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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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시집. "여름 잠"을 불러 쓰는 7월의 깊은 밤...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시집. 문학동네시인선 052

시인의 말

 

 

여 름 잠

 

비탈밭 옥수수가 휘청거린다.

목계 쪽에서 넘어오는 바람이 찰지다.

하지 때  들어와 웅크리고 있다보니

시계가 없어도 지낼 만하다.

한 칸 컨테이너가 그새 옛집 같아졌다.

직육면체 안팎으로 여름이 치열하다.

사흘 동안 골짜기를 빠져나간 것이라곤

찰옥수수 가득 실은 일 톤 트럭 한 대뿐

 

어쩌자고 같은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또 한바탕 들이퍼부으려는지

귀래 쪽 능선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서울에 두고 온 걱정은 퉁퉁 불어 있을 것이다.

무릎 껴안고 발톱 깎다가 문득 보았다.

두루미 한 마리 솔숲으로 향하는데

하얀 날개짓이 괜찮다 괜찮다 말하는 것 같았다.

며칠째 약 먹을 시간을 놓치고 있다 후둑

 

후두두둑, 솨아 솨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ㅡ 넓어질 대로 넓어진 활엽들이

세찬 빗줄기를 받아내며 일제히 도리질을 한다.

잎사귀들이 뭔가 울컥울컥 토해내는 것 같다.

컨테이너 소긔 나도 난타당한다.

게릴라성 호우는 매번 가차없다.

 

치악산 쪽 하안거 (夏安居) 는 흉내낼 수도 없고

겨울잠도 어림없는 소리

그래 이 느닷없는 산거 (山居) 를

하면 (夏眠) ,여름잠이라고 부르자.

난생처음으로 잠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동지 때까지 휴대전화 전원을 더 꺼놓기로 하자.

그래서 그리고 그런데 따위의 말은 쓰지 않기로 하자.

 

                                    이문재 詩 

                                    p.052 /053

 


잠을 불러야 할 것 같아서. 여름잠,

할 일이 많아서 부담이 가중되는지

일주일 넘게 꼬박 뜬 눈이다.

눈이 뻑뻑하면 번갈아 식염술 넣어서

겨우 눈의 여유를 돌려가며.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번에 일이 좀 잘되면 좋겠다만,

내가 가기 싫은지, 집이 보내기 싫은지

아니면 그곳이 나를 반기지 않는건지.

일이 더듬더듬, 그러하다.

 

이렇게 못자다간 이가 다 빠지고 말겠다.

피곤에 절어서.. 피부는 지금 누구시우?

그런 감각중...이다. 무디고 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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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같이 사는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16
임현정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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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바닥 마주 쳐야 하듯 ,마주 잡아야 하듯, 닮은 그림은 포개어져 찍어내듯, 깍지 낀 것들..처럼 꼭 그렇게..

꼭 같이 사는 것처럼.임현정.

 

 

 

 

흑설탕을 넣은 차

 

 

 

 

비탈 아래 있는 불탄 집을 갔지

 

                        바닥이 깊은 곳에선 젖은 냄새가 나

 

                                들어와도 괜찮아요

                                개망초같이 웃는 그가

찻물을 끓이러 간 사이

 

 

딱딱하게 굳은 흑설탕처럼

어둠이 응고된 지하 계단을 내려갔어

 

 

긴 복도는 고요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한 줌 물고 있는 것 같아

 

 

알뿌리처럼 머리만 남은 석상들 나란히 서서

누군가 반짝 웃은 것 같은데

 

 

복도 끝엔 검은 매듭처럼 그가 서 있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어

 

 

휘발성 냄새가 났지만 아주 뜨거운 차

 

                        그가 하얗게 벌어진 홑씨를 날리며 웃었어

가지 마 , 여긴 나뿐이야

 

 

천장은 높고 검게 그을린 지붕은 무거워

그래서 나는

                                                                         

 

                                                                          임현정 詩 p.028 /029

 


 

비밀같은 ,수수께끼 문자들 사이로

절망이, 그리고 그저 좋은 사람"이

 

번갈아 드나 들어...

저지대와 축복 받은 집을

그녀 모르게, 그녀는 모르게

얼굴만 동동 떠오른 채 그림자는 없는

누군가가 예전부터 꼭 같이 산 것처럼...

