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라는 이름의 의회 폭력
13 번째로 김정란님이 2004-03-10 오후 4:11에 글올림 김정란님은 홈페이지가 없습니다. 김정란님께 메일보내기 조회:14726
인터넷 중앙일보는 어지러운 이 시대를 조망하기위해 보수-진보 논객간의 ‘시대 읽기’
e-칼럼 시리즈를 진행중입니다. 보수적 입장인 전원책 변호사 겸 시인과 진보 입장의 김정란 시인 겸 상지대 교수가 매주 한번 정도씩 열정이 담긴 칼럼을 싣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반응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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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탄핵안이 발의되었다. 거대 야당의 이 횡포는 두고두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조차 탄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국회의원들이, 감히 정당한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힌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민은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힌다. 대체 무슨 국가변란이 일어나서 탄핵을 하겠다는 것인가.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의 모든 권한이 중지된다. 줄줄이 산적해 있는 외교적인 문제를 위시해서, 대통령이 직능적 권위를 가지고 추진해야 하는 국가 대사가 일시에 중지되고, 엄청난 혼란이 닥쳐 올 것이다. 그런데 대체 그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어떤 중대한 잘못을 대통령이 저질렀다는 것인가.

이번 탄핵안 발의는 민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최소한의 명분도 갖추지 못한 채, 거대 야당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국회의 법적 지위를 이용하여 정당성 있는 절차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을 몰아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써, 일종의 신종 쿠데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일종의 내란 행위로 보아야 한다. 헌법을 수호하고 지켜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유린하는 이 작태는 거대야당의 초법적 의회폭력이다. 그 동안 민주화 세력으로 불려왔던 민주당이 자신들의 옹색해진 정치적 처지를 극복해 보기 위해서 독재의 적극협력자들이었던 한나라당과 손 잡고 탄핵안을 발의했다는 사실은 비통하다 못해 욕지기가 난다. 결국 당신들이 자랑해 왔던 민주화 투쟁경력이란 당신들의 철밥통을 유지시켜 주는 한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던가.

한-민 양당은 탄핵발의의 이유로 이런 저런 구실을 들고 있지만, 이는 순전히 형식적 핑계에 불과하다. 그 동안 한-민 양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탄핵을 들먹여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겉으로 주장하는 이유들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들은 결국 무슴 핑계를 대든 탄핵안을 발의했을 것이다. 이들의 진정한 속내는 정치자영업자들의 철밥통 유지를 위협하는 대통령을 무슨 수를 쓰든 끌어내리고 말겠다는 것일 뿐이다.

탄핵 발의는 한-민 양당의 정치적 스케줄에 처음부터 들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구세력의 대부 격인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이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노골적으로 한 바 있고(그의 주장에는 군의 쿠데타를 간접적으로 선동하는 발언마저 들어있었다), 그의 주장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물밑교감이 오갔다는 정황은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의 쿠데타적 발상에 민주당의 어떤 중진이 “노무현을 내쫓고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정치하자”라는 적극적인 화답을 해왔다는 결과가 그의 홈페이지에 당당하게 개진된 적도 있었다.

결국 이 폭거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거대 한-민 양당의 민주적 절차 불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의회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소위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현실이다.

한나라당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세계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재검표 소동까지 벌인 바 있다.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발언을 공식석상에서 했으며, 다른 한나라당 의원은 대통령을 향해 “등신”이라는 말을 한 적도 있으며, 방송위원 한 사람은 대통령의 면전에서 “자리가 바뀐 것 같다”라는 막말까지 한 바 있다.

홍사덕 총무는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은 바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이 얼마나 노무현 대통령을 동네 강아지 취급하고 있는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드러냈다. 말마다 물고 늘어지고, 숫자를 믿고 공개적으로 능멸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노무현이라는 비주류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속내를 탄핵안 발의로 과감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그 사실에서 출발한 것이다.

국민이 뽑았더라도, 우리 정치귀족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죽을 줄 알아라. 어딜 감히 정치 자금을 수사한답시고, 천년 만년 꿀과 젖과 돈을 보장해 줄 우리의 지역주의 철밥통을 건드려? 너는 정치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부패 안에서 단물을 즐기며 편안하게 살아온 정치 귀족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귀족인 우리가 하는 것이다.

