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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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ㅡ 서머싯 몸

그러던 어느 날 , 이런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 샤르트르에 갔다가 파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 그레이가 운전을 하고 래리는 조수석에 , 이사벨과 나는 뒷자석에 앉았다 . 긴 하루를 보낸 터라 모두들 지친 상태였다 . 래리는 조수석 등받이 위쪽으로 팔을 뻗어 걸쳐놓았는데 , 그 자세 때문에 셔츠 소매가 올라가면서 가늘지만 강인한 팔목과 팔뚝이 드러났다 . 팔뚝을 가볍게 뒤덮은 솜털 위로 햇살이 쏟아져 황금빛으로 빛났다 . 순간 나는 이사벨의 몸이 경직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는 그녀를 흘끗 보았다 . 그녀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 호흡이 빨라지면서 두 눈은 금빛 솜털로 뒤덮인 강인한 손목에 고정되었다 . 그의 손가락은 길고 섬세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 나는 사람의 얼굴에서 그토록 강렬한 욕정을 본 적이 없었다 . 마치 색욕의 가면 같았다 . 그 아름다운 얼굴에 그토록 방자하고 음탕한 표정이 떠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그것은 인간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 음탕한 표정 때문에 섬뜩하고 무섭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 마치 교미 중인 암캐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 그녀는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했다 .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래리의 손뿐이었다 . 무심하게 등받이를 감싼 그 손이 그녀를 광란의 욕정으로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 잠시 후 , 마치 경련이 인 듯 그녀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두 눈을 감고 구석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말했다 .

" 담배 한  대만 주세요 ."

ㅡ본문 313 /314 쪽에서 ㅡ

책을 읽고도 나는 제목이 주려한 느낌이나 뉘앙스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조금 괴로웠던 상태였다 . 멍하니 오전이 지나가는 것을 두 눈만 뜬 채로 흘려보내다가 돌연하게 떠올린 것이 위의 문장이었다 . 순간 날카롭게 뭔가가 왔다갔는데 지금 다시 그 느낌을 잡으려하니 그 짧은 찰나가 신경성 위통처럼 고통스럽다 . 누군가 나를 보고있다면 나 역시나 이사벨이 느낀 꽁꽁 묶인 관능의 고통을 겪는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 

래리는 글 속에서 거의 무성애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  마치 성욕 같은 건 오로지 이 세상의 것이고 그 자신은 순수한 사랑 ( 박애) (에로스처럼) 그 이상도 이하도 꿈꾸지 않는 일종의 구도자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제목은 흐릿하지만 뚜렷하게 생각나는 명화 ㅡ 가 하나 있었다 .  

발랄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작은 활을 든채 화면을 작게 가로지르는 에로스와 그를 향한 나신의 여성(비너스?)이 좀 더 커다란 활을 들어 올리는 몸짓과 함께 둘 사이의 공기를 먼 데서 엿보는 듯하던  그 그림에 ,  그 이상적인 모성 발현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 내겐 몹시도 애로틱해 보여서 어리둥절 했을 뿐이었던 기억 ㅡ 그러니 어쩌면 이 작품의 배경엔 서머싯 몸이 명화 속 비너스와 에로스의 한 장면을 보며 연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순전한 추측을 놓아본다 . 

운전석의 남성이 아닌 조수석의 남성 , 그레이의 육중한 몸과 래리의 날렵하고 강인해보이는 육체 , 이사벨은 매일 밤 그레이와 나란히 눕는 평온한 밤을 가졌지만 진심으로 오래도록 사랑해 온 래리는 끝내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했다 . 어쩌면 그 지점이 래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모성 쯤으로 변환시켜 자신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거라면 , 위의 순간엔 마침내 모성을 걷어내고 한 이성을 순순한 욕구만을 드러내고 본다 . 인간의 욕망이란게 어디 멀리 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겠냐고 하듯이 , 맨 얼굴을 보이는 비너스의 파괴적인 순간 . 그러니 인간과 인간이 가진 욕망은 ,  그 틈은 면도날처럼 얇디 얇아서 스윽 베이고도 뒤늦게 맺힌 핏방울에  상처를 느끼고 비릿한 피 맛을 볼 뿐이란 이야기가 아닐까  . 

