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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평점 :
날짜 없음 ㅡ 장은진 ㅡ 민음사 : 오늘의 젊은 작가
14
그게 온다고 한다 .
ㅡ본문 0 " 261 쪽에서 ㅡ
그게 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 ' 고전 ' 이 되는 걸까 . 그게
오면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 신데렐라처럼 재투성이이에 누더기가 될까 .
ㅡ본문 3 " 258 쪽에서 ㅡ
" 미안해할 일이 있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 "
" 왜요 ? "
" 그런 게 있어야 애틋해지잖아요 . 하나도 없다면 생각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을 거예요 . 더 이상 빚진 게 없으니까요 . "
" ...... "
ㅡ본문 15 " 244 쪽에서 ㅡ
우리가 가졌던 대부분의 추억은 네모 길쭉한 박스 안에 모두 담겨 밀봉되어
있었다 . 부식되지 않는 타임캡슐처럼 . 이대로 시간이 봉인된 채 보존 된다면 우리는 천 년이 지나 발견될 수 있을까 . 우리의 존재가 천 년
후에도 증명될 수 있을까 . 만약 발굴된다면 우리에겐 어떤 상상과 이야기가 붙여질까 .
ㅡ본문 52 " 198 쪽에서 ㅡ
" 침묵이 전부예요 . 걷거나 죽거나 쓰러지거나 . 어제는 임산부 하나가
길바닥에서 애를 낳다 혼절했는데 그 틈을 타 회색인들이 탯줄도 안
뗀 신생아를 눈 속에 파묻어 버렸어요 . 태어난다는 건 더 이상 소용도 의미도 없다면서 . 끔찍하지만 그런 건 약과 쭉에 껴요 . 도덕이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잖아요 . 친구나 가족 개념도 사라졌고 . 공포감에 미쳐 버린 사람들도 있어요 . 그런 자들은 결국 낙오되죠 .
"
ㅡ 본문 87 " 136 쪽에서 ㅡ
" 기가 허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 내 눈에는 토끼처럼 보이는데요
. 저쪽에는 기린도 있고 , 코끼리도 있네요 뭘 . 더 샅샅이 살피면 뿔 달린 유니콘이랑 여의주 문 용도 있을테니까 찾아보든가요 .
"
" 장난치지 마요 . 난 심각하단 말이에요 . "
" 구름이란 게 워래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거잖아요 . 온갖
것들을 다 만들어 낼 줄 아는 게 그거라고요 . "
" 알지만 . "
" 그러니 유령이 별 거겠어요 ."
" 유령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어요 . "
" 그럼 마음이 보고 싶어 했나 보죠 . "
ㅡ본문 89 " 131 쪽에서 ㅡ
세계는 시계로 존재했고 , 시계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세계였다 . 그동안
수십 번의 낮과 밤 , 그리고 새벽이 교차되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도 우리는 그 지점이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
ㅡ본문 92 " 128 쪽에서 ㅡ
나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챘다 . 빨간 비가 내리면서부터 , 회색시에 눈이
멈추지 않게 된 후부터 , 우산을 많이 팔게 됐다는 . 그래서 하루아침에 살 만하게 됐다는 ' 상원 ' 이란 이름의 우산 장수였다 . 처음에는
해 오던 대로 수공예 우산을 성실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정직하게 팔았지만 물량이 달리자 질낮은 부품을 사용하고 , 일부러 금방 고장 나도록
허술하게 만들어 놓고 가격을 올려 받았다는 그 남자 .
.......
회색시는 남자가 졸부가 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끊임없이 만들어 준
셈이었다 . 세계가 변해 감에 따라 부자가 되는 사람도 달라졌다 .
ㅡ본문 99 " 118 쪽에서 ㅡ
그게 온다는 말도 그런 식의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도착한 불길한 소식 중
하나였다 . 하지만 소문이 소식이 되고 , 소식이 소문이 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누구도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었다 . 소문이란
온갖 소음과 잡음을 달고 어디든 앉았다가 또 어디로든 날아가는 것이라서 신빙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공짜로 듣는 그
정보의 사실 유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신문과 방송의 기사가 모두 진실일 거라 단정할 수 없듯이 .
다만 그날이 다가올수록 그 소식을 믿는 자들과 세계는 점점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 소문이 퍼지는 속도만큼 신봉자들도 속출해서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지내던 모습이 아니었다 . 세계는 미치광이가 되어 있었고
, 분명 역행하고 있었다 . 진실은 시간만이 알고 있었다 . 약속처럼 정해진 시간을 허비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 무수히 많았던 역사 속
끝에 대한 모든 소문의 결론이 그러했듯이 .
ㅡ본문 101 " 113 쪽에서 ㅡ
끊임없이 내리는 회색 눈이 아들의 몸을 점점 지워 나가고 있었다 .
말하자면 그것은 관 뚜껑이었다 . 온 몸을 지워내려는 회색 눈과 치우려는 나 사이에 치열하고도 기나긴 사투가 벌어졌다 . 뚜껑을 치우려는 내
능력이 닫으려는 회색 눈보다 조금만 앞서도 이기는 게임이었다 . 내가 지치자 그가 대신 늙은 아들의 가슴에 깍지 낀 손을 얹어 펀프질을 했다 .
그의 도움으로 우리의 노력은 한층 빠르고 맹렬해졌다 . 그와 나는 번갈아 가며 꽁꽁 언 손으로 쉬지 않고 펌프질을 했다 . 행렬은 동요하지 않고
스틱으로 얼음 바닥을 깨부수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 그들은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 관심도 없었다 .
그때 늙은 아들의 몸이 점점 따듯해지는 게 느껴졌다 . 우리는 더
바빠졌다 . 나중에는 늙은 아들이 스스로 누을 거둬냈고 ,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 입을 벌렸다 .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 뚜껑이 닫히기
직전에 먼저 관에서 허리를 세우고 일어난 것이었다 . ... 회색 눈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었다 . 나와 그와 늙은 아들이 . 그리고 늙은
아들보다 더 늙은 어머니가 .
ㅡ본문 107 " 100 쪽에서 ㅡ
회색 눈은 금세 시신의 존재를 지우고 있었다 . 몇 분 뒤면 아무도 저
자리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
ㅡ본문 163 " 21 쪽에서 ㅡ
어떤 사람에게 회색 눈은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
ㅡ본문 164 " 21 쪽에서 ㅡ
그곳에는 상상만큼의 평온과 평안은 없었다 . 나는 회색인에게 또다시
홀릴까 두려워 앞만 보고 죽도록 뛰었다 .
ㅡ본문 166 " 18 쪽에서 ㅡ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해골의 윤곽을 창백하고 , 메마르고 ,
투명해진 피부 뒤로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 윤곽이 분명해질수록 사람들은 모두 쪽같은 인상이 되어갔다 . 이름도 , 나이도 ,
성별도 , 국적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 그즈음 차이를 발견해 구별하고 차별한다는 건 성가신 일이 되어 있었다 . 그 해골은 죽은 후에도
남는 것이니 , 사람이란 결국 해골로 태어나 해골이랑 살다 해골을 간직하며 죽는 것이었다 . 그것은 단지 삶이라는 얇고 불안한 표피를 덧입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
ㅡ본문 174 " 11 쪽에서 ㅡ
그게 온다고 한다 .
ㅡ본문 179 " 7 쪽에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