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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평점 :
F 의식의 강 ㅡ 올리버 색스 , 양병찬옮김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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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이 서문에서 자신의 좌우명을 분명한 어조로 제시했다 . " 대상을 더욱 잘 설명하라 , 할 수 있는 데까지 . "
다윈은 난초와 꽃을 전례 없이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여 < 종의 기원 > 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이 담긴 책으로 펴냈다 . 이는 그가 현학적이거나 강박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 세밀하지 않으면 유의미하지 않다고 느끼는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었다 . 사람들은 ' 신이 세세한 것이 관여한다 ' 고 믿었지만 , 다윈은 ' 그건 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선택의 소관 사항 ' 이라고 생각했다 .
(본문 22 쪽 )
" 목련나무는 아주 오래된 꽃식물이란다 . 거의 1억 년 전에 나타났는데 , 그때는 벌 같은 곤충이 아직 진화하지 않았던 거야 . 벌이 없으니 색깔과 향기도 필요 없었고 , 그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딱정벌레에게 꽃가루 배달을 맡겼단다 . 벌과 나비와 ( 색깔과 향기가 있는 ) 꽃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어 . 그들은 수백만 년에 걸쳐 아주 조금씩 진화할 예정이었거든 . "
' 벌과 나비가 없고 , 꽃의 향기와 색깔이 없었던 세상 ' 이라는 아이디어는 내게 경외감을 심어줬다 .
' 영겁의 세월 ' 이라는 개념과 ' 하나하나는 작고 지향성이 없지만 , 축적되면 새로운 세상 (엄청나게 풍부하고 다양한 세상 ) 을 만들 수 있는 변화 ' 의 힘은 중독성이 있었다 . 진화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의 계획에 대한 믿음이 제공하지 못한 ) 심오한 의미와 만족감을 제공했다 .
(본문 35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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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평전에 보면 신에 대한 유머가 잠시 나온다 . 신도 아닌 인간들이 ' 신을 위한 어떤 계획이 있다 ' 는 말을 해서 한마디로 정리키 어려운 신의 복잡한 유희를 우회적 유머로 삼아 보여주고 있는 페이지에서 난데없이 웃음이 터졌던 기억이 있다 . 다윈은 마다가스카르 섬과 오랜 관찰의 업적 끝에 도달한 식물 진화의 비밀 , 일부 또는 많은 것을 올리버 색스는 자기 집 앞 정원에서 찾고 놀라워 한다 . 신의 장난이 이렇듯 기발하다 . 먼저 세상에 저질러 놓으면 인간이 알아서 발견할 것이다 . 어쩌면 올리버 색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유희를 신을 통해 보여주려 한걸까 ? 모르겠다 . 나중에 저 세상에 가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물어 봐야겠다 . 물론 만날 수 있다면 !!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스피드를 다룬 부분이었다 . 이 책은 한 단락씩도 의미가 있게 읽히지만 전체를 다 완주하고 나면 그때서야 하나하나의 스톱 영상이 주르륵 이어져 매끄러운 영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체감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 먼저 색스는 지식을 마치 사물의 발견처럼 늘어놓고 거기서 발견의 의의 , 흥미 유발의 순간을 다윈의 식물학에서 제공한다 . 발견에서 더 나아감의 순간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스피드라는 장에서 도약을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 관찰과 분석 다음 원심 분리기 속에 의(지)식을 넣고 힘을 가하고 그것들이 분리되는 과정을 충실한 시간 이론등으로 다진 후 다시 의견을 의심하는 과정 , 그것들이 인류의 의식 속에 묻히거나 드러나는 순간들을 스트로브 기법과 이어진 동영상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
의식하고 있다 . 의식을 한다 .ㅡ의식을 의식하는 순간을 우리는 언제 인식하게 될까 ? 매순간 잔물결처럼 일렁이는 의식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잡아 채 말로 글로 옮기게 될까 ? 바로 그렇게 해야겠다 느끼는 순간에 ? 그 순간에 생각(의식)이 잉태될까 ? 아님 출산이 되는 걸까 ? 색스의 글을 읽으며 나도 떠도는 의식들을 붙잡아 매는 순간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야했다 . 대부분은 생각을 그냥 흘려보내지만 색스는 그런 순간들을 글과 책으로 남기려 애썼다 . 그가 죽기 전까지 매우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지 오히려 신체의 병적 구속이 그의 의식을 풀어 집요하게 표현하게끔 만든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
그의 의식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목록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 이 책에선 친절하게도 찾아보기 장을 붙여 주어 쉽게 일별하고 찾아볼 수 있도록 구성이 되어있는데 , 소설가부터 이론가 , 과학자 , 의학자 , 미술가 등등 잔뜩 언급이 되면서도 글이 매끄럽다 . 나는 주어진 글을 읽으면서도 순간 순간 생각나는 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는데 , 그는 이 많은 인물들의 말을 바구니에 다 담아 한 권으로 묶어냈다 .
책을 덮고 느낀 건 나는 죽어도 이렇게 못하겠지 하는 패배감. 그의 글을 백분의 일이라도 잘 전달 할 수 있을까 계속 걱정했는데 역시 역부족이라는 거 . 읽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말들 전부를 다 나는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를 확실하게 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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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과학은 일종의 다락방을 갖고 있으며 , '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것 ' 과 ' 별로 적당하지 않아 보이는 것 ' 들을 거의 반사적으로 그 속에 집어던진다 . 우리는 수많은 보물들을 사용해보지도 않고 끊임없이 다락방에 쳐넣어 , 결국에는 과학의 발달을 가로막게 된다 ."
(본문 217 쪽 )
다윈은 " 활동적인 이론가만이 훌륭한 관찰자가 될 수 있다 " 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며 , 그의 아들 프랜시스는 아버지를 일컬어 " 이론화 능력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 가장 사소한 문제점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별렀던 인물 " 이라고 했다 . 나름 주관이 있는 프랜시스의 눈에는 이론을 지나치리만큼 중시하는 다위의 행동이 ' 대포로 파리 잡는 격 ' 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 아버지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지적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 " 아무리 사소한 팩트라도 이론의 흐름에 끼워 넣으려다 보니 , 중요성이 부풀려지기 일쑤였다 "
(본문 222 , 223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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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학자들도 가까운 사람에겐 단점이 보이는 것처럼 , 나도 이론의 끼워넣기를 하려다 중요성을 부풀리게 될까봐 , 서툰 글을 그만 끝내야겠다 . 의식의 흐름은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게 아닌고로 직접 느끼고 체감을 해야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올리버 색스의 다락방 뒤지기를 그만 끝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