이사벨은 그 날 그 순간이 몹시 고통스러웠을 게다 . 다 가졌는데 바로 눈 앞에 있는데도 결코 가질 수 없는 한 인간을 보며 ,  들끓는 애욕으로 번다한 밤이 앞으로 내내 찾아오지 않을까 .  그레이의 얼굴을 몸을 끌어 안으면서도 그 뒤론 래리의 몸짓을  느끼고 싶어 갈망하는 밤 . 
욕망을 숨기는 우리의 가면은 실상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일(?) 들에 무너진다 .  아, 아 , 그러니 저도 담배 한 대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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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3-13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읽는 제가 막 숨을 죽이게 되네요^^; 읽고 싶은 책이 쌓였는데 면도날 추가입니다@_@;;;

[그장소] 2017-03-13 12:31   좋아요 0 | URL
굉장한 속도로 읽혀서 저도 놀랐고 거기다 또 재미있었고..그런데도 두 번의 리뷰로도 딱! 맞는 표현을 못 하겠어요 . 좋은건 알겠는데~~ 아하핫~ 읽게 되시면 제게도 좀 알려주세요 . 면도날 ㅡ 그걸 찾았다고!! 말예요!^^

구름물고기 2017-03-13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무너진다˝ 라는 말에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면도날..은 도루코

[그장소] 2017-03-13 13:59   좋아요 1 | URL
아놔~^^ 그쵸? 면도기는, 면도날은 , 2중 3중 면도날이 아닌 그저 도루코 죠! ㅎㅎㅎ

북프리쿠키 2017-03-13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장소님의 현혹에 당해낼 재간이 없네요.
장바구니 살포시 ^^;

[그장소] 2017-03-13 13:58   좋아요 1 | URL
ㅎㅎㅎ우리 sm 마니아 ( 이게 맞나?)인 걸까요? 꽁꽁 묶인 관능의 시간 ~ 느껴보세요!^^ ㅎㅎㅎ

2017-03-13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3-13 20:28   좋아요 1 | URL
아 ㅡ 면도날 이건 Agalma 님 선물 ㅡ 서니데이님도 받으셨죠? 민음 이벤트 나눔요 ㅡ ㅎㅎ
읽은 느낌과 제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계속 생각하는 중인 책이랍니다. 숙제는 이제 여기에 공유 못해요 . 제동이 걸려서 ... 저쪽과 앞으론 다른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 좀 빠듯하겠지만요 ~^^

재와 빨강 ㅡ 이건 창비 , 책읽는 당 미션 말이랍니다~! 예스 블로거 미션관 다른!!

박균호 2017-08-09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대가기 직전에 읽은 <인간의 굴레에서>를 평생 못 잊을 것 같네요.

[그장소] 2017-08-09 20:51   좋아요 0 | URL
ㅎㅎㅎ저는 인간의 굴레 ㅡ로 읽었으니 좀더 오래된 책이었을라나요? 문고판으로 본 기억이 있어요 . 축약본이라고 하나 청소년문학이라고 하나요?... 중학교 도서관 비치용였는데요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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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벼르고 별렀다 . 이 책을 . 하핫 ~ 벼른 만큼 좋았다 .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들으며 책 한 권이 그렇게 끝났다 . 세상 어딘가를 계속 순례 중인 쓰쿠루와 멈춰선 쓰쿠루들에게 가끔 그런 안식년이나 안식일이 필요하다는 듯한 그런 위로와 격려를 담은 이야기 아니었나 한다 .

