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빛을 주는 티벳 사자의 서 (CD 3장 + 낭송 대본)
파드마삼바바, 정목 낭송 / 정신세계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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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듣는 것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위대한 가르침>


책의 겉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는데

시골의 작은 도서관에서는 부록자료로 곁들여진 CD는 같이 대출하지 못했다.

CD는 없단다....


예전의 나 같으면 분명 시립도서관에 전화해서 

이 책의 부록 CD를 들어야겠으니 대출이 되도록 해 주십사고 

당부를 했을터이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그러지 않는다.

없다면 없는대로~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이다. 



죽음에 대해 내가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던 책이 <롭상 람파의 가르침>이란 책이다.

선악이 함께이고, 음양이 함께이며, 생사가 함께이듯이 죽음과 극락은 함께일 것 같다.

죽음의 고통 뒤에는 극락, 극한의 락이 따라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종교라면 당신은 그것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진실성을 더욱 믿게 될것이다.

자칫하면 좁고 협소한 길 아래로 떨어져 지옥불과 저주에 둘러싸이게 된다고 

위협하는 종교들은 신도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 

'영원한 저주'는 없다. 영적 세계에서는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추방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나쁜 사람일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 - "롭상 람파의 가르침" 중에서


이 책, <티벳 사자의 서>에서 처럼

죽은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영혼의 세계를 떠돌며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일이 사후세계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티벳 사자의 서>는 산 사람들이 사후세계를 두려워해서

현재를 더 참되게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삶에서의 경고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영원한 저주'는 없다. 영적 세계에서는 아무도 버려지지 않는다. >  

                                                            - "롭상 람파의 가르침" 중에서

이것이 신의 사랑이지 않겠나!



지난 10월 26일 , 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더없이 평안하고 마냥 행복만이 가득한 그 곳에서 편히 계시리라 믿는다. 

거기는 극락이다. 다할 극, 즐거울 락, 극락!!

죽음 뒤에는 극락만이 있을터이다.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그 이유는, 만약 우리가 저 세상의 즐거움을 기억해 낸다면 

지상의 삶을 저버리고 행복을 찾아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 "롭상 람파의 가르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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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2 -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 참선 2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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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나의 '실패'라고 하는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일어났다면 그것이 진짜 '나의 실패'일까? (...)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우리가 뭔가 하려 할 때는 언제나, 결코 그 상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그건 실패가 아니다. (...) 과거에 당신이 이룬 큰 성공 중에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정말로 나의 성공이었을까? 그것이 정말 전적으로 내 재능과 노력 그리고 탁월함 때문이었을까? 다른 사람은 관련이 없을까? 운이 개입하지 않았을까? 잠깐이라도 온 세상이 내가 필요로 한 조건들을 모두 제공하지 않았을까?


* (...) 오직 베푸는 것만이 삶을 완벽의 경지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이 베풀고 기여하는 것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아직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크게 성공하든 그건 진정한 성공이 아닐 것이다. 


* 이것이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가? 인생무상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 불교에서는 우리 의식에 파괴될 수 없는 영원한 면이 있다고 가르치잖아. 의식의 근원 말이야. 참선 수행을 충분히 오래 하면 비록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자기 안에서 어떤 빛이나 광체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거든. 사실 무엇을 모든, 그게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말이지. 더 좋은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그러는데, 그 안에서 빛 같은 게 발산되는 것처럼 느껴져. 올고 그름을 떠나서 그게 의식의 빛이라고 느끼기 시작해. 만물이 일어나는 숨겨진 바탕.


* 참선 수행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에 대해 아는 건 육체뿐이야. 그 육체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그러니 육체를 상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을 잃기만 하고 얻는 건 없는 것처럼 느껴져. 이게 바로 내가 참선을 하는 이유야. 나는 나 자신에게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뭔가를 발견하고 싶거든. 그러면 더 이상 두렵거나 슬프지 않을 것 같아.


* 인류의 미래와 관련한 자신의 꿈...

( 내겐 너무나 어마어마한 말이다. 나의 미래와 관련한 나의 꿈조차도 모르는 판에 인류의 미래와 관련한 자신의 꿈이라니!!! 이 책이 좋은 이유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 이 세상에서 내 원수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 적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냐면 ... 친구로 만드는 거지.


