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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베스트셀러라는 선전에 현혹되어 책을 샀다가 실망했던 적이 많아서 이제야 이 책을 읽었다.
마치 예전에 시골 친척 아이들과 밤에 불을 꺼 놓고는 이불 속에 둘러 앉아서 무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바리가 열병으로 아플 때, 빨간 댕기를 맨 여자 아이가 창문 가에 앉아 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꿈은 과거의 반영일 뿐이라고, 어느 뇌과학자는 설명했다.
자는 동안은 뇌의 어느 부분에서 영상의 무제한적 출력이 이루어져서 시각적인 것만 확대되어 보이고 꿈에서 말하거나 소리를 내는 부분은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미래를 암시하는 꿈을 가끔 꾸기도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이 책 속의 바리데기도 언제나 과거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현재를 이야기한다.
꿈에서 죽은 할머니를 만나서 대화하는 부분.
바리, 너 모르구 있댄? 너 가는 길에 부탁하는 사람덜 많이 만난다구. 제 괴로움이 무엇때문인지 자꾸 물었지비.
응, 바리공주님이 저승가서 알아가주구 오갔다구 기랬대서.
오라 기러니까디 대답을 준비해둬야 하갔구나.
저승을 가야 알지.
거저 살다보문 대답이 다 나오게 돼 이서.
말 다르구, 생김새 다르구, 사는 데가 다른데두?
할머니가 주름이 오글오글하게 가만히 웃는다.
거럼, 세상이나 한 사람이나 다 같다. 모자라구 병들구 미워하구 욕심 많구.
내가 덧붙인다.
가엾지.
생명수를 찾아가는 바리에게 노인이 말한다.
그런게 있을 리가 있나. 저 안에 옹달샘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냥 밥해 먹는 보통 물이야. 라고.
작가는 다른 이에 대한 희망을 생명수의 의미로 이야기한 듯 하지만, 언제나 찾는 것은 내 안에 있다. 내 안에 들어가는 음식, 내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 내 안의 소망, 내 안의 미움. 내안의 욕망.
바리공주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내내 찾아다니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밖에서 찾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있으니까.
우리 안에 있는 답을 누가 찾아줄 수 있을까? 설사 다른 이의 과거를 보고 마음 속을 읽는 바리공주라고 해도.
옛날 이야기 읽듯이 술술 읽었지만, 안락보다 고통에게 , 기쁨보다 슬픔에게 , 진실보다 거짓에게 만족보다 욕망에게 더 큰 자리를 내어주고 살아가는 우리들.
선택하지 않았는 데도 거칠고 괴로운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이 시간에도 절망과 굶주림과 전쟁의 고통 속에서 시간을 견딜 수 밖에 없는 바리데기들이 정말
가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