무심코 살면서 자신의 뒷덜미 어디쯤에 잘못 걸린 못에 제대로 걸린 것처럼 걸음을 앞으로 해나갈 수 없는 때 . 그런 때가 우리 모두는 아마도 있지 않을까 , 없다면 당신에겐 아직 오지 않은 순례의 해라는 듯이 , 숨을 고르게 하고 , 들썩이던 어깨를 쉬게 하는 글이 아니었나 한다 .

해가 더해 갈수록 하루키 소설에도 맛이 깊어진다 . 내 하루키이다 . 다른 누구의 하루키도 아닌 ...

쓰쿠루가 멈춰선 어느 날 그 맘 속에서 차마 내려 놓지 못한 시로와 구로처럼 , 아오와 아카처럼 , 하루키의 쓰쿠루는 나만을 향한 이야기가 된다 . 멈춰선 지점이 있는 내가 그를 모른다고 할 수 없기에 그렇다 .
그렇다면 나도 나도 , 머뭇 머뭇 그들을 찾아가 정지되었던 순간부터의 이야길 해도 될까 ... 그래도 들어줄 내 쪽의 아오나 아카 , 혹은 구로( 에리)가 있을까 ... 내 삶의 시로 ( 유즈) 는 과연 누구였을까 . 완벽하다 여겨지던 날에 돌을 던지고 무수한 실금만 남긴 채 시간과 나이 저 멀리로 가뭇해진 친구들은 ... 누구였을까 , 대체 발치에 차이는 돌이 내 길에 얼마나 많길래 한 치 앞도 안보이고 한 걸음도 못 나가나 ...

그렇게 막연하고 막막할 때 , 하루키가 놓아준 리스트와 쓰쿠루와 순례의 여행을 나서서 바래진 내 색을 찾아야 겠다 .
꼭 그래야 겠다 . 나만 멈춘 줄 알고 앞을 못보는 동안 먼저 세상을 등지는 이가 생겨서 아무 이야기도 못 듣기 전에 ...

그러니 어느 날 , 적당한 어느 날 내가 보이거든 , 햇살 가운데 혹은 흐린 날의 가운데 희미한 색채로의 기억이던 내가 당신 에게 보이거든 아 , 쓰쿠루와 순례의 시간이 당도했구나를 알아주시길 ...


" 그러니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늘 상대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했어 . 또는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자를 골랐어 . 상처를 입지 않아도 되게끔 . 그런거지 ? "
ㅡ 본문 133쪽에서 ㅡ

" 정말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 말같은건 나오지 않는거야 . "
ㅡ본문 194 쪽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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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물고기 2017-02-14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인데 ㅎ

[그장소] 2017-02-14 19:56   좋아요 0 | URL
일단 리뷰를 대충 써놨는데 ~ 한번 더 정리해보고 싶어요 . 이 책은요!^^ 파바박~~ 어서 읽으시고 소감 들려주셈 !!^^
 
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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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ㅡ 장은진

 

크리스마스가 생기고 이브 날을 기쁘게 기다리며 맞던 ,  많고 많은 날들에서 눈이 오던 날은 과연 몇 번이나 되며 안 와서 섭섭했던 날들은 얼마나 될까 . 전세계 연인들이 기다리고 들떠하던 그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리지 않은 눈을 이 회색 도시에 몽땅 쏟아 붓는 건 아닌지 , 너무 오래 기다려서 , 너무 많이 기대 했던 날들이 , 너무 미룬 행복이 층층이 쌓여서는 이 도시를 무겁게 무겁게 덮는 것은 아닐까 .

 

차례차례 떠나는 이들 , 179 부터 0 까지 . 앞에서 읽다 책 장에 매겨진 숫자가 역순임을 깨닫고 맨 뒷 쪽으로 간다 . 어느 시인의 말처럼 뒷걸음으로 , 내 발자국을 보듯 작가의 글을 꺼꾸로 읽어나온다 . 어마무시 하게 쌓인 눈 속의 세상에선 차례차례 떠나는 이들이 있다 .

