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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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그 겨울의 일주일 , ㅡ 메이브 빈치 , 정연희옮김 , 문학동네

 

 

< 방문객 >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  마음 ,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ㅡ열림원 , 정현종 시선집 , 섬 중에서 ㅡ

몇번 침구를 호텔식 면직으로 바꾸려고 했었다가 만 기억이 있다 . 여행의 좋은 점이 어디 한둘이랴만 나는 여행에서 가장 좋은 점을 치라면 바로 낯선 방과 특유의 냄새가 베인 침구를 먼저 떠올린다 . 잘 마른 낙엽의 촉감 같기도하고 닿고 스치는 소리도 따듯한 것이 무려 새하얗기까지해서 어찌나 좋은지 . 침대는 모두 달라도 , 또 면직의 종류는 숙소마다 달라도 모두 햇살에 말린 듯이 청결한 뽀송함에는 한결같음으로 기억하게되는 여행지에서의 밤과 느른한 게으름 .
그 느낌을 내 방 침구로 가져오려다가 포기하게 된 것은 여행을 집안까지 끌어들여 버리면 밖에서 특별하게 즐기던 것을 평상시로 데려오는 일이 된다는 걸 깨닫고 였다 . 그건 밖에서여야 더 간절한 청결함과 방종의 누림이 된다는 사실이 선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 그 포기는 나를 한번이라도 더 밖으로 유인해주는 또다른 기회가 될테고 그 특유의 촉감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같이 안온하면서 설레게하는 역할로 여전히 기능하리란 건 말할 것도 없고 .

메이브 빈치의 소설 [ 그 겨울의 일주일 ]을 티저북으로 먼저 만나고 , 온책으로 다시 전체를 읽어내려가며 느낌 감정은 바로 그 여행지에서의 낯설면서 익숙한 청결같은 , 그러면서 마음껏 깨끗함을 누려도 노동이 되지 않는다는 편안함 그것이었다 . 치키의 스톤하우스에서 나는 내내 보이지 않는 방문객으로 머물렀다 . 소리없이 웃으며 인사해오는 치키와 고양이 글로리아의 환대를 받는 투명한 방문객 . 아무도 당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이가 없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 그러다 약속된 시간에 징이 울리면 미스 시디 룸에서 달그락대며 우아하게 앉아 차를 마시고 제공된 다정한 음식들을 맛보며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었다 . 

섣불리 아는 척 하지 않는대서 오는 침묵을 배려로 느끼며 전혀 외롭지도 않을 수 있는 시간을 간직하고 돌아 올 수 있다는 건 행복하다 . 쉬워보이면서 어려운 그 일을 치키와 그 동료들이 기꺼이 해낸다 . 호텔의 시작부터 함께한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리거의 묵묵한 성장 . 치키의 사촌이기도한 올라의 독립을 위한 발돋음 . 치키를 응원하지만 방문객으로 등장하진 않는 사람들의 응원이 스톤하우스를 완성해 나간다 . 그 과정을 보는 일은 즐거운 참관이었다 . 치키의 내면이 리거의 어머니이자 치키의 친구이기도 한 눌라의 마음처럼 황폐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건 우려에 지나지 않는다는 매듭은 특히 우리의 귀로를 웃음짓게 해주었다 . 

날이 밝으면 투숙객들과 함께 조류 관찰을 위해 나섰고 , 바람이 불면 부서져 흩날리는 해변의 물보라를 온 몸으로 부드럽고 상쾌하게 맞았다 . 거기선 모두 하나의 인물들이 섬이었다가 밀려드는 바닷물이었다가 빠져나가는 일상의 묵은 찌꺼기로 작용했다 . 치키의 스톤하우스는 섬같은 사람들 마음을 열게 만드는 조수 潮水 였다 . 거기서 마음껏 조수를 따라 일렁이는 나의 휴식 . 

