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5
토머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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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남원 광한루에 다녀왔다.

그 시절 양반들은 얼마나 풍류를 즐기며 잘 놀 수 있었을까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밀양 영남루에 올랐을 때도 딱 그 생각이 들었었는데 말이다.

술상이 벌어지고 기녀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매스컴의 영향도 클 듯 싶다.


괜히 뭔가 분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양반들에 대한 적대감이라기 보다는 

그 바라지를 굽신거리며 했을 노비들에 대한 애잔함이 더 컸던데 있지 싶다.



1891년에 나온 이 책의 그 시절도 여자의 목표는 좋은(?) 남편을 만나는 것이며,

가문의 중요성이 엄청나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시절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에 작가의 훌륭함이 있는 것 같다.

<인형의 집(1879년 헨리크입센)>을 읽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오만과 편견(1813년 제인오스틴)>에서 

엘리자베스의 엄마가 딸의 결혼에 온 신경을 몰두하듯, 

테스의 엄마도 딸의 결혼으로 딸의 인생을 바꿔보고자 하는 욕망을 보고,

이것이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는 공부(대학입학)로 전환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에사 가문이니, 양반이니 하는 것은 없어져 좋은 시절이지만

책 속에 나오는 깨끗한 자연환경이 주는 아름다움은 그것만 하지 못해 애석하다.

그 시절의 깨끗한 풍경을 글로 감상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고전의 값어치는 충분하리라.







* 나이가 들고 상황이 어떤지를 알게 되면서, 여동생과 남동생들을 돌보고 먹이는 일이 말할 수 없는 고생인데도 어머니가 생각 없이 너무 많이 낳아 그녀에게 떠맡기는 것을 보고, 테스는 자신이 멜서스의 인구론자가 되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지능지수는 행복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 청명한 9월 저녁, 해가 지기 직전, 머리칼같이 가는 누런 햇살이 푸른 그림자와 시간을 다투고 있었다. 


* 어째서 비단만큼이나 섬세하고 사실상 눈처럼 티없는 이 아름다운 여자의 살결에 운명처럼 추한 무늬가 박히게 되었는가? 어째서 늘 조잡한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차지하고, 엉뚱한 남자가 자기 짝이 아닌 여자를 소유하며, 엉뚱한 여자가 남의 남자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분석철학도 우리의 질서의식에 맞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 거의 단숨에 테스는 소박한 처녀에서 복잡한 여인으로 변화했다. 얼굴에 사려 깊은 분위기가 떠오르고 때때로 목소리에는 비극적 음색이 서렸다. 눈이 더 커지고 좀 더 강렬한 인상을 풍겨 사람들이 말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으며, 그녀는 지난 한 두 해 사이의 소란스러웠던 일들로 결코 의기소침해지지 않은 여자의 기백을 지니고 있었다. 세상의 이목이 없었다면 그녀가 겪은 경험은 그냥 교양 교육쯤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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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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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단 나서고 보자는 마인드!!

특히 이런 세계여행이라는 대단한 프로젝트 앞에서는 더욱 추진력을 발휘할 마인드!!

멋지다멋져!!



저자의 엄마의 한 마디가 내 가슴에 콕 박혔다.

뺄 수 없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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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크리스토프 1 동서문화사 월드북 148
로맹 롤랑 지음, 손석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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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벽돌 같은 두께의 책을 

<겨울호랑이>님은 중학교 때 감명 깊게 읽었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에 흠모하는 마음이 인다.


아마도 내가 베토벤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책의 두께에 눌려 읽어 낼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 표지에 앙리 마티스의 그람을 올린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의 내용도 그렇거니와 그림도 참 잘 모르겠다.....