 

두 사람이 눈을 감기 전 그들과 한 몸 같던 늙은 개 반 (半) 이 떠나고 , 그의 옛 연인이었던 연희가 그림자없이 다녀가고 , 모두와 떠났던 진수라는 청년이 유일하게 돌아온 사람이었지만 , 도착과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나간다 . 기타를 안고 . 젖은 한 숨같은 희미한 그림자를 보내는 시간이 된다 . 소식 없어 걱정하던 폐지 줍는 홍여사가 , 또 싸가지라 부르지만 싫지 않은 맹랑함을 매력인듯 장착한 유나가 , 돌연하게 먼저 간 백구두 김씨와 홍여사를 두고 티격태격하던 박 영감이 미리 부고를 전하러 왔다가고 ,  이웃 가게인 또와분식 아주머니가 불안을 숨긴 채 다녀가고 ,  도시의 악몽으로 부자가 되었다던 졸부 상원이 다녀간다 .  무지개색 우산을 선물처럼 ,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놔두고 회색 눈 속을 간다 . 길을 나섰다가 떨어진 신발에 이 좁고 긴 컨테이너 박스에 들러서 낡은 구두를 고쳐신고 떠나는 회색 인도 있다 .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 그게 " 온다 . 온다고 한다 . 눈이 오듯 그게 온다고 ...

 

글 속에서 음울하게 " 그게 " 점점 다가오는 동안 , 나는 어쩌면 , 어쩌면을 적어내려 간다 . 이 거대한 눈의 재앙이 어쩌면 , 이 엄청난 쏟아짐은 어쩌면 ,  하면서  눈 밭에 찍힌 발자국처럼 책의 맨 앞으로 온다 . 이 세계를 그 붉은 비와 붉은 눈과 회색 눈과 숯 눈으로 반영했구나 생각한다 . 그렇게 차곡차곡 언젠가 어떤 미래인이 읽을 지금이란 지점을 책갈피처럼 끼워두는 걸까  생각한다 . 어쩌면 숫자가 역순이니까 이 모든 일은 그저 세상 끝 한쪽에서 잠든 그들이 꾸는 지독한 꿈일지도 . 어쩌면 , 어쩌면 하고 말이다 .

 

낮과 밤이 사라진 현대의 도시를 , 잠을 미뤄서라도 현재가 아닌 내일을 살 것처럼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발전된 문명의 이기로 계절이 사라진 세계에 대해 , 잠을 잊은 사람들에 대해 잊은 것은 잃은 것은 없냐는 듯 .  그 모두에게 내려지는 벌과 같이 . 너무 열심히 빨리빨리 생을 사느라 , 스스로 명을 단축하면서도 모르고 살던 이들에게 한꺼번에 밀린 이자처럼 몰아쳐 오는 죽음같은 잠과 이불같은 눈의 세계가 아닐까 하고 .

 

어쩌면 회색 시(市) 는 움직이는 회색 인 행렬이나 멈춰선 채 그날 그게 오기 만을  기다리는 무리들보다 암울한 세상을  그저 암울해 할 뿐인 회색주의자들을 그린 건지도 모른다 .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세상을 얼른 스쳐지나 보내는 이들은 평범한 소시민이던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그런 지도 .

 

신경이 마비된 도시는 유능한 기능들을 하나씩 잃거나 빼앗겼다 . 도시는 한때 재밌게 잘 갖고 놀다가 시시해졌다며 미련 없이 내다 버린 거대한 완구와 다를바 없었다 . 사람들은 예외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조차 잊었다 . ...도시는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의 마을처럼 , 문명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멈추거나 닫히거나 거부되었다 . ( 본문 9 쪽 , 176" )

 

코맥 매카시나 스티븐 킹이 그리던 세상 속에나 인류에 닥친 거대한 재앙과 길을 나서서 무작정 행렬을 이루는 이야기가 있는 줄 알았더니 ,  이 작가 참으로 조용조용한 걸음을 그리면서 그 걸음이 자못 무섭다 . 있는 세계 그대로를 세기말의 장르물로 만들어 버리다니 ... 곱씹어 봐도 멋진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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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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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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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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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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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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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3-10 17:53   좋아요 1 | URL
으흣~ 고마워~ 고마워요~ 봄꽃처럼 . 처럼 처럼~
너무 위로되요 . 그말 ~
본보기가 되주신 좋은 분들이 있어서 저도 조금이나마 성장을 할 수 있었네요!
 