너는 어떤 계보도 없고, 조직적인 지지기반도 없다. 지역 철밥통의 대변자도 아니고, 또 일제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정치귀족의 일원도 아니다. 특정한 학맥을 따라 구성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끈끈한 파워엘리트의 일원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너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 너는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다.

국민이 뽑았다고? 그거야 무시하면 된다. 말이 좋아 국회의원이지, 우리가 언제 국민을 존중한 적이 있었던가? 대의정치란 그저 허울좋은 포장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끼리 해먹는다. 그런데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겁 없이 그 철밥통을 건드리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참을 수 없다.

지난 일 년 간 한-민 양당이 한 일이라고는 대통령을 물어뜯은 일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이 겉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중대한 정책적 실책 때문이 아니라, 단지, 오로지 대통령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에 반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사이 청와대가 제출한 법안의 대부분을 국회가 승인해 주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대체적인 국가 경영 방침에 있어 거대 야당은 대통령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지난 일 년 내내 대통령을 괴롭히고 구박하는 데 모든 정치력을 집중해 왔다. 거기에 조/중/동 거대 언론이 열심히 거들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번 탄액안 발의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 나라 수구세력의 뿌리가 정말로 징그러울 정도로 그 뿌리가 질기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정치권/학계/언론계 각 분야에 지난 수 십년 동안 이권으로 얽히고 설킨 무시무시한 인맥을 쌓아왔다. 그들에게 정치인 노무현의 등장은 당혹과 불쾌감 그 자체였던 것이다.

KS 출신의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는 “두 번이나 상고 출신에게 졌다”는 통한을 표현하는 만화를 경기고등학교 동창회보에 실은 바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이들은 대한민국을 들었다놓았다 해왔다는 자부심에 가득차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들이 보여준 눈부신 현금조달 능력은 이 나라가 누구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인 어떤 인사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캠프의 대선자금 모집은 앵벌이 수준”이었다고 깔보며 한나라당의 정치자금 긁어모으기 실력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말에서는 돈도 긁어모을 능력이 없는 거지들이 대한민국을 접수했다는 강한 불만이 읽힌다. 따라서 차떼기에 대해서도 국민의 비판에 못 이겨 사죄하는 체 하고 있을 뿐, 이들의 진정한 속내는 이러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우리 마음대로 요리한다. 앵벌이 거지들은 비켜라. 우리의 귀족놀이에 방해가 되는 앵벌이 거지 대장 노무현을 끌어내려라.

한민 양당의 탄핵 발의에 힘을 실어주려는 듯, 이회창 전한나라당 총재는 또다시 <사죄>를 앞세우며, 자신은 감옥에 갈 터이니, 노무현도 대통령 책임을 져라, 요컨대 물러나라, 라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 전형적인 물귀신 수법은 우리가 자주 보아왔던 것이다.

<사죄>는 핑계일 뿐, 이회창 전총재의 기자회견은 희생양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 그 뒤에 숨은 후, 일부 국민의 동정심을 자극하면서 대통령 내쫓기를 여론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진정한 사죄였다면, 사죄로 끝냈어야 마땅하다. 또한 이미 전에 발표한 사죄의 내용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은 사죄를 무엇 때문에 몇 번씩 반복하는 것인가.

더욱이 이회창 전총재가 대통령을 거론해야 할 어떤 명분도 없다. 툭하면 감옥에 가겠다는 최루적 발언도 대통령을 끌어넣기 위한 물귀신 수법에 불과하다. “나 감옥에 가겠소”한다고 사법부가 감옥에 넣어 줄 수 있는가. 한나라당이라는 놀부를 구하기 위해서 흥부 노릇을 하는 이회창 총재가 나를 대신 때려 주시오, 한다고 사법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 말이다.

감옥에 가겠다면, 무슨 잘못을 이러이러하게 저질렀으니, 이러이러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그리고 그 책임은 이회창 총재 혼자 껴안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검찰 수사는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사 결과 이회창 전총재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한나라당 불법 대선 자금 출구조사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이 얼마나 더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공연히 탄핵 정국에 편승하여 검찰 수사를 중단시키려는 시도를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이없게도, 탄핵 발의 문제를 놓고, 조/중/동 삼사는 한결같이 마치 이 문제의 초점이 <대통령의 사과>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대체 대통령의 발언의 위법성 여부를 떠나서, <사과>를 전제로 탄핵안을 발의한다는 국회의 태도가 눈꼽만큼의 타당성이라도 있는 행위인가.