* 오오 즐거운 추억, 자애 깊은 모습이여. 그것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날갯짓 소리와도 같이 평생토록 계속 노래하리라...... 어른으로 자라나서의 여러가지 여행, 대도시, 용솟음치는 바다, 꿈속 같은 경치, 정다운 얼굴들도 이러한 어린 시절의 산책이나 또는 할 일 없이 심심해서 조그만 입술을 유리창에 눌러 대고 거기에 입김으로 엉기는 김 너머로 날마다 보아 온, 하찮은 마당 한구석만큼 또렷이 마음 속에 새겨지진 못하리라.......


* "당신은 당신의 모습을 본떠 하느님을 만드시는군요."

"제가 하느님에게 소원을 빈다면 부디 제 문제는 염려하지 마시라는 말씀만 드리겠죠."


* 세상사는 제 뜻과 같지 않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사랑받는 자는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는 언젠가는사랑으로부터 격리 된다. 

어떤 이는 괴로워한다. 어떤 이는 남을 괴롭힌다. 

반드시 괴로워하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고는 할 수 없다


* 죽음으로 가득 찬 영혼과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로써 그는 슬퍼하면서도 재생의 힘과 삶의 정열적이며 부조리한 기쁨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고뇌도, 연민도, 절망도,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아픈 상처도, 죽음의 온갖 고통도, 강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박차가 되어 그 옆구리를 호되게 차서 도리어 이 삶의 기쁨을 활기 있게 하는 것이다. 


* 그는 씁쓸한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싸운들 무엇하랴? 미도, 선도, 하느님도, 생명도 그 어떠한 종류의 존재도 전혀 없었다.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지면이 없어졌다. 대지도, 공기도, 빛도, 자기 자신도 없어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에 이끌려 앞으로 기우뚱한다. 고꾸라질 찰나에 가까스로 자신을 멈출 수가 있었다. 별안간 벼락을 맞아 쓰러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죽은 줄 알고 있었다.......

크리스토프는 달라지고 있었다. 그는 영혼이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년 시절의 닳아빠지고 시든 영혼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좀더 젊고 힘찬 새로운 영혼이 태어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일생 동안 육체가 변하듯이 영혼도 또한 변하는 법이다. 그 변화는 반드시 나날의 흐름을 따라 서서히 이루어진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한꺼번에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위기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낡은 껍질은 떨어져 버린다. 이러한 고뇌의 시기에 그는 온갖 일이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제 시작하려 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이 죽는다. 그러나 또 하나의 생명이 이미 태어나 있는 것이다. 


* 크리스토프는 촛대 위에서 완전히 다 타 버리는 촛불을 넔 잃은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허무가 시시각각으로 깊어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을 집어 삼키려 드는 그 심연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그 가장자리에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공허 속에 혼돈이 움직이고 어둠이 꿈틀거렸다. 고뇌가 마음 속을 꿰뚫는다. 등이 오싹하고, 살같엔 소름이 쭉 끼치며 털이 곤두섰다. 그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탁자에 매달렸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을, 하나의 기적을, 하나의 신을, 그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 크리스토프는 환각에 사로잡혀 온몸이 긴장되어 있었으나 뱃속까지 오싹하는 전율을 느꼈다. ...... 베일이 찢겼다. 눈이 멀 듯 부셨다. 번갯불의 번쩍임 속에서 크리스토프는 보았다. 어둠의 밑바닥에서 그는 본 것이다-자신이 신인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 속에 있었다. 


* 미덕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웃음이다. 미덕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롭고 행복스러운 표정이어야 한다. 선을 행하는 이는 자기 자신마저도 기쁘게 해야 하는 것이다. 


* 네가 만약 선량하다면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겠지. 설령 네가 선량하지 않고 약하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또 행복해야 하는 거야. 물론 그 이상은 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런데 왜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왜 자기에게 불가능한 것을 해내려고 몸부림치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단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 아무것도 아닌 우연한 기회가 돌연 크리스토프에게 독일 예술의 허위를 가르쳐 주었다. 이제까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건 언제나 그것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나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서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이제는 산에서 멀어져 산이 보인다. 