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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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ㅡ 장은진 ㅡ 민음사 : 오늘의 젊은 작가 14

 

 

그게 온다고 한다 .

 

ㅡ본문   0 "  261 쪽에서 ㅡ

 

 

그게 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 ' 고전 ' 이 되는 걸까 . 그게 오면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 신데렐라처럼 재투성이이에 누더기가 될까 .

 

ㅡ본문   3 " 258 쪽에서 ㅡ

 

 

" 미안해할 일이 있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 "

" 왜요 ? "

" 그런 게 있어야 애틋해지잖아요 . 하나도 없다면 생각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을 거예요 . 더 이상 빚진 게 없으니까요 . "

" ...... "

 

ㅡ본문  15 " 244 쪽에서 ㅡ

 

 

우리가 가졌던 대부분의 추억은 네모 길쭉한 박스 안에 모두 담겨 밀봉되어 있었다 . 부식되지 않는 타임캡슐처럼 . 이대로 시간이 봉인된 채 보존 된다면 우리는 천 년이 지나 발견될 수 있을까 . 우리의 존재가 천 년 후에도 증명될 수 있을까 . 만약 발굴된다면 우리에겐 어떤 상상과 이야기가 붙여질까 .

 

ㅡ본문  52 " 198 쪽에서 ㅡ

 

 

" 침묵이 전부예요 . 걷거나 죽거나 쓰러지거나 . 어제는 임산부 하나가 길바닥에서 애를 낳다 혼절했는데 그 틈을 타 회색인들이 탯줄도 안 뗀 신생아를 눈 속에 파묻어 버렸어요 . 태어난다는 건 더 이상 소용도 의미도 없다면서 . 끔찍하지만 그런 건 약과 쭉에 껴요 . 도덕이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잖아요 . 친구나 가족 개념도 사라졌고 . 공포감에 미쳐 버린 사람들도 있어요 . 그런 자들은 결국 낙오되죠 . "

 

ㅡ 본문  87 " 136 쪽에서 ㅡ

 

 

" 기가 허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 내 눈에는 토끼처럼 보이는데요 . 저쪽에는 기린도 있고 , 코끼리도 있네요 뭘 . 더 샅샅이 살피면 뿔 달린 유니콘이랑 여의주 문 용도 있을테니까 찾아보든가요 . "

" 장난치지 마요 . 난 심각하단 말이에요 . "

" 구름이란 게 워래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거잖아요 . 온갖 것들을 다 만들어 낼 줄 아는 게 그거라고요 . "

" 알지만 . "

" 그러니 유령이 별 거겠어요 ."

" 유령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어요 . "

" 그럼 마음이 보고 싶어 했나 보죠 . "

 

ㅡ본문 89 " 131 쪽에서 ㅡ

 

 

세계는 시계로 존재했고 , 시계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세계였다 . 그동안 수십 번의 낮과 밤 , 그리고 새벽이 교차되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도 우리는 그 지점이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

 

ㅡ본문 92 " 128 쪽에서 ㅡ

 

 

나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챘다 . 빨간 비가 내리면서부터 , 회색시에 눈이 멈추지 않게 된 후부터 , 우산을 많이 팔게 됐다는 . 그래서 하루아침에 살 만하게 됐다는 ' 상원 ' 이란 이름의 우산 장수였다 . 처음에는 해 오던 대로 수공예 우산을 성실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정직하게 팔았지만 물량이 달리자 질낮은 부품을 사용하고 , 일부러 금방 고장 나도록 허술하게 만들어 놓고 가격을 올려 받았다는 그 남자 .

