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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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 책을 읽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감동이 있다. 

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어쩜 이리 재미가 있고 집중력도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다 아는 내용인데도 어쩜 이리 마찬가지의 감동일까?


- 도도한 생활 -

비는 쏟아져 들어오는 반지하 방,

그 방의 흥건한 물 속, 

젖은 다리의 피아노,

그 젖은 피아노를 치고 있을 "나"가 너무 생생해,

내 발도 물에 젖고,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 "나"와 하나가 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 체르니란 말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아서, 돼지비계나 단무지란 말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



- 칼자국 - 

어쩌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이건 꾸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것을 봤을 때 그런 말이 나와야 하는 것이지 싶다. 


< 먼지 낀 유리병 속의 마늘장아찌나 숨 죽은 파김치, 복수심을 안고 포복해 있는 간장 게장과 독 안에서 꿈처럼 출렁이며 익어가는 물김치를 볼 때면, 내가 아주 옛날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 한 가계의 생긴 꼴이랄까 유전자랄까 하는 것 앞에서 느끼는 수줍음이었다. 저 삼촌과 저 사촌과 이 육촌은 아무 데서나 출몰했다. 그들의 얼굴은 곧 내 얼굴이기도 했다. >




- 기도 -

신림, 이 단어 하나로 이렇게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저자의 재주가 용하다. 

소리가 얇다니!!!

나도 누군가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배려심, 그런 습관에 쫓기기도 하고,

나의 선의가 상대를 더 헤매게 만든 적도 있었을텐데,

참 글로 잘 나타내는 용한 재주가 부럽다. 


< 신림 - 하면 푸른 숲이 떠오른다. 나무가 많은 숲 그리고 젊은 숲. 그 숲의 나무들은 모두 지하철 2호선을 표시하는 연녹색을 띠고 있다. 보통의 나뭇읖은 그보다 짙지만 어쩐지 신림의 나무들만은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신림, 하고 소리 내면, 먼 곳의 잎사귀들이 우수수 흔들리며 '수풀 림, 수풀 림' 하고 울어대는 것 같다. 신림, 하고 발음랄 때 내 혀는 파랗게 물든다. 구파발이라 읊조리면 내 가슴 어딘가에 꽂힌 붉은 깃발이 마구 펄럭이는 것처럼. 그것은 진짜 신림 진짜 구파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


< 봉지가 건네지며 '바스락' 운다. 그 소리가 하도 얇아 봉지를 꼭 감아쥔다. >


< '취업경로'가 밝혀질수록 나는 좀 쩔쩔맨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내가 그보다 낫다고 느껴서인지, 그가 나를 자신보다 낫다고 느껴서인지. 나 스스로 누군가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오래된 배려심이랄까, 그런 습관에 쫓기는 기분이다. 사내가 혹시라도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무례함을 느끼지 않을까 초조해진다. >


<초행길이라면 못 찾을 수도 있는데. 혹 나의 선의가 사내를 더 헤매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다. >




- 네모난 자리들 -

<갚을 순 없어도 잊어선 안 되는 일들이 있다고. >




- 플라이데이터리코더 - 

이런 삼촌은 얼마나 훌륭한가!!!

내용이 애틋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애틋하다. 


입맞춤을 이렇게 표현한다. 

< 그게 말이야, 대기권에 무거운 물체를 놓으면 지구의 중력으로 인해 무서운 속도로 낙하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거든? 음, 그러니까 다 타버려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고. 말하자면 그런 느낌이야. 입맞춤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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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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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한다.

나의 불평이나 우울, 침울 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한다.

오래 전 나의 청춘이 지나갔음이 고마울지경이다. 


돈이 부족하다.

김애란의 책에 등장하는 청춘들은 돈이 부족해서, 

내 청춘의 빈곤쯤은 선택한 빈곤마냥 

추억스러워 다행이다 싶게 만든다. 

그 절정이 마지막 이야기, <서른>이다. 

불쌍하고 측은하고 왜 그랬냐고 타박하고 싶지만, 

감히 엄두가 안나 입을 닫아걸테다. 


지금까지 읽은 김애란의 책 중 가장 구슬프고 먹먹하며, 

이 시대의 청춘들이 안타까워 감히 그들을 비난하는

따위의 말들은 입에 꺼낼 수 조차 없게 한다.


이 책을 처음 잡을 때부터

난 비행운을 구름과 연관시키지 않았다.

행운 앞에 아닐비 자를 넣은 비 행운이겠거니 했다. 


돈이 부족한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렇듯 많듯이

돈이 풍족한 청춘들의 이야기도 또한 많지 않을까?

현대의 문제점은 부족이 아니라 풍족에서 온다고 했는데,

김애란이 펼쳐내는 돈이 풍족한 청춘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싶은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하나하나의 단편으로만 읽었는데

<해설>을 읽어보니 모두가 연관되어짐을 알 수 있었다. 