* 통찰력을 바탕으로 용서한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사람이 무례하게 군다고 해서 당신이 존중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모욕한다고 해서 당신이 진짜 그가 표현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위협한다고 해서 당신이 겁쟁이거나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고 해서 당신도 그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을 향한 분노나 증오, 혹은 무관심이나 경멸로 가득한 사람을 아주 맑은 눈으로 통찰력을 갖고 보면 그들의 그런 감정이 당신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게 보인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들의 어그러진 욕망과 기대 때문이다. 자기들 마음대로 상황을 해석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각자 자아상을 만들고 왜 이렇게 됐나 원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지금 상처받기 쉬운 사람은 그들이지 당신이 아니다. 


* 나는 자기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 참선 수행은 우리의 시선이 더 깊이 그 근원을 향하도록 훈련시킨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은 없다. 참선을 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개발'하거나 '개선'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한 상태로 존재하는 우리의 실체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우리 몸을 차지하고 있는 빛나는 생명력과 지혜를 느끼는 것이다. 과연 이것은 어떤 느낌일까? 스스로를 개선하거나 개발하려는 모든 생각과 노력, 시도를 멈추면 비로소 느끼는 그 기분은 완벽한 진정성과 투명한 의식, 순수한 행복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애다. 


* 앉아서 참선을 하고 나면 그때마다 이전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권위 있는 종교지도자나 종교 단체의 축복이 아니라 이처럼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 참선의 가치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유일한 기준이다. 그리고 앉아서 하는 참선에 능숙해질수록, 그러니까 자세와 호흡, 집중하는 방법에 잘 적을할수록 참선은 더 풍용롭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 이제 진정한 영적 수행에 필요한 것은 외부 권위에의 복종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섬세하고 정확한 방법임을 알게 된다. 


* 참선으로 각자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물론 세상에는 나쁜 것들도 많이 보인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어서 보고 있으면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좋은 것들도 눈에 띈다. 더 좋아질 가능성도 보인다. 그리고 이세상에 좋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선가 그렇게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들은 무척 성실히 노력하고 있으며 아마도 엄청난 용기를 내서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품위 있고 생산적인 삶을 살기 위해 자기가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전등 스위치를 누르면 빛이 들어오고, 기차역에선 거의 제시간에 기차가 도착하고, 가게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그런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세계 어느 도시, 어느 거리에서든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세상은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잘 돌아간다. 언론에 보도되는 온갖 부정적인 뉴스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선한 사람들이 매일같이 각자의 일을 성실히 해내고 절제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감정은 그저 지나가는 마음 상태일 뿐이다. 우리가 느끼는 애정과 절박함은 다른 어떤 사람 혹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에 정신적으로 집착하는 상태다. 우리는 이런 기대와 애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참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날려 보내야 한다. 


* 참선에 들어가면 그 자세와 호흡이 내면을 고요한 상태로 만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평화 속에서 "이뭣꼬?"를 읊조리며 우리의 의식을 그 근원으로 돌린다. 그러면 우리의 의식이 꽉 막힌 듯 답답한 상태가 되어 대의심을 일으킨다. 한편으로는 온 마음을 다해 철벽을 밀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면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렇게 꽉 막힌 내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몸과 마음에 가득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알아차리고 그 의식을 마치 빛처럼 느낀다. 대의심이 우리의 의식을 옥죄고 억압하는 습관적인 강박과 두려움, 분노를 모두 녹여 없앰에 따라 의식이 안팎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 만약 어떤 말이든 와 닿는 것이 있다면, 가슴속에서 뭔가 끌림이 느껴진다면, 더 높은 차원의 해법을 구하라는 작은 속삭임이 들린다면, 송담 스님의 법문을 직접 찾아 듣고 그 가르침을 실천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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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 1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 참선 1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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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첫 학기가 시작된 후에야 사람들이 대학이라는 곳에 인간의 정신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면 즐겁게 들어주는 똑똑하고 재미있는 괴짜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다. 교수님들은 모두 천재처럼 보였다. 


< 정신을 위한 놀이터, 똑똑한 친구, 천재 교수님... 세계 최고의 대학, 하버드를 이야기할 때는 이런 단어들을 항상 읽게 된다. 대학이 정신을 위한 놀이터라는 것을 나는 전혀 알지못한 채 졸업을 했다. >


* 외로움을 나약함의 증거로 여기는 사찰문화에서 나는 늘 외로웠다.