.......

회색시는 남자가 졸부가 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끊임없이 만들어 준 셈이었다 . 세계가 변해 감에 따라 부자가 되는 사람도 달라졌다 .

 

ㅡ본문 99 " 118 쪽에서 ㅡ

 

 

그게 온다는 말도 그런 식의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도착한 불길한 소식 중 하나였다 . 하지만  소문이 소식이 되고 , 소식이 소문이 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누구도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었다 . 소문이란 온갖 소음과 잡음을 달고 어디든 앉았다가 또 어디로든 날아가는 것이라서 신빙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공짜로 듣는 그 정보의 사실 유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신문과 방송의 기사가 모두 진실일 거라 단정할 수 없듯이 .

다만 그날이 다가올수록 그 소식을 믿는 자들과 세계는 점점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 소문이 퍼지는 속도만큼 신봉자들도 속출해서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지내던 모습이 아니었다 . 세계는 미치광이가 되어 있었고 , 분명 역행하고 있었다 . 진실은 시간만이 알고 있었다 . 약속처럼 정해진 시간을 허비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 무수히 많았던 역사 속 끝에 대한 모든 소문의 결론이 그러했듯이 .

 

ㅡ본문 101 " 113 쪽에서 ㅡ

 

 

끊임없이 내리는 회색 눈이 아들의 몸을 점점 지워 나가고 있었다 . 말하자면 그것은 관 뚜껑이었다 . 온 몸을 지워내려는 회색 눈과 치우려는 나 사이에 치열하고도 기나긴 사투가 벌어졌다 . 뚜껑을 치우려는 내 능력이 닫으려는 회색 눈보다 조금만 앞서도 이기는 게임이었다 . 내가 지치자 그가 대신 늙은 아들의 가슴에 깍지 낀 손을 얹어 펀프질을 했다 . 그의 도움으로 우리의 노력은 한층 빠르고 맹렬해졌다 . 그와 나는 번갈아 가며 꽁꽁 언 손으로 쉬지 않고 펌프질을 했다 . 행렬은 동요하지 않고 스틱으로 얼음 바닥을 깨부수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 그들은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 관심도 없었다 .

그때 늙은 아들의 몸이 점점 따듯해지는 게 느껴졌다 . 우리는 더 바빠졌다  . 나중에는 늙은 아들이 스스로 누을 거둬냈고 ,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 입을 벌렸다 .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 뚜껑이 닫히기 직전에 먼저 관에서 허리를 세우고 일어난 것이었다 . ... 회색 눈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었다 . 나와 그와 늙은 아들이 . 그리고 늙은 아들보다 더 늙은 어머니가 .

 

ㅡ본문 107 " 100 쪽에서 ㅡ

 

 

회색 눈은 금세 시신의 존재를 지우고 있었다 . 몇 분 뒤면 아무도 저 자리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

 

ㅡ본문 163 "  21 쪽에서 ㅡ

 

 

어떤 사람에게 회색 눈은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

 

ㅡ본문 164 "  21 쪽에서 ㅡ

 

 

그곳에는 상상만큼의 평온과 평안은 없었다 . 나는 회색인에게 또다시 홀릴까 두려워 앞만 보고 죽도록 뛰었다 .

 

ㅡ본문 166 "  18 쪽에서 ㅡ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해골의 윤곽을 창백하고 , 메마르고 , 투명해진 피부 뒤로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  윤곽이 분명해질수록 사람들은 모두 쪽같은 인상이 되어갔다 . 이름도 , 나이도 , 성별도 , 국적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 그즈음 차이를 발견해 구별하고 차별한다는 건 성가신 일이 되어 있었다 . 그 해골은 죽은 후에도 남는 것이니 , 사람이란 결국 해골로 태어나 해골이랑 살다 해골을 간직하며 죽는 것이었다 . 그것은 단지 삶이라는 얇고 불안한 표피를 덧입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

 

ㅡ본문 174 "  11 쪽에서 ㅡ

 

 

그게 온다고 한다 .