<사과>를 받는 일로 끝낼 수 있는 일을 가지고 탄핵을 발의한 의회의 폭거는 제쳐두고 문제가 대통령의 고집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정치적 기동에 불과하다.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의 사과 여부가 아니다. 청와대는 법적 해석의 이견은 있지만,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그 발표로써 이 사안의 정치적 행위는 종료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 시절에도 비슷한 수준의 발언들이 있었지만, 탄핵은 거론조차 된 바 없으며, 언론을 상대로 표명된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는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지금 이것을 정치적 행위의 장 안에서 억지로 부풀려서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이른 바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한-민 양당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언론이라면, 모름지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주어야 한다.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언론까지 그 장단에 춤을 추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탄핵안 발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고 지켜보아야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자명해 보인다. 우리 나라의 기득권 세력이 정말로 무시무시한 세력이라는 것,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어떤 뻔뻔한 짓이라도 눈깜짝하지 않고 해치울 세력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그것이다. 이번 의회 쿠데타는 아마도 역사를 거꾸로 돌리기 위한 수구 기득권 세력의 마지막 카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민의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력인만큼,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속단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정치자금 수사로 코너에 몰린 상황을 일거에 수습해 볼 방안으로 위험한 불놀이를 시작했다. 그들의 집을 지키자고, 나라 전체를 불구덩이에 몰아넣을 수 없다. 국민은 이럴 때일수록, 원칙이 견지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주어야 한다.

탄액안이 가결되는 것만은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한다. 이는 노무현을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는 문제를 벗어나는 문제이다. 이것은 민주질서의 기본을 지키는 일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노무현이 정치를 잘했다고 판단되든, 못했다고 판단되든, 탄핵의 대상이 될만한 행동을 한 바 없는 대통령이 이렇게 의회의 폭력에 밀려 탄핵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우리 나라의 민주 정치는 또다른 폭력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힘 뿐이다. 우리는 또다른 형식의 시련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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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3-13 10:59   좋아요 0 | URL
국회는 국민들을 생각이나 했을까?

진/우맘 2004-03-13 11:49   좋아요 0 | URL
다른 건 다 모르겠습니다만은, 국회가 국민 생각을 요만큼도 안 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

*^^*에너 2004-03-13 15:37   좋아요 0 | URL
정치에 관심 업는 저지만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ㅡ.ㅡ

행복한 파랑새 2004-03-13 21:02   좋아요 0 | URL
요즘 탄핵문제 때문에 말들이 많더군요. 그것 보면서 참으로 씁쓸함이....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 김영하의 작품을 좋아 했었다. 그러기에 몇년의 공백기간을 통해 새로이 탄생했다시피 한 그의 작품은 친필 사인이라는 유혹과 함께 나에게 다가왔다. 책표지의 우스광스러운 모습. 몽둥이를 치켜든 청년의 손에 끌려가는 여자 . 싫어하는 표정이 아닌 수줍은 듯한 표정 . 낙서한 듯한 표지의 그림에서 풍기는 가볍지 않은 가벼움. 책장을 넘기기전 표지에 씌어진 상황을 설명한 글들은 읽지 않은 나의 느낌이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오빠가 돌아 왔다였다. 오빠가 돌아 옴으로써 펼쳐지는 사건들을 여동생의 삐딱한 눈으로 통해 그려지는 콩가루집안의 가정사이야기였다.  가정이라는  생각은 전혀없고 뭔가 잡아 먹고 먹히는 생태계의 관계 마냥 그려진  가정은 그래도 왠지 모를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고 나 할까?

 김영하의 이번 작품은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다. 읽는 속도감이 엄청 빠르다. 읽으면서  계속 그 상황이 나의 뇌를 헤집고 들어온다. 상황을 그린다. 그 상황을 떠올리면서 심각해지기도 하고 끽끽거리게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흔희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예리한 감각으로 파헤쳐 놓은 책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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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zang 2004-04-11 01:15   좋아요 0 | URL
솔직한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쑥스럽기까지합니다. 전, 김영하 작가님 이란 이름도 초자입니다. 여기 리뷰보니 꽤 유명하신 분인가보네요?! 이 틈에 김영하 소설 찬찬 읽고싶네요. 어떤 느낌일지..궁금하네요. 제목도 특이하게 [오빠가 돌아왔다.] 지금 이 책 제가 보관함에 담아놨어요. 다음 기회되면 꼭 사려고요^^

다연엉가 2004-04-12 08:27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 보세요..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갑니다.