참 신기한 일이다 . 전혀 다른 곳에서 와서 이제까지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일정시간을 공유하는 일은 . 이런 극적인 조합엔 대게 그 분이 빠지면 이야기가 김빠진 사이다 같기 마련인데 ,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읽는 내내 책의 무게를 못 (?) 느끼며 즐겼다 . 아 , 그분이 누구냐고 ? 코난이라고 부르고 함정이라고 쓰던가 ? 사건이라고 쓰고 비밀이라고 말하던가 ? 하핫  암튼 다양다종한 인간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따듯하고 이쁘기도 참 쉽지 않다 . 

이런 따듯함이 그리워지면 메이브 빈치의 다른 소설을 찾아봐야지 . 혹시 아나 ? 그녀가 우리 모르게 스톤하우스 같은 곳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았을지 ...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 가난은 /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 가난하다는 것은  /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 늘 가슴 한쪽이 비어있다 / 거기에 /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 사랑하는 이들은 /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ㅡ열원 , 정현종 시선집 , 섬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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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면서C이기도한_벗님
#꽃이핀아몬드나무_엽서
#케냐AA와콜롬비아블랜드드립커피
#레드향
#문학과지성사_카드책갈피
#그리고
#굴드의물고기책
#리처드플레너건
#문학동네
#직접만든떡까지
#고마워요💕


열심히 읽어 볼게요 .
굴드의 물고기 책 ~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도 읽어야 하는데 ... ㅎㅎㅎ
부지런 떨라고 채찍을 가장한 당근을 보내주신 벗님 .
꽃이 핀 아몬드 나무 엽서를 따라 온게 분명한 책과 이런저런 선물들 .
늘 감사해하고 있단 거 아시죠 ?
아무 날도 아니어도 주고 받는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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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8-02-25 23:3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선물 버려주기 좋은 장소^^? 아~ 핫~ 완전 웃겼어요 .
모두도 오직 하나 ( 이거 형용모순? ) ㅎㅎㅎ

AgalmA 2018-02-25 23:51   좋아요 1 | URL
˝특별한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삶보다 일상을 특별하게 보는 삶을 더 귀하게 여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정은우 작가 애정하시니 거기서 인용ㅎㅎ

[그장소] 2018-02-25 23:56   좋아요 1 | URL
ㅋㅎㅎㅎ 벌써 다 보셨어요 ? 우와~ 우와 ♡

AgalmA 2018-02-25 23:59   좋아요 1 | URL
뭐 이렇게 빨리 끝남ㅜㅁㅜ! 아쉬워서 직접 여행가야 될 판ㅎ!
여행공작단에서 들었던 내용도 많더군요^^

[그장소] 2018-02-26 00:02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좋을 그림 생각하고 보면 조금 서운한 이번 책 . ㅎㅎ 저도 앉은 자리에서 훌렁 훌렁 다 봤으니 말 다했죠 ?
블로그에서 보기도 했고 오디오 클립으로 듣기도 한 내용이라 낯설지 않고 . 그러고 보니 잊힐리는 없겠다는 ~^^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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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ㅡ 이꽃님 , 문학동네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대상수상작


< 엄마와 딸 , 기적같은 인연 >

친하던 친구들과도 이제는 주고 받지 않는 편지 없음의 시대에 블로그 덕분에 알게된 이웃님들과 가끔 주고 받는 편지의 시간은 각별한 즐거움을 준다 . 실시간 댓글로 이어지는 토크 타임도 좋지만 , 그보다 더 정을 가깝게 잇는 선이 되곤 하는 편지글 . 우리 사이에 주고 받을 편지가 있다는 것이 진실로 행복한 일임을 깨닫는 순간들 .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부모나 가족에게 편지를 한 일이 언제였나도 시간을 헤아려보게 만든다 . 내 기억 속에 어린 윤의 편지는 아직도 글씨가 삐뚤빼뚤한데 아이는 다 커서 카톡을 보내면 보내지 , 날 기쁘게 해주겠다고 손편지를 써주는 일은 더 이상 없다 . 그리고 어린 윤을 향해 길게 써내려 가던 , 언젠가 보내야지 하며 쓰던 편지노트는 나도 멈춘지 꽤 되었다 . 그만큼 아이와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고 또 심리적 거리는 멀어졌다 . 