 

ㅡ본문 179 "   7 쪽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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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inyyeop_n 2017-02-10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도 먹먹하면서 쨘해요. 가슴이 시리다고 해야할까요? 눈이 오면 <날짜없음>이 자꾸 생각나요.

[그장소] 2017-02-10 16:02   좋아요 0 | URL
그 눈이 오던 날을 이 책 모르고 보낸 제가 뭔가 살짝 억울하네요.. ㅎㅎㅎ 엉뚱하게~ 너무 좋았어요 . 이 책 ! 멋진 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구나 ㅡ하고~!!^^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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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은 상처라서 아직 화끈화끈거리는데 제대로 말할 수나 있을까 , 자신이 없다 . 작가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 그 스스로도 여성으로 세상을 살아내고 있을건데 일과 자신과 현실을 뚝 떨어뜨려놓고 한발짝 거리두기가 쉬웠을리 없다 . 독자인 내가 읽은 것만으로도 헤묵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돌올하게 떠올라 버리고 원래 거기 다 있었던 것들일 뿐이란 것을 제차 확인하게 된것을 , 작가는 아파서 어떻게 견뎌냈나 싶다 . 다만 위로가 되는게 그도 나도 혼자지만 혼자는 아니라는 것 ?!

 

같은 민음출판의 저작물인데 이전달에 출간된 릿터의 노랑노랑 표지 디자인을 했던 이자혜 일러스트가 논란의 중심에 서며 릿터의 표지를 갈아야하는 일이 있었다 .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두번째 릿터를 받아보곤 응?! ㅡ 하고 놀란 것이 사실이다 . 페미니즘을 표방한다지 않았나 ? 그런데 이 표지디자인의 무얼 , 어딜, 어떻게 봐야 페미니즘을 찾아볼 수있다는 건지 , 이 작가는 여성 알러지가 있나 ? 스스로도 여자인듯한데 그걸 부인하고 싶어하는 몸부림이 온통 보여서 난감했다고 해야할까 . 잡지를 보면 중간 중간 인덱스처럼 일러스트가 삽지형식으로 들어가 있는데 , 온통 주제가 그런 식이었다 . 전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 한마디로 **녀 , **녀 , 그런 것들을 대표하는 주제만 간신히 드러내보였으니까 , 그렇게 당혹스러워 할 무렵  이 불협화음에 대한 문의를 어디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서성이던 때 터져나온게 페미니즘과 이 작가의 인성이 온당치 않음을 알리는 sns의 고발 건과 이후 문단 내 해시태그 건들이 줄줄 이어진 것이 예의 그 성추문 사건이다 .

 

이후 민음사에선 릿터의 2호 표지를 갈고 개시한 사진을 지우길 바란다고 , 공지가 떴다 . 확실히 그 릿터의 디자인은 매우 불쾌한 것이어서 전화통에 불이 나지 않았을까 싶긴하다 . 가뜩이나 이리저리 채이는 여성의 권리가 같은 여성에 의해 저토록 참담하게 난도질 당한 일도 불쾌한데 ,  그 작품을 보는 눈들 마저 없었다는 것은 대놓고 페미니즘을 우롱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 대체 누가 그 같은 작품을 승인한 건지 묻고 싶었다 .작가 하나로 묻혔지만  이번 문제는 페미니즘을 화두로 내 걸어 놓고  표지 디자인 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 내가 문제 삼는다고 될 일이 아니겠지만 , 나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 (정말 그런가?) 그래놓고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기고하라니 얼마나 웃길 거냐고 , 전체적으로 보면 , 니들 페미니스트 나부랭이 어디  빅 엿 좀 먹어봐 . 하는 거랑 같다고 . (뭐 , 작가들이 표지보고 작품을 싣지는 않았겠지만 )