내 마음 을 읽어서 내 몸은 꼼 짝 않아도

나보다 먼저 내 앞을 가로 막고 서는

악몽들, 붉고 검은 , 웃을 뿐인 기분 나쁜

 

절망이, 그리고 그저 좋은 사람"이

비밀같이 , 수수께끼 사어의 골짜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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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호칭 문학동네 시인선 18
이은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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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제헌,법과 법사이를 투명하게 통과하는 투명인간들과 있어도 소용 닿지 않아 법에 눌리는 사람들 모두를 다정하게 뭐라 부르나,,,오늘은!!

 

문학동네 시인선 018  이은규 시집 다정한 호칭

표지의 안 쪽 ,속 살을 살며시 들여다 보면

시인이 비밀처럼 ,고백성사처럼

나즈막히 읊조리는 순간을

엿볼 수 있다.

 

 


 

바람의 지문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그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멀리 있을까,

멀리 와 있을까 

 

 

                            이은규 詩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갈수없다 했나,

어떤 이가 부른 노래가 맴맴 도는데 ...

다음 자락은 노랫말을 이을 수 없는 것이

아마 행방을 알 수 없는 당신인가...?

 

아니면 이제는 나의 사람이 아닌 옛 사람의 기억을 말함인가.

애틋한 마음, 알고 싶고 읽어 내고 싶은 마음이 차있다.

그러니 없으나 옛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추억은 그 모든 이름이 된다.

기억일 뿐이어도 그리움이 되는 순간,

멈칫, 멈추게 하는 어떤  정지의 찰나

그 모든 것의 이름을 바람이라 부르고

당신이라 명해야 멀리 멀리 전할 수있다.

전해지지 않아도 자족에 그칠 뿐일 것이라도...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

 

당신도, 가끔 내가 그리운가.

 

2015. 제헌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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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18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장소님, 오늘이 제헌절이었죠. 깜박했네요. 빨간날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좋은시집 소개 잘 보았어요

[그장소] 2015-07-18 05:46   좋아요 0 | URL
예, 제헌절 였어요.법치국가 아닌게 분명해요.네이버에만 장난같은 그림베너로 겨우 작게 알리고요. 법에 사는 사람들이..^^ 깊이는 없는, 그냥 이런 시집이 있다..정도 인데..봐주셔서 정말 *^ㅡㅡㅡ^*고맙습니다.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기! 약속요!!

지금행복하자 2015-07-1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 잘 안 읽어지는데 이렇게 올려주시면 읽고 알게 되고~ 시의 문외한 조금씩 젖어들고 있어요~^^

[그장소] 2015-07-18 05:52   좋아요 0 | URL
시에,문외한이 따로 있나요..생각이 스미면 그게 시˝죠. 꼭 함축이나 상징이 아니어도, 일상이 시인 , 지금 행복하자 님..이신걸요! 여름 홍차 내실때는 어쩔까, 상상하면, 그 정성어린 시간이 시˝의 시간..^^
잘 봐주셔서 진심 고맙습니다.저,스스로를 위로한다 하는 거였는데..진짜 위로가 크게 되네요! 힘나요~
 
북항 문학동네 시인선 20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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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껏 울고 싶은 날엔  나 대신, 바람이 골목을 달리며  말처럼 휘이잉~울어 주었다.  내일은 비가...

첫 장을 펼치자 빼꼼하니..시인의 말이...

 

 

그 집 뒤뜰의 사과나무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의 사생활에 대하여

불꽃 향기 나는 오래된 무덤의 입구인 별들에 대하여

푸르게 얼어 있는 강물의 짱짱한 하초 (下焦)에 대하여

가창오리들이 떨어뜨린 그림자에 잠시 숨어들었던 기억에

대하여

 

나는 어두워서 노래하지 못했네

어두운 것들은 반성도 없이 어두운 것이어서

 

열몇 살 때 그 집 뒤뜰에

내가 당신을 심어놓고 떠났다는 것 모르고 살았네

당신한테서 해마다 주렁주렁 물방울 아가들이 열렸다 했네

누군가 물방울에 동그랗게 새겼을 잇자국을 떠올리며

미어지는 것을 내려놓느라 한동안 아팠네

 

간절한 것은 통증이 있어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하고 나면

이 쟁반 위 사과 한 알에 세 들어 사는 곪은 자국이

당신하고 눈 맞추려는 내 눈동자인 것 같아서

 

혀 자르고 입술 봉하고 멀리 돌아왔네

 

나 여기있고, 당신 거기 있으므로

 

기차 소리처럼 밀려오는 저녁 어스름 견뎌야 하네

 

안도현 詩 

 

간절한 것의 통증, 둥근 잇자국 이슬을 털어내던 날..