그리고 나는 아주 두꺼운 편지를 받았다 . 책 한권 분량의 편지인데 사실 나는 남의 편지를 (대놓고 ?) 엿보는 그런 입장이 되야했다 . 그것도 어린 친구들의 근심 걱정을 다 들어야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입장으로 말이다 . 책편지라는 말이 맞을 거다 . 한 권이 통째로 편지로만 이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는 풍부한 그런 이야기 .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 

두 아이가 주고 받는 편지들의 년도마다 나는 책갈피처럼 끼워져 그 해에 나는 뭘 했더라 하면서 아이들의 시간을 쫓아갔다 . 편지 덕분에 느낀 건 내가 나의 출생년도와 가까운 해만 심리적으로 나의 일처럼 받아들이는 편협한 이해를 가진 사람이란 점이었다 . 그 유명한 [ 82년생 김지영] 에게도 일어난 하나의 현상으론 이해를 하면서도 그 82년생이라는 햇수는 제대로 이해 못했던 게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 그러니 책 속의 2002년생 은유를 무슨 수로 이해할까 ? ( 아 , 그러고 보니 윤이 2004년 생이네!) 또 편지 너머의 은유인 82년 당시 국민학교 3학년생의 마음도 알길 없는 건 너무도 당연했는지 모르겠다 . 

이상한 현상으로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시공간을 뛰어 넘어 또다른 은유에게 닿고 ,  처음엔 수신인이 더 어린 나이의 은서였다가 곧 입장이 반대되는 기이현상을 겪는다 . 현실의 은유 그러니까 2016년에 사는 은유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 반면 과거의 은유 시간은 몹시 빠르게 넘기는 책장처럼 휙휙 넘어가는 식이다 . 사이좋은 자매처럼 주고받는 편지는 이제 과거 시간의 은유가 현재 시간의 은유 아빠인 사람을 만나는 걸로 극적인 기대감을 높인다 . 이 부분은 살짝 예상한 바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읽는 동안 어머 ~어멋 세상에 ~ 하면서 재미난 이야기 뒤를 궁금해 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 

16세 은유 (현재 시간 속 은유 ) 의 고민을 듣자니 ,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있는 걸 발견해서 놀랐다 . 따지면 우리 윤이랑 두살 차이밖에 안나는 은유의 고민이 하찮게 여겨지다니 , 내가 우리 딸의 고민도 그같이 여기고 살았던 건 아닌지 순간 철렁해서 얼른 딸에게 간지러운 톡을 보내기도 했을만큼 . 다 읽고 나서 혼자 되뇌인 말은 역시나 이제야 알겠어 ㅡ 였다 .  나는 지나치게 과거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나 혼자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현재를 사는데 벅차서 나와 똑같은 시기를 이제와 겪는 아이의 시간은 무시하고 모른 척 했다는 것도 .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윤과 더 살가워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 함께 책을 읽는 친구이니 이 책을 권할 수는 있고 ,  간지러운 카톡을 한줄이라도 더 보낼 수 있게 되면 그로써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 

 

왜 , 딸을 두고 , 평생의 친구이며 동료라고 하는지 그마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그들의 독특한 편지로의 만남은 ...   

 
최근 읽은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에 보면 ' 평서문같은 시간이었다 ' 라는 말이 나온다 . 그 말을 응용해 보자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내겐 꾹꾹 눌러 쓴 기다림과 땀이 베인 흥분의 시간이면서 서간체 같은 시간이었다 . 

그 여행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다만 해끔한 햇살 아래를 걷고 싶은 만큼 걸었고 
걸었던 만큼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

평서문 같은 시간이었다 .

그런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고 ,
충분히 만족스럽다 .

[ 51 P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정은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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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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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2: 전이하는 메타포 ㅡ 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눈에 보이는 것이 좋아요 .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정도로 . "
( 본문 12 쪽 )

  늘 그렇지만 재미있는 책은 마지막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 끝이 궁금해 다음 장을 미친듯 넘기면서도 점점 줄어드는 책 뒷 쪽의 무게가 한 숨이 나는 걸 , 그러다 마침내는 마지막 엔딩에 서운해져 버리고 . 더할 나위없는 재미였는데도 계속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날 알지도 못할 작가에게 괜한 심통을 부려보게 되곤 한다 . 