*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시궁참보다도 훨씬 더 더러운 정신상태에 빠지거든. 그런 감정들이 시궁창보다 더 더럽고 고약한데 말이야. 우리가 정말로 시궁창에 빠진다면 옷이나 피부 같은 껍데기만 더러워지겠지. 옷은 빨면 되고 몸은 씻으면 해결되잖아. 하지만 우리가 탐욕과 화, 망상에 빠지면 내면이 더러워지고 병이 생긴단 말이여.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몸까지도 그렇게 돼.


* 자기 안에 믿음의 기둥을 만들라. (...) 우리는 인간이고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하지만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과 함께 선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어쩌면 무한한 역량을 가졌다. 


*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후에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스님의 얼굴이 절박함과 연민으로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에너지를 모으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스님의 몸 주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하는 듯했다. 스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우리가 우주의 정중앙을 향해 뿌리를 내리며 땅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한 사람에게서 이런 기운을 느낄 수 있다니, 나도 이런 경험을 한번 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 참선을 할 때 답을 만들어내려는 충동을 없애고 대의심을 일으키기 위해 진심으로 화두를 던져야만 비로소 죽은 참선, 즉 사구참선이 아니라 살아있는 참선, 즉 활구참선이 된다. 진정한 참선 수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대의심은 순수하고 진심 어린 의문을 품은 상태다. (...) 이 정도로 직접적으로 절박하게 대의심을 경험하면 이제 정말로 활구참선 수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우리가 원하면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고, 사라지게 할 수도 있어. 내 감정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


* 우리가 참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살다 보면 속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 우리 마음 속에는 항상 절망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는 그 무언가가 있다. 선불교의 가르침을 빌리면 '결코 죽지 않고 항상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 세수하고 양치를 할 때도, 샤워하는 동안에도, 옷을 입고 외출할 때도, 거리를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 혹은 차를 운전할 때도, 일하려고 의자에 앉을 때, 일상의 잡다한 일들을 처리할 때도,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혹은 슬플 때도,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을 때도,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들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오직 "이 뭣고?"를 생각해야 한다. 머릿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모든 신체 감각에 대해 우리의 시선을 대의심으로 돌려야 한다. 


* gulity pleasure

<영어의 매력이 느껴지는 단어다. 영어를 잘 모르지만 no thank you에 감탄해서 영어라는 언어를 좋아하는데, guilty pleasure, 이 단어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감사하지만 거절을 한다. 거절 안에 감사가 들어있다. 중독적이지만 그 안에 기쁨을 포함시키다니, 중독이 주는 기쁨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죄책감을 느끼는 기쁨, 중독의 표현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기를 바라지만 이상하게 여겨지는 건 또 원하지 않는다. 자기가 꿈꾸는 대로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면서도 현실적이길 원한다. 궁극적으로 이 세상이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이기를 바란다. 탐욕은 이와 같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분노와 망상으로 이어진다. 


* 선불교에서는 참선의 수준이 높아지면 '법희선열', 즉 참선을 통한 기쁨을 경험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면 사람들은 조용하고 겸손해진다. 자기 내면이 완벽하게 갖춰졌다고 느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할 것도 별로 없고 세상에서 얻으려는 것도 별로 없다. 더없는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며 마침내 무의미한 보상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된다. 달고 쓴 모든 경험을 통해 가지면 행복을 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고통만 가져왔다는 것을 이제 알기 때문이다. 


* 이렇게 뭔가에 대해 생각을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기묘한 상태가 바로 집착하는 상태다. 불교에서 집착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라고 말할 때는 집요하게 계속해서 일어나는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선볼교에서는 반복되는 한 생각이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라고 본다. 우리의 몸과 감정은 상상과 실제 상황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것을 떠올 때마다 우리의 신체와 감정은 그 부정적인 생각과 관련된 스트레스 반응을 겪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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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제정신 -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산다
허태균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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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산만한 느낌이 있어 요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

그러다 책의 말미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한다.


<이 책을 통해 심리학자인 내가 원했던 것은, 

바로 그 순간에 '혹시 내가 틀린 것 아냐? 

착각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다른 사람의 주장이 잘 들린다. 

그 다른 주장과 믿음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야만 내 믿음과 다른 믿음을 동시에 고민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어차피 대부분의 경우 항상 내 믿음과 판단이 옳다는 것이 최종 결론이 된다. 