김애란의 모든 책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단편이 모아져서 우리가 되는 것 같다. 



매력을 넘어서면 마력이 된다했던가, 마력적인 김애란의 글이, 책이 너무 좋다. 









* "뭐 그럴 것까지야."


*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에 바다와 하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면세점이 있었다. 


* 고국에서는 한국어를 '하는' 혹은 한국어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외국서는 '한국어를 가지고 다니는' 기분이다.


* 그러곤 /1700년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을, 2000년대 캄보디아에 온 한국 여자가 1900년대 글렌 굴드가 연주한 앨범으로 듣는구나' '이상하고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에 생기는 온갖 기대와 암시, 긴장과 비관에 대해서라면 저도 꽤 아는데, 자식노릇, 애인노릇 등 온갖 '도리'들을 미뤄오다 잃게 된 관계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데, 좁고 캄캄한 칸에서 오답 속에 고개를 묻은 채, 혼자 나이 먹어갔을 언니의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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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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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35쪽인데 425쪽까지가 12살까지의 이야기이다.

12살 아이의 시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치 당돌하기도, 조숙하기도 하거니와 아이다운 면모가 없어 공감키 어려운 점이 있었으나, 나의 그 시절과 비교해 보면 그러한 것이지 “진희“같은 아이가 없을 것도 없다 싶은 생각에, 과연 독서량이 엄청나면 정신세계가 일찍 조숙해 질 듯도 싶어, 초반에 똥통에 장군이를 빠트리는 죄책감 없는 계략에서는 정나미가 떨어졌지만 이후로는 보아줄 만 했다.

이야기를 엮어가는 솜씨가 비범해서 책을 손에서 놓기가 아까울만치 읽는 내내 재미가 있었다.

 

“염소와 하모니카의 완벽한 실루엣이 그의 옆모습을 감쌌다.

그러나 물론 허석은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삶의 경고를 깨달았다." (p.404)

 

"삶은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p.405)

 


출근 전, 오늘 아침 일기장에 사는 것이 조마조마 하다는 글을 적었다.

끝없이 사건과 사고는 이어지고 그 속에서 무사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기적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그리고 출근길에 검정의 긴 장례 리무진 차와 그 뒤를 따르는 장의버스를 기꺼이 먼저 가시라 양보해 주면서는 눈물을 훔쳤다.

왜 이리 약해지는가......

 

 

그리고 이 책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 완벽한 실루엣이 허석이 아니었다에서 껄껄껄 웃음이 연신 삐어져 나오더니 삶은 농담이라는 말에 안도감마저 든다.

조마조마 하던 마음이 허물어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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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생일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2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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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은 이 시집을 참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게는 영 공감 되는 것이 없어 반쯤 읽다 덮는다. 


<지금 이 순간 약동하는 티끌 한 점,

나라는 기적 (p.40)>


도무지 뜬금없다. 

티끌이 왜 약동 하는지,

나는 또 왜 기적인지!!


그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생긴 목숨의 겸허한,

찬란>


목숨이 왜 어쩌다 생겼을까, 

어쩌다 생긴 목숨은 왜 겸허하지?

겸허하면 찬란하나?...등등으로 읽어내려 갈수록 토를 달게 된다. 


단어와 단어를 이어서 문장을 만드는데

너무 뜬금없다 싶게 이어지는 문장들이 

내가 읽은 중반부까지 계속인 듯 싶어

내가 시를 보는 눈이 이토록 없나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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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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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책에는 

비관하는, 불평하는, 악다구니 하는 주인공이 없다. 

그냥 받아들임만 보인다. 


자가를 소유하고 있는 이도 잘 없어서

집은 삶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임을 느끼게도 한다. 


<입동>, <노찬성과 에반>은 마음이 아파서 눈물바람 했고

<풍경의 쓸모>는 참으로 씁쓸했으며,

<건너편>과 <가리는 손>은 현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듯 했다. 


<침묵의 미래>는 이미 읽은 것이긴 하나

내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언어의 종말에 대한 것이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 읽어볼 수 있게 되어 

이제는 조금 끄덕끄덕 할 수도 있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역시 이미 읽었으나

다시 읽어봐도 처음과 같은 흥미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김애란의 책들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히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제는 김애란의 소설을 읽을 것이 없다 싶어 서운하다. 

그녀는 글을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쳐서 한 권의 책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누가 그러던데, 

고은 시인은 글이 수돗물처럼 틀면 그냥 콸콸 나오듯이 글을 쓴다던데,


어쩌면 김애란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기만 한데

이제는 더 이상 읽을 그녀의 소설이 없다는 것이 내게는 참 이상한 일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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