  주인공이면서 한번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 나 ' 는 9개월 간 아내 유즈와 떨어져 심정적 이혼을 겪게 되면서 자신을 외딴 산 속에 유폐시킨다 . 철저히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자신만의 고독한 작업을 할 셈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주변인들과 엮여 사건의 매개자이며 촉발자가 되서는 말할 수 없는 것과 말없이 지켜져야 할 것들에 대한 시간을 온 몸으로 겪고 배우게 된다 .

  그 시간들에 나타나는 현상이  이데아 , 메타포 , 이중 메타포 등등이다 . 그들은 그림 속의 존재로 형상을 빌려 나타나기도 하고 과거에 그가 알던 그리운 이의 목소리로 나타나기도 하며 ,  여행지에서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마주한 인물로 나타나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 또 고양이의 촉감이나 이계라고 밖에 표현 못할 공간으로도 나타나며 , 들릴 리 없는 소리들로 변주되어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관계를 이끈다 .  

  그리고 나는 , 손에 잡힐듯 눈에 보일듯 생생한 그림 하나를 두고 온갖 상상을 한다 . 기사단장 죽이기 . 소설 속의 주인공 ' 나 '와 열 세살 소녀 아키가와 마리에도 그랬듯이 그 그림이 그려지고 우리 앞에 표현된 이유에 대해서 ...아흔이 넘어 사물의 인지조차 놓은 노인의 깊은 심연에 가느다란 무엇으로 남은 그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 우리에게 단지 난징대학살의 진상과 지난 독일의 잔혹한 시간을 알려주려 했던 것이 다는 아니었을텐데 , 어쩌면 그것은 한 인간의 주마등 끝에 자리한 회한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 그때 그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었다면 자신은 그런 그림을 남기지도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후회없이 연인만 가혹하게 보내고 살아 죄인의 심정으로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짙은 회한 . 

  남은 그림을 '나'가 봐야 했던 이유는 , 지금의 생에선 그런 전쟁이 다시 되풀이 되진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에 후회란 그같은 짙은 상념을 남기는 그림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뭔가를 만들어 낼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 였을거였다 .  지독한 나치의 시대도 , 제 2차 대전도 끝나고 현재의 우리시대는 총칼의 위력보단 뭔가 서서히 인간을 잠식하는 것들에 둔감하게 사로잡혀 가고 있는 추세다 .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히려 속도를 못 느끼는 둔감함 , 생생하게 피흘리는 전쟁보다 은근하게 인간을 잔인으로 몰아넣고 있는 생의 터전이 지금이다 .

   '나' 는 그런 생업에서 무뎌진 한 인간이고 알게 모르게 염증이 난 사람이기도 하다 . 은연 중에 자신이 꿈을 접고 ,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는 인물 . 그러면서 한쪽으론 그게 자신이 잘 하는 일이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인물 . 자신이 그렇게 까지 하는데 아내가 자신말고 바람을 피우다니 , 용납이 될리가 없다 . 그런 생각은 말로 드러나지 않아도 몸으로 생활에서 점차 곁에 있는 사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다 . 분명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희생자적 관념이 된다 . 주부 콤플렉스가 괜히 있는게 아닌거다 . 

  오랜 시간을 함께 산 사람들을 보면 우여곡절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 문제 없이 평생이 순탄했어요 . 하는 부부는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일이 코너에나 모셔야 할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 또 자주 듣는 얘기중엔 여자가 바람이 나면 대게의 경우는 남자가 잡고 , 여자는 가정을 깨려고 한다는 이야길 많이 접했을 거다 . 나만해도 그런 이야길 많이 들었다 . 그럴법 하다고 생각한다 . 왜냐면 여자는 대게 한 마음에 두 사람을 동시에 못 담기 때문이다 . 뭔가를 목적하고  마음에 담은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의 곁에 있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자는 그렇다 . 나를 기본으로 상상을 해봐도 ) 그것에도 역시 한계는 있을 거다 . 유즈 역시 평범한 사랑을 꿈꾸는 여자였으니 자신을 원망하는 남편의 온몸의 아우라를 견디는 건 아무리 사랑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한 일이었을 터 . 