그래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마음이 열린, 다른 의견과 주장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속 깊고 포용력 있는 리더가 되어 있을 것이다.>









* 설령 처음에는 의견이 다르다 해도 자신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는다면, 자신과 같은 믿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대가 계속된다면, 결국 자신의 믿음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게 될까? 혹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상대방이 머리가 나쁘다거나, 가치관이 이상하다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껴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그게 바로 당신이 순진한 사실주의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 그 순간 상대방도 당신과 똑같이 당신에게 답답함과 한심함을 느낄 확률이 100%다.


* 인생에서 남자가 조심해야 하는 3가지 (...), 초년 출세, 중년 상처, 노년 무전이다. (...) 인생의 정점을 20대에 맛보면, 그 내리막길이 너무 길지 않겠는가?


* 아마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결코 착하지 않은 외계인이 침략만 해준다면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나라의 모든 지구인이 힘을 합쳐 외계인을 무찌른 것 처럼.


* 만일 어떤 일이 잘못된 후에, 당신의 상사가 "그 뻔한 걸 놏치냐? 그걸 예상 못했어? 그렇게 될 줄 몰랐다는 게 이상하다. 나는 다 보이던데"라고 착각하며 말한다면 꼭 이렇게 얘기해 주자. "그렇게 다 알면 그렇게 될거라고 알려주지 그랬냐? 항상 지나고 나서 얘기하지 말고."


*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자신이 소신 있다고 믿는가? 혹시 똥고집은 아닐까? 심지가 깊다고? 혹시 벽창호는 아닐까? 자신은 한결같다고? 집착은 아닐까? 자신은 강직하다고? 결국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아닐까? 혹시 당신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당신의 말을 안 듣길 바라나?(이 문장은 어감이 좀 이상하다. <혹시 당신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당신의 말을 잘 듣길 바라나?>로 고쳐야하지 않을까?) 당신은,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얼마나 들어주며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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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인 - 대한민국 사춘기 심리학
허태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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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읽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되지 않아서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책도 내 마음이 편안해야 줄줄 읽어진다. 


내가 가진 일부 성향이 한국인의 특성이었음을 알고 나니

나를 이해하는데 한결 도움이 된다. 


외국인을 봐야 한국인의 특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거다.

그들의 문화는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사람살이 다 똑같다더라만 

정말 그런지도 내 눈으로 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느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외국살이를 하고 싶었다.

한 나라에서 1년씩만 살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이 꿈은 여전하고 앞으로도 여전할테다.


이곳저곳에서 살아 본 저자는 

한국인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분석도 잘하는 것 같아 부럽다.

저자가 말하는 <일관성>, 

그 일관성이 그의 글 속에서도 보여 더 부럽다. 


내가 모르는 것이 정말이지 많다. 

특히 편협적인 사고면에서는 안타까울 수준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을 나는 그저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춤추고 싶지 않은 고래도 있다는 말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아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일까?


선진국의 중산층의 기준을 보고 

무척 충격이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게 떠오르기도 한다. 












* 리더의 권한, 특히 결정권을 부하직원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결정권은 단지 일을 더 하게 하는 요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조직과 구성원들의 조직만족도와 정신건강, 행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한국인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신이 통제하는 것을 좋아하며, 자진의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을 선호한다. (...) 이런 특성은 한국인들이 업무에 있어 유연성이 있고 임기응변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한국인들은 현장에서 갑자기 접하는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알아서 즉각적으로 일처리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건 바로 국민 개개인이 규정, 법률, 원칙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따르기 때문이다. 굳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법률을 무시하려던 건 아닌데, 결정의 순간에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가족주의가 그렇게 강하다는 남미에서도 절대 자신의 친어머니가 아닌 사람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 그럼 진짜 어머니가 섭섭해하니까. 남미 사람들에게 정말로 소중한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뿐이다. 가족이 그렇게 고유하고 중요하다면 실제 가족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남미의 가족주의가 더 말이 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가족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주변 아무하고나 가족을 만든다. 이 모순적인 측면이 한국적 가족확장성을 잘 보여주는 단적이 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제는 가족의 원리로만 운영되기에는 한국 사회의 모든 조직과 집단이 지나치게 확장되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 현대 사회는 리오넬 메시, 스티브 잡스, 마크 주커버그, 김연아 등 타고난 천재적인 능력과 함께 엄청난 노력을 모두 갖춘 이들로 가득하다.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이 노력만으로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대인 것이다. 