반딧불,, 2004-05-17 18:04   좋아요 0 | URL
그 냉장고 이야기...충격적이었는데..
이 책도 읽어보아야겠네요..
 
 전출처 : bluetree88 > 반쪽이

반쪽이 - 옛이야기 그림책 까치 호랑이 9
이미애 (지은이), 이억배(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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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겨울밤이 무르익을 때면 어릴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들던 기억이 새롭다.
할머니의 그 이야기 보따리는 어찌나 풍성했던지 “또요..또요..”해도 자꾸만 새로운 이야기로 손주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셨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그 멀고도 머언 아주 오랜 옛날~~, 이렇듯 손주들이 이야기에 목달라 하는 마음에 애를 달구는게 당신의 즐거움인 듯
한참을 뜸들이고서야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이 되었지..
눈은 말똥말똥, 귀는 쫑긋~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 전개에 따라 손을 움켜쥔채 숨을 꼴깍 삼키기도 하고 휴~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하면서 그렇게 겨울밤은 깊어만 갔었다.

내가 어렸을 적엔(지금의 부모님들 대다수가) 옛이야기를 다룬 책이라고는 눈을 닦고 찾아봐도 없던 시절이라
오로지 입담좋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즉흥이야기를 의지삼아 이야기의 재미를 즐길수가 있었다.
늘상 농사일에 쫓기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그러나 손주들의 그 이야기 성화엔 잠시 일손을 놓지 않을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우리들에 비하면 요즘 아이들이야 옛이야기를 다룬 많은 그림책들 속에서 듣고만 싶으면 책장에서 빼내와 책을 읽으면 되는 일이지만
그런 문명의 이기속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갑자기 서글퍼지는 것은 내용이야 훤히 알지언정
정작 우리세대가 가졌던 이야기와 얽힌 따스한 추억들은 갖지 못할 것이기에
옛이야기를 읽기는 하지만 참 삭막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이유인즉, 우선 그림책으로 접하게 되는 옛이야기 그림책들은
구술로 전해 듣는 이야기의 상상력에 비해 내용이 많이 축약되어지고
이야기가 산만해지지 않는 범위내에서 책을 편집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모두 읽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모자란듯한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옛이야기 그림책이란게 활자화된 그림책의 영역에 속하다 보니,
그리고 대상연령이 어린 아이들이다 보니 내용의 충실함 보다는 삽화로 전하는 내용의 전달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삽화란게 정말 잘 그려진 그림이 아닌 이상 오히려 아이들의 상상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래 지니고 있는 옛이야기의 맛까지도 떨어뜨릴 우려가 많다.

아직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에 옛이야기 그림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협소하여 아이에게 들려주고픈 이렇다할 옛이야기 책을 좀체로 찾을수 없었는데
몇년전 보림의 [까치호랑이]시리즈와 웅진닷컴의 [두껍아 두껍아 옛날옛적에], 보리의 [꼬불꼬불 옛이야기]가 출간되면서
아이들은 예전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그 옛이야기의 묘미를 책으로나마 즐길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리즈중 [반쪽이]는 하은이가 특히나 좋아했던 옛이야기 그림책이다.
이런저런 군더더기 설명이나 배경그림 없이 전할 내용에만 충실하고 있고
또 옛이야기가 지니는 전형인 반복구조를 띠고 있어 하은이가 쉽고 재미있게 책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반쪽이]를 하은이에게 읽어주면서 내 나름대로 책을 통해 느낀건데
만약에 할머니로부터 [반쪽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반쪽이’의 형상을 과연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눈도 하나, 귀도 하나, 팔도 다리도 하나씩, 입도 반쪽, 코도 반쪽이라는데...