  주인공 ' 나 '는  여행을 하면서 분풀이하듯 무아지경의 상태로 여기저기를 해매고 다닌다 . 그러다 미야기 현 , 이와테 현 근처에서 예의 하얀색 스바루의 남자를 만나고  그(스바루)의 여자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 여자를 만나 , 제 안의 흉폭한 심정과 진짜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 그는 그녀가 아닌 실제로는 아내를 죽이고 싶었던 걸거다 . 그렇기에 어느 밤 꿈에서 그라면 보통 있을 수 없던 일을 비록 꿈일지라도 아내 유즈에게 성적해방을 난폭하게 해치우며 만족을 하고 , 사악해지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그는 사악한 아버지*가 되고 .  < 나중에 기사단장의 말을 들으면 사악한 아버지* 라고 하는 걸 보아 , 그 스바루 남자는 그녀를 쫓는 사악한 아버지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 주인공 '나 '가 일반적인 형태로 부모가 되었다면 어쩌면 그런 사악한 아버지가 되었을 수도 , 또 , 옷장 속에 갇힌 마리에 앞에 서있던 남자로  친부지만 뭐에 씌여 나쁜짓을 하는 아버지였을 수도 , 암튼 상상의 여지가 너무 많다 >

  그것은 모두 꿈의 일이다 . 현실에선 그는 그런일은 상상도 못하니 멘시키 와 마리에 두 골짜기 사이에 끼어서 그림을 그릴 뿐이다 . 이따금 기사단장이 나타나 이런저런 조언 아닌 조언을 해준다 . 이 모든 일은 그가 꿈일지언정 사무쳐서 해 놓은 일을 잘 풀어 원만하게 흘러가도록 하는데 있다 . 그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을 보고 그의 맺힌 한을 풀어 줄 필요가 있었듯이 ( 마지막에 기사단장을 도모히코 앞에서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며 또 기록하는 긴얼굴을 나타내 증거하게 함으로 이중으로 그의 한을 풀게 함 ) 그와 유즈 사이의 막힌 강물을 돌아 흐르게든 바로 흐르게든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 모든일은 필요한 일인 것이다 . 

  그러니 멘시키와 마리에는 그가 사악한 아버지가 되지 않도록 장치된 메타포이며 이중 메타포이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ㅡ 더니 , 정말 영화 제목하나 기막히게 지었다 . (아..이 책과 상관없이 ..) 멘시키는 아마 마리에와 어쨌든 가까워질테지 .  실이라는 뜻을 가진 '무로 ' 의 아버지가 된 ' 나 '와 유즈는 잘 살고 있을 것이다 . 무로에게 앨리스와 체셔고양이와 토끼와 세상 어딘가로든 연결된 많은 동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 

  지금쯤이면 여기와 시차가  없으니 한가로운 주말이려나 , 이렇게 유와 무의 틈을 소설의 이야기로 매꿔도 보며 아 , 너무 즐거웠다 . 

다들 난징 대학살이니 , 안슐루스니 그게 중요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물론 중요하지 않은게 아니라 , 너무 많은 것들을 크게만 생각하느라 전쟁도 , 불사하고 참전도 당연시하고 하는거 아닌가 ... 한 인간의 고뇌 , 인간의 삶과 사랑 , 그런거... 눈에 보이는게 좋다는 말 ,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로 ... 마리에의 그 말이 나는 이 소설에서 내내 울림이 가장 컸다 . 무뎌지지 않고 생이 주는 아주 작은 주름과 나이듦에도 새삼스레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소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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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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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ㅡ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옮김 , 문학동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덮은 책이 미미여사의 레벨 7 이었다 . 그 책의 1권 들어가는 입구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

《 그러나 , 그대 , 이것은 모두 꿈에서 본 것 , 꿈의 이야기 . 》
ㅡ그림 형제 : 도둑신랑 ㅡ
 
  이제 막 프롤로그를 읽었을 뿐인데 레벨 7 의 그 문구가 그냥 자동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 퍽 익숙한 인물이란 느낌과 분명 이 인물을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나는 여러 얼굴로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왈칵 반가우면서 이렇게 익숙한 인물로 또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 갈지 호기심이 물기 잘 마른 스펀지 같았었다 .