*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선진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우리처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무조건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는다. 단지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비워둔 시간을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으로 채우고 있다. 돈이나 출세, 물질적인 획득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가치, 즉 가족, 친구, 여가, 여유, 봉사와 같은 것들 말이다. 단적인 예로 선진국의 대부분의 학교가 주말이나 연휴 직전에는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왜? 숙제 때문에 학생들이 말껏 놀지 못할까 봐.


* 우리보다 삶의 질이나 만족도가 높은 선진 사회들은 모든 국민이 다 부자라서가 아니라, 많은 국민이 부자가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성숙한 사회이다. 


* 한국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대립되는 것들이 골고루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태극기가 좋은 예이다. 가운데 있는 태극문양도 직선이 아닌 s자 모양의 곡선으로 음과 양의 조하를 상징하고 4괘도 하늘, 땅, 물, 불의 조화와 발전을 뜻한다.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어하는 한국인은 최근에는 짬뽕과 짜장면이 결합된 짬짜면을 개발하고 심지어 불고기버거와 새우버거를 합친 불새버거까지 출시했을 정도다. 이렇게 하나를 얻으려면 잃을 수밖에 없는 것도 잃지 않으려 하고, 잃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마 우리는 '행복하지만 동시에 지옥 같은 한국'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래서 한국인들은 모두 다 가지려고 한다. 아니, 다 못 가질 이유를 못 찾는다. 뭔가를 하나 선택할 때 다른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하느라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가족의 사랑은 변치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사교육으로 보내고 친구랑 노는 시간을 주지 않아도, 내 아이의 사회성과 인성은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성장을 위해 모든 과정적 절차를 무시해도, 정의는 실현될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선택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들은 모순적이게도 매우 빠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도 잃을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뭐든지 빨리 바꿀 수 있다. 


* 사람의 행동에 대한 관찰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적 또는 인격적 성향으로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일관성이다. 


* 그래서 원래 선택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택의 과정에서 가지는 것에만 목숨을 건다. 그러니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 문제는 하위 50%에게 그들이 잘할 수 있는 무엇을 가르칠 것이고, 어떤 기회를 줄 것인가이다. 이들에게 그들이 잘하고 언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과 이들에게도 국영수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 중에, 과연 어느것이 사회정의의 실현에 더 가까울까? (...) 교육의 다양성 문제는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이 몰려있는 3%의 자사고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전총적인 학업에 자질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은 97%의 학생들이 있는 일반고 문제다. 


* 이런 제목은 칭찬 때문에 춤을 추는 고래는 원래 춤추고 싶지 않았다는 진실과, 고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그 고래를 춤추게 하려 한다는 강제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실 원래 춤추고 싶어 하는 고래에게는 칭찬이 필요없다. 춤추고 싶지 않거나 충출 이유가 없는 고래를 춤추게 할 때만 칭찬과 같은 외재적 동기가 필요하다. (...) 이 세상에는 춤추고 싶은 고래와 춤추고 싶지 않은 고래가 있는데, 이 모든 고래를 춤추게 하려고 칭찬과 채찍질을 휘두르는 것이다.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서 너무나도 다양한데, 한국의 교육은 모든 학생이 비슷한 것을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 복합유연성을 가진 한국 사회는 뭔가를 선택할 때 다른 뭔가를 포기하고 집중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한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다양성을 죽이고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공부하라고 요구한다. 


* 이동통신사들은 '더 빠른 속도'를 외치며 치열하게 경쟁한다. 왜 빨라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속도만을 쫓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게 중독이다. 한국 사람들은 '최신', '최고급', '비싼', '빠른', '큰', '가벼운' 등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건이나 수치화할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불확실성 회피 성향은 한국인의 성공 비결이자 비극의 시작이다. 


* 이런 사회에서 평가는 적어도 미래와 관련해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 단지 과거를 확인하기 위한, 특히 과거를 처벌하기 위한 평가로서만 존재한다. 이러니 한국 사람들 중 누가 평가를 좋아할 수 있을까? (...) 모든 평가는 철저하고 공정해야 하지만, 거기서 끝나기만 하면 절대 안 된다. 그 평가를 근거로 어떠한 대처를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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