 

가장 처참할 때가 언제냐하면 내 편이 아무도 없을 때이기도 하지만 , 같은 여자면서 여자가 여자의 적이 될 때이다 . 물론 이유야 많다 . 일단 여성성의 대표인 엄마 , 이 엄마는 강해야하고 엄마는 희생해야하니까 , 불의를 보고도 눈을 감아야 한다 . 할 때 ,  이젠 전통을 넘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된 모성교" 자체가  너무 흔하고 당연한 것이 되었는데 특히 그것이 딸은 감추고 , 아들은 지키기 위한 방패일 때 , 어디선가 울게 되는 누군가의 딸이 자신의 딸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일때 그 잔혹함이 처절하게 슬프고 아프다 .

 

여자의 적인 여자 , 처음부터 그러자고 그랬던게 아닐거 아닌가 , 인성 자체가 그런 경우도 있을테지만 ,삐뚫어진 복수심은 내버려두고 , 시스템이 잘못된 것은 고질적인 문제이기에 하는 말이다 . 

못된 시어머니를 겪은 며느리가 더 못된 시어머니 노릇을 한다고 한다 . 자신도 겪어 봤으니 안그럴 것 같은데 , 아니란다 . 이보다 더한 것도 자신은 견뎠는데 넌 왜 이것도 못 견디니 ? 하는 처지가 된단다 . 악습도 전통이 된다 . 그러니 그러기 전에 끊어버려야 한다 . 그런데 우린 벌써 몇 십년이나 당연한 듯이 견뎌왔나 이 말이다 .  

 

이 책 82년생 김지영 에서  그녀가 종종 장모님이었다가 , 죽은 선배였다가 가까운 누구였다가 하는 이유는 너무도 알 만한 것이었다 . 왜인지는 알겠지만 왜 하필 그녀가  그 대상이어야 하는지라면 하필 그 해 유행(?) 하는 해당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진 탓이라서 , 또 하필 그 때 아이를 낳고 , 맘충이 되고 , 그런 이유겠지 . 모두가 다 겪을 일을 대표로 그녀가 겪는 것이라고......

 

왜 사는 것 자체를 미안하게 만드는가 ,  이건 사회가 고민해야하는 일이다 . 여자들 모두 같이 이젠 피해자가 되지 말았음 좋겠다 . 우리 아이들 대에는 아이 맡길 곳 없어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히 여자가 되어서도 , 여자가 연봉부터 더 적은게 당연하지도 않은 세상이 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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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2-31 0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종종 잊는 거 같은데 여성/남성 이전에 인간이란 큰 테두리가 있죠. 어떻게 같은 여성으로! 할 수 없는 원인이 바로 거기 있죠. 인간이자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중요시하니 이익과 탐욕, 몰염치는 아주 쉽게 발동되죠. 같은 여자/ 같은 남자라는 패로 갈릴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우리, 윤리를 생각하는 문화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장소] 2016-12-31 11:33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 어쩌다 이렇게 니탓 ~내탓 하고있는건지 .. 원망의 뫼비우스 띠일 뿐인데 .이걸 어서 끊어야 할텐데 ㅡ그건 이해와 포옹 뿐 ㅡ그래야 인간적으로 돌아갈텐데요!

jjinyyeop_n 2016-12-31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도 글을 잘 쓰신다지요. 제목부터 확 와닿네요.ㅋ

[그장소] 2016-12-31 11:28   좋아요 2 | URL
얼마면 돼~ 얼마면 ~ 널 가질...( 원빈 ㅡ돈 많은 부자놀이 버전) 딱 ..제 맘이네요 .^^ㅋㅋ jjinyyeop_ n 님 칭찬 한마디에~
뭐라도 막 막 해줄수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