도 비슷하다. 비슷한 때에 비슷한 곳에서 산 나와 '나'의 삶이 온전하게 겹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아버지다. 나의 아버지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 정년을 채운 반면, '나'의 아버지는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후 생애의 대부분을 운동가로 살았다. 나의 아버지가 승진을 하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해 이 지역 저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동안, '나'의 아버지는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라 경찰의 눈을 피해 이 지역 저 지역으로 도망 다녔다. 나의 아버지가 자기 명의의 집을 사고 평수를 늘리는 동안 '나'의 아버지는 비좁은 감방에서 흐르지 않는 시간을 견뎠다.


아버지가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산 대가로 가장 가까운 가족인 아내와 딸, 즉 '나'의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의 몫까지 살아야 했다. 이웃에 사는 여자들이 남편이 벌어온 월급을 알뜰살뜰 모아서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고 옆 동네 아파트 단지로 이사 갈 꿈을 꿀 때, '나'의 어머니는 이웃들의 옷을 수선해 번 돈으로 딸을 키우고 도피 중인 남편을 살피고 남편의 동지들과 그 가족들의 형편까지 챙겨야 했다. 한 남자의 아내이기 이전에 운동가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정을 모르는 반 아이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물을 때마다 얼버무리거나 거짓말을 해야 했다. 사정을 짐작한 학교 선생님들이 너의 아버지는 좋은 분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해야 했다. 아버지의 선배 혹은 후배라는 아저씨들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을 때마다 군소리 않고 심부름을 해야 했다. 사복 경찰이 아버지 친구라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 했고 동네 사람들이 뒷말을 하면 모른 척해야 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한참 늦게 자전거를 배워야 했고 오랜만에 나타나 겨우 정이 들 때쯤 떠나는 아버지를 말없이 보내야 했다. 정성을 다해 접은 카네이션을 잠깐 가슴에 달았다가 주머니에 넣고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대고 울거나 투정을 할 수 없었다. 한 남자의 딸이기 이전에 운동가의 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진주로 가야 했다. 서울에서 김포로 이동해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진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는 고된 여정이었다. 여정의 끝에는 교도소가 있었고 철창 너머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를 따라 간 '나'는 기분이 얼떨떨했다. 어머니와 선생님이 아버지는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교도소는 나쁜 사람들을 가두는 곳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인 아버지가 나쁜 사람들을 가두는 곳에 있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철창 너머에 있는 아버지는 더욱 알기 힘든 말을 했다. 옆에 있는 교도관을 가리키며 이 분은 좋은 분이라고, 어서 공손히 인사하라고 했다. 아버지를 가두고 감시하는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라니. 아버지의 말을 들어야 할까 듣지 말아야 할까. 대체 아버지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아버지를 좋아해야 할까 미워해야 할까. 그때 겨우 열한 살이었던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의문들이었다.


자라면서 의문은 불만이 되고 분노가 되었다. 아버지가 무엇이 되지 않기를 바란 것처럼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일조한 운동가이지만 '나'는 자라는 동안 아버지가 운동가인 덕을 본 일이 없다. 기억하는 한 가정의 주 수입원은 언제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였다. 출소 전에는 물론이고 출소 후에도 아버지는 전과자인 탓에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해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얼마 못 가 그만뒀다. 불의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사수한다는 일념으로 끔찍한 고문과 무자비한 매질을 견뎌낸 아버지가 고작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부조리를 알고도 눈 감을 리 없었다. 생애의 대부분을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살아온 아버지에게 무엇이 되기 위해 산다는 것은 신발의 앞과 뒤를 바꿔 신는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졌을 터다.


'나'는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독재나 부정보다 더 큰 죄는 가난이다. 부모가 독재나 부정에 눈 감지 않은 죄로 자식들에게 가난이란 더 큰 죄가 대물림되는 곳이 이 나라다. '나'는 풍족해지지는 못해도 가난은 면하고 싶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이 지긋지긋했다. 내 집이 아니어도 좋으니 월세살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이 되지 않는 것보다 무엇도 되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아버지가 있으나 없으나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서야 했다. '나'는 아버지가 드리운 그늘로부터 도망치듯 가회로 나왔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부정과 불합리를 보고도 넘겼다. 갑질을 일삼는 사장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운동가의 딸로서 누구보다 독재의 부당함을 정의의 절실함 자유의 소중함 잘 알면서도 그저 하루를 편히 넘기기 위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쾌적하게 살고 배부르게 먹기 위해 독재를 보고도 넘기고 불의에 입다물고 자유를 포기했다.


서른둘의 어느 날 '나'는 홀연히 진주로 떠났다. 오래전 어머니의 손을 잡고 투옥된 아버지를 면회하러 갔던 곳이다. 이제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서 감옥에 잡혀들어간 게 아니란 걸 안다. 아버지를 가두고 감시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걸 안다. 불의와 타협하지 못한 아버지를 미워할 수만은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자신과 어머니를 가난과 싸우도록 내버려 둔 아버지를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때는 몰랐던 걸 지금은 알게 되었다 해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과 기억들 때문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하듯 글을 쓰고 업무를 보듯 자료를 살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숙고해 완성한 글이 쌓여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비로소 장혜령 작가의 한 시절이 매듭지어졌다.


내가 역사를 책으로 배우는 동안 장혜령 작가는 역사를 몸으로 살았다. 내가 겪지 않은 일들을 겪어야 했고 내가 품지 않아도 되었던 의문들을 품어야 했다. 내가 여태껏 무심하고 무지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 운동에 직접 뛰어든 장혜령 작가의 아버지와 그의 몫까지 대신해야 했던 작가의 어머니와 작가 덕분이다. 내가 오랫동안 순진하게도 독재는 옛날이야기이고 민주화 운동은 진작에 끝났다고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아니 아무도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희생 덕분이다. 장혜령 작가의 이야기 말고도 내가 모르는 후일담이 더 많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그중 대부분이 발견되지도 발화되지도 못한 채 시간의 더께 아래 묻힐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고, 먼저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에게 고맙다. 이다음은 나의 몫이다.



이 시간, 이 언어를 여기 기억함으로써

그 시대, 그 어둠, 그 고통, 그 잘못을

우리가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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