처음 [반쪽이]를 읽을때 하은이는(당시 네 살) 반쪽이라는 어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이 반쪽이라는건 아무리 상상을 해보아도 제대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일이다. 더군다나 네 살난 아이에게는..
그런데 책을 통해 본 ‘반쪽이’는 그리 심각한(?) 모습이 아니다.
심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책을 읽어가다 보면 반쪽이의 용감함과 효성 그리고 지혜로움에 반하게 되어 버린다.
게다가 반쪽이에게 위기인 상황은 반대로 유머러스하게 전환해 놓아 아이들은 코 앞에 닥친 위기를 실감하지 못한채 배꼽웃음을 짓는다.



또한 이야기 말미의 영감딸을 업어가는 클라이막스는 [반쪽이]에 대한 인상을 강하게 남기기에 충분할 정도의 구성이 돋보인다.
반쪽이의 해결방법이 기발한데다 아수라장이 된 사람들의 모양새는 민화풍의 그림이 표현할 수 있는 과장과 재미가 녹아져 있어 반복되는 어구들과 함께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는 내용을 추스르는 전형적인 끝맺음...잘 먹고 잘 살았대.

옛사람들의 이야기엔 늘상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교훈이 저변에 깔려있어
아이들은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있는 동안 시나브로 착하고 어질게 살아야 함을,
그리고 효도와 우애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것이고
어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드러내어 훈시를 하지 않아도 옛이야기의 즐거움 속에서 은근히 내아이가 그렇게 자라기를 바래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책으로 바꾸어 놓은 '옛이야기'
[반쪽이]의 이런 모든 재미에도 불구하고 만약 나에게 그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한다면
다른건 몰라도 예전 할머니가 꺼내 놓으시던 이야기 보따리 만큼은 지금의 그림책 보다 훨씬 재미난 꺼리였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반쪽이]를 읽으면서 아주머니가 먹던 잉어의 반쪽을 훔쳐먹은 고양이가 낳은 새끼고양이의 모습과
책을 모두 읽은후 간지에 있는 삽화그림을 보고서 전체이야기를 다시 간추려 보는 재미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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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3-0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쪽이는 아이들이 즐겨 보며 좋아하는 그림책입니다.
 

 

 

 

 

 

김영하님의 사인을 받은 책을 받고  무슨 선물을 받은 아이마냥

기뻤다. 단편으로 이루어진 글들은 1시간만 방바닥에 엎드려서 읽어도

충분하였다.

웃지 못할 것 같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오는 책.

절대 가족이란 단어를 떠올려서도 안되는 콩가루 집안이야기에

가족이라는 응집력이 더욱더 엿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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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면 작가는 산업체 특별학교에서 야간학교에서 공부한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했을런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몇년간의 일은 한마디도 언급 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의 희망대로 글쟁이(작가라는  표현보다 나자신이 글쓰기가 좋아서)가 되었지만 동창 하계숙의 전화는 작가가 묻어둔 그 시절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한다. "넌 우리가 부끄러워서 우리의 말을 하나도 안썼니"

 작가의 속까지 내 비친 이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난 서로 나름대로 공감대로 형성해 나가며 그 당시의 상황들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다.

 뒤늦게 읽기 시작한 "외딴방"으로 인하여 "바이올렛"이 생각났고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생각났고 "오래전 집을 떠날 때"가 생각났다.

 나 자신 또한 옛날 작가를 꿈꾸고 살았지만 그 것은 단순히 꿈에서 그쳤다. 그러나 작가는 풍족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항상 마음만은 풍족하였으며 작가의 꿈을 이루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가 마치 언니처럼 자가의 속내를 모두 알아 버린것 같은 착각도 들며 작가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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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3-05 11:03   좋아요 0 | URL
작가가 표현한 낙타등의 혹이란 단어는내 가슴속에 슬픔을 안겨줬다.
내 등에 그 시간들을 짊어 지고 있음을" 나 또한 내 등에 시간들을 짊어 지고 있음을....

다연엉가 2004-03-06 12:21   좋아요 0 | URL
헤겔을 읽는 반장의 열등감-뭔지 내용도 모른면서 단지 헤겔을 읽고 있는체 하는 것이 너희와 난 다른 존재라고 인식함. -난 너희들이 싫어-자신이 처해진 현실의 막막함을 내포하고 그 처지가 싫다.

다연엉가 2004-04-06 20:27   좋아요 0 | URL
신경숙의 삶이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