그리움이 가슴을 미어지게 하였다는

고백을 듣는다..시인은 옆에 없고 먼 독백이어도

곁에 서 친근하게 아는 이 같이 그 고통에 낯익음

우리는 구면인가요......

오래 도록 불러 들어온 이름이어 그런지 모를 일,

선생님은 늘,친구 도현이는 ...친구 도현이는....

하고 말하는 버릇이 있으셨는데..아직 그러실까,

금방 안부를 전하고 싶어졌다가..아니다. 엽서한장

그러는 것이 좋다..전화나..문자나 빠른것들의

세계가 나는 염증이 나는 중이니..

두 분 모두 안녕한 밤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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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17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집 낭독녹음한 적이 있어요. 몇 해 전이군요. 안도현의 조금 달라진 시언어를 맛볼 수 있었어요. 이 시집으로 자발적 휴지기로 들어갔었던 거로 기억되어요.

[그장소] 2015-07-17 20:28   좋아요 0 | URL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녹음하신 것 또한 일반인은 들을 수 없는 곳에 비치 되는 용도겠죠..전에도 그러셨던걸로 기억해요.장애우를 위한 녹음본. (아..오른 손이 한 일을 [제가 왼손을 알게 한? ]왼손이 모르게 하라.) 것 일까요? ^^
음,,그 시기가...그 때였군요..^^

해피북 2015-07-17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에 서 친근하게 아는 이 같이 그 고통에 낯익음 우리는 구면인가요`란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저도 이 시집 구입해놓고 볼 참인데 덕분에 빨리 읽고싶어집니다 그장소님^~^ 태풍이 몰려온다지만 즐거운 하루 보내세용~^^

[그장소] 2015-07-17 20:36   좋아요 0 | URL
태풍인건가요? ^^; 일이 좀 틀어져서 막연한 참인데..태풍이라 어쩐지 될대로 되라..는 심정 같아지는~것이 , 태풍의 전조였나..?! 별 생각을 다 합니다.
사놓고 은근하게 보는 맛이 시집은..그런 것..하고 넌지시 알려주는것 같아요.
묵은 시 일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것을 깨달을 적에요..가끔 시도 익는가..술과 발효되는 것들 처럼..그런 생각을 했네요. 해피북님도 바람이 수상해도 해피한 북읽기 되셔야 해요! 시집 챙기시게 되면, 가장 좋은 것이 뭣이었나..저도 알려 주셔요~^^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문학동네 시인선 57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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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어디로? 글쎄 가봐야...알것..

어떤 물음.

 

가끔 찾아가는 돈가스집 주인은

지난해까지 서점 주인이었다

그래서 책표지를 잘 싼다

 

내가 가방에서 두 권의 책을 꺼내

돈가스집 주인에게

책표지를 싸달라고 했다

 

한 권은 불교 법요집이고

한 권은 기독교 성경 해설집이다

돈가스집 주인은

책표지를 싸다가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죽어서 어디로 갈라고 그러요?"

 

윤희상 詩

 

P.012


 

그러게나..말이다. 어디로 ...^^

알면서 묻는 짓궂음..이랄까?

그나저나 아직도 책표지를 싸는 이가 있구나..

좋은 습관이다. 오래 두고 보관할 책은

관리를 잘하려면  표지를 하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부러 중고책을 사지 않는 것이 그 이유다.

내게 한번 오면 중고인 셈..이지만..

오래 보관 할 목적, 

가능하다면 내 딸아이까지

두고 보면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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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7-13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투명 아스테이지로 책표지 싸는게 책을 받자마자 하는 습관이예요. 아주 오래된 습관이라그런지 표지를 싸놓지 않은 책은 읽기 불안하고 뭐묻을까봐 조심스러워지더라구요 ㅋㅂㅋ

그런데 아주 가끔은 책 표지 그대로 느끼고 싶을때가 있어요. 그럴땐 제 습관이란게 참 못나보일때도 있구요 ㅋㅂㅋ

[그장소] 2015-07-13 17:58   좋아요 0 | URL
아스테이지 참 간만에 발음해봅니다. 음, 안하자니 책이 걱정이고,하자니 있는대로 보고도 싶고..20년 이상 끌고 다녀도 혼자서 보니까..저는 책이 남의손을 탈 일이 없어서..이젠 표지를 싼다거나 하진 않아요.표지도 개정판마다의 특징이 있어 연대를 알기도 쉽기도 하고, 식구들이 있을 경우 아무래도 조심을 더 하게 될 것 같아요.저도..아이도 이젠 커서,^^ 예전에 다른 식구들과 살 적엔 저도 꼬박꼬박 표지를 싸곤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