* 그러나 실제로는 인생에 있어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처럼 무슨 일이건 헛되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어떤 노력이건 결코 헛수고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몇 년 동안은 이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 그렇지만 어느 날 의도가 달성되었음을 깨닫는다. 


* 열광적이라는 것을 즐기기 위해 열광적이 되는 것 같았다.


* 크리스토프는 걸어다니고 싶어 못 견디었다. 걸어가면 음악의 수확이 늘어났다. (...) 크리스토프는 걸어다니다 지치면 숲 속에 드러누웠다. 


* 이렇게 힘찬 삶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파묻혀 있다니! 그와는 반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과 같은 무리가 지상을 뒤덮고, 양지 쪽에서 타인의 자리와 행복을 빼앗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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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희망을 쓰다 - 루게릭과 맞서 싸운 기적의 거인 박승일의 희망일기
박승일.이규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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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에 

루게릭 요양병원이 

완공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고,

 

그가 해냈구나!  

그가 해냈어!

아, 그가 해내고야 말았어!

라는 벅참에 눈물이 나고 목이 꺽꺽 메인다.


1급 장애인인 그의 희망이 이렇게 실현이 되는구나!!





* 천년만년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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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의 아미타경 - 마음을 다스리는 책 04
틱낫한 지음, 진현종 옮김 / 미토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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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불할 때 우리의 몸은 나쁜 행동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입은 잔인하거나 시샘을 하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몸과 입으로 짓는 선업이다. 우리의 마음은 경쟁, 두려움과 갈망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므로 의업 또한 건전한 것이 된다. 몸과 입과 마음이 모두 건전한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 바로 염불ㅇ르 통해 얻는 과보라고 할 수 있다. 염불은 몸과 입과 마음이 정업의 길로 함께 나아가는 명상 수행의 일종인 것이다. 


* 기도를 하거나 기원을 하거나 몀불을 하기 위해서 합장을 하면 그 즉시 우리의 마음에는 평화로움이 깃들게 된다. 믿음 때문에 마음이 평화스러워지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자신의 바깥에 있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사실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지혜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처음에 우리는 부처님을 바깥에 계신 분으로 여긴다. 한동안 수행을 하고 나면 우리는 부처님은 우리 안에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계속해서 열심히 수행해 나감에 따라 우리는 부처님은 우리 안에도 밖에도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안팎이라는 것은 다만 두 가지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진리는 그 두 관념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 그것은 우리가 정토나 부처님을 찾고 있을 때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 고통은 우리가 행복을 인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한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행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 우리 주위에 낙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고통을 겪어 보았고 고통과 더불어 수행하는 법, 즉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행복으로 변형시키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 나의 가장 고귀한 바람은 무엇일까? 커다란 절을 짓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불상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은행에 돈을 쌓아두는 것도 아니며, 박사 학위를 얻는 것도 아니다. 나는 불교 교단의 수장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승가나 정토의 수장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친절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삶으로써 서로를 위한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정토를 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정토가 있다면, 어디를 가나 정토가 나타날 것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정토가 들어 있는 사람들은 아주 양질의 인도주의를 가지고 있다. 


* 아미타 부처님과 나란히 걷고자 하는 서원을 세우면, 믿음과 서원과 수행을 통해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젊은 수행자가 스님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결심을 하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는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스님이라는 존재의 씨앗을 자각한 것이다. 삭발을 하고 가사를 걸치는 것은 적절한 시간을 찾는 일에 달린 문제일 따름이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믿음, 서원, 그리고 수행은 정토종의 본질이다. 믿음은 탈출구가 있다는 믿음이다. 서원은 온 마음을 다해 바라는 것이다. 수행은 매일 정토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일단 믿음과 서원을 가지고 수행을 하기만 하면 즉시 정토에 태아나게 된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그곳에 태어났는가, 태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태어날 것인가 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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