  1권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 두껍고 시커먼 하드 커버 속의 그는 아키가와 마리에를 2미터 앞에 앉혀 두고 슥슥 스케치를 잇고 있을 거였다 .                                                         

  이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불안의 싹을 꿈으로 단속적 단서로만 암시받아도 무기력하게 자신을 내던지면서 그는 내내 일생을 수동적 공격형 인물로 수행하는 인간으로만 기능해온듯 했다 . 


  자신 스스로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 거였는데 되돌아가 그 문제가 스스로 고칠 수있는 부분인지 조차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인간으로만 . 행여 물으면 ' 그래 그 모든 문제가 다 네 탓이야 . ' 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 원망을 본격적으로 듣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서 절실하게 도피하는 인간으로 보인다 . 막상 마주치면 별거 아닐지도 모르는데 마주하는 것부터가 공포인 겁장이일까 . 그걸 알아가는게 이 소설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

  한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을 기막히게 설명한 멘시키의 대뇌피질에 관한 예는 그래서 너무나 적절하고 탁월하다 . 특히나 주인공 ' 나 ' 가 보이는 일관된 회피의 행위와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사건에 될대로 되라지 하는 , 어찌보면 터무니없게도 보이는 낙관성은 그 안에 잠재된 문제 해결능력을 스스로 자각하고 각성이 되기만 하면 그와 아내 유즈 사이의 문제까지 일사천리로 스르륵 풀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저 들게 하고 있다 .

  그런 또 하나의 예시와 암시로 , 그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뛰어난 능력이 있다 . 그렇기에  저 자신은  원하진 않았지만 초상화가로 나름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거였을 거다 . 그 부분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문제가 더 큰 것일수도 있다 . 무뎌진다는 것 . 일상이 된다는 것 . 익숙해져 버린다는 것 . 그는 불편함이 없다는 걸로 고통이 없고 갈등이 없었다는 걸로 매사를 단순하게 도식화하는 체질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그렇기에 사랑한다고 믿은 소중한 여자의 변화에 그렇게 충격을 받으면서도 전혀 알수 없었던 거였고 ,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기에 그저 자신의 잘못이 되는 것만이 두려워 도망치듯 집을 나와버린다 . 그래서 그 앞에 필요조건으로 나타난 현상이 이데아 ' 기사단장 ' 즉 관념이다 .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관념이 , 모호함이라는 껍질이 ,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만큼의 중요한 정도로 존재하는 대상의 드러남이 꼭 필요한 피흘림의 ' 기사단장 ' 이고 , 그의 ' 죽음' 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 


" 멘시키 씨 , 이렇게 넓은 집에 혼자 사시면 공간이 부담되거나 하진 않나요 ? "

" 아뇨 , 그렇지는 않습니다 . " 멘시키는 곧바로 대답했다 . " 전혀요 . 저는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 이를테면 대뇌피질을 생각해보세요 . 인류는 매우 정묘하게 만들어진 고성능의 대뇌피질을 선물받았습니다 . 그러나 실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영역은 전체의 10 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할 겁니다 . 그토록 높은 성능의 근사한 기관을 하늘이 내려줬는데 , 유감스럽게도 충분히 활용하는 능력은 아직 획득하지 못한 겁니다 . 예를 들면 호화로운 대저택에 살면서 다다미 넉 장 반짜리 방 한 칸에 모여 검소하게 지내는 4인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나머지 방은 텅텅 비워둔 채 말이죠 . 그에 비하면 저 혼자 이 집에서 생활하는 것쯤은 그다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지요 . "

( 본문 431 , 432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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